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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이 내 삶의 울림이 될 때까지_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읽고
"나의 말이 내 삶의 울림이 될 때까지_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읽고" 내용보기
언어 속에서 살았고, 언어에 기대에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꽤 긴 시간 동안 읽으며 생각에 잠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불시에 찾아오는 발작 증세,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았던 순간에도 그가 달려가는 곳은 ‘언어’라는 집이었다.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을 일으키기 쉽지 않을 때, 사람의 어떤 말보다 책에서 만난 한 줄의 글에서 깊은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하
"나의 말이 내 삶의 울림이 될 때까지_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읽고" 내용보기
언어 속에서 살았고, 언어에 기대에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꽤 긴 시간 동안 읽으며 생각에 잠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불시에 찾아오는 발작 증세,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았던 순간에도 그가 달려가는 곳은 ‘언어’라는 집이었다.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을 일으키기 쉽지 않을 때, 사람의 어떤 말보다 책에서 만난 한 줄의 글에서 깊은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따금 내 내면에서 만사가 무너지고 모든 게 힘들 때면 단어들로 돌아가고 싶어. 한쪽 구석의 작은 책상에 지금 작업 중인 번역 원고가 놓여 있어. 난 가끔 그곳으로 도망치지.”
 
10년 전 갑자기 아내를 떠나보낸 레이랜드는, 아내가 남기고 간 부재의 공간을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로 채워간다.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내 감정은 어떠한지를 모두 편지에 담아낸다.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의 조각들을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때 펜을 찾고 메모장을 여는 이유, 이제 곧 날아가 버릴 현재를 놓치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좋아한다. 사람이란 어떤 나라, 어떤 건물에서가 아닌, ‘언어’라는 집에 머물며 사는 존재이다. 그 언어의 집이 비슷한 구조로 지어진 사람을 만날 때 나의 고향, 나의 근원을 만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레이랜드가 친구 패트를 만날 때 그랬던 것 같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다음 날 레이랜드는 패트를 만나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한다.
 
“검은 달.” 레이랜드의 말을 킬로이가 받았다. “잿빛 나날.”
 
마치 암호처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짧은 대화 속에 내 마음은 한참 머물러 있었다. 나에겐 이런 친구가 있을까? 말 없음조차도 위로가 되어 주는 사람, 한마디의 말로 내 영혼에 빛을 비춰 주는 그런 사람. 오랜 시간 길에서 담배를 밟아 비벼 끄면서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패트의 모습에서, 레이랜드는 친구의 진심을 느낀다.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듣는다.
 
그가 자신의 병이 오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그는 많은 것을 정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잃었다고 생각한 삶이 다시 찾아왔다. 열린 시간이 그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자신이 세운 목표에 대한 절박함을 잃어버렸고, 그의 삶은 다시 흔들린다. 출판사를 넘긴 돈으로 친구들을 도울 수 있음에 만족을 느끼다가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의사를 향해 분노를 참지 못하기도 한다. 레이랜드가 마냥 천사표가 아니라서,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더 좋았다.
 
누군가가 쓴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 그는 꽤 긴 시간을 번역가로서 살아왔다. 저자와 텍스트 사이에서, 저자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한 거리까지 느낄 수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작하지 못한 어려운 숙제 하나가 있었다. 자신의 글을 쓰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왜 나더러 직접 글을 쓰지 않냐고 했지. 워런 숀 삼촌의 권고처럼. 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그걸 묻는 걸 좋아하지 않고, 프란체스카가 묻지 않아서 기뻐. 내가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하며 괴로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글을 쓰는 일, 지금까지 해 오지 않았던 일이다. 그는 번역 중인 책의 언어 속에서만 살았다. 그 언어 속에 사는 것이 익숙했고, 자신에게 맞는 옷이라 여기며 지냈다. 그런데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목소리가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레이랜드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번역하는 글의 근원이 자신 안에 있으며 그것을 빚고 만든 사람도 자신이지만, 결국 타인의 도장이 찍힌다는 사실을.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언어,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알지?’
 
길을 잃은 듯 멈춰선 레이랜드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는다. 원본이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허공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자신의 언어를 읽을 생각을 하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배경을 떠올리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설정해 본다. 그 속에서 관계가 생겨나고 그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더듬더듬 그려지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더 가까워지는 글을 쓰게 된다. 나의 언어를 찾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계속’ 쓰는 것, 그저 한 걸음씩이라도 발을 내딛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상상으로 하는 작업, 자신의 말과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글쓰기였다. 고유한 미래를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이 일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나에게도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나는 쓰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의 앞날을 확언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것이 내가 평생 살아야 할 ‘나의 집’이라면 꽤 오랜 시간 함께 하지 않을까.
“친밀함은 나눌 수 없습니다.”
나에게 더 가까워지는 글을 쓰고 싶다. 나와 다르지 않은 친밀함을, 그 진실함을 담아내고 싶다. 살아 있는 내가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나아가는 만큼, 나는 자유로워지겠지. 그러니, 멈추지 말고 나아가야겠다. 발밑에 단단한 땅을 딛고 다시 서야겠다. 언젠가 내 고유한 내면의 목소리가 내 삶의 울림이 되어 들릴 수 있게.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게.
YES마니아 : 로얄 t******9 2026.02.13. 신고 공감 26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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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쳐온 (인생의) 많은 역들엔 어떤 기억(의 무게)들이 쌓여 있을까
"내가 거쳐온 (인생의) 많은 역들엔 어떤 기억(의 무게)들이 쌓여 있을까" 내용보기
아주 오래 전에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을 읽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봤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제레미 아이언스는 묘하게 아빠를 닮아 있어 마음이 쓸쓸했고, 내 남편의 늙은 후 모습 같아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뭐랄까. 공부하는 남자, 학문하는 남자들의 어떤 전형 같은 모습. 몸에도 삶에도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는, 평생을
"내가 거쳐온 (인생의) 많은 역들엔 어떤 기억(의 무게)들이 쌓여 있을까" 내용보기
아주 오래 전에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을 읽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봤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제레미 아이언스는 묘하게 아빠를 닮아 있어 마음이 쓸쓸했고, 내 남편의 늙은 후 모습 같아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뭐랄까. 공부하는 남자, 학문하는 남자들의 어떤 전형 같은 모습. 몸에도 삶에도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지만, 이젠 늙어버린, 한 사람의 모습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서 오래오래 여운이 남았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또 다른 작품인  『언어의 무게』에도 역시 나이 많은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남자는 학자라고는 할 수 없을 지 모르지만 평생 언어를 다룬 사람이라는 점에도 이전의 인물들과 닮았다. 그리고 이번 소설에도 기차가 등장한다. 근대 문명의 시작을 연 상징과도 같은 기차는 그래서 현대사를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가 거쳐왔던 수많은 역들에서의 기억들의 합으로 요약될 수 있고, 그의 세대의 역사 역시 그런 식으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세대를 뭉뚱그려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의 위험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은 사라지거나 희귀해진 내 아버지 세대의 어떤 낭만이나 열정, 인간성과 그것의 고결함과 고귀함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우아한 소설이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나이듦에 대해 조금은 초연해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팠던 나같은 사람에게 나이듦이란 병듦과 거기에서 수반되는 고통과 삶의 많은 장애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들을 감당할 미래가 벌써부터 두렵고 숨막히기 마련인데,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되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그 순간에도 무언가 인생을 불밝힐 '점화'의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때로는 과거의 기억들이 그 연료가 되어준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되돌아보면 회한만 가득하다고 하지만, 어떤 과거는 미래를 살아갈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기억들이 내가 거쳤던 역들이 많이 쌓여있길 희망한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을 읽다보면 유럽에 대한 어떤 동경이 생기는데(실제로 가보면 이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기차 여행은 대개는 고되고 불쾌한 경험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윤색(?)된 낭만마저도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그게 미화나 과장이 아니라 실재의 모습일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때의 동경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유럽, 어떤 특정 국가나 지역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제로 존재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그런 아름다움을 내 인생에 남기고 심은 열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인생이라면, 그 끝도 두렵지 않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4.05.01. 신고 공감 18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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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해야 할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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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활자의 예술을 펼치고출판사는 예술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책을 읽는동안 리스본에서 살았지만책읽기를 쉬는 동안.출판사를 생각하니 답답했다.표지디자인이 왜 이런가?이게 뭔가? 웃기지도 않는다좋은책 표지를 굳이 왜??책 리뷰에 이런 글 작성해서 죄송합니다. 독자여러분하지만,앞으로 읽을 수없이 많을 독자분들이 이 책을 우연히 접한다면,내용도 모르고도 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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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활자의 예술을 펼치고
출판사는 예술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책을 읽는동안 리스본에서 살았지만
책읽기를 쉬는 동안.
출판사를 생각하니 답답했다.
표지디자인이 왜 이런가?
이게 뭔가? 웃기지도 않는다
좋은책 표지를 굳이 왜??

책 리뷰에 이런 글 작성해서 죄송합니다. 독자여러분
하지만,
앞으로 읽을 수없이 많을 독자분들이 이 책을
우연히 접한다면,
내용도 모르고도 접한다면,
이 표지보고 실망할겁니다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나
소설이 주는 품격을 위해서라도 표지를 바꿔주시길
출판사 직원도 이 책 좀 읽고 표지디자인 좀 하세요

^^
YES마니아 : 로얄 m*******a 2024.01.30.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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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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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의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는 제목 그대로 언어가 인간의 삶에 어떤 무게로 작용하는지를 탐색하는 작품이다.이탈리아의 어느 출판사 사장이자 번역가인 레이랜드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정리하던 중, 이 판정이 의사의 실수로 인한 오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뜻밖의 상황에 혼란스러워진 그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런던의 저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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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의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는 제목 그대로 언어가 인간의 삶에 어떤 무게로 작용하는지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어느 출판사 사장이자 번역가인 레이랜드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정리하던 중, 이 판정이 의사의 실수로 인한 오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뜻밖의 상황에 혼란스러워진 그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런던의 저택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 레이랜드는 동양학자였던 삼촌을 동경하며 번역가를 꿈꿨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는 그의 선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학업을 중단한 채 가출해 낯선 도시를 떠돌며 독학으로 공부했고, 마침내 번역가로 성공한다.

평생 ‘타인의 언어’를 다루며 언어가 주는 기쁨을 누려온 레이랜드. 그러나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그는 이제는 삶을 되돌아보며 ‘남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 자기 삶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는 자각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소설은 레이랜드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죽은 아내에게 편지를 쓰며 과거를 성찰하고, 오랜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언어와 삶의 본질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는 주인공.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자유와속박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레이랜드는 왜 그토록 외국어에 집착했을까.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단어와 문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 그 언어가 품고 있는 다른 민족의 정신세계와 관습,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는 가출 후 다양한 언어를 익히며 각 언어가 가진 고유한 사고의 틀을 경험하고 사유를 확장했다. 이러한 과정은 보수적인 가족 환경에서 형성된 제한된 시각을 뛰어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모국어가 가족과 사회의 기대가 담긴 ‘속박의 언어’였다면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익힌 외국어는 ‘자유와 해방의 언어’였다.


이 작품은 다양한 유럽 언어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말맛’을 보여주며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될 때 드러나는 국가와 민족의 특성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언어의 ‘섬’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이런 경험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어려운 점이 너무나 아쉬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유럽의 문화와 언어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소설은 안락사 문제를 비롯한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도 하고, ‘하얀 카르텔’, ‘검은 카르텔’ 등의 언어유희를 통해 사회 모순을 비판하며 주제를 확장한다.


지적인 탐색이 너무 깊었던 탓일까.

진부하지 않은 주제와 탄탄한 문장력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무겁게 다가온다.

문장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이며, 인물들은 감정보다 사유에 치중한다. 그래서 그들의 고뇌가 깊지만 다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생활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삼촌의 런던 저택, 부유한 생활, 번역가로서의 성공 등 모든 환경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어, 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고민에도 현실적 공감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몰입하기 어렵고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언어와 존재의 관계, 삶의 유한성,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깊은 사유를 표현한다.

무엇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곳곳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마치 그 곳을 직접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덕분에 나도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영국과 이탈리아의 거리를 누비며 그들이 보고 느꼈던 것을 경험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은 이름이 불리고 이야기된 후에야 실제로 존재했다. 레이랜드가 찾아 나선 게 아니라 그게 그에게 와서 부딪쳤다. 처음부터 그랬다. 언어 없이 사물에 도달하기를, 사물과 사람과 감정과 꿈에 닿기를 원할 때도 자주 있었지만 언제나 그 사이에 언어가 다시 끼어들었다.」

(p.21)


#언어의무게 #파스칼메르시어 #비채 #김영사 #책리뷰



YES마니아 : 로얄 s*****e 2025.09.24.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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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언어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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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는 본명인 페터 비에리로 『삶의 격』 『자기 결정』 등 철학서를 발표한 철학자이자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등 장편소설을 쓴 소설가다. 『언어의 무게』는 2020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오진으로 삼촌이 물려준 런던의 저택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내용이다. 사이먼 레이랜드는 출판사의 사장이자 번역가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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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는 본명인 페터 비에리로 『삶의 격』 『자기 결정』 등 철학서를 발표한 철학자이자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등 장편소설을 쓴 소설가다. 『언어의 무게』는 2020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오진으로 삼촌이 물려준 런던의 저택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내용이다.



사이먼 레이랜드는 출판사의 사장이자 번역가이기도 하다. 죽은 아내가 물려준 출판사를 다른 사람에게 팔고 마지막을 준비했다. 방사선 사진의 이름이 바뀐 걸 확인하지 않은 의사의 오진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냈다. 아내의 출판사가 있던 트리에스테를 떠나 새로운 삶을 위해 런던으로 돌아왔다.



옆집의 케네스 버크를 지켜보거나 시내를 걸어 다닐 뿐이었다. 무엇을 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언어의 울림으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가 주는 기쁨, 즐거움, 희열. 언어는 그의 삶을 관통했다.



번역가이자 출판사를 경영해오며 만난 작가와 번역가들과의 에피소드와 아내와 각별했던 기억들, 아내를 잃고 상실의 아픔을 겪었던 가족은 서로를 안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슬픔의 무게를 견디는 방법이었다.



레이랜드는 케네스 버크와 친구가 되고, 러시아어로 된 책을 바스크어로 번역하는 안드레이를 비롯해 소설가 프란체스카 마르케세는 새로운 소설을 쓰고, 출판사를 경영하는 린과 숀 크리스티는 새로운 상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설 『비 오는 나날』로 성공을 거둔 메리 앤 애쉬퍼드는 더는 글을 쓰지 않는다. 이들과 교류하며 레이랜드는 더 이상 번역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삶을 향한 발걸음이다. 딸 소피아는 의사 면허는 따겠지만 의사가 되지는 않겠다고 했고, 아들 시드니는 법학이 아닌 다른 일을 해볼 거라고 했다. 레이랜드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삶이 달라지는 것 같다.


(작성중)



#언어의무게 #파스칼메르시어 #비채 #책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독일소설 #독일문학 #유럽소설 #페터비어리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4.04.0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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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물질적 고결함에 대한 사유
"비물질적 고결함에 대한 사유" 내용보기
아직 1/3 밖에 읽지 못한, 리뷰라기 보단 독중감에 가까운 사견.  파스칼 메르시어는 고민없이 모든 것을 팔아재끼는 배금주의가 기본이 된 세상 속에서, 여전히 우리가 팔지 말아야 하고 지켜야 하는 근원적 가치가 있으며, 명품과 한강뷰 아파트를 사는 것 외에도 인간을 고결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이자 소설가임.  그의 철학 서적 중 읽은 것은 <삶의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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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1/3 밖에 읽지 못한, 리뷰라기 보단 독중감에 가까운 사견. 

파스칼 메르시어는 고민없이 모든 것을 팔아재끼는 배금주의가 기본이 된 세상 속에서, 여전히 우리가 팔지 말아야 하고 지켜야 하는 근원적 가치가 있으며, 명품과 한강뷰 아파트를 사는 것 외에도 인간을 고결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이자 소설가임. 

그의 철학 서적 중 읽은 것은 <삶의 격> 밖에 없지만.. 내 생각에 저 책보단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는 것이 위의 주장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임. 약 19년의 세월이 지나 발표한 본 작품도 같은 주제의식을 좀 더 깊어진 사유와 문장을 통해 변주하고 있음. 동어반복이 아니라 변주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음. 

YES마니아 : 로얄 w****c 2023.04.0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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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내용보기
저자와 책의 표지만 보고 구입했는데 택배 박스에 벽돌 같은 책이 들어있어 깜짝 놀랐다. '이것이 언어의 무게구먼...' 읊조리며 박스에서 꺼냈다. 책의 줄거리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번역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한 남자가, 그 진단이 오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일어나는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 레이랜드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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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책의 표지만 보고 구입했는데 택배 박스에 벽돌 같은 책이 들어있어 깜짝 놀랐다. '이것이 언어의 무게구먼...' 읊조리며 박스에서 꺼냈다. 책의 줄거리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번역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한 남자가, 그 진단이 오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일어나는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 레이랜드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궁핍을 보며 세미콜론과 쉼표를 고민하는 일에 자괴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안드레이와 그런 그에게 두 가지 모두 의미 있는 선택임을, 중요함에는 차등이 없다는 다정한 확신을 전하는 버크, 병에 걸린 어머니를 보호하며 그로 인해 상처받지 않도록, 돌봄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마음 쓰는, 엄마를 새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말하는 숀, 한없이 다정한 태도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자녀들, 그 외에도 다 서술하지 못 한 사려 깊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들을 읽으며 조용히 주변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했다. 특히 버크 같은 친구이자 이웃이 레이랜드에게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버크 같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고, 나 스스로도 옳지 않을 일에 용기를 낼 수 있는 버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어렴풋하고 피상적으로 떠돌던 느낌에 명확한 언어를 부여해 이름 짓는 과정 같았다. 독서를 하다 보면 느낌표 또는 물음표가 반짝하고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추고 그 느낌을 잘 갈무리한다. 그 느낌이 곧 내 사고를 확장시키는 도구가 된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갈무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일이나, 오랜 관습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일들은 더욱 그렇다. 느낌을 명확하게 정리해 보기도 전에 관성처럼 감정을 단정하는 말들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말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이런 점에 있다. 내 상황과 감정을 정확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관습적으로 뱉어내는 말들로 인하여 내 감정이 잠식당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병으로 인해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달은 레이랜드는 '내 인생의 시간으로 뭘 했지?'p10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의 차이만 있을 뿐, 유한한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일상 속 인간은 시간을 그저 배경 변화의 일부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레이랜드 또한 비슷했을 것이다. 아침이 저녁이 되고, 다시 아침이 되는 삶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진단받은 순간 그의 모든 시간은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가 된다. 책의 중후반부 레이랜드가 있는 런던을 방문한 안드레이는 런던에서 있었던 일을 기쁨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기록을 '현재를 잡아두는 것'이라 서술한다. 이는 삶의 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숙제이기 때문에, 위인들이 썼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한 장면에 고심한 감정의 이름을 붙여 한정된 시간의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일기를 쓴다. 이렇게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시간의 흐름과 현재를 감각할 수 있는 '시정'이 영향을 준다. 시정은 맥락상 '시적인 정취'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나는 이 시정의 다른 이름이 예술이라 느꼈다. 취향이 계급이 되어가는 시대의 예술이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가 역설한 '일상의 예술화'와 궤를 같이 하는 예술 말이다. 빼앗긴 보물을 되찾듯 생활 속에서 능동적인 창조와 발견의 기쁨을 얻는 순간들을 시정으로 여기며 그 순간을 잡아두는 것. 현재를 감각할 수 있는 계절과 자연의 변화에 나만이 기억할 수 있는 곳에 의식의 책갈피를 꽂는 것. 유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감각할 수 있는 이런 예술적 순간이 시정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실속이 적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단 하루도 제대로 감각하지 않은 채로 다음 장으로 넘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둘러말하기를 피하는 나의 언어는 직접적, 효율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런 화법을 써온 이유는 가장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런 생각에 물음표가 떠오른 사건이 하나 있었다. 며칠 전 생일을 맞아 생일파티를 하고 온 아이가 "**이가 다정하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줘서, 기뻤어요."라고 말을 했다. 문득 여태껏 내가 했던 말들에 상대의 감정이 고려의 대상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전했던 축하에서 나의 진실한 축하가 진정 전해졌을까. 이 책을 다 읽고 생각해 보니, 나의 언어에는 마음이 실려가지 않았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의례적 목적으로의 내 언어에는 아이가 말한 다정이 없었던 것이다. 언어에 다정을 싣기 위해서는 말하는 주체인 내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수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선전포고문처럼 톡 보내는 나 자신, 반성하자.


  책의 중간중간에는 레이랜드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온다. 나는 이 편지를 일종의 요약 전달본 처럼 느끼기도 했는데, 그 분량이 만만치 않아 역자가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 생각을 했다. <언어의 무게>는 출판사에서 번역가를 찾지 못해 2-3년 동안 애를 먹고, 저자의 전작인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번역한 전은경 번역가에게 다시금 부탁했다는 일화를 봤다. 나 또한 이 책은 저자도 저자지만, 번역가에게 박수를 꼭 보내야 할 것 같다 생각한다. 책의 제목이 무려 <언어의 무게>이고 두께는 '어마어마한'<언어의 무게>인데 여린 살갗같이 섬세하게 번역해낸 것이 대단하다. 이 책은 AI를 이용한 번역이 대두되고 있는 세상에서도 사람이 번역을 해야만 하는 이유처럼 느껴진다. 섬세한 감정과 철학적 영역에서 AI가 과연 사람과 같을까. 이런 다면체적 '언어의 무게'를 오롯이 전달할 수 있을까. 다른 존재가 언어를 흉내 내어 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읽고, 쓰고, 느끼는 순간에 의식이 깃든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많은 존재들 중 인간만이 문자와 언어를 가진 이유가 이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오늘 나의 의식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을까. 안락사, 돈 여러 가지 화두들을 스무스하게 던져주어 읽는 내내 내 삶을 반추해 보게 만들었던 책이다. 후반부 책을 쓰는 이야기에서는 텐션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여러모로 좋은 영향이 더 많았던 책이었다. 저자의 다른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조만간 읽어볼 예정이다. 



YES마니아 : 골드 e*****1 2024.05.0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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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 저항하는 실존을 찾아가는 사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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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인생이 그런 것이라면 인생에 관한 이야기인 소설 또한 그러하다. 소설 또한 그러하다고 동의할 때,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 한 전형이 된다. 이것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내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승객이 되어 이 책을 끝까지 달린 뒤 머릿속에 떠오른 소감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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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인생이 그런 것이라면 인생에 관한 이야기인 소설 또한 그러하다. 소설 또한 그러하다고 동의할 때,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 한 전형이 된다. 이것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내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승객이 되어 이 책을 끝까지 달린 뒤 머릿속에 떠오른 소감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통해 파스칼 메르시어가 정답을 찾으려고 한 과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것이듯,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을 여행이라는 형식으로 바꾸어놓은 소설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가 느낀 바를 미리 말하자면, 작가가 상정하는 일차적 인간상은 우연성에 기반한 저항하는 인간이고, 인간의 완성에 해당하는 이차적 인간상은 필연성으로 귀결되는 신을 대체한 인간이다.


  소설은 스위스 베른 시에 있는 중등학교 김나지움 고전어 교사이자, 오래 전 아내 플로렌스와 이혼한 뒤 독신으로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문두스로 불리고 있는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폭풍우가 치는 날, 그가 근무하는 김나지움으로 출근하다가,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포르투갈어를 하는 어떤 여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날 책방에 들렀다가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저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 책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며, 이 우연을 계기로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기차여행을 떠난 뒤, 저자를 찾는 여정을 지속하다가, 그 책의 저자이자 의사였던 프라두가 오랫동안 앓고 있던 대동맥 파열로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과 프라두와 연관된 사람들과 프라두가 겪은 사건들을 접한 뒤 다시 베른으로 돌아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 책의 내용이 ‘리스본행 야간열차’ 책 안에서 안팎관계로 평행하게 지속되는 여로 형 액자소설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 소설은 저자가 상정하는 인간의 궁극을 묻는 이야기로 읽혔다. 그것은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리스본은 작가의 대리인으로 등장하는 그레고리우스가 찾고자 하는 내적 자아, 내적 실존, 인간의 궁극, 존엄성, 저항하는 실존이 되고, 숱한 도시 중에 리스본으로 잡은 것은 저항하는 실존을 떠받쳐주는 배경이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파시즘 독재정권에 저항해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야간열차는 내면의 저항하는 실존, 즉 참 자아, 인간을 찾아가는 사유, 내면의 승객이다. 그렇게 보는 것은 이 소설의 제목이 ‘주간열차’가 아니라, ‘야간열차’이고, 우리의 육체와 내면의 사념체처럼 책의 구성이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외적 틀과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안쪽 틀로 이루어진 액자 형으로 구축되어 있는 데다, 그 내용 또한 서사와 사념으로 안팎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밤=내적인 삶’은 ‘낮=외적인 삶’에 유비되는 까닭에 야간열차는 내면의 삶에 대한 메타포가 된다. 물론 이 소설의 제목은 ‘파리행 야간열차’, ‘부산행 야간열차’ 등으로 읽어도 되는데, 포르투칼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내면의 실존에 대한 궁금증을 다르지 않게 공유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작가가 상정하는 인간의 궁극을 찾아가는 여정이 작품의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방이 열리면서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 책들이 쏟아졌다.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몇 초 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책에 빗물이 배어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두어 걸음 다가와 그레고리우스 쪽으로 몸을 굽히고, 외투 주머니에서 사인펜을 꺼내 그의 이마에 숫자를 몇 개 적었다. ... “이 전화번호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종이가 없어요.” ... 그녀는 그레고리우스의 이마와 자기 손을 번갈아 보며 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었다. ... 그녀는 흩어진 책을 모으며 말했다. 그의 손이 여자의 손에 닿고 무릎을 스쳤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마지막 남은 책에 손을 뻗쳤다. 둘은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13-14쪽>


  여기에서 전화번호가 나온다. 그리고 이마와 손바닥이 나오는데, 이마와 손바닥은 뒤이어 나오게 되는 거울에 대한 상징으로, 미리 말하자면 거울은 이 작품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손이 여자의 손에 닿고’는 거울에 비치는 상과 실체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손 - 거울에 비친 손 / 여자의 손-실체의 손’의 구도인 것이다. ‘둘은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는 장면 역시 그러한데, 거울 표면을 경계로 서로 실체와 환영이 마주친 상태의 구도인 것이다. 거울에 비친 상과 거울 바깥의 실체가 동일할 뿐만 아니라, 같으면서도 다른 실체로 존재하는, 즉 거울바깥의 존재와 거울 안의 존재는 같은 인물이지만, 잠자는 자와 꿈속에서 하늘을 나는 존재처럼 거울에 비친 상은 비록 환영(꿈속의 존재)일지라도, 실체와 분리되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또 다른 실체로, 두 세계의 양립구도를 보여준다. 아무튼 전화번호와 거울은, 신도, 다른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아닌, 모두 오로지 인간에게 필요한 사물들이고, 그것들이 연결된 대상, 전화를 걸면 받는 대상, 거울을 사용하는 대상이 인간임을 드러내는 기호라는 점에서, 인간의 궁극을 찾아가는 소설임을 도입부에서부터 암시한다.


  인간에 대한 탐사는 일상적 서술에 숨어 있기도 한데, 우선 15라는 숫자에서 나타난다.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작됐다. 8시 십오 분 전, 그는 분데스테라세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김나지움과 연결되는 키르헨펠트 다리로 들어섰다. 학기 중에는, 그리고 주중에는 언제나 똑같았다. 늘 8시 십오 분 전이었다. 12쪽>


  전체 소설에서 12. 21. 23. 37. 44. 322. 354. 413쪽에 다양한 상황에 걸쳐 나오는 15라는 숫자는, 작가가 숨겨놓은 보다 깊은 의미가 있겠지만, 내 관점에선 인간이라는 궁극의 어떤 완전체(일상이 시작되는 8시)를 향해가는, 아직은 7시 45분에 도달해 있는, 남은 15분이라는 숫자만큼 모자란 미완성의 존재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을 암시하는 숨어 있는 일상적 서술의 다음으로 나오는 메타포는 거울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 작품에서 거울은 전체 작품을 관통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침묵으로 말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몇 시간 후 그날 일어난 일을 다시 떠올렸을 때, 거울 앞에 서 있던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음을 깨달았다. 수수께끼 같은 여자와 만난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갑자기, 그 찰나에 들었던 것이다. 16쪽>


  여기서 거울을 통해 비치는 자기 모습은 곧 수수께끼 같은 여자와 동일시되는데, 그것은 곧 여자가 온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그 나라의 수도인 리스본으로 떠나게 되는 상황, 리스본에서 그 운명을 알게 되는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프라두가 그레고리우스의 분신임도 암시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와 같이 거울의 역할을 하는 상황은 작품 전체에 걸쳐 형태를 달리한 채 여러 차례 나오는데, 거울을 중심에 두고 실체와 거울에 비친 상을 유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의 예를 이미 말한 손바닥과 이마를 아울러 몇 가지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손바닥과 이마-손바닥과 이마는 그것의 소유자와 그곳에 적힌 전화번호의 상대방을 거울에 비친 상과 실체로 연결한다.

*전화-거는 자와 받는 자. 실체와 거울에 비친 상의 관계를 이룬다. 전화는 이 작품에서 숱하게 나온다.

*체스-서로 마주보며 게임을 하는 자. 작품에서 세상에 저항하는 기술이자, 타인이 자신의 내부에 만들어놓은 자기 자신에게 저항하는 기술, 우연과 필연, 도전과 응전의 구도로 사용된다. 역시 거울 역할을 한다. 45. 68. 170. 171. 282. 290. 311. 340. 346. 347. 388. 464-469. 510. 556쪽.

*꿈- 잠자는 자와 꿈속의 깨어 있는 자. 이 작품 전체에 전화장면만큼이나 많이 나온다. 역시 거울 역할을 한다. 53. 71. 73. 108. 131. 134. 137. 138. 153. 220. 281. 333. 362. 369. 403. 411. 442. 538. 547. 566. 597쪽.

*복도- <그는 지금 복도와 자신의 내부를 그 옛날 학생 신분으로 거닐었다. 수십 년 동안 선생으로서 복도를 오간 사실을 잊은 것이다.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를 잊을 수 있을까?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의 드라마를 상연하는 무대 역할을 한다고 해도? 330쪽> 여기서 학생과 선생,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역시 거울에 비친 상과 실체의 관계다.

*언어의 연금술사- 이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안에 나오는 프라두의 책인데,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반사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거울은 작품에서 육체와 쌍을 이루는 내면세계, 과거, 기억, 꿈속, 자아, 등등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그레고리우스가 갑자기 베른생활을 청산하고 리스본으로 떠나는 장면은 현실에서 내면세계, 인간탐구의 세계, 거울에 비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베른을 떠나 리스본을 향해 갈 때 초고속열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초고속 열차는 현실에서 꿈으로, 과거로, 기억 속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순간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편, 작품의 여러 곳에서 의식의 흐름 장면이 문단속에 맥락 없이 불쑥 끼어들어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그레고리우스가 베른을 출발하여 리스본을 향해 갈 때 탄 기차 장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차가 제네바를 향해 떠날 때 굵은 눈송이가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 그레고리우스는 기차가 속력을 내자 잠이 들었다가 제네바에서 깨어났다. 기차가 멈추는 느낌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초고속열차를 타러가면서 그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몇 주일이나 걸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러 가는 기분이었다. 막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단체여행을 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기차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 일등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지금까지 일등칸을 타고 여행한 경우는 몇 번 되지 않았다. ... 그는 승무원에게 내야 할 추가 요금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 제네바에 도착하자 눈이 멎었다. 49-52쪽>


  이 장면에서 그레고리우스가 프랑스의 초고속열차를 타러가면서 묘한 흥분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당연히 시간 순서대로라면 제네바에서 그때껏 타고 온 열차에서 내려 초고속열차를 갈아타러 가는 때로 이해할 것이고,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읽었다. 이후 프랑스 단체 여행객들 때문에 일등칸으로 옮기고, 승무원에게 내야 할 추가 요금이 너무 많아 깜짝 놀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어서 나오는 ‘제네바에 도착하자 눈이 멎었다’라는 서술이 뒤늦게 나오는 것을 보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시간 순서대로라면 그 서술은 초고속열차를 타러 가기 전에 나와야 한다. 즉 ‘그레고리우스는 기차가 속력을 내자 잠이 들었다가 제네바에서 깨어났다. 기차가 멈추는 느낌 때문이었다. 제네바에 도착하자 눈이 멎었다. 프랑스의 초고속열차를 타러가면서 그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라는 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읽어가다가, 240쪽에 가서야 비로소 ‘프랑스의 초고속열차를 타러가면서 그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라는 서술에서부터 ‘제네바에 도착하자 눈이 멎었다.’라는 서술 앞까지의 장면은 현재의 시간이 아니라, 베른에서 기차를 탈 때의 기억 속의 장면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제네바에서 초고속열차로 갈아탄 것이 아니라, 베른에서 기차를 탈 때부터 초고속열차를 탔고, 그때 프랑스 단체 여행객들 때문에 일등칸으로 옮겼으며, 추가요금을 지불한 채 기차를 타고 왔던 것이다. 240쪽을 보자.


  <그는 아무도 마리아 주앙의 성을 모르는데 어디서 그녀를 찾을 수 있느냐고 나탈리에게 물었다. 나탈리는 허리를 펴고 웃었다. 벌써 며칠째 그와 나탈리는 멜로디가 마리아 주앙을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프라제르스 묘지 근처의 통닭 노점 앞에 서 있었다.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베른 역에서 제노바로 가는 열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엄한 표정의 승무원이 그에게 왜 이 기차에, 더구나 왜 일등칸에 탔냐고 물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떨며 차표를 찾느라고 주머니를 모두 뒤졌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 뻣뻣해진 몸을 일으켰을 때, 바깥에는 동이 트고 있었다. 239-240쪽>


  이 240쪽 장면에서도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서술 이하의 장면이 맥락 없이 불쑥 끼어들었는데, 이 장면 역시 의식의 흐름으로, 기억 속의 장면인데, 바로 베른에서 초고속열차를 타고 일등칸으로 옮긴 이후, 앞에서 나오지 않았던 승무원과 만나는 장면인 것이다. 이 초고속열차는 작품 끝에서 베른으로 돌아올 때 완행열차를 타고 오는 장면과 거울에 비친 상과 실체의 관계, 꿈으로 이행하는 과정과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의 관계, 육체와 내면세계의 관계, 현재상태의 인간과 탐구된 실존의 인간의 관계로 작용한다.

  이렇듯 이 작품 전체에는 거울에 비친 상, 내면세계 탐구라는 구도를 확장하는 장치로 의식의 흐름이 끼어 든 장면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여러 상징들도 직조되어 있어, 작품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상징은 단순히 하나의 사물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사물대 관념의 경우처럼 사물과 공간을 뛰어넘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것들만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31쪽>


  이 장면은 아직 포르투갈어를 모르는 상태의 그레고리우스가 헌책방에서 소녀가 사지 않고 남겨둔 책을 집어들었을 때 책방주인이 다가와 그 책(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의 서문에 뒤이어 읽어준 내용이다. 여기서 내용은 시력의 근시안(육체-사물)을 뛰어넘어 근시안적인 경험(관념)까지 확대하고 있으며,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를 거울에 비친 상과 실체의 관계로 연결한다. 한편, 이 내용은 다시 작가가 상정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관념으로 이행한다. 이 장면은 이렇게 다시 읽을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살라자르 독재정권이 만들어 놓은 세상만 경험한다면, 나머지 세상, 나머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우리의 경험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이 서술은 <경험한 아주 작은 것들에 저항하지 않으면 나머지 경험으로 나가지 못한다. 살라자르와 히틀러와 스탈린의 세상 밖의 경험은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결론으로 유도된다. <독재정권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나머지 경험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독재자 그리고 나아가 신에게 저항함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물론 신에게 저항한다는 관점은 이 작품의 핵심으로 나중에 나온다. 파스칼 메르시어에게 독재자와 신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가 참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만들어 진 타인의 생각에 저항해야 한다.> 흰색 밑에 흰색배경을 받치면 흰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흰색 밑에 검은색 배경을 놓으면 흰색이 금방 드러난다. 같은 논리로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을 개처럼 다루는 독재정권의 배경 하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가 포르투갈의 리스본, 보다 구체적으로는 1974년 4월 25일 자정에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을 작품의 배경으로 다룬 이유라고 보아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부벤베르크 광장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평생을 살아온 이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여기가 집이었다. 심한 근시인 그에게 이런 낯익음은 중요했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자신이 사는 도시는 비닐하우스나 동굴, 안전한 건축물이었다. 그 외의 것들은 위험했다. 그의 안경만큼 두꺼운 안경을 쓴 사람만이 이런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33쪽>


  이 장면은 그레고리우스가 수수께끼 같은 포르투갈 여자와 조우했다가 헌책방에 들러 어떤 소녀가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두고 간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사서 밖으로 나온 뒤의 장면이다. 여기서 그레고리우스가 근시안이라는 사실은 단지 그가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있으며, 작품의 나중에 나오듯 보조안경을 지니고 다닌다는 사실에 한정되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근시안이라는 사실은 육체적 근시를 넘어 경험적 근시까지 아우르고, 그가 책의 내용에 이끌려 찾아 나선 리스본의 의사 프라두와 거울에 비친 상처럼 인간에 대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자신의 자아상과 같다는 상징으로도 작용한다. 즉 그가 살아온 세계관 너머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사실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나오는 상징장치는 붉다는 의미의 사물들이다. 전체작품에는 붉은 가죽 외투를 입은 여자, 빨간 사탕, 세드류스 베르멜류스 붉은 삼나무, 붉은색 아삼차, 붉은 패, 붉은 머리 아일랜드 친구, 빨간 축구공, 붉은색 밀랍 등이 나오는데, 이는 피를 상징하는 색깔로, 인간의 생명성을 상징한다. 구체적으로는 프라두가 여동생의 목에 이물질이 걸려 죽어갈 때 포크로 목을 찔러 구해내는 장면의 상징색이지만, 비록 살라자르 파시즘 독재정권의 비밀경찰인 인간백정으로 활동하는 까닭에 그를 살려주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수 있음에도 비밀경찰 멘드스를 수술하여 살리는 당위로도 작용하고, 이후에는 살라자르 파시즘 독재정권에 저항에 싸우는 저항운동 단체의 에스테파니아를 도피시키는 것으로, 그 자신 역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당위로도 작용하며,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에서 저항자로서 죽어간 사람들의 피와도 연결되는 색깔이다. 한편, 이 붉은 색깔은 프라두가 편안하게 느끼는 색깔인 파란색과 거울에 비친 상과 실체의 관계, 즉 생명과 자유의 동질성으로 작용한다. 다음 장면으로 조금 더 부연해 볼 수 있다.


  <그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야. 자기 연인을 희생시키려고 해.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어, 그가 계속 이 말을 되풀이 해. 한 사람 대 여러 사람의 목숨. 이게 그의 계산이야. 날 도와줘. 도와줘야 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야. 394쪽>


  조르즈가 자신의 연인인 에스테파니아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주앙 에사가 프라두에게 한 말이다. 그녀를 살려두면 그녀로 인해 저항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노출되어 여러 사람이 죽기 때문에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말이지만, 프라두는 사람의 생명을 계량적으로 생각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목숨보다 여러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지 않고, 생명성, 그 자체를 소중하게 보았다. 인간백정 멘드스의 목숨을 살린 것이나, 내버려두면 자백을 하여 여러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르니, 희생시켜야 한다는 조르즈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를 국경 너머로 데리고 가서 살린 것에서 알 수 있다. 다음 장면으로도 프라두의 성격을 알 수 있는데, 곧 작가의 인간관이기도 하다.


  <사람의 목숨을 법보다 우위에 놓아야 한다는 도덕률을 위해 싸우고 싶었습니다. 375쪽>


  프라두의 편지 내용으로, 그가 멘드스의 목숨이나 에스테파니아의 목숨을 살린 이유를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조르즈의 실제 목적은 다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질투심 때문임을 역시 주앙 에사의 말로 알 수 있다.


  <난 조르즈가 고통에서 벗어날 해결책을 살해에서 찾는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소. 그녀를 더는 잡을 수 없다는 고통, 그녀의 열정이 아마데우를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고통. 397쪽.>


  이왕 에스테파니아가 나왔으니, 미리 말하자면, 그녀는 프라두의 가장 친한 친구인 조르즈의 연인이지만, 그녀를 만난 순간 프라두가 자신의 완전성을 이루어줄 여인으로 생각했을 만큼 빠져들게 되고, 끝까지 친구관계를 유지한 중등학교 때 만난 마리아 주앙과는 달리, 친구 조르즈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참았던 인내심을 허물고 아내 파티마를 두고도 처음으로 개선문 아래서 불륜관계를 맺은 이후, 그녀를 도피시키기 위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스페인의 카보 피니스테레로 데려가는 도중에 여러 차례,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지속적으로 맺는다. 하지만 그 관계는 프라두가 에스테파이나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모두 소유하려고 함으로써 결별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작가가 상정하는 인간상이 드러난다.


  <그는 저를 찾았어요.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찾았던 거지요. ... 그는 저를 삼키며 자기 안으로 끌어들였어요. 자기 삶과 정열, 욕망을 향한 갈망이 얼마나 컸던지 ……. 아마데우는 제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원했어요. 몇 시간 안에 제 삶 전체와 기억과 생각과 상상과 꿈을 알려고 했지요. ... 저는 누군가가 저를 ‘완전히’ 이해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 제 말이 아마데우가 정말 정열적으로 저를 좋아했다는 듯이 들릴 거 같아요.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 그가 정말 원했던 건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가 잡으려고 했던 삶의 무대였지요.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한번 완벽한 삶을 살고 싶다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마치 그를 속여왔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잡으려던 완벽한 삶의 무게. ...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여행, 자기 영혼의 억압된 분노를 향한 여행에 제가 동행하기를 원했던 거예요. 저는 아마데우에게 당신은 너무 허기졌다고, 그 여행에 동행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 그때 저는 그가 제 말 때문에 존엄성을 잃은 느낌을 받은 거라고, 그리고 이 뻣뻣함과 올곧음은 자신이 존엄을 되찾았음을 보여주려는 헛된 시도라고 보았어요. 586-589쪽.>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인간관을 드러내는데, 그 인간은 신과 독재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들어 있는, 타인으로부터 주입되어 만들어진 인간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인간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프라두는 그와 같은 인간을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타인, 즉 에스테파니아의 정신까지도 소유하기를 원함으로써 타인을 구속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거부하면서 관계가 단절되고, 아마도 그 스트레스로 인해 앓고 있던 뇌질환인 대동맥 파열로 숨진다. 여기서는 프라두의 요구를 거부한 그녀에게 작가가 자신의 인간상을 설정한 것이다. 한편, 프라두의 죽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멘드스를 수술해 구했지만, 그로 인한 비난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작용했을 듯 생각된다. 한편, 작가의 그와 같은 인간관은 프라두의 아버지를 강직성 척추염을 앓는 환자로 그려, 판사임에도 항상 허리를 굽히고 살게 설정한 것에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프라두의 아버지가 자살한 것도, 척추염의 통증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시도의 관점에서 그린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빠, 왜 한 번도 아빠의 절망과 내적인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 법무부에 쓴 사표 청원서를 왜 나한테 보여주지 않았어? ... 자유를 위한 아빠의 시도를 왜 엄마를 통해 들어야 하지? 자랑스러워야 할 일을 부끄러운 듯 이야기하는 엄마한테서? ... 고통이 아니라 살라자르와 인연을 끊지 못한 것, 피와 고통을 못 본 척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패배감이 결정적 원인이었다면 왜 나와 이야기하지 않았어? 사제가 되려고 했던 아빠의 아들과! 371쪽>


  이 장면에서 살라자르 독재정권 하에서도 판사직을 유지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타하팔 감옥으로 가게 만든 판결을 함으로써 독재정권에 일조한 아버지를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그린 것은 자유를 향한 시도라고 프라두의 시선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작가가 그리는 궁극적 인간, 신을 대체한, 존엄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장면들을 보도록 하자.


  <스스로의 편에 서는 것도 존엄에 속한다. 그래야 갈릴레오나 루터처럼 공개적인 혹평을 품위 있게 극복할 수 있다. 그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부정하려는 유혹과 맞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정치가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솔직함, 타인과 자신 앞에서 솔직해지려는 용기……, “쉴 새 없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역겨움 말이오. 아마 존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역겨움일지도 모르겠소. ...”, 에사는 작별과 사과에도 존엄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아마데우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그는 특히 타인에게 존엄성을 남겨두는 용서와 그것을 박탈하는 용서의 차이를 골똘히 생각했다고 한다. “복종을 요구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야. 그러니까 성서에 나오듯이, 자신을 신과 예수의 노예로 생각해야 하는 건 용서받은 게 아니지. 노예야! 거기 그렇게 쓰여 있어!”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죽음의 비존엄성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했소. ‘존엄하게 죽는 것이란 그게 종말임을 인정하는 거야. 불멸과 같은 온갖 유치함을 극복하는 것이지.’ 512-513쪽.>


  <나는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이 세상의 범속함에 맞설 대성당의 아름다움과 고상함이 필요하니까. 반짝이는 교회의 유리창을 올려다보며 그 천상의 색에 눈이 부시고 싶다. ... 행진곡의 새된 천박함에 대항할 물 흐르는 듯한 오르간의 울림이, 흘러넘치는 그 숭고한 음색이 듣고 싶다. 난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천박함과 경솔함이라는 치명적인 독에 대항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필요하니까. ... 그러나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 또 하나 있다. 우리 몸과 독자적인 생각에 악마의 낙인을 찍고 우리의 경험 가운데 최고의 것들을 죄로 낙인찍는 세상, 우리에게 독재자와 압제자와 자객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세상, 온몸을 마비시킬 듯한 그들의 잔혹한 군화 소리가 골목을 울려도, ... 설교단에서 이런 무뢰한을 용서하고 더구나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장 불합리한 일 가운데 하나다. 설사 누군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는 유례가 없는 허구이며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무자비한 자기기만이다. 적을 사랑하라는 이 괴상하고도 비상식적인 명령은 사람들의 의지를 꺾고 용기와 자신감을 빼앗으며, 독재자에게 대항해 무기라도 들고 일어나야 할 힘을 얻지 못하도록, 그들의 손아귀에서 나긋나긋해지도록 유도한다. 231-233쪽>


  이것은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에 나오는 일부 내용이다. 여기서 작가는 그가 원하는 인간을 한편으로는 존엄성과 엄숙함의 종교적 형식을 갖추고, 한편으로는 종교상의 신이 지닌 속성을 거부하는 인간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 내용을 거울구도에 적용해 보면 대성당은 거울이 되고, 거울에 비친 상은 인간의 모습인 상태로, 결국 신의 자리는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잊어버렸던 호메로스의 단어가 무엇이냐고 실베이라가 물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트론이라고, 홀 바닥을 청소할 때 쓰는 쇠 밀개라고 대답했다. 563쪽>


  결말부에 나오는 이 리스트론은 뇌 지도에 그려진 살라자르의 명령과도 같은 흔적들을 깨끗이 청소하여 자신만의 웃음처럼 빛나게 닦는 정신적 청소도구, 그레고리우스가 여행말기에 앓고 있는 현기증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도구, 독재적인 친근함을 닦아내고 그 밑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낯선 본성을 빛나게 하는 도구, 온갖 거짓과 가면과 자기기만을 닦아내는 도구의 상징으로 읽혔다.


  <우연한 욕구와 습관의 엄청난 힘을 넘어서는 필연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소. 난 당시 5년이나 종합병원에서 일했는데, 그 세월 동안 아무도 내 공간을 가로질러 가지 않았소. 난 완벽하게 우연히 이곳에, 당신은 완벽하게 우연히 그곳에 있었소. 그 사이에는 샴페인 잔들 ……. 그래요, 그랬던 거요. 필연은 없었소. 592-593쪽>


  이것은 프라두의 편지내용인데, 인생은 우연의 연속임을 말하고 있다. 거울구도로 보면 거울 밖의 실체는 우연이고, 거울 안의 환영은 필연으로 배치할 수 있다. 따라서 내게는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바는 ‘인생은 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가 펼쳐지는 필연의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우연의 과정이다.’라는 것으로 읽혔다. 따라서 이것은 이 책의 마지막 쪽에 나오는,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607쪽>라는 프라두의 글과 ‘거울에 비친 상과 실체’의 관계를 이룬다고 보았다.


  이렇게 하여 방대한 작품을 작가가 상정한 인간의 관점에서 주마간산 격으로 전체적인 윤곽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읽어보노라면 독자마다 나름의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인간관에 동의하기에 일독을 권하고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4 2024.04.08.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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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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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 얼마전에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너무 마음에 드는 장정으로 다시 나와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는데 파스칼 메르시어의 다른 책이 리스본행 야간열차 만큼이나 예쁜 장정으로 나오다니.. 바로 구매했습니다. 물론 장정만이 아니라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님의 책이라 구매했지만요. 페터 비에리라는 본명으로 출간하신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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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 얼마전에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너무 마음에 드는 장정으로 다시 나와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는데 파스칼 메르시어의 다른 책이 리스본행 야간열차 만큼이나 예쁜 장정으로 나오다니.. 바로 구매했습니다. 물론 장정만이 아니라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님의 책이라 구매했지만요. 페터 비에리라는 본명으로 출간하신 삶의 격, 자기 결정, 자유의 기술도 두고두고 필사할 만큼 너무 사랑하는 책이지만 리스본행 야간열차나 언어의 무게처럼 긴 호흡으로 가야하는 책들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e********0 2023.05.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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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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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입니다. 안정적이지만 변화없는 무료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책 한권에 의해 야간열차에 오르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작중 주인공은 다른 이의 인생을 알아가며 스스로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소설 속의 인물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독자들이 함께 야간열차에 올라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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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입니다.

안정적이지만 변화없는 무료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책 한권에 의해 야간열차에 오르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작중 주인공은 다른 이의 인생을 알아가며 스스로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소설 속의 인물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독자들이 함께 야간열차에 올라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다소 무거운 주제인 삶과 죽음에 대해 독자에게 의문을 제시합니다.

책은 사소하지만 작은 변화도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무의미한 인생은 없다 '

m*********2 2023.08.05.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