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적 요소를 가미한 고딕소설들이 여성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리라이팅되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고딕소설의 괴기스러움과 '집'이라는 소재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일텐데, 같은 맥락에서 이소호의 시들도 상당히 고딕스럽다. 그것은 그가 여성으로서 집의 안과 밖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상당 부분들이 스스로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의미이다. 가끔 이소호의 시들은 시류에 편승했다라는 평가를 읽곤 하는데, 나는 거기에 단호히 반대한다. 처절한 이 고통의 소리를 그렇게 단정짓는 사람은 매우 비인간적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인은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그의 시 속에서는 내 또래의 여성들과 내 어머니들까지도 보인다. 결국 모든 세대의 여성들의 공통 경험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그 방식이 래디컬하다는 이유로 폄하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페미니즘 포비아'는 있는 여성과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혐오하게 만들어버린다. 아마 이소호에 대한 오해가 팽배하다면, 이런 현상에서 기인할 것이다. 이소호의 첫 시집 『캣콜링』에 수록되었던 저 시의 연장선상에서 이 시집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다루는 세계들도 그렇거니와, 그가 시인으로서 시도하는 다양한 실험의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나는 도저히 이 고통의 소리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 내가 눈을 막든 귀를 막든, 그것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는 걸 부정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부디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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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소호 시인의 시들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이번에도 구입하게 된 시집입니다. 시집을 펼치고 '집'에 있어도 '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기억에 강하게 남습니다. 이전 시집들과 같이 이미지를 이용한 시들이 나오는데, 이부분이 이소호 시인을 차별화 시키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팜플렛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게 하거든요. 인상깊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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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는 중. 이소호는 에세이부터 시작하게 됐는데 읽기 전부터 그냥 어쩐지 시집과 시집 사이에 순서가 존재한다는 직감이 있었고, 너무 아플 것 같아서 계속 미뤄 두던 캣콜링을 덕분에 읽었다. 홈 스위트 홈 빨리 읽고 싶어서. 순서대로 읽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 캣콜링에서는 ‘나’에 대해서 다만 가해자로 존재했던 ‘엄마’에게까지 마음이 확장된 느낌. 그렇지만 나에게 가해를 가한 것도 엄마라서. 우리는 이렇게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