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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해서 그 제목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표지를 가진 이 책을 만났을 때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수시로 본 제자들마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부탁드린 것처럼 제대로 기도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교회에 다닌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신자인 나로서야... 그런데 표지처럼 담백한 시를 읽어가는 동안 침묵마저 기도로 만드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엿듣고 나도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설혹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자신의 마음을 묵묵히 듣고 위로해줄 분께 고백하고 싶다는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있을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느 날의 기도(19)>의 "내 두레박은 너무 짧아 내 갈증을 길어 올리지 못합니다"는 마치 세상에 목마르고 말씀에는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향한 질책 같다. 그러나 나에겐 <어느 날의 기도(9)>처럼 "이게 다예요/이게 저예요/다만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할 기회가 있어 감사하다. 물론 <어느 날의 기도(27)>처럼 "미리 답을 내 안에 두고서/모르는 척 당신께 묻는 일/없게 하소서"라는 경계를 마음에 늘 새겨야 하겠지만... 다음에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여지없이 깨트려버리는 현실엔 <어느 날의 기도(11)>처럼 "아픔의 망치로/외로움의 끌로/다듬으소서/보듬으소서"라고 기도하고 싶다. 그래서 <징검다리>의 "내가 아니면/건너지 못한다/나는/건너지 못한다"처럼 오로지 그분만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하려 한다. 결국 <어느 날의 기도(14)>처럼 "오늘도 늙고 지친 몸으로 예배당 찾는 건/까막눈 상관없는 성경책 옆구리에 끼고 예배장 찾는 건/그나마 빈자리 하나라도 채워/젊은 목사 양반 허전함 덜려는 마음 궁리도 있으려니와/볼품없는 몸으로 예배당을 찾아 머리를 숙이는 건/거친 손 모아 남은 눈물 드리는 건/아무도 읎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하는 삶을 살고 싶다. 더 나아가 <어느 날의 기도(52)>의 "사랑이 침묵에 미치지 못한다면/침묵을 사랑하게 하소서"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너무도 귀한 묵상이 많지만 나의 부족함으로는 다 전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진정한 깊이와 맛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