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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와 위고 둘 다, 억압받는 계급들이 처한 곤경을 늘 주시하던 ‘사회적’ 작가였다. 그러나 디킨스와 달리 위고는 자신의 작품 이상의 것을 대변했다. 그는 사회적 진보, 공화국, 민중, 민주주의를 상징했다. 그는 권력자, 정치적 억압, 사형제, 교권주의에 반대했고, 무엇보다 나폴레옹 3세의 독재에 맞서, 명백히 경멸을 드러내며 ‘나폴레옹 르 프티’[소인배 나폴레옹]라고 부른 사람과 타협해 안락하게 생활하기보다는 채널 제도에서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는 쪽을 선택했다. 위고를 읽는 것, 그의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문학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적 당파성의 표명이었다. 위고는 최초의 실천적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본문 197쪽.
황석영 선생의 작품 중「돼지꿈」이라는 단편이 있다. 경제력으로 따지면 벼랑 끝에 선 빈곤층들의 삶을 사실감 있게 묘사한 탁월한 소설이다. 쓰레기 매립장에 면한 가난한 판자촌, 삶이 곧 생존이 이들의 질펀한 인생이 기막힌 글말로 녹아있다. 소설가의 대표작「삼포 가는 길」과 함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 중 한 분인 조세희 선생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도 좋다. 이유는 당연히 야만적인 자본의 논리에 고통 받는 착한 사람들의 서글픈 이야기가 소설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처참한지 또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면 시대의 부조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글로 표현하는 작가들이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인간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건 핍박받는 다수의 고통이 억압하는 소수의 행복으로 치환된다는 서글픈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특히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활개를 치던 19세기 중반 유럽은 기술과 문명의 발전이라는 화려함과 착취와 빈곤이라는 어두움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물론 당시 가진 것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본가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인간 이하의 노예 생활을 했음이 자명하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문화는 국민작가로 대표된다. 디킨스나 위고, 플로베르나 발자크 등. 그들이 당시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내가 황석영 선생이나 조세희 선생을 사랑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1800년 대 중반 유럽은 한 마디로 급속히 전파되는 자본주의의 진원지였다. 급속한 경제 발전은 중간계층의 토대를 굳혀 나갔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빈민들을 양성했다. 토지를 잃고 도시로 유입된 빈민들이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아래 신음할 때 가진 자들의 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인간 삶의 가치에 관한 글들이 당시 문학계를 지배한 건 당연한 일이다. 자본에 야만에 맞서려는 노동자,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 저항하는 여성을 필두로 군주정이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정치적 민주화의 움직임은 19세기 중반 유럽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프랑스와 영국뿐만 아니라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에서 인기를 얻은 국민작가들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있다.
19세기 중반 문화의 주류는 여전히 책을 통한 독서였다. 기술발전으로 도서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대중문화를 향유했다. 왈츠로 대표되는 무도장과 오페라의 성공적인 대중화는 아직 독서 인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1800년 대 중반의 문화는 여전히 책에서 시작해 책으로 끝난다. 연재소설이 등장하고, 책과 신문 그리고 잡지에 삽화가 가미되어 가독성이 높아졌고, 출판 산업이 가파르게 돈이 되는 분야로 정착한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국민작가의 몸값도 치솟는다. 어찌 보면 이 시기에 비로소 문화예술분야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철저히 융합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설적이게도 경제가 발전하며 자본이 문화와 예술의 영역을 접수하면서 유럽문화는 다양성의 길로 진보하게 된다. 중산층의 문화로 자리 잡은 프랑스의 카페콩세르와 영국의 노래 살롱 등이 문화다양성의 일례가 된다. 물론 문화와 예술에 대한 국가와 권력의 검열이 본격화된 것도 19세기 중반 유럽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유럽문화가 가진 특성 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문화를 통해 국가와 권력에 대항하는 기류가 본격화 됐다는 점이다. 문화가 단순히 여가시간을 때우거나, 흥미와 즐거움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이 증명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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