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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가장 좋은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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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라디오에서 자신이 싱글맘으로 환경미화원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틈틈이 인형눈을 붙이는 일을 하면서 번 돈 십만 원을 매달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는 내용을 들었다. 자신이 살기에도 빠듯한 생활에서 이렇게 남들을 위해 기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는 분명 물질적인데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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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라디오에서 자신이 싱글맘으로 환경미화원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틈틈이 인형눈을 붙이는 일을 하면서 번 돈 십만 원을 매달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는 내용을 들었다. 자신이 살기에도 빠듯한 생활에서 이렇게 남들을 위해 기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는 분명 물질적인데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우리 마음속에 끊임없이 들끓는 질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은 현실의 안락함과 미래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한다. 그런데 삶의 목표를 물질에다 두고 있으면 그 끝이 허무할 뿐만 아니라 욕구가 충족되기도 힘들어진다. 이 책은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지도 못하는 물질적인 것에 삶의 목표를 세우지 말고 윤리적인 것으로 바꿔보라고 말한다. 소비사회에서는 가진 게 많을수록 좋은 삶이라고 말하는데 이  생각을 벗을 수 있다면 나와 가족의 삶보다 더 넓은 전 우주적인 삶이 보이고 삶의 목표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상이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낯선 사람을 도운 사례는 많다. 발렌베리는 안락한 자신의 삶보다는 나찌에 학살당할 위험에 처한 유대인들을 도왔고, 그 덕분에 목숨을 구한 유대인의 수는 12만 명 이상이다. 쉰들러의 경우도 1,200명 이상의 유대인을 살렸다. 자신에게 득이 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을 옳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한 것이다. 자선의 가장 높은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헌혈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살아야하는 이유는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인간은 목표지향적이다. 미국의 철학자인 리처드 테일러는 시시포스의 경우를 들어 그의 반복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매번 똑같은 바윗돌을 굴려 올리는 대신 돌 하나하나를 올릴 때마다 그 돌을 모아서 신전을 짓는 것이다. 이 일을 함으로써 시시포스는 객관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만족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신들이 시시포스에게 바윗돌을 굴리려는 강한 욕망을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외적인 가치보다 내면에 의미를 찾는 방법이다. 인간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삶을 계속 살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점이 개인이나 가족을 넘어 보편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더 이상 개인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가치 있는 이상을 찾을 수 있다. 그 이상의 최고점은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그 고통을 덜기 우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의 고통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의 현실에 대한 만족은 조금 더 뒤로 미룰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기부천사가 되게 할 수도 있고 의인의 길을 걷게도 만든다. 세상에는 순간순간 고통 받는 많은 생명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릴 바에야 이 책을 읽지 않는 게 더 좋았다고 말한다. 지금 현재 이 순간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이 누군가를 생각해보는 것. 그 이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은 독자가 해야 할 책무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t******e 2014.02.27. 신고 공감 6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윤리적 삶이 주는 행복, 이제 시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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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孟子見梁惠王하신대 王曰 叟不遠千里而來하시니 亦將有以利吾國乎잇가 孟子對曰 王은 何必曰利잇고 亦有仁義而已矣니이다 맹자께서 양(위)나라 혜왕을 뵈시니 왕이 말하기를,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고 하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맹자께서 대답해 말씀하시기를,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의(도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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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見梁惠王하신대 王曰 叟不遠千里而來하시니 亦將有以利吾國乎잇가 孟子對曰 王何必曰利잇고 亦有仁義而已矣니이다

맹자께서 양()나라 혜왕을 뵈시니 왕이 말하기를,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고 하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맹자께서 대답해 말씀하시기를,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의(도덕)가 있을 따름입니다.

 

王曰何以利吾國고 하시면 大夫曰何以利吾家오 하며 士庶人曰何以利吾身고 하여 上下交征利而國危矣리이다 萬乘之國弑其君者必千乘之家千乘之國弑其君者必百乘之家萬取千焉하며 千取百焉不爲不多矣언마는 苟爲後義而先利不奪하여는 不饜이니이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까라고 말씀하시면 대부(귀족)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라고 말하며 선비와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라고 말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전차 만대)의 나라(천자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전차 천대)의 집안(공경)이요, 천승의 나라(제후국)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집안(제후의 대부)이니, (신하가 군주에게서) 만승에 천승을 취하고 천승에 백승을 취함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마는 진실로 정의를 뒤로 하고 이익을 먼저 한다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

 

위의 문구는 맹자의 양혜왕 상에 나와 있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이()를 돈으로 바꾸면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현대인들은 조직의 이익만을 쫒다보니 붕당이 생기고, 가족의 이익만 우선하다보니 호혜적 이타주의가 생기게 되고,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다보니 모두가 불편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개인이나 가족, 조직의 편리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를 쫒습니다. 그 이는 모두가 금전적인 이득에 모아집니다. 이렇듯 우리가 모두 경제적인 이득만 추구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건 채워지지 않는 물질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남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를 원합니다.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적인 여건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지요. 그리고 스스로의 기준이 아닌 남의 성취를 상대적인 목표로 정해놓고서 그와 비교하며 나의 삶을 재단합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을 때 우린 그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 더 나은 것, 더 넓은 것, 더 좋은 것을 추구합니다. 이게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물질적인 욕망과 성취가 삶의 행복과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그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입니다. 이렇듯 모두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갇혀 개인적인 부를 목표로 달려가는 모습을 2500년전에 맹자는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리주의 철학가인 피터 싱어에 의해 쓰여진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어느 날 퇴근길 하루의 일과에 지쳐 구부러진 어깨를 수그리며 걷는 퇴근길의 어느 순간 마음속의 자아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휩싸여 모두가 개인의 이득만을 추구하며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향해 던지는 질문입니다. 즉 모두가 이렇게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갈 때 과연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가 되묻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고. 이제는 우리 스스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건 아닌지 우리에게 묻고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공리주의 철학자입니다.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는 공리성(utility)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하는 사상입니다. 곧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 하는 유용성과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봅니다. 넓은 의미에서 공리주의는 효용·행복 등의 쾌락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철학·사상적 경향을 통칭합니다. 공리주의는 19세기 영국에서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회사상이며, 최근에 와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로 우리에게 알려진 마이클 샌던 교수도 공리주의 철학에 근본한 정의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의 논리는 공리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는 자본주의시대이고 물질 만능의 시대입니다. 개인은 부의 축적을 위해 타인의 불편이나 희생은 개념치 않습니다. 국가의 일군이 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표를 모읍니다. 그 어떤 공약보다도 잘살게 해주겠다는 공약은 효과가 좋습니다. 그런 공약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 어떤 이는 국민을 잘사게 하는 게 아니라 국가를 수익모델로 하여 자신의 곳간을 채우는데 만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속았으면서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에 또 표를 던집니다. 단순한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의식은 그런 잘못된 정치인들의 허황된 약속을 믿고 표를 밀어줍니다. 그리고 권력도 주었습니다. 그들이 국민이 준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만약 잘살게 해주겠다는 정치인의 논리에 국민들이 응대하지 않으면 그들은 현실적인 공약을 우리에게 제시하겠지요. 또한 어떤 정치인들은 윤리적인 공약을 제시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치가 윤리를 토대로 삼으면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급진적인 변혁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치를 통한 윤리적인 삶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에 눈과 귀를 닫고서 가족과 호혜적 이타주의에 의지해 사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 삶인가? 살면서 그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 우린 잘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윤리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저자는 오류가능성을 인정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직접적이고도 현실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삶이다.”(334)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윤리적 삶은 적극적인 목표 선택에서, 또한 이 목표를 이루는 수단에서 비롯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개개인이 조금 이라도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윤리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윤리적인 삶이 대단한 삶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헌혈을 하는 행위, 누군가를 도와주는 행위, 기부를 하는 것들이 이에 해당되겠지요. 최고의 도덕적인 행위는 도와주는 사람도 도움을 받는 사람도 서로를 모르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말에 가끔 언론에 오르내리는 익명의 기부자가 몇 해에 걸쳐 일정금액을 동사무소 앞에 남몰래 놓고 간다던지, 수 십 킬로의 쌀을 익명으로 기부한다던지 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되겠지요. 그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누군가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행위도 아니겠지요. 그저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사실자체에 만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행위가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가 공동체의 일원임을 일깨우는 행위일수도 있지요. 그래서인가요. 그런 소식을 접하는 우리의 마음도 그에 따라 훈훈해집니다. 그러면서 말하지요.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판단이 도덕적이라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가능한 상황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없이 그 판단을 적용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59)

 

  저자는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개인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서로를 신뢰하고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실험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윤리적인 삶을 행할 때 우리사회는 밝아진다는 것이죠.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삶을 추구할 때 세상에 선을 행하는 이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세상이 좀 더 참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할게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을 향해 마음이 부르짖는 윤리적인 물음에 행동으로 답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조금씩 변화의 물결을 가져온다고 얘기합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과 나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며,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아지는 정도가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말이죠(330)

 

  이제 우리는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세상의 개혁은 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은 호수에 던지는 돌멩이 하나가 일으키는 파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내가 던지는 돌멩이 하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물질주의적 이기주의에 맞서 윤리적 삶을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대안으로 복원해야 합니다. 일에서 보람을 찾고, 돈과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런 관점들이 하나씩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변합니다. 그 시작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행동에 있습니다. 물질의 논리에 갇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호혜적 이타주의에 갇혀 살 것이 아니라.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윤리적 삶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항해 이타적인 손길을 내미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향해 던지는 나의 조그만 돌멩이가 되는 것이고 변화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 24의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h*****o 2014.02.26.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의 방식을 바꾸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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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어떻게 사는 것이 괜찮은 삶인지에 대한 물음이 많다. 혹자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방식대로 살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라고 한다. 그러나 산다는 것, 아니 살아낸다는 것이 절박한 생존의 문제로 와 닿는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자신의 의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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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어떻게 사는 것이 괜찮은 삶인지에 대한 물음이 많다. 혹자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방식대로 살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라고 한다. 그러나 산다는 것, 아니 살아낸다는 것이 절박한 생존의 문제로 와 닿는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자신의 의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이란 안락한 삶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심화되어 가면서 사람들의 삶은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렸고, 거기에 맞춰 우리들 모두는 돈, 사랑, 가족 등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만이 행복한 삶이고,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이 책의 저자 피터 싱어는 그런 우리에게 좋은 삶,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은 어떤 것인지를 묻고 있다. 그는 각자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 진정한 삶의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게 되며, 우리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행동한다면, 이로 인한 삶의 변화는 그 어떤 변화보다도 훨씬 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한 삶을 윤리적인 삶에서 찾고 있다. 흔히 우리는 윤리적인 삶이라 하면 철학과 종교를 떠 올리지만, 그는 그런 윤리를 구체적인 삶의 실천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윤리란 이거 하지 말고, 저거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규칙체계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토대라고 말한다. 따라서 윤리적인 삶이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며,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론에 따라 행동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그가 말하는 삶의 목적은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기완성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일상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내리는 선택은 정해진 틀이나 가치기준이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이 제한적인 선택이라 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택은 내게 가치 있는 것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에 반해 선택을 할 때, 윤리와 자기 이익이 충돌하면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두 삶의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를 저자는 궁극적 선택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런 궁극적 선택이 문제 삼는 것은 근본적인 가치 자체, 삶의 토대 자체라는 것이다. 결국 윤리적인 삶은 자신의 이익을 넘어선 목표를 추구하는 궁극적인 선택을 하는 삶이 되는 셈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소유 자체를 목표로 하는 삶은 무가치하고 하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부 자체가 선으로 둔갑하였다. 또한 종교 역시 부나 잉여를 죄악시하였다. 그러나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가들은 이를 정반대로 뒤집어 부를 신의 은총으로 바꾸어 놓았다. 결국 부를 중시하는 종교적, 세속적 논리는 좋은 삶의 현대적 관념을 떠 받치는 토대가 되었고, 더불어 탐욕은 만인을 이롭게 하는 공공의 덕으로 미화되기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듯 돈이 곧 선()이자 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의 시각은 현재 두 가지의 큰 위기를 낳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는 서구사회 전체에서 나타나는 위기로 기업이든, 노조든, 대학이든, 정치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만을 중시함으로써, 사회의 범죄율이 높아지고,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늘어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의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극대화 하려는 개인주의 사회를 만들었으며, 결국은 파멸뿐이라고 한다. 두번째로 저자는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위기를 꼽고 있다. 한 예로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은 동물들을 대규모로 사육하게 만들고, 곡물은 그러한 동물들의 사료로 사용되면서, 생태계는 인공적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 역시 우리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다 줄 뿐이다. 물질적 부나 소비에는 한계가 없고, 따라서 물질적 부가 좋은 삶이라는 통념이 바뀌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기이익과 윤리가 부딪히는 궁극적 선택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이 잘못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은 이기적으로 생활하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들이 편협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이유를 들고 있다. 자녀 돌보기, 친족 돌보기 나아가서 집단 돌보기와 같은 사례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성향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 궁극적 선택이 편협한 이기주의에 머무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 선택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윤리적으로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야 일상생활에서 더 의식적이고도 일관되게 윤리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목표를 찾으려는 성향은 기나긴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본성이라고 한다. 해야 할 일이 없다면 삶은 의미가 없고, 어떤 일을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정하는 것은 윤리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윤리적인 삶이란 적극적인 목표 선택에서, 또한 이 목표를 이루는 수단에서 비롯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은 다시 말해 우리의 판단이 도덕적 이려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윤리적인 삶의 특징은 세상을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올바른 태도를 취하고, 올바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더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윤리적으로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선순위를 바꾸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윤리적 생활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고통이 너무나 많다고 말하는 저자, 그래서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온갖 고통에 연민을 느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애쓰는 위대한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들 개개인도 폭넓은 관점을 가지고서 각자의 삶의 목표를 향해 윤리적인 삶을 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책을 처음 읽기 전에 저자는 이 책을 읽고서 혹 불편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가 살아온 삶이 과연 윤리적이었는지, 또 내가 살아오면서 나의 이익과 윤리는 충돌하지 않았는지, 충돌 했다면 그 때 내 궁극적 선택은 어떤 선택이었는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저자의 말마냥 불편함을 느낀다. 그것은 결국 나로 하여금 윤리라는 것, 궁극적 선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고, 그리고 온갖 고통에 연민을 느끼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k*****1 2014.02.20.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막장 인생만 아니면…….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막장 인생만 아니면……." 내용보기
원제 - How Are We to Live?, 1993   부제 -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윤리   저자 - 피터 싱어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다른 책이 생각났다.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리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두 저자는 알기나 하고 저런 질문을 던지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막장 인생만 아니면……." 내용보기

  원제 - How Are We to Live?, 1993

  부제 -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윤리

  저자 - 피터 싱어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다른 책이 생각났다.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리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두 저자는 알기나 하고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그리고 다른 궁금증이 줄줄이 들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렇게 살면 괜찮지 않을 삶’은 과연 어떤 걸까? 또한 저자가 ‘괜찮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삶’은 어떤 걸까? 이 책이 처음 나온 지 20년이 지났는데, 다시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까? 그래서 여전히 이렇게 살면 괜찮지 않다고 저자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저자가 보기에 그 때와 변함이 없을까 아니면 더 나빠졌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자가 괜찮다고 하는 삶이 진짜 괜찮은 걸까? 그러니까 선진국들이 자기들은 개발을 다 해놓고 개발도상국들에게 환경 오염문제가 심각하니까 너희들은 개발을 자제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처럼,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책은 아닐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런 논리를 펼치는 사람이나 책이다. 현대 사회는 물질을 추구한다. 그런데 간혹 물질을 추구하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 손 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가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흔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 사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하지만, 글쎄? 난 아직까지는 배부른 돼지가 더 끌린다. 꼭 내가 돼지띠라서 그런 건 아니다.

 

  이 책도 약간 그런 방향으로 흐를 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하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거기에 몇 가지를 더 첨부했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바로 윤리와 도덕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지나친 개인주의가 어떻게 변질되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었다. 이를 위해 각 종교와 철학의 인식 변화까지 다룬다. 그리고 도덕과 윤리란 무엇인지, 도덕적인 삶이라는 게 뭔지, 윤리를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역시 철학과 역사적 예를 들면서 설명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이론을 얘기하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들어 보이며, 지나치게 강조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도 말한다. 특히 칸트의 정언 명령에 대한 부작용은 상당히 놀라웠다. 하긴 인간의 창의력과 응용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전혀 연관도 없이 기승전병으로 이루어진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철학자들의 이론이 악용되는 일이 없으면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현대 철학이 어떻게 나아가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대의 교육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지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현대 한국의 교육은 친구를 밟고 넘어서야하는 것을 알려주니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저자의 말대로라면, 아이들에게 로또 1등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고,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양심에 따라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 혼자 교통 규칙을 지키고 잘 다닌다고 해도 어느 순간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뛰어들지도 모르는 게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마구 규칙을 어기면서 다닐 수는 없다. 모두가 다 마음대로가 아닌,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기 때문에 통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괜찮은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모두가 다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면서 사는 세상. 그런데 그 최소한의 규칙에서 우리는 꽤나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뭐였는지 잊은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꼭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이 떠오른다. 오늘밤에도 들으면서 자야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v********0 2014.02.27. 신고 공감 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티끌이 모이면 태산같은 윤리적 사회가 될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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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에서 송파구에 살던 세모녀가 생활고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을 접했다. 그들이 살던 지하 월세방은 벽지도 눅눅하고 제대로 된 세간살이 조차도 없으며 , 32살 35살의 딸들은 신용불량자에 큰딸은 지병이 있었고 늙은 노모가 식당으로 근근히 먹고 살면서 한번도 월세를 미룬적이 없었는데 올해 초 월세가 오르고 거기다가 노모가 팔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되면서 더욱더 생활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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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에서 송파구에 살던 세모녀가 생활고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을 접했다. 그들이 살던 지하 월세방은 벽지도 눅눅하고 제대로 된 세간살이 조차도 없으며 , 32살 35살의 딸들은 신용불량자에 큰딸은 지병이 있었고 늙은 노모가 식당으로 근근히 먹고 살면서 한번도 월세를 미룬적이 없었는데 올해 초 월세가 오르고 거기다가 노모가 팔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되면서 더욱더 생활고가 가중되었다고 말이다.

 

안타까운 소식뒤에 어려운사람들을 도와주는 정책 연구소 소장 인터뷰가 연이어졌는데 그분의 말씀이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생활은 참으로 고달픈데 우리나라 현재복지법으로 그들을 도와줄 현행법이 없다고 그들이 힘들어서 상담하러 왔다면 도와줄수 없다고 말할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이웃들이 굶어가고 생활고 때문에 죽어가는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고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더 풍요로워졌는데 정신적 문제가 아닌 생활고 때문에 아직도 세상을 비관해서 어떤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책또한 1997년에 펴낸 피터싱어의 책을 재발간 한것인데 그속에서 2014년에 다시 읽어도 그당시의 그가 외쳤던 우리의 윤리적 의식의 흐름은 아직도 그대로 이구나를 느낄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많이 가진것이 행복이고 더많은 약탈을 해야 행복해질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져가는 세상을 한탄하면서 우리가 정말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것인가를 아주 담담히 이야기해준다.

 

그는 책속에서 자본주의 구조속에서 탐욕에 물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탐욕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보다는 세상의 윤리와 환경, 사람, 기아등의 구제하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의 윤리는 왜지켜져져야 하는가? 를 이야기해준다.

 

" 내가 세상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과 나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살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며, 이세상에 존재하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아지는 정도가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말이죠 . "   페이지 330

 

지금 내가 잘살고 있다고 우리나라가 괜찮다고 눈을 감고 세계나 주위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점점 더 윤리적 의식은 사라지고 탐욕의 세상으로 남아 언젠가 그것이 다시 자신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올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정말 윤리적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면 이책을 읽으면 좋을것 같다.

윤리도 티끌모아서 태산이 될수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m******6 2014.02.28.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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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도약을 위한 튼튼한 철봉대가 되어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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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책을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것도 꽤나 좋은 일 같다.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피터 싱어라는 이름을 내게 처음으로 각인시킨 책이자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진지하게 읽어내려간 철학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 수업의 교과서가 바로 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가슴에 팍 와 닿았기 때문에 읽는 게 더욱 기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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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속의 책을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것도 꽤나 좋은 일 같다.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피터 싱어라는 이름을 내게 처음으로 각인시킨 책이자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진지하게 읽어내려간 철학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양 수업의 교과서가 바로 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가슴에 팍 와 닿았기 때문에 읽는 게 더욱 기대가 컸다. 사실 당시 늘 스스로에게 하곤 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시작했던 대학 생활. 하지만 어느덧 그 기대감은 낱낱이 깨어지고 갑자기 삶의 방향감을 상실한 탓에 이리저리 허둥거리며 그저 속절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었더랬다. 선배들이 사주는 술, 학우들과 어울려 마시는 술. 차오르는 취기와 아무도 없는 텅 빈 밤거리를 오래도록 휘적휘적 걸으며 가장 많이 떠올렸던 생각은 바로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였다. 그런 방황 가운데 만났던 책이었다. 교수님이 책 제목을 불러 주었을 때 눈이 번쩍 뜨여서는 바로 구내 서점으로 달려가 구입했던 책이기도 했다. 수업 때문이기도 했지만 참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기본적으로 윤리서라 할 수 있다. 이미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윤리 수업을 듣긴 했지만 피터 싱어가 들려주는 윤리는 참으로 많이 달랐다. 읽으면서 과연 이런 것이 윤리라는 것이구나 하고 새록새록 깨달아갔던 기억이 난다. 남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세계와 섞여 산다는 것에 대해, 아울러 자연계와 우리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스무 살, 그 많지 않는 뇌용량으로는 좀 버거웠지만 그래도 아주 열심히 생각해보았던 것 같다.

 

 그런 책을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왠지 조금 감개가 무량할 정도다. 이 책은 내가 본 1996년에 나온 것을 다시금 새롭게 번역하여 발간한 책이라고 한다. 그 때는 아마 철학책 전문 출판사인 서광사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이번엔 출판사를 달리하여 나왔다. 서광사 특유의 서체가 있는지라 그 서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에 익숙해있던 내게는 책 자체가 이미 새로움이었다. 그러니 번역이 달라져 보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번역은 꽤나 잘 되었다. 튀는 것 없이 술술 잘 읽힌다. 피터 싱어는 원래 '동물 해방'으로 유명한 학자이다. 인간 중심주의에 젖어있던 윤리관을 동물에게까지 넓혔던 학자로 기억된다. 단순히 넓히기만 했다면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넓힘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설득력이 잔뜩 배가되어 있었기 때문에 피터 싱어의 이름은 단번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저자의 글을 읽어보면 그 책을 읽고 감동하여 식생활을 바꾸었다는 사람들의 편지가 많이 도착한다고 한다. 그 책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지 잘 보여주는 증거 같다. 당연히 이 책,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도 그 못지 않은 설득력을 자랑한다.

 

 책의 논지를 잘 따라가 보면 왜 우리가 피터 싱어의 말대로 윤리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개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피터 싱어는 현대 사회를 단적으로 이렇게 정의한다. 돈을 향한 이기적 욕망으로 움직이는 사회.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부만 추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들을 나 몰라라 하는 사회. 그리고 그 눈에 보이는 물질을 조금이라도 더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기심이라는 오직 하나의 엔진에만 의존하여 움직이는 대중. 그 브레이크 없는 가속도의 질주를 멈추기 위하여 피터 싱어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를 펴내게 되었다.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좋은 삶으로 가기 위한 11개의 정거장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첫째와 둘째 그리고 셋쩨 정거장은 아까 말한 일종의 개탄이 주를 이룬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왜 그 흐름 속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곳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걸 어쩌라고? 물질을 추구하고 이기적이 되는 건 생존 본능을 가진 인간의 본성 아닌가? 우리가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어떻게 인간이 본성을 거슬려?"라고. 사람들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자연적 질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 밖에 없고 인간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질서라고 말이다. 욕망과 이기심에 점점 가속도가 붙는 것은 그런 생각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피터 싱어는 넷째와 다섯째 그리고 여섯째 정거장에서 그런 생각을 무너뜨리려 한다. 처음 넷째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인간 모습이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특정한 역사적 순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함을 밝히고 다섯째 정거장에서는 이기심이 유전자에 새겨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아님을 설파한다. 그리고 여섯째 정거장인 '일본인이 사는 법'은 서양의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른 일본 사회의 모습을 부각시켜 피터 싱어가 여기서 하고 있는 말, 즉 지금의 자본주의적 삶은 결코 자연적인 것도,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아님에 대한 증거로 가져온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본래의 자연적 질서를 따라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외부로 부터 이식된 이념에 따라 살고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이식된 것을 모조리 포맷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 그라운드 제로의 상태에서 과연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를 찾는 것이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거기서 피터 싱어는 한 가지 케이스를 든다. 바로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다.

 

 '죄수의 딜레마'는 주로 게임 이론과 관련하여 핵무장이 한창일 때 국제 정치에서 흔히 쓰던 모델이었으나 피터 싱어는 윤리 모델로 가져온다. 사실 나도 피터 싱어가 이렇게 쓰기 전까진 죄수의 딜레마가 이렇게 쓰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아무튼 죄수의 딜레마는 보통 사람들의 전형적인 믿음을 또렷이 보여주는 모델이다. 그러니까 '착하게 사는 사람만 손해 본다.'는 믿음 말이다. '죄수의 딜레마'가 그렇다. 서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는 격리된 장소에서 공범인 두 죄수가 형량 교섭을 받는다. 조건은 이렇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자백하고 한 사람은 묵비권을 행사할 경우, 자백한 사람은 무죄가 되어 풀려나고 묵비권을 행사한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두 사람 다 자백을 하면 다 같이 감옥에 가게 되고, 두 사람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모두 풀려나게 된다. 피터 싱어는 공범 중 한 사람만이 자백할 경우를 살짝 바꿔 다 같이 감옥에 가게 되지만 자백한 사람은 짧은 형기를 받는 것으로 하였지만 기본 얼개는 같다. 어쨌든 자신에게 가장 이기적인 방법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가장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나마 좋은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을 위한 희생이 불가결하다. 피터 싱어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후반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다.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결코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과연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에 대한 답을 들려주려는 이야기. 하여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진지하게 윤리적 삶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랬듯이...

 

 개인적으로 이 책을 다시금 벗하면서 느끼게 된 건, 내가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정말 마치 좋게 말하면 순수주의자 나쁘게 말하면 도덕 원론주의자같이 피터 싱어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이제는 현실적 한계를 많이 첨가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념은, 그것도 좋은 이념이라면 마치 연꽃 잎 위로는 어떠한 진흙물도 올라가지 못하듯이 현실적 여건에 좌우되지 않는다. 밤하늘 저 멀리에 있는 북극성처럼 그것은 그저 하나의 지향해야 할 좌표로서 존재할 뿐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그런 좌표의 무용성을 생각했던 나였지만 요즘은 많이 바꼈다. 어쨌든 현실에 초연한 삶의 좌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피터 싱어의 이 책은 그런 생각에 어떤 디딤돌 같은 것을 놓아주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전혀 실천 윤리에서 떨어져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피터 싱어의 모든 논의는 현실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이 책은 정말로 당신이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아니 무조건 벗해보아야 할 책이다. 철봉대가 잘 보여주듯이 사람은 뭔가를 잡고 올라가지 않으면 스스로 높이 잘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붙잡아 자신을 도약시켜 줄 무언가는 이왕이면 튼튼할 수록 좋다. 바로 이 책,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가 그렇다.

 

 



l****1 2014.03.03.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스스로에게 던지는 '궁극적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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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에 의하면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르는 위대한 전통에 참여한다는 뜻이요 자기 희생적인 삶이 아니라 자기완성을 위한 것이다.싱어는 이 책을 쓸 당시 LA 폭동을 목격하고, 전 세계적 금융 위기 속에서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나간다. 그는 독자에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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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에 의하면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르는 위대한 전통에 참여한다는 뜻이요 자기 희생적인 삶이 아니라 자기완성을 위한 것이다.

싱어는 이 책을 쓸 당시 LA 폭동을 목격하고, 전 세계적 금융 위기 속에서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나간다. 그는 독자에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궁극적 물음에 답할 것을 주문한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의 한계 안에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자문해 보라는 것이다.

그는 소비사회에서 가진 게 많을수록 더 좋은 삶이라며 소비를 부추기지만, 이 통념을 제외한 모든 측면에서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려 있다고 본다. 좋은 삶에 대한 기존 통념에서 벗어나면 지구의 생태 환경을 보전하고 지구촌 정의를 실현하는 문제를 다시금 무대 중앙에 세울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이에 우리는 빈곤, 범죄, 근시안적 지구 자원 파괴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새롭게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을 돕기보다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려 드는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 할 수 없다고 질타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전세 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금융위기 등으로 장기 불황에 시달리다보니 부동산 투자에 대한 확실성이 보장되지 않아 내 집 마련 대신 전세로 몰리고, 집주인은 전세금을 받아봐야 이를 다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월세 등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월세 소득공제를 확대 실시(일정 자격을 갖춘 경우 연 월세 60%, 연 5백만원 한도)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임대수익에 대한 세원을 발굴·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결국 전세 대란으로 주민들은 이사를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할 수 밖에 없어 공동체 의식을 키우거나,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자칫 싱어가 우려한 대로 우리는 ‘제 잇속만 차리는 사회’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제 잇속만 차리는 개인이 바라는 세상이 올까? 하지만 부와 행복의 연관성을 비교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사회가 궁극적 풍요의 상태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개인의 욕구도 끝없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비중 있게 다루는 또 하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싱어는 생물학적 본성에는 우리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뭔가가 들어 있다는 논리에 반박한다. 그는 인간은 이기적 행동을 곧잘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오히려 생물학적 본성은 자녀를, 친족을, 어떤 경우에는 대규모 집단을 돌보도록 우리를 이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철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는 것과 동시에 일본 사회를 해부해서 들여다본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자기 이익에 대해, 또한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명백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4.02.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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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점을 넘어선 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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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거래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라 했다. 「화폐의 본래 기능인 교역 과정이 아니라, 화폐 자체에서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폐는 교역에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이자를 낳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재산 획득 기술 가운데 고리대금이 가장 자연에 배치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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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토텔레스는 거래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라 했다. 「화폐의 본래 기능인 교역 과정이 아니라, 화폐 자체에서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폐는 교역에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지 이자를 낳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재산 획득 기술 가운데 고리대금이 가장 자연에 배치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설’이다. 돈 자체를 불려 또 다른 돈을 낳게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는 의미이리라. 이 책에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실려 있다. 영어로 ‘부당하게 얻은 횡재’를 일컫는 말로 ‘트럭에서 떨어졌어(it fell off the back of a truck)’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어느 가난한 남자가 현금 수송 트럭에서 떨어진 돈자루를 발견했는데 그는 그 돈을 수송 업체에 돌려주었다. 언론에서는 남자를 영웅으로 치켜세웠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바보라 부르는 편지와 전화를 수없이 받아야 했다고. 피터 싱어는 처음부터 궁극적 선택과 제한적 선택(합리적 선택)이라는 두 개의 명제를 내세운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열대 우림을 보호하고 싶다면 산림 파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는 단체에 가입하는 것 등이 합리적 선택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며 근본적 가치를 전제한다. 이에 비해 궁극적 선택에서 문제 삼는 것은 근본적 가치 자체다. 낯선 사람에게 중고차를 판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차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상대방은 알지 못한다. 드디어 계약서에 서명하려는 순간 ‘차에는 문제가 없겠죠?’ 하는 말을 들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나중에 결함이 발견되어도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그 사람이 무슨 수로 입증하겠나?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문제점을 털어놓았을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살다 보면 이러한 궁극적 선택과 반드시 맞닥뜨리게 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일부러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성이 감정이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할 때만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주장을 두고 현상과 명백히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선(善)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구분한 것이다. 여기서 싱어는 말한다. 윤리적 사고의 가장 근본적 차원에서는 적의 이익을 친구의 이익처럼, 낯선 사람의 이익을 가족의 이익처럼 고려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하루하루의 모든 도덕적 선택 상황에서 이토록 복잡한 사고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도덕 규칙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이성을 통해 우주적 관점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남과 마찬가지로 이익과 욕망을 가진 여럿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개인적 관점에서는 자신의 이익이 무대의 맨 앞 한가운데에 놓이고 가족과 친구의 이익이 바로 뒤에 놓이며 낯선 사람의 이익은 뒤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물론 이성의 눈으로 보면 남들이 나와 다를 바 없는 주관적 관점을 가지고 있고 나 역시 그들에 비해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만, 이것을 가능케 하는 의지가 부족함으로 윤리적인 문제가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피터 싱어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이것이 촘스키의 그것보다 다소 현실적 문제에서 물러나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된 이 책이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된 것을 보면 이 세계가 모든 것을 수용하기에 그 한계점을 넘어섰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u******o 2014.02.1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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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수십 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 쯤은 이러한 생각을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이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누구나 가족, 대인관계, 사회생활, 노후준비 등 여러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과거를 되새겨 보고 과연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지 더 앞서 가서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가를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다. 몇 년 전에도 그랬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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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수십 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 쯤은 이러한 생각을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이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누구나 가족, 대인관계, 사회생활, 노후준비 등 여러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과거를 되새겨 보고 과연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지 더 앞서 가서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가를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다. 몇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도 과연 내가 선택 한 일이 잘한 것인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항상 생각하게 된다. 도서의 제목처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계속 이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데 저자가 지은 이 제목은 책 읽기 전부터 오랜 시간 동안 사색하게 한다. 


 그렇다면 저자 피터싱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떠한 대답을 들려줄까. 종교에 귀의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물질적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어떤 삶의 목적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윤리적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이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8p) 지구상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 윤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반면에 비윤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희망의 실천윤리를 제시한다.


 저자는 한 사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그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해준다. 그  해답을 내 눈으로 보는 순간 절로 머리가 끄덕여진다. 첫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재고하고 자신의 행동에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348p)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말로써 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윤리적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을 통해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저자는 관점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고 전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r****q 2014.03.0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의식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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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렇게 살아가면 괜찮지 않은 거다. 괜찮을 것이라고 이런 물음을 던진 것은 절대로 아니었을 테니. 꽤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다. 마음 편히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런 책이 있다.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자신이 달라진 것을 알게 해 주는 책, 이 책처럼. 거창하고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이나마 시작해야겠구나 내 마음을 움직여 주는 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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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렇게 살아가면 괜찮지 않은 거다. 괜찮을 것이라고 이런 물음을 던진 것은 절대로 아니었을 테니. 꽤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다. 마음 편히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런 책이 있다.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자신이 달라진 것을 알게 해 주는 책, 이 책처럼. 거창하고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이나마 시작해야겠구나 내 마음을 움직여 주는 책. 작가의 말처럼 나도 여기서 한 발 그 방향으로, 책을 통해 알게 된 윤리적 삶의 방향으로 내딛으려 한다. 더 늦지 않게 이 책을 읽게 되어 고마운 심정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이 길이 맞다고, 같이 나가자고는 말못하겠다. 책의 힘대로라면 당연히 그렇게도 할 수 있어야 하겠으나 아직 그 힘까지는 얻지 못했다. 우선은 나부터, 내가 해내야 할 일이다. 관심이든 실천이든 노력이든.

 

여태까지의 온갖 경험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나아질 수는 있는 것인지,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해 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획기적이었으나 도덕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시 시대의 인간성과 그리 큰 차이나 발전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본능도 욕망도 여전하고 갈등도 투쟁도 전쟁도 여전하고 배웠거나 안 배웠거나 약육강식도 그대로, 빈부격차도 그대로, 신분차별도 그대로,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아닌 듯 떠들었어도 세상에 대해서는 어둡고 회의적인 편이었다.   

 

내 의식 변화의 시작은 여기다. 이전보다 분명히 밝아졌다. 윤리적 삶을 위해 온몸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눈에 보이는 차이가 없더라도, 더디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체를 위해 우주적 관점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은 느낌, 버려지지 않은 기분, 나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 함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설령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대하던 성과를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렇게이렇게 참여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만으로도 행복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7

윤리적 삶을 산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르는 위대한 전통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윤리적 삶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기완성입니다.

 

76

1940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 한 나라가 소비한 광물의 양은 문명의 시작부터 1940년까지 전 세계가 소비한 양과 맞먹습니다.

 

157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어떤 진화 매커니즘도, 어떤 숨겨진 멸종 위기종 지킴이도 멸종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158

멜런은 감정을 집단과 공유하면 감정이 강화되고 증폭되는 것으로 볼 때, 이 경험이 인간 본성의 유전적 요소를 촉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요소는 사회적 영장류로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전했을 테죠.

 

161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믿음이 퍼지는 것은 믿음이 참이냐 거짓이냐와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믿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입니다.

 

227

사회에서 윤리 규칙을 발전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믿고 협력할 수 있도록, 더 오랫동안 협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는 사회 전체에도 개인에게도 이익이 됩니다. 우호적이고 협력하는 태도로 시작하는 것, 장기적 관계를 맺는 것, 남에게 이용당하지 않는 것,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행동하는 것, 샘내지 않는 것-이것은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외면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는 건전한 조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YES마니아 : 로얄 j***6 2015.0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