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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최고의 참모는 유비를 도와 촉을 세운 제갈량, 한고조 유방의 참모였던 장량, 그리고 명나라 태조 주원장을 도운 유기라고 한다. 제갈량이나 장량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고, 그들을 다룬 책들도 많기에 낯이 설지 않으나, 유기하면 조금은 낯이 선다. 그만큼 나 자신이 중국역사에 어두운 탓인지도 모른다. 유기는 원나라 말기, 진사시험에 합격한 후 관직에 나아갔으나, 천대받는 한족출신이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그 후 주원장의 참모가 되어 명나라를 건국하고 다스리는데 역량을 발휘하여 중국 역사상 최고의 참모 중 하나로 등극하였다. 유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명나라 중기 진행된 신격화 작업 때문이다. 태조였던 주원장의 신격화 작업에 따라 자연스레 유기도 신격화 되었다. 참모를 신격화함으로써 그의 주군인 주원장에 대한 신격화가 한결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기 때문일게다. 이 책 [욱리자]는 유기가 원나라 관직을 떠나 낙향했을 때 저술한 것이라고 한다. 욱리자란 답답한 심사에서 속세를 떠난 사람이란 뜻으로, 유기 자신을 지칭했다고 볼 수도 있다. 유기는 책에서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욱리자란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당시의 시대상황이 빚어낸 현실과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하고, 난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였다. 이런 [욱리자]는 총 10권 18개장 195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화를 통하여 천하와 국가, 그리고 인간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장주의 [장자]와 더불어 동양 우언문학의 쌍벽을 이룬다고 한다. 또한 고전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제자백가의 모든 책들이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만들어졌듯이, [욱리자] 역시 원나라 말기 암울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 낸 역사적 산물이라고 역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욱리자]는 오랫동안 난세의 처세 및 리더십에 관한 보고로 간주되어 왔다고 한다. 유기는 책 곳곳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한탄하고 있다. 인재들의 능력보다는 출신지역 등에 따른 불공평한 인사정책, 시기하는 자들의 모함 등으로 인해 능력을 평가 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낙향한데 따른 불편한 심기를 내 보이고 있다. 인재를 등용하지 않고, 간신들만을 우대하고, 능력이 아니라 가문만 중시하는 원나라 말기의 세태를 비유함으로써, 신분에 상관없이 인재의 등용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볼 때,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유기는 또 이상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자만은 금물이며, 요행을 경계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과대망상은 바로 파멸의 지름길임을,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고가 끝없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그런가 하면 난세의 리더십으로 소통의 중요성과 진위를 구분할 줄 아는 안목, 작은 일에서부터 신뢰를 쌓는 법과 초지일관을 강조한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고개를 드는 의문 한가지는 생각과 실천의 차이이다. 원나라에서 한계를 넘지 못하고 관직을 관두었을 때의 생각이, 명나라 개국공신이 되면서 그대로 실천에 이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제자백가들의 사상서는 자신들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 읽혀지지만, 유기의 경우는 [욱리자]를 저술한 후 입신을 하였다는 점에서 드는 생각일게다. 다만 난세의 처신에 관한 것만은 분명하게 자신의 뜻대로 행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명태조 주원장이 명나라를 개국하고 자신의 말년에 거대한 토사구팽을 행하였지만, 유기만은 끝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유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역자의 해설을 따라 읽었지만, 곳곳에서 [욱리자]와 비교되는 [장자]나 [한비자]와는 조금은 다른듯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아마 그것은 유기가 이미 국가사상으로 정착한 유학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역자인 신동준의 책은 조금 읽었다. 여기서 드는 생각 하나, 동양의 고전들을 주석 해내고, 또한 그것들의 전편을 완역하는 역자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하는 것과, 그의 해설을 읽다 보면 거의가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아마 내가 읽은 역자의 책들이 대부분 난세에 관한 것이고, 또한 리더십의 관점에서 본 것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전은 그것들을 읽을 때, 항상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욱리자]를 읽으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 것은 “장강이나 바다는 우물과 물의 맑기를 다투지 않고, 천둥번개는 개구리와 소리의 크기를 다투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생각이 짧고, 도량이 작으면 화부터 내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속으로 움찔한다. 나는 어떠했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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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고전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대부분 중국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오랜 역사와 함께 아시아에서 강대국의 위치를 줄곧 점하고 있었기에 학문과 사상의 발전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중국의 고전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가 되고 있는데, <욱리자>역시 그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사진처럼 책의 뒷면에 언급된 서문의 내용 중 '현재 중국의 많은 정치지도자와 기업CEO들은 수시로 <욱리자>에 나오는 경구와 우화를 인용한다.'라는 글귀를 보면 <욱리자>가 최근 중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중국의 많은 고전을 떠올려본다면 <욱리자>는 다소 생소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 중국의 지도자 계층에서 널리 읽혀진다는 점과 현재 중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우리의 입장을 고려해본다면 <욱리자>는 분명 읽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신동준 씨가 옮긴 <욱리자>(출판사: 인간사랑)는 그 형식이 최근에 읽은 <유몽영>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찾아보니 저자는 <명심보감>, <채근담>과 같은 중국의 잠언 및 고전에 대하여 번역을 하고 있는데, <욱리자>역시 그중 하나이다. 이것을 언급한 이유는 이 책들이 모두 원본에 대한 충실한 내용 전달과 더불어 저자의 풍부한 주석과 해석을 접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원문(한자) - 원문에 대한 해석 - 주석 - 내용에 대한 해설'이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원문을 직접 읽어보고, 스스로 해설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원문과 해석, 주석을 통하여 해당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고, 마지막에 저자의 해설과 비교하여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책의 내용보다 이러한 형식적인 측면을 언급한 이유는 꽤나 두꺼워 보이고, 생소한 작품인 <욱리자>에 대하여 독자가 거부감없이 읽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욱리자>는 어떤 책일까? 책의 겉표지에서 '중국판 목민심서'를 표방하고 있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가 지방관이 가져야 할 덕목을 저술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선 지도층의 덕목을 언급한 책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저자인 유기와 그가 활동하였던 시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보인다. 사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터라 내 입장에서 유기는 그리 생소한 인물은 아니다. 주원장의 장자방이라 불리우며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임은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의 주원장을 만나기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사실 접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은 주원장을 만나기 이전에 저술된 작품이니 시기적으로는 원나라 말기라 할 수 있다. 원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몽고족이 전 세계를 제패하고 중국에 세운 왕조로서 쿠빌라이 칸으로 대변되는 강력한 국가가 아니던가? 그러나, 한족을 차별하는 정치로 인하여 유기가 살던 시기에는 이미 원나라는 혼란에 빠져 도처에서 반란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유기는 한족 출신으로서 뛰어난 실력으로 벼슬길에 들어선다. 거기에 더하여 청렴하고 강직한 태도로 일을 처리하였기에 시대를 잘 만났다면 유능한 관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족에 대한 차별 정책을 노골적으로 실시하던 원나라의 상황에서 그가 낙향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기는 낙향하여 당시 혼란스러운 원나라 말기를 돌아보며 저술한 책이 바로 <욱리자>이다. 원나라의 학문에 대한 통제와 감시로 인하여 유기는 자신이 처한 당시 상황에 대하여 '욱리자'라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낸 것이다. 특히 다수의 중국 고전이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사상에 입각하여 직접적인 현실에 대한 비평보다는 개인의 참선과 극기, 자연에 대한 관조적인 내용을 소재로 하여 속세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반하여 <욱리자>는 가상의 인물인 욱리자를 통하여 당시의 세태에 대하여 직접적인 비판과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원나라 말기의 부정부패와 서민들에 대한 폭압적인 정치로 인하여 망조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유기는 <욱리자>를 비롯하여 자신의 생각을 경구 및 우화로 담아내거나, 전국시대의 사례를 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개인적인 입장을 통하여 한인 차별정책과 같은 그릇된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 서민들에게 폭정을 행사하고 있는 지방 관리의 가렴주구, 난세로 인한 행동의 처신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총 181장의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의 흐름은 마치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가 될 수 밖에 없는 역사로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장의 '구난(九亂)'을 보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하나의 장으로 압축한 것과 같이 9개의 난을 설명하고 있으며, 9번째의 난의 소제목 '새 왕조를 세울 영걸을 고대하다'는 유기가 후일 주원장을 만나서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활약을 하게 되는 것을 천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앞서 <욱리자>가 중국판 '목민심서'라고 언급을 하였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8년에 집필한 상황과 유기가 <욱리자>를 저술한 시기를 비교할만하다. 조선은 순조 시대의 중반에 들어서면서 점차 세도정치가 극성에 달하여 지방관의 가렴주구로 이어지던 상황이었고, 유기는 아예 왕조 자체가 교체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비록 조선의 상황이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정약용 선생은 그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마도 유기의 사례와 같이 왕조가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여 '목민심서'를 통하여 지방관의 학정을 바로잡으려고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점을 본다면 <욱리자>는 이미 '목민심서'와 같이 당시 원나라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예방책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왕조에서 원나라 말기의 혼란을 경계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의 말미에 새로운 왕조에 대한 언급은 그러한 유기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현재 중국의 상황은 원나라 말기의 상황과는 분명 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원나라가 내부적인 혼란으로 인하여 망조의 길을 걷게 되는 상황이었다면 현재의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위하여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욱리자>가 중국의 정치지도자와 기업CEO에 의하여 탐독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된다. 그들 입장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어떠한 길로 나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제갈공명이 천하 삼분지계를 통하여 중국을 분할하는 대업을 달성하였다면, 유기는 거꾸로 중국을 통일한 대업을 달성한 인물이다. <욱리자>는 그러한 전략가이자 유능한 관리인 유기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대한 생각과 처세가 담겨져 있는 책이기에 치자(治者)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인이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 어찌보면 현재의 사회에는 현대인에게 개인적으로 난세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리더십을 배워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도 직접 타인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길을 제시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스스로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옛 선조들의 지혜와 조언이 담긴 '고전'은 우리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하여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내용이 무조건 맞다라고 볼 수 없지만, 분명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기자 있으리라 생각된다. <욱리자>또한 이런 다양한 고전 중 하나이기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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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 유기(劉基)는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 건국에 대공을 세운 일등 공신이었다. 그는 주원장이 원을 멸하고 명을 건국한 다음, 후계를 위해 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제거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가령 공신에 봉해진 37명 가운데 주원장이 죽기 전에 작위가 박탈되거나 주륙을 당한 사람이 무려 31명에 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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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리자』는 인간사랑 출판사의 관계자 분께 받은 책이다. 읽고 느낌을 적어주기를 기대하고 보내주셨을 것이다. 그것이 벌써 5개월 전이다. 그런 책을 왜 이제야 읽고 서평을 쓰게 되었는지 또 이 책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신동준 선생의 저서라는 점에서 기대가 되는 한편으로 궁금하고 부담스러웠다. 역자인 신동준 선생의 저서는 10여권을 읽은 바 있다. 2012년에 『조조의 병법 경영』으로 처음 접한 이래 『귀곡자』,『상군서』,『명심보감』,『채근담』, 『조선왕 성적표 』등의 저서가 떠오른다. 어느 책이건 그 방대한 양에 놀랐고, 원문의 나열이 아니라 그 배경까지 상세하게 풀이하는 박학함에 감탄했다. 이 책에서는 어떤 세계를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 것이다. 궁금했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조조, 귀곡자, 상군서, 명심보감, 채근담을 비롯하여 조선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었다. 여러 판본을 섭렵하며 삼국지를 10여 회 읽은 나로서는 조조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이 있었고, 귀곡자와 상군서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었다. 명심보감과 채근담은 동양의 고전이 아닌가? 그런데 『욱리자』라니? 이것이 인명일까, 서명일까? 나로서는 처음으로 듣는 용어에 대해 궁금함과 함께 호기심을 느꼈다.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신동준 선생의 책은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만화처럼 그림이 덧붙여 있는 책도 아니고,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내용이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삼국지나 열국지 등 흥미진진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선생의 글은 흥미를 선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사건의 배경과 평가까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펼쳐보이고 있다. 그것도 짤막한 것이 아니라 수백 쪽이나 이어진다. 가끔은 숨막힐 정도로 힘겨울 때도 있었다. 이 책은 626쪽이다. 삽화 하나 없이 한자로 된 원문과 해석 및 선생의 보충 설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독서만 한다고 해도 최소한 사흘 이상 책속에 묻혀야 한다.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5개월이나 지난 것이다. 둘째, 어떤 책이건 신동준 선생의 손을 거치면 최고의 주석서가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생은 한문으로 된 경전을 그저 풀이만 하지 않는다. 원문이 나오고, 해석이 나오는 것은 다른 저서와 유사하다. 그와 함께 그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고증이나 배경이 그렇게 상세할 수가 없다. 단순한 경서풀이가 아니라 중국사상이나 역사에 대한 백과사전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일례로 첫글인 1장 천리마의 경우 한자 원문은 12행이고, 그것을 우리말로 풀이한 것은 34행이다. 그 글에 대한 배경과 용어의 풀이가 59행이다. 보충 설명이 원문과 풀이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이다. 그러니 책마다 수백 쪽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욱리자』뿐만 아니라 선생의 저서가 대부분 그렇다. 선생의 책을 몇 권 읽은 독자들은 쉽게 적응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셋째, 차원이 높은 우화라는 장르를 통해 유기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우화라면 이솝우화가 떠오른다. 짤막하면서도 재미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그러면서도 읽기 쉬운 작품이 우화라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우화가 아니었다. 중국문화의 정수가 우화라는 옷을 입고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읽으면서 웃음을 머금을 내용이 아니라, 중국의 사상과 신화와 역사가 신화나 대서사시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주인공인 욱리자는 유기 자신이라고 한다. 저자는 원나라 말기 암울했던 시기에 예언서를 쓰듯 이 글을 썼다. 유대민족이 고난의 시기에 성서를 쓰듯이……. 성서를 통해 기독의 정신을 느끼듯이, 이 책을 통해 중국의 사상을 어림잡을 수 있었다. 넷째, 이 책의 압권은 서두에 있는 ‘들어가는 글’이다. 이와 같이 경전을 해설한 대부분의 책에는 글의 앞이나 뒤에 서문이나 발문이 있다. 역자는 서문이나 발문을 통해 해당 도서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자신이 그 책을 옮기게 된 동기, 경위, 집필과정, 감상 등에 대한 간단한 기술을 적는다. 그러나 선생의 서문이나 발문은 간단한 글이 아니다. 역자 서문과 별도로 40여쪽(16~53쪽)에 걸쳐서 실린 ‘들어가는 글’은 한편의 논문 수준이다. 저자인 유기가 어떤 사람이며,『욱리자』는 무슨 내용이며, 당시 어떤 사회였기에 유기와 같은 사람이나 『욱리자』와 같은 책이 출현할 수 있는지가 실려 있다. 혹시 나와 같이 방대한 분량에 질려서 책을 펼칠 엄두를 못내는 이가 있다면, 이 부분만은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완독했는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5개월 동안 틈틈이 책은 펼쳤다. 한 가지 이야기가 10여쪽 이내에 그치니 계속해서 1시간 이상 읽어도 좋고, 한 가지 이야기를 마친 뒤에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읽어도 좋다.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서 그 부분만 읽을 수도 있고, 완독한 뒤에 두 번 세 번 다시 읽을 수도 있는 책이다. 완독을 하기는 했지만, 대단한 책이라고는 느꼈지만, 딱히 어디가 대단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아마 두어 번쯤 읽어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의 신화와 문화를 알고 싶은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이도 이 책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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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스토리텔링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이야기를 첨부하거나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표현한다면 사람들에 공감을 얻어데는 데 있어 효과적이라며 너도 나도, 적극 스토리텔링을 권유하는데 《욱리자》 역시 이런 스토리텔링을 기본으로 한 고전이다. 저자인 유기는 원말명초의 격변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의 핵심 참모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주원장은 유기를 두고 '한나라를 건국한 한 고조에게는 장량이 있고, 촉한의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는데, 자신에게는 유기가 있다.'라며 굉장히 칭찬했는데, 이는 참모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만큼 유기는 주원장의 통일 정책에 있어서도, 그리고 통일 이후의 명나라의 행정을 정비하는 과정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브레인이었다. 원말명초 시기 유기는 원래 원나라에서 봉급을 받는 공무원이었다. 모든 왕조의 말기가 어지럽듯, 당시 원나라도 망해가는 과정이었으므로, 행정은 엉망이고 인사 배치는 출신을 따지고, 권력자의 코드인사가 일반적이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유기는 분노하며 벼슬을 내던지고, 칩거하며 군사를 기르며 때를 기다렸다. 그런 과정에서 유기는 자신의 울분을 저술로 표현하였는데 그 저서가 바로 《욱리자》였다고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식자 계층은 언제나 당대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데, 유기가 활동했던 시대는 원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기에 식자들의 비판의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유기는 시대 비판을 넘어 스스로 시대를 개혁하고자 하였는데, 《욱리자》 역시 그런 일환으로 저술된 책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욱리자》를 통해 현실을 노골적,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우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돌려서 현실을 비판했을까?
지식인들이 무엇을 비판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방법, 두 번째는 돌려서 비판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은 직설적인 만큼 명료하고 깔끔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너무 직설적인 방법이기에 비판의 대상으로부터 집중적인 반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다소 간접적이지만, 첫 번째 방법보다는 위험 부담이 없는 편이다. 아마 유기가 우화를 통하여 현실을 비꼰 것은 원나라의 세도가들의 눈을 피하고자 했던 보신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우화 형식은 앞에서도 말했듯 스토리텔링 기법이기에, 문자를 배우지 않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접하기에도 용이했다.
또 생각해 볼 점은 《욱리자》의 우화들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자극적인 내용이 많다. 이를 통해서 생각해보면 유기는 비판의 방법론은 직설적인 비판보다 우화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했지만, 우화의 내용에는 사회를 개선하고자 한 자신의 울분에 찬 감정을 적극적으로 담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욱리자》의 필법에서 나는 유기의 분노에 찬 감정적인 울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런 감수성이 가득한 필법으로 작성된 고전을 하나 더 꼽아보자면 사마천의 《사기》가 떠오른다. 사마천은 유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느꼈던 당대의 모순점, 그리고 인물의 논평을 《사기》에서 가감 없이 감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런 우화 중심의 고전의 대표적인 작품은 《장자》인데, 《장자》와 《욱리자》는 우화를 사용하여 자신의 철학이나 생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공통점이 있지만 내용상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장자》는 탈 세속적인 성격을 가지는 대표적인 도가 사상을 대표하는 책이다. 따라서 《장자》의 우화는 대체적으로 허무적인 성격을 가지며, 현실의 범주를 초월한다. 그러나 《욱리자》의 우화들은 세속적이며,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욱리자》의 우화들 중에는 현실 초월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이는 표면상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고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들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고 있다.
아무튼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강하며, 사회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려 하였던 유기는, 명나라를 개국하는 주원장을 만나 그의 핵심 참모로 등용된다. 주원장은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을 개국하여 중원에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알린다. 바야흐로 유기가 욱리자를 통하여 꿈꿨던, 문명의 융성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유기의 생각대로 새 시대는 흘러가지 않았다. 유기가 희망을 걸었던 주원장은 권력을 독점하자, 측근들을 의심하며 대규모의 숙청을 감행하는데, 여기에는 유기 역시 포함되었다. 결국 주원장의 측근에 질투를 받은 유기는 벼슬을 버리고 정계에 은퇴하여 짧은 노년을 보내다 죽었다는데 일설에 의하면 독살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유기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욱리자》를 통해 보건대 유기는 굉장히 감정적인 성격을 지닌 것 같았는데 굉장히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어쩌면 시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특정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시대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고 불변의 역사의 법칙을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건 간에, 우리는 오늘날 《욱리자》라는 문헌을 통해 당대의 혼란했던 시절, 사회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한 지식인의 순수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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