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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우연히 쪽방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골목을 지나치게 됐다. 때는 가만히 있어도 푹푹 찌는 여름, 문은 하나같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사람 하나 겨우 드러누울 법한 내부 공간이 보고자 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왔다. 대체 저런 곳에서 어찌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다가 지붕 없는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도 있음을 이내 떠올렸다. 세상은 드넓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도처에 널려 있음을 제대로 느낀 날이었다. 동자동. 많이 들어는 봤으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지도 검색에 나섰다. 서울역과 맞닿은 곳으로,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리움미술관, N서울타워 등을 지역에서 가볼 만한 장소라고 인터넷 검색 엔진은 나에게 알려 주었다. 그야말로 서울 한복판. 내가 거주 중인 곳도 서울이지만 부동산 가격을 놓고 보면 결코 같은 세상이라 말할 수 없을 곳이었다. 온갖 화려함이 가득 들어차 있을 법한 장소에 열악함의 상징과도 같은 쪽방촌이 있다. 여름철이면 불볕 더위로 고통받고, 겨울철이면 호호 입김에 의존해 추위와 싸우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 하루속히 개선이 필요하지만 벌써 여러 해째 이 일대를 둘러싼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정한 이들은 퇴임하거나 인사 이동을 했고, 어찌 본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할지도 모를 상황에 직면했다. 2021년 2월을 기점으로 시간이 멈춘 지역을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이 주목했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2022년 1학기 수업 ‘빈곤의 인류학’ 과목의 교수와 학생들이 현장을 발로 뛴 끝에 낳은 산물이다. 학부생이 책을 출판하다니 놀라웠다. 여러모로 조심스러웠다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동자동의 속사정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쉽지 않은 문제일 거라 짐작했는데 역시나 어려웠다. 어느 쪽이 옳다, 단정 지을 수 없으며 단정 지어서도 아니 된다는 점만이 명확한 듯했다. 최근 최대 화두는 재건축 재개발 같다. 1980년대 중후반에 건설된 아파트가 즐비한 이 동네 또한 도처에서 재건축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조로운 거 같지만 모두가 같은 의견을 지닌 건 아니다. 일례로 집을 소유한 측과 세 들어 사는 측의 입장이 동일하다고 보긴 힘들다. 동자동은 그 정도가 컸다. 쪽방을 소유한 이들은 재개발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된 재산권의 행사가 가능해지리라고 기대했다. 실제 그곳에 거주하는 경우엔 재개발로 인한 살 공간의 상실을 염려했다. 좀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또 달라서, 소유자들 중 동자동에 실제 거주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입장이 달랐다. 거주자들 또한 주거권의 사수를 위해 취해야 하는 방법을 놓고 갈등했다. 웃프게도(?) 양측 모두가 국가 정책에 대해서는 불신의 정도가 컸다. 국가가 개인의 몫이어야 할 개발 이익을 갈취한다, 오로지 소유자들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체 어떻게 이 문제에 다가서야 할지 모호했다. 실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입장에서 겪는 난해함은 더욱 클 게 분명했다. 재산권과 주거권.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벌이는 승부는 시작부터 기울어진 경쟁과도 같았다. 막대한 자본력, 높은 교육 수준 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정부에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면 당연히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에겐 성실히 일해 집을 장만했다는 스토리까지 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쪽방촌 거주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세력이라는 설명에는 어렵지 않게 힘이 실렸다. 그렇다면 쪽방촌 실거주자들은 막 살았는가. 그들이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일할 기회를 찾아 전전긍긍한 끝에 쪽방촌에 이르게 된 것을 불성실로 몰아세워서는 아니된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이 스스로 협동회를 꾸려 서로를 보듬는 일에 힘을 쏟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진정 중요한 무엇을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제도를 만들고 관계를 엮으려 들었던 지난날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 그 흐름에서 배제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절실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따를 때 생성될 수 있는 게 공동체였다. 혹자는 기다림을 민주주의가 낳은 산물로 보았다. 모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다소 느리게 전개될 수도 있다는 해석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늙고 병든 입장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 퍽퍽한 삶을 견디다 일부는 이주했다. 버팀이 더는 불가능한 이들은 세상을 하직하기도 했다. 사람이 죽는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은 대체 무엇일까. 쪽방촌이라는 어찌 보면 ‘극한’ 상황으로부터 조금 시선을 확장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청년, 노인, 한부모가정 등이 유사한 문제에 봉착했다고 가정한다면, 문제의 해결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