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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눈앞에 없는 사람,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 당신. 살면서 반드시 한 번은 통과해야 하는 기억의 터널과도 같은 이야기들. 먹고 사고 사랑하는 일에 관해 가볍게 쓰려고 시작했지만 번번이 발치에 굴러와 속삭인 당신이라는 공. 무겁고 축축했지만 높이 던지고 나니 가벼워진 기억들.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고 여겼던 어두운 방이 돌아볼 용기를 냈더니 생각만큼 어둡기만 한 건 아니었다는.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러니 이제 가세요, 당신의 기억으로. 그곳에서 슬픔을 탕진할 때까지 머무세요. -에필로그 중에서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이라는 길다면 긴 제목에서 오는 무게감이 있었다. 차분하고도 단단함이랄까.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 걸까? 기대하게 만들었달까. 짙은 남색 배경에 한팔로 턱을 괴고 누워 하얀 백지 표지의 책을 보고 있는 이 책 표지 속 그림(‘제목이 없는 책’, 이수진 그림)에서 어둡지만 어둡지만은 않은 밝음이 느껴졌다.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도 두 눈 크게 뜨고 두 귀 활짝 열고서 더 알고 싶다는 나의 관심과 호기심이 빛을 밝혔다. 궁금하다. 작가님에게 당신은 누구일까, 어두운 밤은 그녀에게 어떤 시간일까. 어떤 기억들을 꺼내어 보여줄까. 시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일상 속 물건들과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일상에서 존재하는 공간들과 함께 한 사람의 사적인 기억 속 생각과 감정들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작가님의 진솔하고도 따뜻하지만 예상을 넘어서는 질문들의 연속인 글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어느새 밤이 이렇게 깊어졌나 싶었다. 그만큼 어두움과 피곤함을 피할 수 있으면 가능하면 피하고픈 요즘의 내게 달달한 초콜렛보다 더 반갑고 기쁘게 다가온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의 일상을 울리는 구절과 생각들에 고개 끄덕이며. 의외이면서도 공감가는 다양한 좋아하는 먹을거리들에서 시작해서 각종 흔한듯 흔치 않은 온갖 사물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 깊이있게 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쓸 수가 있구나 놀라고 감탄했다. 주변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속깊은 감수성 없이는 어떻게 이 사물을 놓고 이런 생각에까지 뻗어나갈 수가 있을까 충격에 빠질만큼 신선한 연결고리들이 많았다. 더불어 어떤 아픔과 슬픔이 있는걸까하며 문득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듯 누군가가 써내려간 그리움의 편지를 읽는 듯. 당신에 대해 알면, 이해하면, 사랑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속삭이는 듯 나의 기억 속 나만의 이야기를 자꾸 꺼내보게되었다. ‘나는 어땠더라? 내가 그랬던가? 나라고 다른가? 나에게는 누가/뭐가 그렇더라?’ 개인적인 일상 속 생각과 감정에 대한 글을 통해 누구를 그리워하고 누구에게 고마워하고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하는지 작가님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되면 알게될수록 이렇게 세심하고 다정할수가 없었다. 동시에 내가 기억하는 나의 유년시절부터의 조금씩 빛바래 잊혀져가던 작은 조각조각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만들어 시간을 잠시 멈추게 아니 되돌리게 하는 순간순간들이 자주 있었다. 그때 그 시간들이, 그 사람들이 그리워서 또 고마워서. 아래처럼 때때로는 질문의 형태로 또 어떤 때는 마침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 묻고 또 묻는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나의 귤은 무엇이며 그 귤을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세상 만물 저마다처럼 나의 쓸모는 어떤 쓸모일까 오늘의 진실이 내일로의 유예는 거짓의 일종일까 나의 백지는 어떤 색, 어떤 장소에서부터였을까 내게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음을 알려주는게 뭘까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가능할까 한 사람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그의 무엇을 보고 있었나. 인간이 살기 위해 얼마만큼의 많은 것이 필요할까 지금 나는 어디에 있으며, 언제 어디로부터 비롯한 걸일까 호기심, 사랑, 유머, 상상력, 열린 마음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는게 왜 중요할까 -본문에서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큰 질문이 책을 덮은 뒤로도 마음에 남았다. 결국 안에 있다고, 밖이 아니라 안에서 답을 찾아야한다고 그걸 일상에서 찾고 일상으로 풀어내어 나로 하여금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들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게 이런걸까.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위로받는 시간이 질문과 응답의 예상치 못한 울컥하고 먹먹한 리듬에 맞춰 찬찬히 다가온 선물처럼 여겨졌다. 나는 누구를 떠올렸는가, 나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하고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작고 맑은 종처럼 그 물음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서 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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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지가 가벼운 종이라 무겁지 않네요. 일단 출판사에서 홍보하던 문구, 아마도 책 안에 실린 글이겠지만요, 그게 마음에 들어 꼭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는데, 음식 얘기가 주인가 싶었지만 음식 얘기는 필연적인 것 같고, 시인의 일상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어우러진 산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읽고 있기는 한데, 너무 좋아요. (재밌다고 표현하기에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에세이라 글 단락이 짧게 끝나서 한 편 읽고 다른 일 하고 그러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소설이 아니니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읽기보다 아껴 읽고 싶은? 보니까 그 표지가 유명한 시집으로 유명하신(원래도 유명하시지만) 시인이더라고요. 이 책 읽고 나니까 시인의 다른 책도 전부 읽고 싶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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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도 읽고 이북으로도 사서 저녁마다 걸으면서 읽어요. 당신이 애정하는 책을 곶감 빼먹듯 읽는다고 한 것처럼 저도 당신 책을 그리 읽는답니다.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을 저도 돌이켜보고 덕분에 작년 가을에는 전혜린을 다시 찾아올려 열심히 읽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으로 처음 알게 된 시인. 시인이 먹고, 사고, 사랑하며, 기도하듯 써내려간 이야기! 라는데 궁금해서 안 읽어볼 수가 없잖아요. 마지막 에필로그가 기억에 남아요.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자유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그러자니 밤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제 이야기의 근원이므로 당신 없이는 한 문장도 시작될 수 없지만 밤이 아니면 이 고백은 효력을 얻지 못합니다. 밤을 높이 띄워야 두 눈이 우물처럼 깊어지고,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요.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러니 이제 가세요, 당신의 기억으로. 그곳에서 슬픔을 탕진할 때까지 머무세요. |
| 에세이를 잘 안 읽는 편인데 문득 읽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추천해준 에세이라 고민하다 구매했고 제목부터 너무 마음에 와닿아 얼른 읽고 싶어졌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이면 떠오를 책인 것 같습니다. 쓸쓸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안아주는 문체와 감성이 가득해서 위로가 됩니다. 다만 에세이는 늘 그런 건지,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지루해져서 뒷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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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책을 읽고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당신이 얼마나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밤이 깊어지면 무슨 생각 할지는 모른다.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인제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 생각 안 하고걍 조용히 휴가 보내고 싶을 뿐이다. 누구와 같이 여행가고 데이트 하고 그런 거에는 별루 관심이 없다. 그냥 책 보면서 조용히 쉬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조용히 지내고 싶을 뿐이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아무 생각 안 하고 조용히 음만 들으면서 잠들고 싶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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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희연 시인님이 산문을 냈다고 해서 바로 구입했다!!
작년에 단어의 집도 정말 좋았는데 이번 산문은 좀 더 깊이있는 느낌이 들었다 단어의 집도 그렇고 이번 책인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도 그렇고 읽고나니 시인님과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인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 부모님과 가족들과의 추억 등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는지 알게되니 더욱 시인님의 시를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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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나는 시집을 좋아했을까. 좋아하게 되는 과정에 안희연이라는 이름이 분명 있다. 유독 에세이라는 장르는 크게 좋거나 크게 별로인 경우가 많은데, 시인의 에세이는 대체로 성공적인 편이다. 단어 선택이나 사유가 아름답고 깊다. 그런 이유로 안희연의 에세이는 틀림이 없다. 읽기 전에도 알았고 읽고 나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녀의 산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강한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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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의 산문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이 책을 통해 안희연 시인을 처음 알게? 만나게? 되었다. 시인이 궁금해서 검색해서 인터뷰도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산문집을 읽으면서 시인에 대해 궁금해졌기에...
긴긴밤 귤 한바구니 안고서 차분히 책 속에 빠져들어도 좋았다. 묵직하고 깊어서 더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배낭여행객이었던 시인은 엽서에는 진심이셨다.
84p. 다재다능한 유능함도 좋지만 단 하나를 향한 고집은 정신이 얼얼해질 만큼 좋다. 뭐든 하나에만 몰두하는 마음에는 칼날이 있다. 몰두의 칼날이 잔가지들을 깎고 깍아 뾰족한 진심을 만든다. 그러니 그날 내가 산 것은 엽서가 아니라 진심 아닐까. 타협하지 않는 마음, 이유 있는 고집, 집중력과 믿음, 안으로 침투하는 에너지...
책을 읽으면서 시인의 단어, 목소리, 생각들이 깊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아쉬워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올 겨울 차분하고 깊은 에세이 한 권 만났다.
2017년 시인의 인터뷰를 찾아 읽게 되었는데, "부끄러움이 우리를 살릴거예요"라는 시인의 인터뷰 말미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안희연 작가님의 시집을 만나러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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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을 조금은 알 수 있다. 나는 귤을 하나 집으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주무르다 먹는 타입. 귤에 붙어 있는 흰색 줄도 꼼꼼하게 제거하는 편. 그런데 그 흰색 줄, 귤 귤橘 자에 이을 락絡 자를 써서 ‘귤락’이라 불리는, 그게 실은 섬유질덩어리라 떼어내지 않는 게 좋단다. 아무려나 맛있는 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귤. 당신이 궁금하면, 함께 귤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그러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지금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진다.” (pp.12~13)
‘지금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다면 나중에라도 그런 이야기가 생기면 좋겠다. 나는 과일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떠올려 보자면 귤은 포도, 딸기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일(그런데 귤이 과일인가)이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의 순위 따위를 물어본 이가 없었다. 아내를 포함해서...
“그땐 살아 있었던 아빠를. / 이 악물고 운동장을 달리던 엄마를. / 풍금 재시험을 보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온 무리 속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 내가 저 먼 우주로부터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었을 때.” (p.23)
아빠와 엄마가 만나는 때를 풍선처럼 이미지로 띄워 놓고, 거기에 ‘내가 저 먼 우주로부터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었을 때’라고 말을 담았다. 읽고 있자니 그 날아오고 있는 것이 눈에 선연하였다. 그만큼 말의 속도가 빠르고 말의 방향이 정확하였다고 할까. 시인이라는 작가 본래의 속성이 산문의 여기저기에서 말맛을 발하니 읽고 있는 중인데도 입맛을 다시게 된다.
“... 성격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다 논하는 건 공허한 일 같다. 사람마다 특정할 수 있는 성격이랄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한 사람의 몸은 수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일 뿐, 내 안의 무수한 내가 커졌다 작아졌다 때론 소멸하기도 하면서 나라는 외피를 움직여가는 것일 테다...” (pp.61~62)
작가의 생각에 크개 동의한다. ‘한 사람의 몸은 수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일 뿐’이라는 깨달음은 살다 보면 저절로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 아니다. 저절로 도착할 수 없는 지점이므로 자꾸 생각하고 돌이켜보고 빗대보기도 하면서 자신을 닦달해야 그리로 움직일 수 있다. 이런저런 곤란한 지점에서 얼굴이 붉어지도록 반성하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아야 가까스로 그 근처를 향하여,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얼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주로는 얼굴을 벗고 싶다는 생각. 얼굴은 목이라는 벼랑 끝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어항 같다는 생각.
작가는 ‘얼굴을 벗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는데, 나는 나의 얼굴을 피하고 산 적이 있다. 어릴 때였는데 특히나 거울이 있는 술자리를 무서워하였다. 용케 피해 앉을 수 있었고 덕분에 매일 술을 마셨다. 그때의 나의 얼굴과, 사십대 중반에 병이 시작되고 나서, 지금의 얼굴은 크게 다르다, 달라졌다. 그때의 얼굴을 피하고 산 덕분에 지금의 달라진 얼굴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노을을 보면 드는 생각; 누가 새의 목덜미를 쥐고 있었나. 피가 안 통할 만큼 세게. 그것이 현실이고 운명이고 슬픔의 끝 같은 데라는 듯 거칠게. 다음은 없다는 듯이. 그러다 제 슬픔에 겨워 손의 힘을 풀었구나. 그제야 핑그르르 도는 피, 저녁.” (p.173)
힘을 주었다고 힘을 풀었다가, 그 낙차에서 생기는 ‘핑그르르’를 알 것도 같다. 목덜미를 누군가에게 맡겨 놓은 새, 그 새의 목덜미를 세게 쥐고 있는 슬픈 누군가는 서로가 서로를 향하고 있어서 각각이 주체이기도 하고 객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새인지 새의 목덜미를 쥐고 있는 누군가인지 잠시 골똘하였음이 무안하다. 그리고 나는 노을이 있는 저녁처럼 붉어졌다, 길고도 멀리, 잠깐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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