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하면 보통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자매), 버지니아 울프가 떠오른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이디스 워튼의 작품을 읽었음에도 왜 번쩍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아마 위 세 작가보다 자주 접하지 않았서라는 변명을 해 본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작품이 <순수의 시대>로 정략 결혼과 진정한 사랑을 두고 한 남자가 갈등하는 소설이었지만 읽고나서 왜 제목이 '순수의 시대'인지 이해가 된 작품이었다. 고전 작품인데 뒤늦게 읽었는 데 이것으로 이디스 워튼 작가에 대해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읽었던 소설을 역으로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쓴 에세이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를 만나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아 무엇인지 궁금했었는데 작가로서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 캐릭터와 배경 등 소설가로서 생각해야하는 점과 고전 작품을 쓴 대문호 작가들의 작품 또한 간간히 소개하면서 설명을 한다. 그동안 소설 쓰기 관련 도서를 읽었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중요한 건 역시 실천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무조건 써보라고 권유한다. 어느 쪽이 맞다고는 할 수 없는데 난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디스 워튼이 쓴 에세이(글쓰기)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도서는 200페이지도 안되는 얇은 책으로 저자는 소설이 무엇인지라는 첫 주제를 서두로 시작한다. 읽으면서 단순히 글은 이렇게 저렇게 써야한다는 지적하기 보단 여러 작가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 작가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우리는 고전 소설을 꼭 읽으라고 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데 고전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왜 읽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건, 인간 심연에 대한 탐구라고 말하고 싶다. <안나 카레니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프랑켄슈타인> <오만과 편견> 등 널리 알려진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가 독자에게 생각할 것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았다(나만의 생각일 수도).
단순히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디스는 발자크가 만든 인물은 취미와 유약함을 통해 삶의 습성를 유체적이든 도덕적이든 간판한 작가라고 말한다. 사실, 발자크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 100%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나, 고전 작품의 특징은 앞서 적었듯이 인간 내면의 모습을 바닥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기에 어떤 의미인지 간접적으로 이해를 했다. 또한, 단편소설 쓰기, 소설 구성하기 등 더 세분화해서 설명하는 소설쓰기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했다. 그 중 공포 소설은 요소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누적 되어야 하기에 최대한 덜 늘어놓으라고 권유한다.
'조용한 반복은 다채로운 공격보다 훨썬 더 괴롭고, 예상되는 공포는 예상치 못한 것보다 더 무섭게 마련이다.'
사실, 공포 소설은 잘 접하지 않는데 저자가 소개한<나사의 회전>은 읽었기에 이 작품을 비유하면서 설명할 때 비로소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알기도 했다. 이어, 소설을 크게 세 분류로 나뉘는 데 인물(심리)소설, 관습소설, 모험소설이다. 그 안에서 관습 소설은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를 꼽히며 제인이 쓴 작품은 등장 인물들의 성향과 배경이 탁월했음을 강조한다. 나 역시 오스틴의 작품을 볼 때면 등장 인물의 성격에 먼저 집중이 되었던거 사실이다. 또한, 소설을 쓸 때 단편과 장편을 정하지 말고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는 말...그동안 단편을 쓰려고 했었는데 조언을 얻었다.
'예술가의 일은 우는 것이 아니라 울게 하는 것이며, 웃는 것이 아니라 웃게 하는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필사나 포스트잇을 붙이기가 바빴다. 마지막 부분엔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하여'인데 비록 이 작가의 작품은 읽지 않았지만 이디스 워튼이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거 같다.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 각인시킬 방법은 없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도롱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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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자주 읽는 덕분에 주변에서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최대한 상대의 성향을 파악해 좋아할 거 같은 책을 추천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도저히 상대의 취향을 간파하기 힘들 때 치트키처럼 권하는 책이 있다.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들이다. 실패가 없는 소설. 단편도 장편도 다 재미있게 쓰는 작가. 이디스 워튼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매번 감탄을 한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쓰지? 도대체 그녀의 비법은 무엇일까? 궁금하던 차에 이디스 워튼의 소설 작법서를 만나게 되었다.
이디스 워튼의 소설 작법서인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은 세세하게 소설을 쓰는 기술을 알려주기보다는 소설가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소설을 구성하는 법, 독자를 염두하는 방법 등을 알려 준다. 그녀의 설명을 따르다보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절대로 만만치 않는 작업인 것을 깨닫게 된다. 항상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법을 위한 조언과 주의점을 이야기할 때 소설을 쓰는 기술을 전수한다기보다는 소설가가 소설을 마주하는 태도를 전하는 기분이 든다.
“작가가 자신의 뒤엉킨 ‘재료’를 더듬거리기 시작하는 순간, 즉 어떠한 실제 사건이 어수선하게 넘쳐나는 지점들 사이에서 망설이기 시작하는 순간, 독자는 곧장 머뭇거리게 되고, 그러면 현실의 환상은 사라지고 만다.(p.58)’
또한 작가는 소설은 ‘예술’의 영역이라는 것을 반복해 짚어준다. 상황을 구성하는 것, 대화의 사용, 주제선정 등 소설을 쓰는데 필요한 부분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을 강조하고, 이런 부분을 고민하고 구성하는 것이 곧 예술의 행위임을 전하고 있다. 소설가는 또한 훌륭한 독자여야 하는 듯하다. 문체, 인물, 묘사 등 참고하면 좋을 예시작품을 소개해주며 참고자료도 함께 알려준다.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은 가벼운 판형과는 다르게 내용은 다소 무겁다. 독자에서 넘어서서 쓰는 것에 관심이 생긴 이들에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디스 워튼은 어떤 태도로 소설을 썼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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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책은 글쓰기에 관련된 책이다. 글 쓰는 방법뿐만 아니라 독서와 고전 문학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단순히 글 쓰는 방법을 나열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고전 문학이 되어버린 작품들의 소개와 그에 대한 작가님의 솔직한 생각들과 함께 소설 쓰는 방법이 나와있다. 예시와 작가님의 이야기들이 이해하기 정말 쉬웠다. 혹시 오래전 작가가 설명하는 글쓰기 방법이라 현대 소설에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 쓰는 방법은 지금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몰랐던 유명한 고전 문학 작품들을 알게 되어서 더 좋았다. 오랜 시간 생각나고 여러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작가와 글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무언가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스테디셀러가 되거나 그들의 글을 읽고 발견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소설 쓰기에 접근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은 많이 읽는 편인데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책의 구성은 다른 글쓰기 책보다 부담 없이 다가가기 좋았다. 글 쓰는 방법이 쭉 나열되어 있으면 꼭 실천해 봐야겠다는 무거움이 들 수 있는데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책은 친한 언니가 직설적으로 포인트만 알려주는 느낌을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분명 작가님은 오래전 사람이지만 크게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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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만들기 『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이디스 워튼 / 엑스북스
먼저 원제 'The Writing of Fiction'이란 소설쓰기가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을까?란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자 이디스 워튼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과 작가로서의 집요한 야심이 투영되어 끝없는 고군분투로 성장한 그녀의 삶과 연결지어진게 아닐까 싶다. 버들치 같은 천적이 있었음에도 피부로 호흡하며 일생을 땅 위에서 보내며 놀랍도록 다시 살아나는 재생능력을 가진 도롱뇽처럼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만한 소설쓰기...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은 변화무쌍한 작가의 색채로 반복적으로 쓰는 행위를 통해 습관적으로 인물을 탐구하며 자신의 이야기에 어떻게 영혼을 불어넣을지에 관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애정했던 작가 발자크, 스탈당 등의 통찰 또한 보여주고 있어 읽는내내 흥미로운 자극을 받게 되었다.
현대소설이 소설 속 '행위'가 영혼으로 옮겨왔을때 시작되었으며 인간적인 관심을 이끄는 일관성있는 재료선택으로 작품이 탄생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인물의 성격 묘사가 중요하지만 작품 속 인물은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미숙함도 드러내기에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큰 그림보다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특정 주제를 섬세히 착수하는 것이 첫걸음이며 새로운 시각의 진정한 독창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단편소설쓰기에 대한 에세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편에서의 좋은 주제는 장편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들이어야하며, 스토리에 안정감을 주어 모든 구절에 이정표가 존재해야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소설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단편의 의무라고... 어쨌든 소설은 인물을 경험으로 성장시키고 실제 우리들의 삶에 공감되는 기복으로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거... 그렇게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에서는 소설쓰기를 시도하는 이들에게 소설을 가능케하는 잣대를 보여준다.
"생각이 아름다울수록 문장이 갖는 소리는 더 맑게 울린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마치 나와 연결되어 있는 듯 소설은 독자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 속의 삶들이 가끔은 내 마음속에 흩어져 나를 성장하게 만들고 감정의 이입 또한 적지않기에 소설쓰기는 어쩌면 보이지않는 공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소설쓰기를 갈망하거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을 통해 영혼이 깃든 소설쓰기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혹독한 시간을 견뎌내고 내면의 본질을 찾게 되면 가능케 될 거라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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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소설쓰기에 대해 ??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여름에 떠오르는 고전! 하면 여름 겨울에 생각나는 고전! 하면 이선프롬 이 두 작품의 작가이자(더 많은 작품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고 유명한 작품으론 순수의시대와 환락의집이 있다), 내가 애정하는 작가 이디스 워튼의 소설쓰기의 관한 논픽션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도룡뇽이란, 이야기를 말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어린 시절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나롯가에 앉아 있다가 둘 다 불 속에서 도룡뇽을 보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때도 그 순간의 광경은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곧장 아들의 귀를 감쌌고, 그로써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결코 잊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p60 ??보여줄 도룡뇽이 없다면, 독자의 귀를 막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 각인시킬 방법은 없다.p61 ??이 책은 국내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이디스워튼의 논픽션으로 소설의 구성, 인물,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쓰기에 관한 에세이지만 발자크, 스탕달, 톨스토이, 제인 오스틴 등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논평도 볼 수 있다. 특히 프루스트에 대해서는 한 장을 차지할 정도로 구체적인 논평이 나와있다. ?? 차례 1장 소설이란 무엇인가 2장 단편소설 쓰기 3장 소설 구성하기 4장 소설 속 인물과 상황 5장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하여 저자가 이야기하는 작품들 ??소설쓰기에 대해서는 인물, 첫문장, 결말, 도덕성, 단어, 분량과 길이 등, 이 모든 것들의 조화와 균형에 대해 여러번 강조하고 있다. 또한 소설을 예술작품(그림, 음악 심지어 조각에 이르기까지)에 빗대어 설명하면서 소설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소설에 대한 진지함과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쓰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소설을 좋아한다면 소설을 읽을 때 좀 더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감가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 바로 가장 위대한 소설가들의 공통적인 자질은 인물들을 살아가게 한다는 사실이다.p163 우리가 고전 작가라고 흔히 말하는 많은 작가들의 글에 대한 논평을 읽으면서는 그 책들을 미리 읽지 못했다는게 아쉬웠고(이미 읽어보신 분들이 부러웠고) 그래서 많은 작품을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다. 작품들을 다 읽고 다시 『당신의 소설 속에 도룡뇽이 없다면』을 읽는다면 더 풍부한 독서시간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덕분에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작품 다 읽기! #당신의소설속에도롱뇽이없다면 #이디스워튼 #엑스북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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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끄는 제목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에는 작가 이디스 워튼의 소설과 문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 거대한 바다에서 신중한 길잡이가 되어줄 여러 조언들이 담겨 있다. 각각의 조언들은 소설 자체와 단편 소설, 소설의 구성, 인물, 상황 그리고 특별히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견해까지 큰 맥락에 묶여 소설을 쓰는 방향을 잃거나 재설정하기 위해 탐색하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예술가들에 기대어 다소 안전하지만 결코 편안하지는 않은 소설의 길을 안내한다. 만약 저자가 언급하는 모든 작가와 소설들을 알고 있다면 더욱 흥미로운 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독특하고 섬세한 묘사들이 예시 소설을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소설을 쓴다면 기본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할 기본 요소들부터 사소한 습관을 축적하여 벼려지는 문체나 사건의 관계와 조응까지 소설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언젠가 한 번은 꼭 맞닥뜨릴 고민들을 얼렁뚱땅 넘기는 부분 없이 힘있게 직면하고 있다. 대화의 역할이나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의 명확한 구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소설이란 소설을 읽는 독자가 한 요소로서 필수적인 예술이며, 소설의 시점과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핵심적인 부분들까지 빠뜨리지 않고 고찰해 나가는 이디스 워튼의 글을 읽다보면 객관적으로 자신의 소설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되는 동시에 (잠깐일지언정) 써두고 완성하지 못한 소설을 당장 퇴고하고 싶은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특히 내 소설에는 도롱뇽이 있는지, 그 도롱뇽을 독자가 영원히 잊을 수 없게 만들었는지, 없다면 무엇을 손봐야 할 것인지 당장 들여다보고 싶게 된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은 좋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막혀 고민하고 있다면 추천한다. 더 크고 깊은 고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역시 쓰지 않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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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이디스 워튼 / xbooks
이디스 워튼, 그녀의 작품은 『버너자매』와 『환락의 집』을 통해 만나 보았고 작품 중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세계와 도덕과 윤리, 미묘한 심리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주목하였다. 또한 순수문학의 길을 걸어가던 몇 안 되는 미국의 여성 작가였고 그녀 자신이 부유한 집안 출신이어서인지 돈보다는 문학적 가치에 비중을 둔 글을 쓰고자 노력하였다. 여인의 초상을 쓴 헨리 제임스와 교류하며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1차 대전이 후 발표한 순수의 시대(1920)로 여성 최초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이디스 워튼이 그 시대에 작성한 작법서이다. 지금의 수많은 작법서들과 차별을 두자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 는 책임 못 질 응원들에 반대하듯 '아주 오래 걸릴 것' 이라며 진실을 짚어준다. 글쓰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누구나 쓸수는 있지만 아무나 쓰는 것은 아님을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먼저 그녀가 존경하는 발자크와 스탕달의 소설기법을 비교해 준다. 발자크의 글을 읽으면 그가 만든 캐릭터들의 취미, 성격을 비롯한 삶의 습성들까지 간파해 내며 독자들이 인물에 빠져들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사실주의 작가임을 말한다. 그가 만든 캐릭터 하나하나가 실제 살아있는것 처럼 보이며 결함을 전혀 찾을수 없음을 찬양한다. 소설은 쓰는 사람의 생각이 맑아야 함을 말하고 작가의 생각이 아름다울수록 문장이 갖는 소리는 더 맑게 울림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생각이 아름다울수록 문장이 갖는 소리는 더 맑게 울린다. 비유나 인상이 아닌 생각 말이다."
정말로 좋은 주제를 잡았다면 작가는 그냥 깊게 파고 들어가면 되며 그런 면에서 러시아 작가들의 우수성을 예로 든다. 공감하는 것은 나 역시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보면 처음 이름이 좀 헷갈리는 것을 제외하면 가독성 하나는 최고인 듯 하다. 톨스토이의 천재성은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전반적인 인간의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어 고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해본다. 이디스 워튼 역시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지속적으로 표현한다. 소설쓰기에서 특이점은 세상 어느 누구도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며, 이야기꾼은 주제를 선택한 다음 문제의 일화가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 발생할지를 가장 먼저 결정해야할 중요성을 언급 한다.
이디스 워튼이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누구보다 냉철하고 비판적이며 완벽에 대한 고집을 보여준다. 작가로서도 우수하지만 작품들에 대한 비평가로서도 아쉬움이 없음을 읽는다. 혹독하고 치열하게 깨지고 부서지며 쌓아올린 습관이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 어떠한 메뉴얼이 있어 방법만 터득하면 쉽게 써지는 것이 소설쓰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잘 쓰기 위해서는 타인의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써 보고, 많이 생각해야 하듯 이디스 워튼이 작가로서 살아가며 생각해온 소설쓰기의 본질을 아낌없이 글을 쓰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소중한 노하우를 전달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 xbooks 에서 지원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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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에 대한 참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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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순수의 시대> 원작 소설가이자 이 작품으로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이 남긴 소설 쓰기 책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제목이 무척 독특해서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원제는 The Writing of Fiction으로 나름 평범한 제목이더라고요. 번역판 제목이 정말 탁월하지요. 여기서 도롱뇽은 이야기의 '영혼'을 뜻합니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어린 시절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둘 다 불 속에서 도롱뇽을 보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때도 그 순간의 광경은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곧장 아들의 귀를 감쌌고, 그로써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결코 잊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략) 이는 또 다른 요점으로 이어진다. 보여 줄 도롱뇽이 없다면, 독자의 귀를 막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 각인시킬 방법은 없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도롱뇽이다." - 책 속에서
이디스 워튼의 소설 쓰기 책은 일반적인 소설 작법서와 결이 다릅니다. 작가의 역량, 소설 쓰기의 본질을 파고듭니다. 단순히 기술을 논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 읽는 데는 조금 힘에 부쳤습니다. 이 책은 무려 1925년에 출간되어 1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날의 소설 작법서는 빠르게 완벽하게 해내는 법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100년 전 이디스 워튼은 그야말로 걸작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자연스럽게 이 책에는 19세기 문학사 대표작들과 위대한 소설가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고전문학이라 알려진 소설들을 파고들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들려줍니다. 반면 불완전하고 미숙해 보이는 소설도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이디스 워튼은 발자크에게 큰 점수를 주고 있는데요.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발자크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풀어내는 바람에 저도 발자크에 관심이 훅~! 이디스 워튼도 칭찬 일색이니 그의 작품들이 더 궁금해집니다) 생생히 살아있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그의 소설들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법이니 의식의 흐름 기법이니 하는 소설의 기법에 대한 당시 유행 흐름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준이 미미한 작가들은 경향에 따라가기 마련이고 지름길을 추구합니다. 그마저도 풍부한 창의성이 부족하다면 그 소설은 결국 묻히기 마련입니다.
독자의 주의를 끌고 뇌리에 남도록 만들기 위해선 그 순간을 결정적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전방위적인 시각으로 성공적인 소설을 쓸 수 있는 역량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어떤 주제든 온전히 발현되려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깊이 생각하며 창작자가 길러 온 모든 인상들과 감정들로 채워져야 한다." - 책 속에서
쉬운 성공에 물든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사려 깊은 조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독창성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 새로운 시각은 표현 대상을 충분히 오랫동안 바라봄으로써 작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달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키워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거지?' 독자의 내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소설이어야 합니다.
단편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단편소설은 소설의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적인 이야기와 성공적인 소설은 같지 않다고 합니다. 소설엔 사람들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몇몇 위대한 단편소설은 상황의 극적인 표현 덕에 생동감을 얻기도 했지만요.
여기서 초반에 언급한 도롱뇽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상징 도롱뇽. 단편소설은 그 궤적이 몹시 짧아 번개와 천둥이 거의 동시에 칩니다. 빈약하고 축약된 단편소설을 쓰지 않으려면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데 이디스 워튼의 글을 읽으며 진짜 멋진 단편소설을 읽어보지 못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디스 워튼이 말하는 단편소설은 삶의 표면에 느슨하게 걸친 거미줄 대신, 인간 경험의 본질로 곧장 향하는 최적의 통로를 만들어 냅니다.
독창적이고 위대한 영국 단편소설을 자랑하기도 하는데요. 그러고 보면 으스스한 소설의 거장들이 무척 많습니다. 거장들은 공포 요소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누적되게 만든다는 걸 일깨웁니다. 다채로운 공격 대신 조용한 반복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요. 이디스 워튼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극찬하는데요. 200페이지 내내 유령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초자연적 이야기 중 독보적인 책이라고 합니다.
이디스 워튼이 이 책을 쓴 시점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사망했고 곧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결 편을 기다리던 시기였습니다. 그의 작품을 너무나도 사랑하는지 아예 한 파트를 프루스트만으로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첫 권이 나왔을 때 혁신가로 평가받은 프루스트는 그 사이 고전 반열에 오를 정도로 당시에도 핫한 작가였습니다. 혁명가처럼 떠오른 작가를 이디스 워튼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만나보세요.
왜 누구는 후대까지 남길 만큼 널리 읽히는 소설을 썼고, 왜 누구는 매력적이지 않은 소설을 써 묻히고 마는지 걸작이 되고 못 되고의 갈림길을 만날 수 있는 시간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발자크, 스탕달, 톨스토이, 제인 오스틴, 프루스트 등 위대한 거장들이 가졌던 비법을 파헤치고 있으니 고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도 또 다른 깊은 맛을 선사하는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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