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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찾고 싶을때, 할일이 없을때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는 일을 한다. 신간 서적이 무엇이 나왔나, 어떤 책이 좋으려나, 이런 생각으로 책들을 뒤지는데, 어느 날 한 책의 표지가 눈을 끌었다. 표지에 박힌 그림때문이었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더군다나 담배를 물고 비스듬히 앉아 하얀 목덜미가 보이는 한 여자의 그림을 보았을때의 그 느낌. 마치 내 모든 것들에 각인되듯 그림이 들어왔고, 이게 무슨 책인가 하고 들여다 보니 책 제목도 『각설하고,』였다. 책 제목이 '각설하고' 라니. 더군다나 '각설하고' 옆에 쉼표까지 붙어 있었다. 책 제목에 쉼표가 붙어 있으면 한 박자 쉬어 가라는 뜻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 쉼표 하나에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의 아름다운 표지와 제목 만으로 나를 이끈 책이다.
책을 구입해놓고 기다리며,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작가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시를 좋아하지만 많이 구입하지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는 시인이 한정되어있다는 걸 나도 안다. 김민정이란 시인을 나는 처음 알았다. 시인이라 제목 짓기에 특별한 감각이 있는 탓인지 시인의 시집을 살펴보니,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와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라는 두 편의 시집을 낸 시인이었다. 시집 제목 또한 너무 읽어보고 싶다. 고슴도치가 날 수도 있으려나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들고, 그녀가 처음 느꼈던 게 어떤 것일지 몹시도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특히 산문을 읽다보면 소설과는 다른 작가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데, 시인이 쓴 산문은 훨씬 더 시적이다. 단문의 글에서 느껴지는 문장문장들이 장편의 시, 연작 시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 독자들은 시인의 산문을 기다리고, 산문 속에서 시인의 감성을 찾는다. 시인의 감성을 글로 읽으며, 우리 또한 시인의 감성을 닮게 되는 것 같다.
김민정 시인의 첫 산문집이라 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성격은 딱부러진 성격을 가진듯하다. 편집자로 일하며 느낀 감정들, 시인으로서의 감정들, 사람 김민정에 대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통통 튀는 문장으로 담았다. 김민정의 글에서 불혹을 눈앞에 두었으나, 홀로 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소녀적 감성이었다. 그래서 시를 쓰나 보다.
각설하고, 산문에서도 시인의 시가 좀 더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글을 제대로 아는 게 시를 읽는 일인데, 아무래도 산문이니만큼 그녀의 시가 거의 없어 아쉬움을 그녀의 산문으로 달랬다. 산문도 다른 이의 산문보다는 짧았다. 아마도 시를 쓰듯, 시를 다듬듯, 다듬고 다듬었나 보다.
맨 처음 시가 내게로 와 시를 만날 수 있었듯, 앞으로 그렇게 쓰고 읽고 결국에는 파지처럼 버려질 운명으로 나는 시를 살아갈 것이다. 그거면 족하지 뭘 더 바라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입 닥치고 쓰기나 하련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중 략) 아아, 정말이지 시라는 진정한 시의 신은 대체 언제쯤 내게 들리실지. (164페이지)
윗 글에서처럼 시인들도 시의 신이 자신에게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가 보다. 산문도 시처럼 쓰는 시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싱글로, 시인으로, 편집자로 살아가는 마음을 담은 산문이 참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소곤거리듯 독백을 하는 듯한 글도,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건너편의 사람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존댓말로 말하는 글들에 내가 마주 앉아 듣는 기분이 들었다.
김민정의 산문, 시처럼 참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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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침에 이메일 로그인을 하려고 했더니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나온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잘만 들어갔는데 막혔다. 안된단다. 어찌어찌하여 새로운 비밀번호를 받고 들어가 봤더니, 누군가 한 시간 전에 들어와서 이메일 비밀번호를 변경했다는 정보가 뜬다. 아이고~ 카드사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고, 매일 뉴스를 차지하고 있던 일을 직접 경험하고 보니 무서워진다. 이 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로 유출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더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게을러서 미루려 했던 일을 처리하러 나갔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카드가 2장이나 되었고, 어차피 카드 훼손된 부분도 있어서 이번 기회에 재발급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은행으로 갔다. 대기인수가 평균 100명이다. 때가 때이니만큼 고객들의 심기를 덜 불편하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평소에는 없던 음료대에서도 알 수가 있었다. 요구르트와 귤이 쌓여있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그런 거라도 입에 넣고 있어야 참을 수가 있나 보다. 도의적인 책임 운운하면서 누군가 사퇴를 하면 뭐하나. 이미 일을 일어났고, 알게 모르게 피해자는 늘어날 것일 텐데. 애꿎은 은행 창구 직원들만 고객들의 고함을 참아내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화내고, 대책이 없다고 화내고, 청원경찰이 삿대질에 화내고 있는 아저씨를 달랜다. 아깝게 허비해야 하는 시간 때문에 번거롭고 짜증이 났는데, 그렇게 화내고 있는 아저씨를 보고 있으니 내 안의 짜증이 누그러든다. 억지웃음을 얼굴에 피우고 고객들의 일을 처리하고 있는 창구 직원들을 보니 안타깝다. 내가 한마디 거들 일은 아닌 듯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 지금이다.
눈물에 억지가 없고 웃음에 강요가 만무할 때 어딘가 먹먹해지면서 어딘가 먼 데를 훌쩍 바라보게 되는 순간, 내 시선이 가닿는 곳은 아마도 인생이란 설명 불가의 말 언저리리라. (45페이지)
그 혼란스러운 시간에 언제 내 차례가 오나 싶어 호출 번호만을 뚫어지게 보는 고객들 틈에 앉아 김민정의 산문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어쩜 그리 구수하고 차지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에이~ 이럼 곤란해.) 주변에서 악을 써대며 소리치는 사람들의 소음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가 사랑하는 시, 사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져서 웃음부터 난다. 솔직히 조금 삐딱해 보이는가 싶다가도, 맞는 말만 골라 하는 것 같아 얄미운 것 같으면서도, 너무도 열심히 달리는 표정에 웃음이 나지 않을 수가 없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온도가 그렇게 뜨거우면서, 이런 얘기까지 할 시간이 있나 싶어서 말이다. 신문에 연재되던 이 짧은 글을 못 봤으니 내가 그녀의 이런 문장을 몰랐던 게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말투에, 생각에, 조금 낯설면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호탕한 웃음에 유쾌하면서 시원했다. 뭔가 아련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개운함이 더 컸던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즐거운 시간만큼이나 싸우고 덤비고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전진했던 시간이 있다. 그녀는, 그런 시간에 대해 애틋해서 눈물 나게 한다. 너 그렇게 살고 있니?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 이 세상, 왜 이따위냐.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도 그런 세상을 걷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에이...
살아가는 매 순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일? 사랑? 가족? 플러스 기타 등등. 그 기타 등등을 포함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다.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의 한 마디가 격언처럼 들리고, 너무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시는 듯한 그녀 부모님의 이야기에서는 질투가 난다. 오지랖이 넓어서 바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일상은 내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생활 패턴이고, 시를 향한 애정으로 넘쳐나는 열정을 가진 그녀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내고, 시집을 만드는 일을 하고, 여전히 시에 목말라 하면서도 쉽게 써지지 않는 그 시를 향한 갈증에 목말라 하는 게 보일 정도이니, 조금 알 것도 같다. 나에게 오지 않는 리뷰의 광필이가 그녀에게 오지 않는 시의 광필이겠지. 똑같잖아. 안 그래? ^^ (그냥 좀, 웃어 볼래...)
그 한편으로 여전히 순간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그녀의 이런 글이, 그래서 기쁘다. 예쁘다. 글이 참 착하면서도 발랄하다. 때로는 송곳처럼 뾰족하게 찌르기도 한다. 울고 웃어야 할 순간을 콕콕 찍어낸다. 사람 마음 찔리게 말이야. 그래도... 너무 빨리 흐르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하는 세상, 놓치고 지나가는 많은 것들을 이렇게 보게 하고 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그녀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많은 사람과 시간이 이런 글을 가능하게 하는가보다. 사람 냄새 풍기면서 내 주변에서 항상 보는 얼굴들이 떠오르고, 점심도 거르며 일하고 있던 은행 직원에게 난리 치던 아저씨의 얼굴도 떠오른다. 알아도 끝이 없는 게 사람이고 사랑이라는 듯이, 그녀의 시선에 잡힌 많은 장면을 지나치듯 하면서도 세심하게 적어낸다. 아무리 비틀리는 마음이라고 해도, 모른 척하고 싶은 시선이라고 해도, 이렇게 누군가는 보고 기억한다. 그리고 전달한다. 누군가는 좀 같이 들어보자고 말하는 듯이...
각설하고, 많은 말을 하자니 이런 솔직한 글에 누가 될까 싶기도 하여 주저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뭔가 저자의 말에 동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비루해 보여도 예쁠 수 있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정말이지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순간들이, 장면들이 이렇게 담길 수도 있다는 게 재밌다. 피곤함에 눈이 따끔거려도 결국 다 읽고야 말았다. 어쩌겠어.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데...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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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중에서도 저자가 장난스럽게 회고하고 있는 부분이 나오지만, 이 책은 탤런트 김민정씨의 수필집이 물론 아니고, 30대 후반의 편집인이자 여성 시인이 쓴 다양한 형식의 글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공감을 하기도 했고, 기발한 표현과 다양한 체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어요. 결제적으로는 확실한 안정을 다지지 못했고, 정치적으로는 아직은 그 피의 온기가 가시지 않았으며, 대체로 낳아 주신 부모님 세대와는 바로 이 정치적 성향 때문에 다소의 갈등을 겪고 있고, 이전 세대와는 달리 문화적 관심, 개성과 차별에 대한 집착, 무엇보다 삶 자체에 대한 개인주의적 열정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하는 그 나이 또래의 표준적인 정서가 참 예쁘게 담겨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편집인이고 문인인 저자의 글과 생각은 일반인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에 감춰진 채 바닥을 흐르고 있던 가닥들을 예리하게 짚어서 언어로 빚어내는 그 솜씨에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는 차이가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나이에 인접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사고와 공감의 표준으로 삼을 만한 한 무더기의 예쁜 글거리로 채워진 수상록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개인적 상념과 느낌이 위주지만, 그 배경에는 시대상이 곳곳에서 묻어나기도 합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무슨 진진한 사연이 그리 많은지 밤을 새워가며 말을 나누는 남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오누이 사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 반도체 공장(아마 S전자 생산직인가 보죠?)에 근무하는 여성, 연봉은 그 나이 또래들에 비해선 꽤 많은 편일 6000 수준, 아마 작가는 이 부분에서, 그간 느껴 왔던 야릇한 우월감이 싹 가시고, 키치적 천박함이 그 주종을 이루는 한국적 현실이 주는 분노와 함께 무력감이 그 전신을 휩쓸었을 만도 합니다. "부디 암에 안 걸리게 건강 유의하시구요!" 뭐 꼭 악담만은 아닙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떠들썩하고 중차대한 시사 이슈였으며, 바로 지금 이 시점에도 또 하나의 문제적 영화로 관객들 사이에 부상하는 작품의 소재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죠. 아무튼 이런 자신에 대해, 그녀는 곧바로 자책과 후회의 싸인을 보냅니다. 이 귀여운 양심은 아마 그 이전 세대와 이 세대의 그리 크지 못한 교집합의 한 요소가 되지 싶습니다.
시인의 부친은 딸만 넷을 두셨다는군요. 젊어서 경제적 기반을 다질 무렵에는, 생업(공장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손아래 젊은 여성들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었고, 그래서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천상 친정 아버지의 신분을 떨치지 못할 그런 캐릭터라고 합니다. 출판사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왠지 아닐 것 같지만, 그들도 선거일이 임시 공휴일이라 당일 아침 눈을 늦게 뜰 수 있는 자유와 작은 쾌감을 누리고 있네요. 우리가 인터넷에서 흔히 접하는 모습처럼, "한 표 줄일 수 있었는데.."의 작은 갈등, 알력이 이 부녀 사이에도 어김 없이 벌어졌나 봅니다. 대체로 이런 태도엔 아버지가 치를 떨게 되어 있지만, 어느 집안이나 그렇듯 자식 이기는 부모가 안 계시죠. 한편으로, 경제적 위상이나 계급을 떠나 대체로 보수 모노톤인 이전 세대와,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 성향이 정해지는 30대 이후의 세대의 특징을 감안하면, 자녀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넉넉한 살림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이런 갈등의 폭에서 차이가 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코엘료라는 젊은 시인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요즘은 해외에서도 한국의 인지도가 상당하다는 걸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우리 나라 특유의 다양한 생선 요리를 소개하면서, 그저 "fish"라고만 소개할 수밖에 없었던 난처한 출판사 직원분들의 사연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압권은 그 다음입니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본 것이란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 묻은 이들뿐이었는데, 누가 대체 그 많은 시집을 사서 소화하느냐?" 사실 이 질문은 외국인의 입장 뿐 아니라, 김민정 시인/편집자가 자신의 회사 내에서 직접 갈등을 빚은 마케팅 담당 직원의 입에서 (더 거친 버전으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시집 좀 그만 찍으라고요!" 사명감과 문예혼, 나름의 장인 정신에서 정성 들여 시집을 편집하고 기획한 편집자는, 아무리 현실의 요구를 반영한 절규라고 해도 이런 입장이 도저히 용서가 되질 않습니다. "시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 가치를 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여러 모습의 답은 책 곳곳에서 단편적으로, 그러나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종의 산문시집으로 보아도 됩니다. 일상의 여러 순간들을 산문의 모습으로 풀고 있지만, 결말에서 느닷 돈강식으로, 몇 단어로 확 줄여버리는 스타일도 그렇고, 시인의 본 실력과 내공을 자랑하듯 3부, 시다. 수다는 본격 운문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구체적인 심상이 산문의 묘사를 보는 것 같은가 하면, 수필에서의 함축적 기술은 시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산문과 시의 경계가 모호한 멋진 글들의 모음입니다. 제목은 "각설하고,'이지만, 우리가 팍팍한 생의 순간에서 보편적으로 맞닥뜨리는 다양한 부조리, 비애, 그리고 작은 기쁨과 소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라서, 맥락 없는 화제 전환의 상투어란 의미에서서의 "각설하고!"는 아닙니다. "태양의 서커스"에 나온 줄타기 명인의 이야기에서 잠시 등장한 "불통으로부터의 통에 관하여"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처럼 한 마디 한 마디가 잘 공감되는 "소통"의 장도 있는데, 현실을 가로막는 그 거대한 장벽은 왜 헐릴 기미가 안 보이는 걸까요. 그만 이쯤에서 "각설하고"를 외치며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기엔 이 귀여운 수다가 펼치는 작은 우주가 주는 "각설 아닌 각설"의 매력이 좀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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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 앞에 나는 종종 무릎을 꿇어왔다. 말이 안 나오니 몸이 알아서 고개를 수그렸다. 답답했다. 영화 <시>를 봤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시.... 이거 더 모르겠으니 원. 시가 뭔지 모르는 채로 나는 오늘도 시집 만드는 일로 분주하다 (48)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빵 터진 건 나뿐 일까? 시인도 시가 뭔지 모른 채 시집을 만든다? 그래서 이 시인이 좋아졌다고나 할까? 시인의 산문집은 오랜만에 읽는 것 같다. 시인이 쓰는 산문집은 뭐가 다를지 궁금했는데, 시인도 역시 시가 고민이고, 시가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고민하고, 시를 쓰고 생활한다.
한때 시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종이를 펼쳐 놓고 연필만 있으면 뭐든 쓸 수 있을 것처럼 열정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란 참 묘하다. 머릿속에 뭔가가 잔뜩 들어 있어 그냥 풀어서 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어떤 단어도 쓸 수 없었다. 어떻게 뭘 함축하고, 뭘 은유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란, 수필이란, 소설이란 그런 것 같다. 대단한 뭔가가 있어서 그걸로 글을 쓰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평범함을 특별하게 보는 것. 그게 진짜 시인이자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쓰는 일상의 산문집. 그녀도 나와 같이 세상에 분노하고, 일상에 화가 나고, 그러면서도 그 세상과 일상에서 행복을 느낀다. 소소한 일상에서 이야기 꺼리를 찾고, 글을 쓴다. 그녀가 분노하고 화를 내면 나도 같이 분노했고, 그녀가 일상에서 즐거우면 나도 같이 웃었다. 시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읽었다. 왕따에 지친 청소년들이여, 부디 죽지 마시라. 하늘 아래 왕따 아닌 사람 없으니 세상을 왕따 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 바로 그 정의로 부디 아름답게 복수하시라! (82) 생각해보면 우리들 모두 세상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다. 인생에 한 번쯤은 왕따라는 이름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은근히 무시당하고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상을 왕따 시키는 힘. 정의로 아름답게 복수하라는 시인의 말에 격하게 동감했다.
툭하면 국민을 상대로 고소하고 고발하고 법 운운하기를 즐겨하는 정부. 왜 일본에게는 큰소리 뻥뻥 못 치나. 언제까지나 키다리 가수가 노래하며 발차기 하며 빚져가며 들인 돈으로 전 세계에 부당함을 호소하게 할 셈이람. 나도 할 말은 없다. 내 친할머니였어도 이렇게 뒷짐 지고 있었을까. 하이힐을 도시락 폭탄처럼 던졌을 거다. 피가 무서운 고로. (120) 연일 일본에서 막말을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대응 한 번 할 수 없는 정부를 보면서 답답해진다. 이제 위안부 할머니가 얼마나 더 사시게 될지, 그 할머니들이 제대로 사과는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시인의 말처럼 하이힐을 도시락 폭탄 삼아 던질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이름 끝에 시인이라 이름 단것이 올해로 14년 쯤 됩니다. 그쯤 되면 까짓것 하룻밤에 시 두서너 편 껌이지 않습니까? 얼마 전 축시를 부탁하신 한 기업체 사장님처럼 쉽게 말씀하시는 분들 꽤나 됩니다. 그럴 때마다 누구라도 가릴 것 없이 짝 소리 나게 등짝 한 번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곤 하는데요. 매 순간 시란 제게 너무도 두려운 당신임을 알고나 하는 얘기인지요. (165) 인간적으로 시인의 솔직한 심정인 것 같아서 시인도 아니면서 격하게 동감했다. 가끔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매일 그렇게 글을 쓰니 글 쓰는 솜씨가 많이 늘었지? 헐~~~~ 프로도 글 쓰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데 내가 뭐라고 글 쓰는 솜씨가 늘어나겠는가? 리뷰를 쓸 때마다 고민하게 되는 걸 그들은 알까?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리뷰가 나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는 이유는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의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책이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는 책. 그래서 늘 리뷰 쓰기는 어렵다.
놀랍고 신기한 마음을 일컬어 경이라고 할진대, 근래 우린 어떤 일에 놀라고 또 어떤 일에 신기함을 느꼈던가요. 내 집, 네 집, 경이 없는 집은 없답니다. 불러들 보고 찾아들 보세요. 그 경이! (182) 경이롭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매일 경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걸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경이로움을 불러들이고 찾아보는 하루. 나에게는 그런 하루가 이어지길 기도한다.
시인의 산문집은 어떤 색깔일까 궁금했다. 궁금하다면... 각설하고 읽어보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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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도 몰랐고, 어떤 책인지도 몰랐다. 난 제목에 끌렸다. 각설하고. 이건 어떤 무모함이다.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든 간에 자기 할말을 하겠다는 선언. 하지만 그 무모함이 오만해 보이지 않는 건, 오리무중 속에서 자꾸만 불어나는 말의 지방들을 깔끔하게 빼버리고 해야 할 말만 담백하게 하자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는 내 속내를 이야기하겠다는 신호이다. 이 이전의 말들은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임도 아울러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말이 자꾸만 인플레이션 되는 시대에 각설하고는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할 말인지도 모른다. 너무 과잉의 말들이 넘쳐나 우리를 홀리려들고 헛갈리게 만들고 길을 잃게 만든다. 진짜 할 말을 하고 진짜 들어야 할 말만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진짜 진심보다 몇 배의 거짓을 말할 수 밖에 없고 또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말들의 환영 속에 둘러싸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각설하고'라는 말이 그리워진다. 그렇게 나오는 속내를, 진심을. 지은이는 시인이다. 그리고 출판사 편집자다. 돈이 안되는 시집들을 기획해서 마케팅 담당자로부터 지청구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인들의 삶이란 어떨까? 궁금했었다. 그들은 내게 마치 천연기념물처럼 보였다. 도래할 종말 앞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의미에서. 누구보다 세월의 무게가 무거울 그들이 어떻게 두 어깨로 현실을 떠받치고 살아가는가? 그게 궁금했다. 그런 시인의 산문 모음이라 했다. 신문지상에 발표한 짧은 글들. 많아봐야 3페이지 안에 다 들어가는 말들. 짧은 대화를 나누듯 읽으면 되니 부담도 없었다. 받자마자 읽었는데 중간에 그만둘 수 없었다. 역시 시인의 문장이구나 감탄사가 무심코 나왔다. 말들이 빗물에 새로이 목욕을 한 조약들처럼 반짝반짝 윤이 났다. 손 안에 넣고 쥐면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질 것 같은 말들이었다. 그 말에 취해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 그렇게 이 책은 내 시간을 예기치도 않게 홀라당 먹어버렸다. 게장이 밥도둑이라면 이 책은 시간도둑이라 할 만하다. 때로는 이런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거창한 깨달음도 뭔가 삶에 써먹을만한 지식 같은 것은 주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것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선가 이렇게나 맑은 언어로 길어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절도당한 시간들의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분좋게 읽고 가볍게 권할 수도 있는 책. 각설하고, 지인의 곁에 살짝 놔둬 보는 것은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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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툭 던지는 듯한 어투로 소박한 일상을 이야기해 주던 글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했다.
문체는 간결했지만 삶과 사물에 대한 고찰과 사유가 날카롭고 예리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부분에선 내가 아닌 척, 애써 부정했던 치부를 들추어 내기라도 한 듯, 마음이 찔리던 주제도 있었고, 일상을 살면서 잊고 있던 혹은 관심이 없던 소소한 주제들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저자는 삶의 다양한 군상과 형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팔순이 넘은 외할아버지가 한 달 넘게 사경을 헤매고 계신다. 하루에 두번 삼십분이 주어지는 중환자실 면회 주에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라고 의사가 말했다. ....도합 서른이 넘는 가족들이 속속 병원으로 모여들었다....따지고 보면 우리가 기다리는 건 외할아버지의 죽음 선고이지 않겠는가...(63P)
정말 그랬나? 싶은 생각에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한참을 머물게 했던..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생각이 많았던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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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각설하고, - 그나저나 정말 화끈 통쾌 상쾌한 글이다.
각설하고, .책 제목이기도 한 이 한마디가 이목을 확 끌었다. 하던 것을 멈추고 집중하게 하게 힘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깔끔한 네이비 바탕에 전적으로 내 스타일인 이미지는 구매를 망설이게 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는 달리 책 소개도, 작가에 대한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구입한 드문 경우라서, 책을 받고나서도 ‘나답지 않은 일인데,’ 하며 얼떨떨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거 참 잘 만들었다.
보통 소설이 아니고는 시인의 산문집이나 편집자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인데, 이건 그 둘을 합쳐놓은 것이었다. 시인이자 편집자인 그녀의 글. 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시인의 감성과 편집자의 안목을 바탕으로 글자를 차곡차곡 쌓고 그렇게 완성된 글을 묶은 것. 실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매체에 연재했다는 이력은 그런 느낌을 더 부각하였다. 그 속에는 우리가 겪어왔던 기억할만한 사건들이 툭툭 나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흡사 우리 사회의 연대기 같기도 했다. 아, 이런 일들이 있었지, 회상하며 그녀의 당당한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함께 억울해하고 씁쓸해하고 속상해하고. 어떨 때는 통쾌해서 으하하 웃다가 가끔씩은 부끄러워서 부러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그나저나 정말 화끈 통쾌 상쾌한 글이다. 거침이 없고 시원시원하다.
하나같이 외국에서 공부들도 꽤 했던데 게선 부끄러움도 안 가르치나. 아무래도 염치라는 단어는 끝내 배워먹지 못한 모양이다. 114p
대체 이 아저씨가 왜 지금 플라스틱을 넣으라고 써 있는 마대에서 유리병을 건지고 유리병을 넣으라고 써 있는 마대에서 플라스틱을 골라내야 하냔 말이지.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 도덕이라는 교과서를 발로 읽었냔 말이지. 115p
네가 그랬네 나는 모르네 이제 와 책임 전가할 요량이라면 일단 좀 닥치시고, 훗날 모래 알갱이 한 알이라도 빠짐없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원상 복구시킬 자신 있는 시공업체라면 45톤의 화약이든 발파든 해보시든가. 117p
현지 가이드의 말을 빌자니 특히나 술에 취해 벌이는 한국인들의 추태와 무시가 젤로 심하다나. 돈 뿌리러 왔으니 제 돈 뿌려가며 왕 노릇 하는 걸 어쩌겠느냐만 그런 몇몇의 헤픈 짓거리 때문에 스노클링이나 즐기려는 소박한 우리들이 납치의 표정이 된다는 건 해도 너무한 일, 그렇지만 한 민족이 저질렀으니 억울함 자체가 내 얼굴에 침이나 뱉는 일 118p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대체 인간의 뇌에 어떤 인자가 박혀 있기에 위안부라는 끔찍한 발상이 연출될 수 있었단 말인가. 일제 강점기로부터 지금껏 근 100년 역사 속에 한 분 한 분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눈감아 가시는바, 언제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항의 플래카드만 펄럭이게 할 셈이람. 툭하면 국민을 상대로 고소하고 고발하고 법 운운하기를 즐겨 하는 정부. 왜 일본에게는 큰소리 뻥뻥 못 치나. 언제까지나 키다리 가수가 노래하며 발차기하며 빚져가며 들인 돈으로 전 세계에 부당함을 호소하게 할 셈이람. 나도 할 말은 없다. 내 친할머니였어도 이렇게 뒷집 지고 있었을까. 하이힐을 도시락 폭탄처럼 던졌을 거다. 피가 무서운 고로. 120p
그래도 그녀는 역시 시인이다. 시인으로 살다 죽다 시가 되 (84p)고 싶은 시인. 책의 1부와 2부에서 사회문제를 비롯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다는 3부, 4부, 5부는 시인으로서의 그녀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특히 나는 3부 ‘시다, 수다’ 부분이 좋았는데 ‘시론이랍시고’ 쓴 시인이 시를 쓰게 된 그 시작에 관한 글이었다. 거침없고 맹렬하게 전진하는 활자를 타고 요동치며 따라 흘렀던 감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근데 나 좋은 생각 하나 떠올랐어. 뭔데? 시인들 말이야, 죽기 전에 자선 시 한 열 편 정도 낭송한 거 녹음해뒀다가 장례식장에 틀어놓으면 어떨까? 좋긴 한데…… 너무 슬프지 않을까, 무지 눈물 나지 않을까.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자기 시 듣고 가면 덜 외롭지 않겠어? 75p
그러니까 네 시는 시가 아니야. 그럼 내 시가 소설이냐. 그렇게 말 많은 네 시는 시가 아니라고. 그럼 네 시는 말줄임표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데 여자인 ‘나’만의 이야기라니, 이해가 아닌 해석으로 마음이 아닌 콘택트렌즈로 시를 보는 사람들의 오만을 오판 삼아 나는 그들의 ‘말씀 그 가르침’을 반사하는 놀이에 늘 시를 초대했지요. 초대받은 이들이여, 고맙게도 시작은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겠어요. 150p
왜 우리 딸이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야? 꼼꼼히 한번 읽어봐. 말 잘 듣는 아빠는 밑줄을 쫙쫙 그어가며 내 시집 읽기에 몰입했어요. 뭔 소린지는 모르겠는데 무진 웃겨. 근데 이거 시 맞아? 재밌으면 그걸로 말씀 끝이야. 지인들에게 딸내미 시집 돌리기 재미에 푹 빠졌던 아바는 그러나 얼마 안 가 밤낮으로 심드렁한 표정이었어요. 걔네들이 뭐라 막 그래. 날더러 집에서 애들은 왜 그리 개 패듯 패냐. 민정이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 남자 경험도 많은 것 같은데 얼른 시집이나 보내지 그러냐. 근데 이거 다 사실이냐……. 그래서 뭐랬는데? 개새끼들, 시도 좆도 모르는 것들이. 히히 잘했는데 담부터는 이렇게 말해. 그만 씨불대고 너나 잘하세요! 용기백배의 아버지여, 고맙게도 시작은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겠어요. 151p
보통은 한 페이지 반 정도의 분량으로 읽기에 부담 없고 더 짧게는 한 페이지에 불과한 이야기들로 언제나 어디서나 쉽게 펼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동하면서도 읽기 좋겠다, 싶었다. 거기에 시인의 시도 있고 시인이 소개해준 시도 있고 그 시를 영감으로 쓴 또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시인과 관계한 시인들의 이야기나 시집을 만드는 편집자의 일화들도 더해져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이 꽉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읽기 쉽고 편하다. 지루하지 않았다.
-花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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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즐거웠다. 마치 죽어있던 나의 일상에 생기가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글은 평범한 일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즐거움 혹은 슬픔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한동안 자극 없이 가만히 누워만 있던 내 몸을 마구 꼬집어주기도 했고 때로는 간질여 주었다. 그래서 덕분에 나는 들썩들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은 출근길에 한 편씩 읽기가 정말 좋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읽고 난 다음에 많은 시간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한동안 나의 출근길을 정말 의미있게 만들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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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이 죽어버리면 연고 없는 이라도 어쩐지 내 잘못이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무고한 사람이니 그가 아니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나는 무고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가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는 사이라면 그 죄의식은 더 크게 느껴진다. 한때 친하던 사이가 틀어진 후 영영 회복시킬 수 없게 된 한 친구와의 연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내 죄목으로 남아 있다. 미움 받은 건 나였음에도, 나는 그 애보다 이렇게 더 오래 살아 있으니.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지, 내 잘못은 아니지 싶어도 세상 일들이 하나의 이유만으로 일어나는 법은 없듯 내 잘못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김민정 시인은 그녀의 시를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음에도, 좋아하는 작가로 손꼽아 온 사람이다. 연재되는 영화 잡지의 단 한 지면에 띄엄띄엄 실리는 그녀의 산문이 좋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 길 가다가도 눈물이 수시로 핑 돌던 그때, 그녀가 남긴 글은 유독 마음에 남았다. "서해 페리호 사건 때 목숨을 건졌던 아빠 후배 영수 아저씨가 생각났다. 여러 동료의 죽음 속에 홀로 살아남은 것을 죄로 받아든 아저씨 역시 긴긴 시간을 생사의 양팔저울 속에 자신을 놓아두는 일로 지난 21년을 버텨왔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말기암이람. 그럼에도 너무나 말간 얼굴로 투병 중인 아저씨가 리모컨으로 반복 또 반복 일색이던 뉴스 채널을 껐다. 바다가 얼마나 춥고 무서운 데인 줄 알면 저렇게 두고 못 보지. 암, 못 두지. 자, 들을 분들 다 들으셨는가.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모르는 게 죄란 말이다." 2014년 4월 16일 / 김민정, 디스토피아로부터, 씨네21 온라인판 전문: http://www.cine21.com/news/view/group/M405/p/7/mag_id/76738 일상에서 자신의 또다른 일상을 꺼내 막힘 없이 이야기하고, 또 다른 생각을 자연스레 낳는 그녀의 글이 좋았다. 치장 없이 무덤덤하게, 차가운 듯 싶지만 치열하게, 닭살 돋지 않고 분명하게 쓴 글들이 좋았다. 이런 글을 쓰고 싶은 내게는 참 귀감이었다. 그리고 몇 차례 그녀의 글에서 타인의 죽음과 자신의 삶을 죄의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목격했다. 삼촌의 죽음, 키우던 개의 죽음 등이 죄의식으로 남아 그녀 자신을 대충 살아갈 수 없게 하는 것 같았고, 가끔 나를 붙잡던 동력을 보게 했다. 나 같이 위선적이고 못된 인간이 또 있구나. 김민정의 글을 특별히 좋아하게 했던 생각이고, 이 글들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타인이 그의 잘못을 고백할 때 우린 종종 그의 잘못과 닮은 우리의 잘못을 본다. 처음 마주할 땐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죄인이 나뿐이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반복되어 내 잘못을 끊임없이 깨우치게 되면, 이내 외면하고 싶어진다. 너무 큰 죄의식은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게 만드니까. 저자는 이 책의 글을 여러 지면에 오랜 시간을 들여 연재한 것이라, 연이어 보기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 호흡이 짧은 글들인 데다 시쳇말이 흔히 나오는 것 역시, 진득하게 붙잡고 읽기엔 아쉬운 부분이다. 덕분에 읽기 전보다 작가에 대한 마음이 어쩐지 좀 멀어져버렸다. 글만 보고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알 수야 없지만, 글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말만 믿고 사람을 알 수 없고, 세계에서 사기 범죄가 1위라는 우리나라에선 특히나 말의 신빙성이 없기야 하지만, 말 역시 사람을 알아보는 중요한 단서 아닌가. 말과 글은 한통속이니 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몇 해에 나누어 쓴 저자의 글을 보며 김민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보게 됐다. 굳이 마음 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상상되어버린 것인데, 역으로 훨씬 소소하게 쓰는 글이라도 나 역시 그렇게 상상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흔한 이미지 메이킹의 문제와도 결부되는 것이지만, 날 어디까지 드러낼 자신으로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한다. 말보다 글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니까 말이다. 작가들은 힘들겠다. 이런 고민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 근 14년 동안 100여 편의 시를 썼고 이를 두 권의 시집으로 묶었으며, 근 14년 동안 2천 매 남짓의 산문을 썼고 이를 반타작 내어 이 한 권의 산문집으로 엮는다. 참도 부지런히 살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는 건 내게 콩깍지가 씐 애인이나 할 짓일 것이다. 우리말의 한 단어가 무섭고 우리글의 한 문장이 무섭다는 걸 이렇게 한데 묶은 내 원고 뭉치를 마주 대하고서야 알다니, 이제 와 변명해봤자 무엇하랴. (5쪽) 얼마 전 조의금 봉투를 여러 장 포개 들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혼자였다. 결혼식장은 안 가도 맘이 편한데 장례식장은 안 가면 맘이 불편하니 어떻게든 나 편하겠다는 심보로 서둘렀던 길이었다. 상주와의 맞절에도 발가락 꼬물거리며 쭈뼛쭈뼛하던 내가 "얼마나 심려가 크세요?"라고 그 빤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순간 저게 내 말인가 싶으면서 나 자신에게 닭살이 훅 일었다. 그러니까 나도 결국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였다. (74쪽) 안개는 자욱했고 길 아래는 낭떠러지고 코는 맵싸해져 울컥, 저 가슴 아래로부터 뜨거운 어떤 것이 치미는데 왜 나는 이런 순간마다 죄다 싶은 기억들로 내가 잘못했으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되뇌기나 할까. (10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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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등단했지만 편집자로 시집을 기획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밥벌이를 하는 작가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시인의 시각으로 예민하게 바라보고 남다르게 해석하는 글맛이 재미있다. 무엇보다 비상식적인 사회의 면면들에
대해 쓴 글을 보면서는 이렇게나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왜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인가?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저자도 자기 얘기로 돌아오면 그런 게 사람 사는 세상이고 조금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자기 합리화에 살짝 내 심정을 동일시 시켜 보게 되기도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미리 약속을 잡아 확실히
해두고 그 약속을 기대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데. 다정한 약속일수록 연약하다. 정말로 왜 그럴까?”(p.34)
2014년 소치 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인 최근의 이슈에서부터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의 이야기까지 모두 과거로 지나가 버린 사건 사고들이 다시금 언급되며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니,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금세 잊어버린 일들을 떠올린다. 아침에
봤던 뉴스가 오후가 되면 새로운 뉴스에 가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상사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들이 엉켜 끈질기고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사회적 이슈들이 너무나 쉽고 가볍게 잊혀만 가는 것 같아 나에게 쏟아져 오는 정보들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덧붙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며 생태계를 지키고 주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말도 안 되는 사업으로 이 둘을 위협하지만, 한때는 목소리를 보태 힘을 실어주다가도 사업을 진행시키려는 사람들이 얻을 개인적 이익보다는 내가 힘을 보태
지킨 사회적 정의에서 얻는 개인적 이득이 적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되는 마음을 그게 세상사 아니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사실 안 된다는 것도 끝 간 데까지 해본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p.58)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자신의 특기는 모두가 김밥 말 때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나 해댄다는 말처럼 사회적
시선과 인생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다소 철없어 보이는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해대지만, 그 말속에 들어있는
솔직함과 허를 찌르는 인간적인 모습이 숨기고 싶어 했던 나의 본심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하지만 끝에선 시원한 통쾌함마저 든다. 나이가 들수록 내 진심을 내보이기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나를 꾸며야 되는 순간들을 카르 켜 철이 들었다 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그 모습이 조금은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더라도 자신의 솔직함을 과감히 드러내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친근감과 부러운 마음마저 든다.
점점 세상살이에 깊어지면서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진다.
인생 고비마다 남들에게 죽는 소리 하며 유별나게 자기가 아프다는 것을 떠벌리는 사람보다는 그게 달관이든 체념이든 세상살이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며 잔잔한 웃음 짓고 나보다 더 힘들 누군가를 위해 작은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사람. 자신이
경험한 아픔과 슬픔만큼 깊어져 다른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품이 넓어지고, 묵묵히 과정을 견뎌내며 살아내는
평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아직까지는 내 고통에만 반응하며 나 아프니까
관심 좀 가져달라며 떼를 쓰는 본성을 억누르기 힘들고, 사실 어른이면서도 어른답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더 굳게 먹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아파하고 슬퍼하고 고민하면서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않겠냐는 말들 앞에서 내가 되고 싶은 그런 어른의 모습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세상에 씹어 삼키는 경험만 한 공부가 어디 있다고요.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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