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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 시작은 표시하기 쉽다" 그런데 끝은 결말은 맺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되는 것인가? 끝은 늘 현재진형이니 표시하기 어렵다가 맞나? 많은 물음표가 머리에서 뿅뿅 쏟아오르게 하는 스토리였다. 나에게는 많이 어렵고 낯설고 이해와 공감이 안되는 인물들이어서 한 달 걸쳐서 읽었다. 연휴가 없었다면 그나마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중반까지는 몰아치듯 읽었다. 전반부의 사건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몰입되고 그 끝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건은 발단이 되었으나 중심이 되지는 않았다. 그 사건을 통해 만난 패리라는 인물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 실험하는 장과도 같았다. 생각도 종교도 가치관이나 사랑의 의미도 다른 드클레랑보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맞닥드렸을 경우 어떤 변화가 생길까? 드클레랑보증후군은 종교적 의미가 내재된 동성애적 집착이라고 하는데 뭐 집착적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사이코 스토커라고 해야 하나? 터무니도 없는 집착적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스토리가 산으로 가나? 아무래도 나에게 심리묘사가 주인 책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듯 싶다. 공감이 되지 않는 인물의 심리묘사는 입에 고구마를 계속계속 잘게 썰어서 밀어 넣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색다르다 , 이런 체험을 언제 해보겠는가 싶었다. 심리묘사의 달인은 맞는 것 같다. 그나마 마지막 헬륨기구 사고로 죽은 유가족들과의 피크닉으로 인해 막힌 속이 좀 풀렸다. 이쯤 되면 제목이 왜 [견딜 수 없는 사랑]인지 누구의 입장인지 묘해진다. 한 사건을 여러 사람이 다른 기억 저편에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도 다양성이 주는 다채로움도 읽는 재미에 포함된다. 전체적으로는 안개같은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꿰뚫어버렸다는 느낌이 안들고 복잡미묘한 느낌을 남기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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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소설에 이토록 몰입하기는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싶다. 번역도 잘 되었지만 이언 매큐언은 정말 굉장하다. 잘 만든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한 사건 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팽팽한 서스펜스와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 대한 유려하고도 촘촘한 심리묘사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하루하루 별탈없이 지내다 어느 한 순간 어떤 장소에서 위험에 처한 어린이를 구해야 한다는 직관에 따라 행한 행동이 자신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소름이 돋는다. 더군다나 사건 현장에서 그저 찰나적으로 시선을 주고 받았을 뿐인 어느 타인이 그날부터 광기어린 스토커가 되어 내 평온한 일상에 침범한다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광신자가 나름의 확신을 갖게 되면 어떤 논리도 설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좀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과는 어떻게든 엮이지 않는 게 현명한데 살다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기도 하니까, 이 소설과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치를 떨었다. 정말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 이 상황이 끝날테니 죽기를 각오하든, 살인자가 되든 선택을 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조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도 경찰도 모두 조가 망상에 빠져 헛것을 본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나도 혹시 조가 너무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 후유증으로 상상의 인물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마리가 풀리는 후반부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독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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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복서가에서 새롭게 번역 출간한 이언 매큐언의 <견딜 수 없는 사랑>을 리뷰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1997년에 발표되었으며 발표당시 뜨거운 화제를 모아 부커상 수상이 기대되었으나 이언 매큐언이 다음해에 다른 작품인 <암스테르담>으로 수상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작품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가 이번에 복복서가에서 한정아 번역가님의 세심한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빌 브라이슨 그리고 김영하작가님의 추천만으로도 읽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조 로즈이다. 그는 유명한 과학칼럼니스트로 사고가 일어났던 그 날은 여자친구 클래리사와 6주만에 재회하는 날이었다. 둘은 숲으로 소풍을 갔고, 그 곳에서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기구에 남자아이 혼자만 남겨진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조는 곧바로 사고현장을 향해 달려가고 들판 곳곳에 있던 또다른 네명의 남자도 사고 현장을 향해 동시에 달려 가게 된다.
조를 제외한 이 4명의 남자는 42세의 ㅇ ㅣ사 존 로건, 63세의 농장 잡역부 조지프 레이시, 그의 동료인 58세의 토비 그린, 마지막으로 28세의 무직자 제드 패리이다. 처음에 이들은 힘을합쳐 아이를 구하려 했지만 어느순간 그들 중 누군가가 밧줄을 놓치게 되면서 마지막까지 밧줄을 잡고 있던 존 로건만이 기구와 함께 날아오르게 된다. 존 로건은 결국 공중에서 떨어져 사망하게 되고, 조는 이로인해 큰 충격과 깊은 죄책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본격적인 전개는 지금부터이다. 그날 저녁, 조가 힘든 하루를 정리하고 간신히 침대에 누운 새벽2시에 느닷없이 걸려온 제드 패리의 전화. 그는 갑자기 조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그는 조의 집앞까지 찾아오는 등 점점 조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이상한건 조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는 자신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패리를 상대로 전력을 다해 버텨내지만 조가 패리를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사건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제드 패리는 드클레랑보 증후군을 앓는 것으로 밝혀진다. 드클레랑보 증후군이란 자신이 상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왜곡된 망상을 가지게되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한마디로 도끼병이다.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많이 발견되며 남성이 앓게될 경우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제드 패리 역시 점점 폭력적인 모습을 보다가 결국에는 조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소설인가라는 점이다. 이 책의 띠지에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 '부록의 비밀까지 풀어야 비로소 끝나는 천재적 플롯의 문학적 서스펜스'라는 말이 쓰여있다. 소설의 마지막 부록을 보면 드클레랑보 증후군에 대한 논문이 실려있고 그 사례로 제드 패리가 나온다. 사실 부록을 읽기 전까지는 이 내용 전체를 소설로만 여겼었는데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기인한 소설이구나... 라고 알게 되었다.. 는 나의 착각!
김영하작가님이 이 소설을 주제로 라이브를 진행하셨는데 이 부록조차 이언 매큐언의 소설 일부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와... 속았다! 이쯤되니 드클레랑보 증후군의 존재까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다행히(?) 이 정신질환만큼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야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라는 의문이 풀렸다.
사실 이 모든 반전을 알고 보아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서스펜서소설이다. 이언 매큐언의 숨은 걸작 <견딜 수 없는 사랑>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애니가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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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에 사랑의 신드롬으로 나온 책이다. 이언 맥큐언의 완전한 신작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었기에 얼른 구매했다. 특히나 "첫 페이지에서부터 완전히 빨려드는 플롯. 이토록 흡입력 넘치고 잘 쓰여진 소설을 얼마 만에 읽는지 모르겠다." - 빌 브라이슨 (작가) 라는 광고 문구가 나를 설레게 했다. 모든 것에 투덜거리기 바쁜 ㅋㅋ 빌 브라이슨의 글도 좋아한다. 이언 매큐언의 다른 글들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당연한 수순으로 구매를 할 수 밖에. 구매하고 나서 읽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내용은 말 그대로 빨려 들어가게 재밌다.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 내면을 치밀하게 파헤치며 글을 쓸 수 있는 건지 궁금할 때조차 있다. 스토리에 놀랐던 가슴이 진정 되고 나면 다시 재독을 할 생각이다. 그 때는 또다른 재미를 건져 올릴 수 있으리라 본다. 이언 매큐언의 책은 내게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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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난 후 책 제목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책의 첫 시작은 열기구 사고로 시작한다. 주인공(조 로즈)이 여자친구(클래리사)와 함께 피크닉을 나왔다가 열기구 추락을 보고 열기구가 다시 날아가지 않게 줄을 잡으러 간다. 주변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열기구를 잡고 있었다. 열기구를 잡고 있음에도 열기구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고 하나둘씩 잡고 있는 열기구를 놓기 시작했다. 열기구는 점점 더 올라갔고 가장 마지막에 줄을 놓은 존 로건은 추락하여 결국 숨지게 되었다. 존 로건이 죽고 그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그런 내용이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고난이 시작되었다. 열기구 추락 사고에서 갑자기 나타난 패리라는 사람은 주인공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주인공의 여자친구와의 사이도 멀게 만들고 심지어는 주인공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경찰과 여자친구에게 털어놓아도 오히려 주인공을 망상에 빠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긴다. 최종적으로 패리는 정신병원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주인공에게 매일 편지를 쓰고 살아간다. 이 책에서 패리는 종교적 의미가 내재된 동성애적 집착인 드클레랑보 증후군이라고 한다. 스토커와 조현병의 비슷한 느낌이지만 다른 점은 종교적 확신이 망상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드클레랑보 증후군을 처음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는 다행히 패리는 계속 정신병원 생활을 하고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와 아이를 입양해서 살아가는 내용으로 끝났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 한 내용 같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드클레랑보 증후군과 사랑을 구분하기 어려워 보일 것 같다. (물론 스토커도 마찬가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된다. 견딜 수 없는 사랑.. 이것이 과연 사랑일까..? 견딜 수 없는 그의 망상이 맞는 것 같다. 열기구 사고 현장에서 패리를 본 그 순간 주인공의 인생을 바꿀 고통ㅅ런 시간이 시작된다. 사랑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있는 칼. 이것을 결코 사랑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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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를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친구나 연인사이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간에도 당연한 게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노력이겠지만, 시작하는 것은 작은 호감일텐데, 그 호감이 내가 너에게 생겼다고 해서 너 역시 나에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요즘, 어릴 때의 자식이 부모를 따르고 사랑하는 건 무조건적이지만, 그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이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사랑을 주는 일이 가능할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여성학 강의 갔다 모인 여성들과 그리고 선생님까지, 대한민국에서 장녀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절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지금의 젊은 아버지들도 대체적으로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은 아빠를 따르는 어린 딸들이 좀 더 자라면 아빠를 미워하게 될거라고 생각한다. 아,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떤 아버지들은 신뢰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수는 현저히 적을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되는 한국남성의 전형은 자신의 아버지라고. 내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아들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남자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기분 나쁜 아저씨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그들도 집을 나서는 순간 그 아저씨들과 같은 아저씨들이며 심지어 집 안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아,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는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아빠와 딸 이야기는 아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소재가 되어 책으로 써지고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사랑. 정말 엄청난 힘을 가진 것처럼, 모든 것의 답인 것처럼 여겨지는 그 사랑. 그래서 사람들은 그토록이나 사랑 받고 싶고 사랑 하고 싶어하는 것인가보다. 사랑이 너무나 위대해서, 너무나 선이라서. 물론 나는, 사랑이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은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많이 오해되는 것이 사랑이고 가장 많이 악용되는 것도 사랑이라고.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기적이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지독하게 고통이라고.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이 받는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아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사랑이라고 해서 받았을 때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호감이나 관심은 상대를 기분 좋게 해줄 수도 있고 상대로 하여금 자기애가 생기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상대를 사랑한다고 목놓아 외치는 것은 상대를 괴로운 상황으로 밀어넣으며 고통을 주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 기쁨이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내가 별로 안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를 끈질기게 좋아하고 열망하고 갈망하고 그러는 거, 그건 정말 지독한 고통이다. 차라리 나를 미워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미워하니까 너도 나를 좀 미워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고 싶어진다. 아마 경험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그 미친 괴로움을 말이다. 소찬휘 노래 가사중에도 있다.
"차라리 나를 미워해!"
뭐, 내가 말하는 같은 맥락에서 나온 가사는 아니지만. 나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거, 진짜 괴롭다. 물론 대체적으로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될 일은 별로 없다. 그런 일은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이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미워하게 된다면, 그 경우에는 나 역시 처음에는 상대를 좋아했다가 상대의 어떤 반복되는 말과 행동 때문에, 그리고 상대의 지나친 사랑 때문에 내 마음이 짜게 식어버리게 되는 경우에 발생하곤 한다. 첫눈에 반했다고 끈질기게 구애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테고, 나를 자기 마음대로 지나치게 이상화 시키는 것도 그럴테고, 헤어진 후에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복되어 집착되는 경우에도 그럴테다. 사랑한다고 부르짖어도 나에게는 괴롭힘이고 집착이며 스토킹이다. 집착은, 어떤 집착도 환영받을 수 없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지나친 사랑은 정말 싫다. 지나친 사랑은, 하는 당사자에겐 반드시 보답을 기대하게 만든다. 내가 너를 이만큼이나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위해서 이만큼이나 했는데 …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일방적인 사랑을 주면서 나에게 응당 마땅히 뭔가 보답받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정말 역하다. 나는 너한테 보답하지도 응답하지도 않을거야, 그러니 제발 나한테 너도 주지 말라고! 그러나 이렇게 집착하는 상대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들을 생각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하는 말을 내가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상대가 내게 말하는 사랑은, 내게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한 것이 되어 있다.
소설 속 '조'는 출장 다녀온 애인 '클래리사'과 함께 소풍을 가기로 했다. 좋은 풍경의 자연에서 와인을 따라 마시며 변함없는 사랑을 속삭일 참이었는데, 저기 기구를 타고 있는 어린 아이가 위기에 처했다. 강한 바람에 기구가 날아갈 참이다. 마침 주변에 있던 성인 남성들이 뛰어가 그 기구를 붙잡아 그 안에 혼자 있는 어린 아이를 구해보려고 하지만 강한 바람에 역부족이었고, 그로 인해 인명사고가 발생한다. 이 일은 그 기구를 붙잡고자 했던 당사자 조에게도 그리고 그 일을 목격한 클래리사에게도 충격이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그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친구들과 술자리도 갖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며 사이 좋게 잠자리에 드는데, 그 때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조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차렸지만, 나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독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앞부분의 이 대사는 아직까지 나를 충격에 빠뜨리진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코야, 흔한 불륜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로구나, 했단 말이지. 누구냐고 묻는 클래리사의 말에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대답하는 조 때문에, 나는 더욱더 불륜에 확신을 가졌다. 좀전까지 이렇게 좋은 여자가, 이렇게 아름답고 지적인 여자가 나를 사랑해주다니 감탄하던 이 남자가, 그런데 불륜을 저지른다고? 아이고 맙소사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가.. 하다가, 아아, 나는 보기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러니까, 무슨 책이든 그렇지만, 이 책에 대해서라면 읽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지 않는 쪽이 좋을 것 같다. 내 경우엔 그래서 이 책을 정말 재미있고 쫄깃하게 읽을 수 있었으니까.
처음 강풍에 날아가려는 기구안 어린이를 구하려는 것부터 그리고 그 때 발생한 사고, 그 후의 어떤 죄책감과 트라우마까지도 나는 어휴 너무 긴장되어서,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죄책감이라든가 트라우마라든가 인간의 고뇌 뭐 그런 얘기를 할 줄 알았고, 이 비극적인 사건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한거다. 그러다 저 전화 한통에, 아 그렇지만 결국 불륜 이야기? 했다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구나! 깨달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햇던 집착에 대한 아니, 그보다는 망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환장하겠는 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데, 나는 너에게 애초에 아무 관심도 없는데, 그런데 너는 나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 나도 그래" 라고 해버리는 거다. 와.. 미치겠는 거예요. 아니라고, 아니라니까, 이러지마!!!
어제, 여동생하고 그런 말을 했다. 나 혼자 건강하다고 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만나주지 않는 여자에게 칼을 휘두른 남자에 대한 기사를 본 뒤 나눈 대화였다. 내가 아무리 정신 건강 꼿꼿하게 유지한다고 해도 내 주변의 누군가가 온전하지 못한 마음 상태라면 그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인생이란 도로 위에서 내가 모든 교통신호를 잘 지키며 주의를 기울여 운전해도 그 길을 달리는 음주운전자에 의해 다치거나 죽게될 수 있는 거였다. 음주 운전은 술 마시고 운전하는 본인에게 해를 입힐 확률이 가장 높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그 도로를 함께 달리고 있는 다른 운전자에게 해를 입힐 확률도 높다. 인생이란 도로에서 나는 뜻하지 않게 음주운전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달리는 이 길에 음주운전자가 나타날거라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도로 위를 우리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건, 다른 운전자들도 마찬가지로 신호를 잘 지킬거라는 걸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선을 바꿀 때는 깜빡이를 켜고 초록색 신호면 멈춰 서는 걸 내가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역시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어제처럼 차를 타고 도로 위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길에 갑자기 음주 운전자가 나타나 모든 신호를 무시하고 방향도 무시한 채로 이상한 속도로 달려든다면, 그 길에서 나는 위험에 직면한다. 운이 좋으면 그 자리를 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운이 나쁘다면 나는 그 차에 치어 큰 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도로에서 음주 운전자를 만나지 않고 싶은 것처럼, 인생에서 나 역시 음주 운전자를 만나고 싶지 않다. 내가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영혼이 아픈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언제 나에게 해를 입힐 음주 운전자가 될 지 모른다. 천천히 내 영혼을 갉아먹고 나를 지치게 하다가 내 주변까지 다 파괴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조는 괴롭다. 자기에게 닥쳐온 이 사랑이 괴롭다.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클래리사에게 오늘의 고통을 다 털어놓고 싶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클래리사는 조가 원하는 대로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고통에 맞장구쳐주지도 않고 들어주지도 않는다. 클래리사가 왜이러지? 조는 그런 클래리사에게 실망한다. 클래리사는 클래리사대로 바깥에서 자신의 일상을 살고 왔다. 일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고, 클래리사도 온전히 한사람의 몫을 소화해내는 동안 지치고 힘들었다. 집에 들어오면 그에게 휴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조는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기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한다. 잠시만, 잠시만 나 좀 혼자 내버려둬.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이 지독한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은 조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거. 조를 괴롭히고 그래서 조가 고통받으면, 그건 그대로 바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 괴롭힘을 당하는 조의 말과 행동은 괴롭힘을 당하기 전의 조의 말과 행동과는 다르다. 클래리사가 보는 지금의 조는 예전의 조가 아니고, 예전의 조가 아닌 만큼 예전의 사랑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파괴된다. 이게 다, 사랑이 한 일이다. 어떤 사랑이,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만 사랑이라고 불리워지는 바로 그것이 한 일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견딜 수 없는 사랑인 건, 그래서 내게는 아주 적절해보였다. 읽는 내가 괴롭고 스트레스 받을 정도로 정말이지, 견딜 수 없었거든. 하지마, 사랑 하지마, 사랑 내다버려!, 이런 사랑을 어떻게 견뎌! 날 사랑하지 말라고, 사랑이 반드시 선이 아니라고, 하지말라고! 몇 번이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언 매큐언의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해 어떤 찜찜함이 있다. 속죄도 어떤 찜찜함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그렇다. 그 찜찜함이 별 다섯을 막는다.
하여간, 사랑이 문제다, 사랑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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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은 반전들과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흥미로운 내용 전개 때문에 책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과 속죄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하고 읽었는데 나랑 잘 맞는 책이어서 이언 매큐언의 다른 책들도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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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 추천 작품이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심리 묘사가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것 같습니다정말 감탄 하면서 즐겁게 독서 했습니다저는 이언매큐언 작가의 소설을 전부 읽어보았고 그중에서도 이 책이 으뜸 인것 같습니다 정말 강력 추천합니다 |
책 제목에서만 보고는 내용을 추정할 수가 없다. 과연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구심으로 이 책을 구매해서 정독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추리소설같은 느낌을 갖고 되었다. 하지만 이런 대화를 통해 사랑을 느낄 수 있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치명적인 사랑이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감성이나 이성이 내 자신의 의구심이 풀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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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언 매큐언의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읽고 적는 리뷰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작품 관련 스포일러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재밌게 읽어서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소설가 김영하 작가님의 강력 추천하셔서 기대가 많았는데 읽으면서 왜 그렇게 추천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필력을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힘과 몰입감이 엄청난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