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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내용, 최악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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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문을 보니 번역이란 사생결단의 결투로 번역되는 자 아니면 번역하는 자, 둘 중 하나가 죽게 되어있다는 말을 술레겔이란 독일 철학자가 했다고 하는데 둘 다 죽는 경우도 있다는걸 보여주는 책이다. 잘난척 하지말고 영어 잘 해서 원서로 읽으면 될거 아니냐고 누가 반문할지 모르지만 정말 이 책은 능력과 끈기만 된다면 반드시 원서로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원문
"최상의 내용, 최악의 번역." 내용보기
어제 신문을 보니 번역이란 사생결단의 결투로 번역되는 자 아니면 번역하는 자, 둘 중 하나가 죽게 되어있다는 말을 술레겔이란 독일 철학자가 했다고 하는데 둘 다 죽는 경우도 있다는걸 보여주는 책이다. 잘난척 하지말고 영어 잘 해서 원서로 읽으면 될거 아니냐고 누가 반문할지 모르지만 정말 이 책은 능력과 끈기만 된다면 반드시 원서로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원문의 맛과 향기는 물론이고 내용까지 상하게 만든 번역이었다. 번역자가 서문에 일본판을 참고했다는 사실을 밝히긴 했지만 내가 볼 때 참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일본판을 번역한듯 단어나 문법이 완전히 일본풍. 일본어의 '노'에 해당하는 '의'자가 정말 하염없이 계속되는 문장에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일본어는 문학에서도 그 '노'자의 반복이 거의 문제되지 않지만 우리 말이나 영어는 '의'(of)가 한 문장에서 두번 이상 연속해서 나오는 것은 좋은 문장으로 치지 않고 금기시하고 있는데 도입부부터 그렇게 문학적인 표현을 쓴, 영국의 지식인 신사계층인 프레이저가 그런 문장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장 거슬리는 어휘와 문법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라도 단어의 선택과 문맥을 보면 이 번역자가 민속학과 신화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 지금 갑자기 마땅한 예가 떠오르진 않지만 프레이저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에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쓸 수 있는 용어를 제쳐놓고 너무나 엉뚱하고 생뚱맞은 단어를 쓰고 있는 경우도 왕왕 보이고 문장의 전혀 문맥에 안 맞고... 정말 번역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 보기는 처음. 번역가 순위를 매기는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정말 훌륭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주술과 터부, 그리고 상징성에 대한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됨. 나무의 신화며 이런저런 그런 류의 책들에서 다뤄지던 내용들의 원천이 바로 이것이구나를 발견한 것도 있었고. 지금 딱히 머리에 떠오르는 책은 쟈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 밖에 없지만 여하튼 민속학이나 신화학 계통의 글을 읽으면 각주로나 예제로 프레이저의 '황금의 가지'가 꼭 나왔었다. 그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호기심의 대상을 제대로 만났다는 것, 그 자체만 해도 설레는데 내용은... 최근 읽은 책 중에 드물게 무게감 있는 것들이어서 더 만족. 이런 류의 책으로는 정말 오래된, 낡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 다양한 예와 의미에 대한 파악... 프레이저가 조사한 그 이민족들의 민족적 습관과 행동 양식에 대해 70% 이상의 신뢰를 한다는 전제 아래 보면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몇번 예제로 나온 한국 관련 정보는...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 볼 때 사실과 거리가 먼 것이 꽤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나머지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약간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과 별도로 프레이저가 펼치고 있는 이론은 정말 감탄됨. 민속학, 신화학 그리고 상징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봐야할 작품이다. 다시 한번 번역 때문에 약이 오름. 그리고 마지막 사족을 붙이자면... 첫째는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관계에서 아이러니. 기독교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자란 프레이저지만 선교사들이나 기독교적 가치관에 투철한 일부 학자들과 달리 참 냉정하면서 유머있게 이교와 융합된 기독교의 아이러니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정확한 쪽수는 기억이 안나지만 기독교에서 가장 질색을 했던 그 광란의 박쿠스제가 벌어졌던 장소가 바로 현재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궁이라는 것.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사실을 전하는 그 문장에서 프레이저의 유머감각을 발견했다면 내가 지나치게 오버한걸까?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절대악은 없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프레이저가 살았고 이 책을 쓰던 당시는 식민주의, 제국주의로 제3세계 국가들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게 엄청 착취를 당할 당시. 그 식민지에서 얻은 부를 바탕으로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영국의 신사 계급은 돈이 전혀 안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이렇게 정열을 쏟을 수 있었겠지. 제3세계의 비극인 어쨌든 학문에는 나름대로 기여를 한 것 같다. 물론 아무리 큰 학문적 업적이나 결과도 우리를 포함한 식민지 국가들이 겪었던 희생을 보상할 수는 없지만...

[인상깊은구절]
그리스도 교와 이교의 제사의 일치는, 우연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밀접하며 또한 일치하는 점이 너무나도 많다. 그와 같은 일치는 교회가 이교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정복은 되었지만 아직도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적수와 결탁을 강요당한 타협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교 세계에 대해서 불과 같은 탄핵의 화살을 쏜 원시적 선교자들의 단호한 이단 배척주의는 약삭빠른 전도사들의 융통성있는 정책, 안이한 관용, 포괄적인 사랑으로 변모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세계를 정복하려고 한다면 그 교조의 너무나도 준엄한 교리를 완하시킴으로써만이 그리하여 구제의 좁은 문을 좀 더 개방함으로써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그들은 느낀 것이다.
p***1 2001.02.04.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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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목이 왜 황금가지로 불리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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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레이저의 가장 유명한 저서로서 13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줄인 간략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원시인의 생활양태의 기원을 비교․연구하여 인간의 사유는 주술⇒ 종교⇒ 과학의 형태로 진화한다는 진화론을 주장하였다. 이 책은 두 권(상편1-39장, 하편40-69장)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것을 전체적인 내용의 맥락에서 분류한다면
"기생목이 왜 황금가지로 불리었을까?" 내용보기
이 책은 프레이저의 가장 유명한 저서로서 13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줄인 간략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원시인의 생활양태의 기원을 비교․연구하여 인간의 사유는 주술⇒ 종교⇒ 과학의 형태로 진화한다는 진화론을 주장하였다. 이 책은 두 권(상편1-39장, 하편40-69장)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것을 전체적인 내용의 맥락에서 분류한다면 대략 일곱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주술-왕 그리고 신화〉에 관한 내용으로서 주술-종교-사제 왕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터부와 영혼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는 인간의 이중성 내지는 생명의 원리에 대하여 분석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프레이저는 여기서 인간의 영혼과 생명의 원리에 관해서 전자는 타일러의 입장을, 그리고 후자는 아렛트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터부는 ‘생명 원리의 보호 기능을 지녔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세 번째는〈죽어가는 신〉에 관한 내용으로서 왕이 노쇠하거나 병약해졌을 경우에 그 왕을 살해하고 젊고 힘센 왕을 새로 뽑는 설화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넷째 부분인〈아도니스〉에서는 봄의 파종과 가을의 추수는 농작물로서의 순환관을 설명하면서 작물의 생명력 자체는 영속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 상징이 바로 그리스, 아나톨리아, 이집트 지방의 “아도니스․아티스․오시리스” 의식으로 나타난다. 다섯 번째〈곡식의 정령〉에서는 오시리스의 신화에서처럼 겨울에는 죽고 봄에 다시 부활하는 곡식에 대한 재배와 의식이 설명되고 있다. 프레이저는 여기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 의식이 바로 이 농경의식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섯 번째 부분은〈속죄양〉으로서 원시의 인간들이 불가항력적인 자연 재해를 ‘신의 분노’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신의 분노를 달래어 자연을 평온한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으로서 속죄양으로서 희생의 제물을 바쳤다. 이러한 원시적 의식은 차츰 변화되면서 속죄양으로서 산 제물이 인위적․상징적인 제물로 대체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미의 신 발데르〉와 ‘불의 신화’ 및 ‘기생목과 생명’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프레이저의 설명 중에서 “떡갈나무의 생명이 기생목에 있다는 관념은 겨울이 되어 떡갈나무 그 자체는 잎이 떨어지지만, 기생목은 나무 위에 푸르게 무성한 것”이 “발데르의 생명이 기생목 속에 있다”것과 일맥상통하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황금가지』의 마지막 부분까지 일관되게 타일러의 애니미즘적 시각을 접목시키고 있다. 방대한 분량의 '읽기'의 부담은 엄청난 스피드와 집중, 그리고 인내를 요하는 삼중고임에는 틀림없었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이 방대한 저서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라는 의문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자가 이러한 거작을 집필하던 당시의 정황, 특히 코스모폴리탄의 중심지 런던, 그리고 대영박물관으로 상징되는 빅토리아시대의 제국주의를 잠시 회상하게 한다. 유럽 자본주의의 이식이 한창 진행되던 제국주의 시대에 케임브리지의 한 연구실에서 수북히 쌓여있는 자료들(탐험가들이 수집하여 놓은 기록물들)을 검토하는 프레이저를 상상해 봄직하다. 그는 인류학자로서의 안목과 그의 사유에서 비롯되는 역사의 발전법칙을 근간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발현시켰음에 틀림없다. 그 상상의 공간에서 발견된 것 중에는 인류 문화의 발상지에 세워진 권위와 힘의 상징, 바티칸 궁이 들어있음을 본다. 이 책의 어느 부분인가에 프레이저는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장면으로서 현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궁이 바로 그리스도교인 들이 경멸해 마지않았던 '광란의 축제, 바코스(Bachos)제'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소개하였다. 이것은 저자 자신이 그리스도교적 마인드 속에서 성장한 배경을 감안한다면 이교도와의 융합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아이러니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식민지 인도의 건설에 매진하던 영국 총독이 철로 가설을 위해 터트린 폭약의 폭발음에 놀란 원주민을 보고, “인도를 위하여!” 라며 건배를 제의했다는 일화와 어떤 의미상의 차이가 있는 걸까?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던 미개척지의 고유문화를 황폐화시킨 근대화, 그리고 문화(종교)정책과 더불어 그 희생자들이 단순고용 노동자로 전락해 가고 있는 사이에 서구의 학자들은 미개인들의 문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재단하여 ‘모자이크’한 문화사적 성과물들은 인류의 인문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식민지 역사의 굴절을 경험하면서 배태된 일련의 저서들, 특히『황금가지』와 같은 문제작이 지니는 가치는 인류의 문화가 제시하는 마지막 원형을 그대로 전해준다는 의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서구의 학자들, 특히 영국 학자들은 그들의 식민지에서 수집한 방대한 인류의 문화사적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음미했을법한 ‘한잔의 트위닝스’의 의미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지구상의 미개척지로 남아있던 카리브군도에 ‘삼각 무역’ 거점이 생긴 것은 제3세계(아프리카)의 이주민들(신생국들의 조상)을 강제 이주시켜 유럽인들에게 제공되는 ‘cash crops’의 재배할 목적이었다. 이들(미개인들)은 농장 노동자로 일하는 사이에 혈중으로 스며든 ‘사탕가루’로 인하여 얻은 희귀한 ‘문명병(당뇨병)’으로부터 서서히 희생되어 갔다. 한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우리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형성된 고대문명의 모습은 어쩌면 타자의 눈에 발가벗겨진 우리의 원형이 투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명사의 발자취와 이것을 탐구하는 사람들의 노역은 과거를 통하여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일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간과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인류 역사의 곡절을 겪으면서도 인류의 사유는 여전히 “기생목이 왜 황금가지로 불리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처럼. 그것은 프레이저의 말대로 “우리는 탐구 그 자체를 썩 좋아하지는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 탐구를 통해서 위대한 것이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미개인과 그의 생활방식에 대한 견해가 경멸과 조소, 증오와 지탄뿐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후세에 전달할 많은 은인들, 아마 그들의 대부분은 미개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개인과 우리는 차이점보다도 유사점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을 우리가 진실로 유익하고 귀중하게 쓸 수 있는 것도 선조들의 덕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칫 독창적이고 직감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아주 기본적인 생각을 그들은 체험을 통해 천천히 몸에 익혀서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재산의 상속인과도 같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계승되었기 때문에 그 재산을 쌓아올린 사람들에 대해서 잊기 쉽다. 또한 그 당시의 소유자는 그 재산을 이 세상이 시작한 때부터 자기 민족이 변함없이 소유해온 독자적인 재산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조사해보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자부해온 지식의 대부분은 선조들의 것이다."
s******2 2005.07.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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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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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인 프레이져는 원시인의 신앙,의식,풍속,습관의 기원을 비교 연구하여 진화론적 시각에서 인간의 사유가 주술에서 종교를 거쳐 과학으로 발달해 왔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다. 황금가지는 그 내용을 크게 7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주술과 왕의 신화'를 다루는 제 1부는 주술과 종교에 관한 관계와 사제왕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터부와 영혼의 위기'를 다루는 제 2부는 인간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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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인 프레이져는 원시인의 신앙,의식,풍속,습관의 기원을 비교 연구하여 진화론적 시각에서 인간의 사유가 주술에서 종교를 거쳐 과학으로 발달해 왔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다. 황금가지는 그 내용을 크게 7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주술과 왕의 신화'를 다루는 제 1부는 주술과 종교에 관한 관계와 사제왕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터부와 영혼의 위기'를 다루는 제 2부는 인간의 이중성 또는 생명의 원리를 분석한다. 여기에서 프레이져는 영혼에 관해서는 타일러의 입장을, 생명의 원리에 관해서는 아렛트 적인 입장을 취하여 터부가 생명 원리 보호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해석한다. 제 3부 '죽어가는 신'에서는 왕이 병에 걸리거나 쇠약햐 졌을 경우와 늙었을 경우 그런 왕을 죽이고 젊고 힘센 새로운 왕을 뽑는 이유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제4부 '아도니스, 아티스, 오시리스'에서는 가을에 열매를 거두고 봄에 다시 씨앗을 뿌림으로써 개체로서의 농작물의 삶은 끝나지만 농작물의 생명력 자체는 영속적임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런 상징이 그리스, 아나톨리아, 이집트 지방에서의 '아도니스,아티스, 오시리스' 의식으로 정착화 되었음을 그리고 있다. 제 5부 '곡물과 야생 식물의 정령'에서는 이시리스-오시리스 신화에서처럼 겨울에 죽고 봄에 부활하는 곡물에 대한 재배와 관련된 의식이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부활의식이 이러한 농경의식에서 연원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제 6부 '속죄양'은 원시인들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변이 일어나는 이유를 신의 분노 속에서 찾고, 그러한 신의 분노를 달래서 자연을 정상적인 상태로 돌리기 위하여 속죄양을 제물로 희생시키고 문명시기로 내려옴에 따라 속죄양이 산 제물에서 인위적, 상징적 제물로 대체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제 7부 '태양신 보올더'는 스칸디나비아의 보올더 신화의 의미와 족외혼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k******2 2000.06.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