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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관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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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철학서로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실제로 작가 역시 불교와 그리스 철학 연구서를 참고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자를 길러내는 주식회사 코르크의 대표, 사도시마 요헤이.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며 얻은 통찰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했다' 라고 선전하는 내용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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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철학서로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작가 역시 불교와 그리스 철학 연구서를 참고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자를 길러내는 주식회사 코르크의 대표, 사도시마 요헤이.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며 얻은 통찰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했다' 라고 선전하는 내용이 아니라 독자에게 질문한다. 관찰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삶에 정답이란 있는가. 더불어 새로운 관점도 제시한다. 


나는 항상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고자 했다. 

나라는 감옥에서 도망쳐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도망을 멈췄다.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축복하는 존재로 인정하려면 관찰력이 필요하다.“ (p.52)


좋은 관찰은 어떤 주체가 사물에 대한 가설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면서 가설과 그 사물의 상태 사이의 차이를 깨닫고 가설을 갱신해 나가도록 한다. 나쁜 관찰은 가설과 사물의 상태에 차이가 없다고 느껴 이미 다 알았다는 생각에 가설을 더 이상 갱신하지 않게 한다.


관측은 관측 자체가 목적이지만, 

관찰은 스스로 발견했기에 풀고 싶어지는 질문으로 이어져 동기 부여를 한다. (P.26)


이 책이 정의하는 관찰이란 인간관계로 치환해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관계란, 그 사람의 첫인상에서 비롯된 선입견(가설)과 실제 본 모습 사이의 차이를 허물어 가는 것이고

나쁜 관계란, 상대방의 본의와는 달리 내 생각 혹은 오해(가설)가 맞다고 고집하는 것이지 않을까.




비관주의는 기분에 속하고 낙관주의는 의지에 속한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실패 방식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두려워져서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풀리는 경우에는 어떤 것이든 대개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목표로 삼은 성공에 다양성은 없다. 

벌어진 일은 전부 옳다. (p.115)


특히 3장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인지편향은 흥미로웠다. 확증 편향, 부정 편향, 동조 편향, 후광 효과, 생존자 편향, 근본적 귀속 오류, 사후 확신 편향, 정상화 편향까지. 아마도 다들 하나씩 혹은 전부 다 조금씩은 가지고 경험했을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부정 편향에서 가장 많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성이야말로 그 사람의 본질이며, 중심은 없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관찰해보자.
관계성에 주목하면 개인이란 확고한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애매한, 아메바처럼 흔들리며 움직이는 것이 된다. 
관계성이 달라지면 개인의 모습도 달라진다. (p.181)

사회 초년생 시절, 회사에서의 내 모습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 내 모습 사이의 괴리 때문에 혼란스러웠었다. 회사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왜 나로 살지 못하나 괴로웠고 그럴수록 더 움츠러들고 방어막은 더 두꺼워졌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모든 모습이 '나'였다. 인간은 단편적이지 않다. 한 가지 모습만으로 살 수 없다. 회사에서 소위 꼰대라고 욕먹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다정한 가족이자 친구일 것이다. 절대 선, 절대 악 같은 건 만화 속에나 존재한다.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한다. 진짜 정답은 없다고 하더라도 정답 쪽에 서고 싶어 한다. 모호함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편향과 감정 모두 의사 결정을 무의식적으로 행하도록 돕는 행위다. 관찰이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위를 모두 의식하는 것이다. 즉 관찰이란 본능에 저항하는 행위다.

이미 아는 것을 관찰하고 손에서 놓으면 모호한 세계가 된다. 정답 따위 없는 세계가 된다. 모호한 세계는 불안하다. 그래서 그대로 계속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왜 논어에서 마흔을 불혹이라고 말하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왜 나는 마흔이 되어서도 정답을 모르겠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문득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지 못하는 것', '모호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망설이지 않는 다는 의미다. 정답 추구하기를 멈추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을 계속 마주하는 것이 불혹, 마흔이었다.(p.207)

마흔. 이제는 청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성세대라고 하기에는 젊은 애매한 경계선. 마흔쯤 되면 인생의 답이 보이겠거니 했지만, 정답은커녕 MZ 트렌드도 알아야 하고 회사에서는 윗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는 그야말로 숨 막히는 낀 세대일 뿐이다. 허나 백세시대에 고작 마흔이 뭘 얼마나 알겠나. 알아도 아는 거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아직은...
여전히 내 인생만 불안하게 흔들린다고 느끼는 모든 마흔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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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2024.03.15.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