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으로 등단 후 시를 읽고 쓰며 살아온 지 올해로 60년이 되는 김종해 시인의 시를 읽고 있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는 시를 읽으며 1백 년의 시간이 정말 짧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하긴 사람들에게 공평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시간은 정말로 짧다. 이 나이까지 살지 몰라서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꾸준하게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저자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삶의 기쁨으로 손자가 태어나서 돌잔치를 하며 할아버지는 정말 기뻐 보이셨다. 하루 하루의 일들이 시집안에 녹아있다. 다만 생애의 끝자락에 대한 생각이 많아 보이신다. 인연이였던 여러 시인들의 만남과 추억 그리고 회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그안에 녹아있다. 글이 좋은 이유는 누구라도 소환할 수 있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게 아닐까. 시가 좋은 이유도 그렇다. 하루하루의 기록이라서 되려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절망도 살아가는 데 약이 된다 15쪽>
인왕산 아래 경희궁의 아침 16층 아파트에 두분이 살고 계신다. <달력을 뜯어내며> 라는 시가 와 닿았다. 실은 코로나19가 일어나기 전과 그 후의 시간으로 삶이 나누어진 듯 하다. 그 시간을 통째로 누가 뜯어가버린 듯 하여, 달리 호소할때도 없고, 저항해봐도 소용이 없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숨쉬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아르신들은 마스크를 어떻게 쓰고 다니실까 걱정되었다. 저자의 시에도 코로나 19의 계절이 고스란이 스며들어 있다. 그 시간을 다시 짚어 내는 게 힘들다. 모두가 고통 속에서 버티어 낸 시간이라 편치 않은 마음이 다시금 고개를 내민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지나가고프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아직은 불안한 마음이 불쑥 불청객처럼 들이민다.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아, 미세먼지를 그리 표현하신 것 역시 멋지시다.
일상이 여전히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마음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했으니 편하게 생각하자. 해설을 읽으면서 저자의 시를 쉽게 읽었나 싶어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 보았다. 역시 시는 음미가 제 맛인가 보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정말 오랜만에 시를 읽었습니다. 특히 노년의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시로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나이 드시고 아프신 부모님을 뵐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할 때가 있습니다. 노시인의 시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
|
82세 노시인의 시집 사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라는 시집을 읽었습니다.
백년도 안되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수천년을 이어온 산과 바다 즉 자연에 비해서는 아침이슬이나 하루살이 떼와 같은 일백년인데 그래서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시라는 것을 처음 접한게 학창시절인데 문구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시험방식으로 접해서 시라는 것은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시집은 그런 어렵거나 아주 압축적인 말들을 쓴게 없이 편안하게 읽힙니다. 잔잔한 힐링소설 같은 느낌입니다.
짧은 말들 속에서 반전을 도모하여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온 선인이 지금의 삶과 예전의 추억들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담담히 이야기한 시집입니다.
시집을 읽고서는 이 시집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할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처럼 시집을 읽었는데 시 한편은 짧으니 책을 펼쳐 어느 페이지든지 펼쳐진 페이지부터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거 같습니다.
*** 서평이벤트로 받은 책을 읽고 느낌대로 적은 글입니다. ***
|
|
김종해 시인의 새로운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총 5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시집이야 어디를 열어 읽어도 괜찮겠지만 이 시집은 구성의 순서를 따라가며 읽어도 좋겠다. 1, 2 챕터에서는 세월과 삶의 흐름을 느끼고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을 오롯이 함께 느끼게 된다.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시적 감각을 통한 발견이 담긴 대목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챕터 1. 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절망도 약이 된다>
챕터 2. 낙원(樂園)을 찾아서 챕터 3. 서귀포를 가다 챕터 4. 그 강 건너지 마오 그리고 3, 4챕터에서는 나이 들어감에서 오는 소회와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온다. 특히나 '나이 팔십 산수가 되니'에서는 흔히들 무뎌지고 고요히 가라 앉은 마음일 것으로 섣불리 예상하는 노인의 감각이 더욱 선명해지고 멀리 내다보는 눈을 크게 뜨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도 나이 50 중반을 지나 60에 다가가고 있는 요즘 자연과 날씨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길을 다니다가 마주치는 이름없는 들꽃과 풀 한 포기, 스쳐 지나는 새들도 예전 같지 않은 눈길로 지켜보곤 한다.
<나이 팔십 산수(傘壽)가 되니>
챕터 5. 봄 날을 그리며 <저 혼자 핀 목련꽃>
|
|
시인으로 살아 온 60년, 아니 인간의 바람이 담긴 100세 이상의 삶이라 우리 인간이 상대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짧다' 에 머물러 있다.
이 책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시(詩) 하나에 매달려 시를 읽고 쓰면서 살아 온지 60년을 맞은 김종해 시인의 시집(詩集)으로 그의 삶에 적셔진 수 많은 타인들의 삶과 그들의 죽음과 죽음의 임박과 죽은 이들에 대한 회상으로 삶에 대한 역설적 의미로의 죽음을 소환해 더욱 삶을 각별하게 느끼게 해주는가 하면 삶의 기록인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간의 아쉬운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 짧다던 시인의 60년 세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삶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
|
절망도 약이 된다.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된다. 그대여,오늘의 캄캄한 시간이 괴롭다고 자책하지 마라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프기만 했던 시간이 사람 살아가는 날의 일생에서 보면 바람 스치는 한순간일 뿐이다. 뜨거운 불가마를 거쳐나온 도자기가 온전한 제 모습을 갖추듯 그대에겐 새로운 내일이 있다. 수천억 년 묵묵한 바위로 살기보다 짧은 시공 時空 안에서 짜릿하게 슬프고 기쁜 마음 누리고 가는 인생 앞에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 된다. (-15-) 얼람을 껐다 평창동 영인문학관에 가서 이어령 선생을 추모하고 돌아온 날 밤 새벽 3시까지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암전 속에서 혼자 헤매었다. 밤새 뒤적이던 그때 십수년 전 낮 12시 신문화관 오찬장에서 밥 한 끼 각별히 사 주시던 뜬금없는 기억 아! 하고 잊혔던 그날의 이어령 선생이 떠올랐다. 은쟁반 위에서 쉴 새 없이 구르던 선생의 달변 사람 살아가는 일상의 캄캄한 한순간이 갑자기 수면 위로 환하게 떠 오르자 오늘 밤, 잠은 다 잤구나 나는 손을 뻗어서 침상 위의 새벽 5시의 알람을 껐다. 이제까지 아침 해 돋기까지 두 다리 뻗고 나는 늦잠을 자리라 그리하여 이어령 선생을 잊게 되리라 새벽의 알람은 꺼진 채 다시 내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으리라. (-43-) 가을은 길 밖에서도 길 안에서도 16층 05호실에는 어쩌다가 승강기 앞에서 잠깐 모습을 보이는 90대 노부부가 정물처럼 산다. 거친 한세상 살아오면서 몸을 비운 두 사람을 보면 안거를 모두 끝낸 불자의 편안함이 보인다. 몸이 가벼워졌을 때를 기다려 가볍게 낙하하는 가랑잎처럼 자연 속으로 고요히 돌아가는 길을 깨친 그들의 뒷모습 따스하고 부드럽다. 가을은 길 밖에서도 길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경계를 언제나 허문다. (-98-) 화장 - 코로나 바이러스 장례식은 끝났다. 고글을 쓰고 두터운 장갑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 서넛 화장로 연소실의 불길을 지켜봄다. 타오르는 불길은 바알갛다. 또 한 사람이 이승을 떠난다. 슬픔은 서로에게 감염되지 않는다. 하얀 방호복 속에 남겨진 자의 슬픔도 갇혀 있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추억은 오늘 밤 별이 되어 떠 있을 것이다. (-115-) 시인 김종해의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는 죽음이 켜켜히 묻어나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 살아있었던 그 누군가가,내일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불현듯 준비되지 않는 죽음은 필연적으로 불행과 엮이고, 자신을 파멸시킬 여지를 넘겨 놓는다. 죽음이란 나의 이야기 이기고 하고, 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매일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사망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우리가 크게 상처를 입지 않고 견디며 살아갈 수 잇는 건,그 죽음의 대부분이 타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2022년 2월 26일 우리 곁을 홀여니 떠난 이여령 교수의 삶과 죽음을 응시하는 여든 시인의 마음과 내면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서 불안을 내포하고, 우울을 내포하고 있었다. 죽음과 죽음의 임박, 죽은 이들에 대한 회상이란 결국 종착역은 나의 죽음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고, 불안하고,우울해지는 이유도 그러하다. 망설여지며, 어떤 일을 계획할 때,완벽을 기하려고 하는 이유도 죽음앞에서 후회의 씨앗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선택하기 주저하는 이유도 죽음이 있어서다. 1941년 생 시인 김종해는 여든이 넘은 나이다. 100세 시대라 하더라도,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다 말한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나이였다. 삶에 대한 책임보다는 비움에 익숙해질 나이, 그 아네에 대한 무게감이 시 곳곳에 채워지고 있었다. 무겁지만, 비우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 시적 상상이, 결국 바람처럼 살다가,바람처런 떠나고 싶은 삶의 욕구가 드러나기 마련이다.자신보다 더 살아온 앞선 세대를 반추하고,어르신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겸손을 배운다. 결국 짧은 인생,짧은 시간에 대한 회한만 남기 마련이다. 미워하지 말고,사랑해야 하는 이유만 남게 된다. |
|
어떤 일을 60년 동안 한다면 어떤 경지가 될 수 있을까 시인은 등단한 지가 60년이 되었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짧다라는 제목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오는 깨달음 때문이지 싶다. 부산이 고향이고 시집 중에 못 찾겠다, 꾀꼬리 라는 시에 실린 초장동 3가는 어린 시절을 내가 보낸 곳이라 시를 읽다 괜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인간은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되는 존재라는 생각에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길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이리도 빨리 지날줄 알았다면 사람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텐데 결국 만남의 시간은 짧고 후회의 시간은 길다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시간을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나는 날이다. 원래 시란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파문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는 힘이 나게 하는 것 그리운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남은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 전화기를 들어야겠다 |
|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관조적(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것.-네이버 출처)이라는 말을 떠올렸던가보다. 시를 쓰고 읽고 생각하기에 관조적이라는 어휘는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하나 작게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일. 천천히 생각하는 일의 모든 순간들 말이다.
조금 전 천둥이 치고 급작스럽게도 비가 쏟아졌다. 봄 날씨가 이렇게 요란했던가. 일 년에 한번 다녀가시는 정수기 관리사님이 내게 말했다. 책만 보시나봐요. 적어도 육 년은 더 되었을 만남이다. 그녀의 손녀딸이 여섯 살이라는 말에 어색한 놀라움이 번져들었다. 이런 상황, 이런 순간과 이런 생각과 이런 찰나들조차도 모두 시로 태어날 수 있을까. 시인의 가슴으로,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것은 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김종해 시인의 시집[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을 읽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그에게서 나는 어떤 시심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 무언가를 찾고 싶었고 읽고 싶었는데, 과연 내가 찾았던 것이 이런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전에 시인의 에세이를 먼저 접했던 까닭에 그가 낯설지만은 않다. 그의 시에서 등장하는 시인들도 예전보다 더 친근해졌다. 박목월, 박남수, 김종한과 이용악, 이어령. 시집 말미에 해설을 쓴 방민호 교수까지. 시인의 시는 간결함 가운데 의미가 깊고, 방민호 교수의 해설은 그 내용이 시집의 올릴 해설치고는 내용이 방대하면서 두텁다. 마치 시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학생시절에는 시도 좋아했지만, 말미에 실린 해설을 더 집중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깊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이었을까.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열함 속으로 들어가기에 너무 무디어진 까닭이겠지
그런데 김종해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온전하게 따뜻해보인다. 치열함과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보았다기보다는, 일상의 기록을 시로 잔잔하게 옮겨놓았다는 인상을 더 많이 받게 되는 시집인가 싶다. 그의 이야기는 모두 시로 태어나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에서 아내와 살면서 내려다보이는 모습들을 시에 담아내고 있으며, 증손녀의 탄생과 돌에 대한 기록. 함께 했으나 먼저 떠나버린 문인들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모습으로 다가서는 회한들이 가득하다. 시집은 지나온 삶과 맞이할 죽음을 두고 의연하게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반추하며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인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모든 문학이 그렇지만 시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 따라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상황에는 나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듯도 하다. 만약 이십 대 시절 젊은 나이인 내가 이번 시집을 읽는다면, 나는 또 지금과는 다른 느낌과 소회를 갖지 않았을까. 시를 쓰는 시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다 원숙한 시를 쓰게 되는 까닭은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더 깊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욕심 같아서는 제목이 들어간 시를 인용문으로 채택하고 싶지만, 그 옆에 실린 작품을 골라보는 중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심이다.
-절망도 약이 된다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 된다 그대여, 오늘의 캄캄한 시간이 괴롭다고 자책하지 마라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프기만 했던 시간이 사람 살아가는 날의 일생에서 보면 바람 스치는 한순간일 뿐이다 뜨거운 불가마를 거쳐나온 도자기가 온전한 제모습을 갖추듯 그대에겐 새로운 내일이 있다 수천억 년 묵묵한 바위로 살기보다 짧은 시공(時空) 안에서 짜릿하게 슬프고 기쁜 마음 주리고 가는 인생 앞에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 된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절망도 약이 된다」전문 인용 p15 -
마지막으로 시인 김종해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
|
나는 김종해 시인(연세가 많으시지만 존칭은 생략합니다)을 잘 모른다. 얼핏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까지 읽었던 시 중에 이 분이 쓰신 것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분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읽은 그대로 내가 느낀 바대로, 내가 생각하는 시에 대한 정감을 갖고 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이 시집을 읽기로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여든이 넘으신 시인이 느끼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 속에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느끼는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을까, 삶에 대한 좀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실패한 것 같다. 많은 시들이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삶에 대한 성찰은 깊지 않고, 죽음에 대한 부분도 특히 더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없다.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에 더 실망한 것일수도 있겠다. 모든 사람들이 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시들은 상당히 평이하다. 그리고 보편적인 시들도 많고, 시국적인 시들도 많다. 그 속에서 어떤 시인만의 시상이 보이지 않는다.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다. 많은 시들이 글처럼 익힌다. 시는 춤추고 음악이 들려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시인이 시를 쓰지만, 그 시를 읽는 독자는 새로운 시인이다. 기존의 시를 통해 새로운 시로 나에게 다가오고, 기존의 시는 내게 나만의 시가 되어 내 속에 간직되어야 한다. 이런 부분을 통해 어떤 시가 나에게 큰 감동으로 들어오면 나는 다시 새로운 시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인은 시를 써 시인을 키운다. 그리고 그 시의 행간에서 서로 엮이고 정을 통한다. 감정은 시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비록 시인이 죽었다 해도 말이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자 첫 번째 시를 보면 사람 살아가는 100년의 시간은 짧고 허무하다라고 쓰고 뒤도 계속 이와 비슷한 글로 쓰여 있는데 이것이 시인이 생각하는 삶이라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뭐라 더 쓰기에 조심스럽다.
시를 바라보는 시에 대한 생각은 시인마다, 그리고 자칭 시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비판, 그리고 격려와 칭찬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느낀 것들을 주관적으로 적은 것 뿐이다. 어떤 분들은 이 시들을 통해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그냥 이 글은 하나의 참조로만 봐 주시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