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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영화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함께 하는 좋은 친구가 있는 것도 좋지만 뭔가 생각할 꺼리를 가진 영화를 심도있게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만약 한번 봐서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네*버 영화보기로 다시 사서 보기도 하는 조금은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 혹여라도 내가 인상깊게 본 영화를 주변의 누구라도 봤다는 소문이 들리면 나는 그와 장면들을 떠올려가며 의견을 나눈다. 가장 마지막에 나눈 대화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바닷가에 구덩이를 파놓고 여자가 그 속에 들어가서 점점 사라지게 되는 장면에 대해서였다.
언젠가 영화에 대한 내 의견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그리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여러 사람들,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책이나 영화를 보면 신기하게도 같은 장면이라 할지라도 보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나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현직 영화 평론가 5인이 영화와 비평이 설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뭉쳤다. 이 책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2편을 포함하여 총 여덟 편의 영화에 대한 리뷰가 실려있다. 와 그리고! 내가 앞서 언급했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도 비평가들의 선택을 받았다!
아 이렇게 기쁠수가. 드디어 내가 본 영화를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와 명대사다, 명대사.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흑흑 :) 신자유주의 시대, 빈부격차,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 격차에다 간접고용제, 비정규직 문제 등 이 영화는 정말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구나. '깨끗함'과 '붕괴'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고 있는 이 멋진 영화. 박찬욱 감독은 죄와 사랑의 윤리문제를 이 전 작품에서부터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단다. 역시 비평가들의 비평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그리고 나에게 보고싶은 영화가 생겼다. 공과 사는 구분을 해야 하기에 그의 개인사는 모르는 것으로 하고 홍상수 감독의 "탑"을 봐야겠다. 비평가들의 비평을 읽고 나니 영화가 너무 궁금하다.
이 책은 단순히 비평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들이 비평을 하는 이유와 살아가는 이야기도 함께 담는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앞으로도 계속 궁금할 것 같다.
※ 같은 영화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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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서 보니 3, 4월에도 부지런히 보고 싶은 영화를 본 기억에 놀랐다. 가능하면 주말 중 하루는 책을 놓자는 결심 덕분이었던 듯. 멋진 영화들도 많았고, 시선과 사유가 깊고 다른 친구와 따로 같이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책은 신간 영화비평서가 맞기도 하지만, 동일 제목의 팟캐스트 들은 분들이 많고 오디오클립도 있다. 책의 목차는 팟캐스트 합류한 순서라고 한다. 영화 이야기는 늘 재밌고, 공저자들의 활동 분야가 다양하니 새롭게 재밌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916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 재인지하고 노력하고는 싶지만 버거운 괴리를 느끼며 사는 중이라서, 매끄럽지 않은 토론도 좋다. 답이 없는 질문도 좋다. 각자의 감상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좋아한 영화인들과 음악인의 협업 같은 영화 <리코리쉬 피자>는 혼자 쓸쓸하게(?) 보고 대화를 즐겁게 나눌 상대도 당시에 없었는데, 4명이나 리뷰를 하니 그 보상(?)을 뒤늦게 받는 기분이다.
물론 언급된 영화 중에 아직 못 본 영화도 있다. 어쩌면 안 볼 영화도 있지만, 그 작품 한정이 아니라면, 재밌게 읽을 통찰이 담긴 문장들은 부족하지 않다. 문학도 예술도 결국엔 매체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니까.
“녹음을 위해 감상한 이 영화들 사이에는 어떤 경향이랄 게 분명히 지나가고 있었죠. (...) 타자에 대한 집요한 의식 말입니다.”
“타자에 의해 나는 구성됩니다. (...) 내가 타자에 대한 의식과 함께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여기서 방점은 행동하는 나에 찍혀야 해요. (...) 지금까지의 수많은 영화와 이론들은 대개 ‘본다’는 행위의 입장에 서있(다고 받아들여졌)었습니다. (...) 요즈음의 어떤 영화들에서 주체의 자리는 보는 쪽이 아니라 보이는 쪽에 위치하곤 합니다. 저에게는 이게 굉장히 문제다운 경향으로 느껴져요.”
사회적으로는 무지성과 혐오와 차별과 폭력의 언어들이 기세등등하고, 개인적으로는 말보다 침묵이 편한 시절에, 여러 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기록을 대화와 토론으로 남기는 결과물이 뭉클하다.
어떤 경우라도 싸우지 말라는 말은 아니지만, 싸움을 할 때에도 왜 싸우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생사를 정해야 하는 싸움이 아니라면, 전면으로 솔직하게 부딪히는 상대는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동료이자 친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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