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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세상이 어지럽던 시절이 누군가에겐 되돌아가고픈 추억 서린 시간이었다면 믿기는가.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구루 레스터 브라운에게는 그런 듯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은퇴를 모르고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그의 현재는 왠지 모두가 잿빛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 시절로부터 비롯된 듯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도시 아닌 곳에서의 삶이 그러하듯 다양한 기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파괴되지 아니 한 자연이 있었고, 이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전통적인 방식의 삶을 충실히 좇으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토마토였다. 자신의 동생과 함께 토마토를 재배하는 경험을 통해 대자연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었는데, 훌륭하게도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한다. 욕심을 부렸던 건 아니었지만, 어찌 하면 인간에게 농업이 적잖은 수익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조금씩 깨달았던 듯하다. 사업은 점차 확장됐고, 성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한국전쟁이라는 어둠이 그에게 위협을 가했기에 그는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바로 공부였다. 여러모로 그는 운이 좋았다. 오늘날에도 학비가 없어 공부하고픈 마음이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4년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기에 어려움 없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기회도 주어졌다. 인도 유학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러하겠지만 그 시절 인도는 대자연 측면에서 무궁무진함을 지닌 곳이자 반대로 가능성에 비해 낙후된 현실에 발목이 잡힌 공간이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괴롭히는지, 성장하면서 겪어온 빈부 격차 등에 대한 고민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었다. 농업을 전공한 이로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계속해서 불어가는 인구와 그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환경 등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에게 가장 적합한 분야였다. 이는 사실 아주 색다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일찍이 멜서스는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를 식량의 생산 속도가 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대재앙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멜서스의 이론은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로 이어졌고, 그 결과 많은 이들에게 외면 받았다. 그에 비한다면 레스터 브라운은 상당히 유한 관점을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도 지금의 변화를 일종의 고정된 상수로 보기는 했다. 어느 누구도 자발적으로 현재의 발달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지라 배출되는 탄소의 양 등을 줄이는 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정 계층을 맹비난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방식이 가장 손쉬울 터인데, 그는 이를 ‘정치적’이라고 보았다. 대신 그는 철저히 과학을 따르기로 한다. 누구를 탓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환경의 동향을 파악했다. 여러 학자들의 경고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변이를 추적에 가까울 정도로 연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희소성을 지녔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지만 동시에 그의 연구에 대한 반발도 존재했다. 중국의 경우, 직접적으로 타깃이 된 만큼 그의 연구에 반박하기 위한 준비를 조목조목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과거에는 그리 흔치 않았던 암과 각종 호흡기 질환을 극심하게 앓으며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눈을 뜬 상태였다. 지난날 개발에 중점을 둔 전략을 추구해 온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순 없는 상황이다. 오늘날 극심한 미세먼지 등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그의 경고와 조언은 생존을 위해 필히 귀 기울여야만 하는 성질의 것일 게다. 이루어온 것이 많은 인물임에도 그의 삶은 소박했다. 많은 것을 손아귀에 움켜쥐려 들기보다 모이는 족족 누군가를 위해 사용해 온 그는 그래서 현재까지도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혼이 흉은 아니라지만 분명 아픔이었을 터인데, 담담히 지난날의 헤어짐을 기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헤어진 인연에게도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서 순탄한 그의 생을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