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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_최형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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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1752~1800), 조선의 명군주로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종대왕 다음으로 좋아하는 군주로 꼽는 조사가 많은 유명한 임금이다. 조사마다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선 Top5 좋은 군주에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나는 정조의 치세를 명과 암이 분명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조의 치세는 양란 이후 기록이 많이 남아있고, 무엇보다 정조자신이 홍재전서 등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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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1752~1800), 조선의 명군주로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종대왕 다음으로 좋아하는 군주로 꼽는 조사가 많은 유명한 임금이다. 조사마다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선 Top5 좋은 군주에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나는 정조의 치세를 명과 암이 분명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조의 치세는 양란 이후 기록이 많이 남아있고, 무엇보다 정조자신이 홍재전서 등의 저술을 통해 또 몇 년 전 발굴된 많은 사적인(사실 임금의 행위는 어떠한 것이든 공적인 의미가 일부 있을 수 밖에 없다) 간찰 등을 통해 많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더욱 더 정조-이산 이라는 사람의 일생과 그의 시대를 잘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조, 개인적인 불행함이 큰 임금이다. 1752년 장수한 왕이 드문 조선에서 60를 바라보는(이미 기로소에 들어갔을 정도로 조선은 장수하는 왕이 적어서 이런 웃지 못할 역사가 만들어졌다) 나이의 할아버지 영조의 손자로,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난다. 조선은 인조를 지나면서 효종대부터 왕실의 자손이 귀해지기 시작했고, 양란 이후 전체적으로 왕권이 무너지면서 군약신강의 구도가 더욱 거세진다. 그러면서 많은 왕자들이 역모에 희생되어지고, 영조대에는 왕손이 귀해지기 시작했다.

영조는 양반가로 치면 얼자격인 숙종의 서자로 태어난다. 그는 늘 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았다. 또한 노소론의 대립이 심한 시기에 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이 됐다는 루머에도 시달리는 등 왕권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다. 결국 그는 노론과 타협한 탕평책을 통해 조선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를 잃고, 당시로는 매우 늦은 나이인 40세를 넘겨 사도세자를 보게 된다. 

하지만 어릴 때 영민한 줄 알았던 사도세자가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나는 여기에 당시 약해진 왕권의 조선에서 무엇보다 세자가 똑똑해야 본인과 왕권, 국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영조의 목적의식, 강박 등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일부 생각하기도 한다) 노소론 당쟁과 영조 주변의 사도세자를 미워하는 가족관계, 심지어 사도세자의 처가인 노론 풍산홍씨 일가마져도 사도세자라는 차기 왕을 포기하면서 고립되고, 결국 임오화변의 뒤주에 갇혀서 죽게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정조는 당시 11세였는데, 할아버지가 또 자신의 외가가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에는 총명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게 큰 마음의 빚을 지게 되고, 자신 역시 보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즉위 후 드디어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일성으로 시작하면서 그를 둘러싼 많은 부분을 스스로 정면돌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조에게는 결국 자신은 자신 스스로 지켜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고 많은 정치적인 노력, 보신에 필요한 무예, 학문에 있어서도 노론의 학자들에 뒤지지 않는 명석함, 국방력의 강화, 세제의 개혁, 왕실살림, 심지어 기득권의 약화를 위한 양위 후 천도까지 생각하게 되게 이른다. 

부패한 권력은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하고, 더 악독한 부패로 이어진다. 그로인한 고통은 백성이 감내해야 한다. 따라서 권력을 분산하려면 '공간의 재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조는 한성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을 해체, 또는 그들의 독점을 일부 무력화 하기 위해 수원과 상업도시의 구축을 창조해낸다. 

하지만 나는 정조의 많은 선한 정책과 조선에 필요한 개혁 정책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조가 정치 기반의 정확한 정리를 못한 채 갑자기 서거해서 결국 노론 일당 체제에서 일부 벌열가문의 세도 정치가 시작되는 계기를 만들게 됐다는 점에서 정조의 실책 등도 생각하게 한다. 

 

그런 정조가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조선'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예도보통지』는 당대까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무예서를 집대성한 것으로, 무예사적 연구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무예도보통지』의 역사적 가치는 북한의 신청으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통해 그 우수성을 입증 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검의 명맥을 3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으며, 무예인문학자이면서 무사인 최형국 박사가 쓴 책으로 정조가 무예를 통해 꿈꾸었던 강한 조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무예의 초식처럼 한결, 한결 풀어낸 책이다. 

 

나는 사실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정조의 발자취를, 그의 애민정신을 더욱 생각하게 됐다. 

그가 남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화성>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의미깊다. 

 

흔히 정조 하면 '규장각', '문체반정', '금난전권의 철폐' 등을 통해 무보다는 문에 가까운 왕이라는 인상을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스스로 학문하는 군주라고 칭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면서 신하들을 학문으로 압도했던 세종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욱 자신의 학문 세계를 과시하고 믿었던 왕이 바로 정조였다. 

심지어 한국이 낳은 대문호 연암 박지원의 글 마져 시정잡배들이나 씀직한 문장이라고 반성문을 몇 번이나 제출하게 할 만큼 어떤 면에서는 사상적으로 고지식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물론 나는 여기에도 다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조는 문과 무의 조화,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조선을 꿈꾸었기 때문에 많은 개혁정치, 서적의 출판 등 문화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한 지도자였다.

 

정조는 스스로 활쏘기를 즐겼다. 50발 중에 49발을 명중시키고 한 발은 일부러 허공에 쐈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 태조 이후 신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명사수 였다. 

그런 정조는 활쏘기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아무런 흔들림 없이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며 화살 한 개 한 개에 온 정성을 담아 수련하는 활쏘기는 그야말로 군자에게 어울리는 무예이기도 하다. 우리 활쏘기는 기본적으로 이 땅을 지켜온 가장 중요한 군사 전술의 핵심이었다.

한반도는 높고 험준한 산지가 많아 군사들은 외세를 막을 때 깊은 산성에 웅거했다가 적이 몰려들면 쉼 없이 화살을 쏘아 접근조차 어렵게 만드는 전술을 펼쳤다. 또한 달리는 말 위에서 정교하게 활을 쏘는 기사는 고대부터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몸 문화의 결정체였다.

 

그런 무예에도 우리의 문화, 우리의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한 왕이었다. 

비록 중국의 권법이 조선 군사들에게 보급되었지만, 자연스럽게 조선화하면서 또 다른 신체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무예의 문화적 변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무예를 '문화의 일부'로 살펴야 한다. 중국의 문화와 조선의 기층문화가 다르면 똑같은 권법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토착화하기 마련이다.

 

"문과 무를 병용하는 것이야말로 국운을 장구하게 하는 계책이다."라고 한 정조의 일성처럼 정조는 단순히 공맹의 도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없다고 자각했다. 

개혁에 시동을 걸기 위해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 당대 비주류였던 서얼들을 등용하고, 임금이 바로 스승이다라는 ‘군사’를 자처하며 초계문신제를 실시하고, 새로운 법전과 병서의 편찬을 주도했다. 성리학이 본래 추구하던 ‘민본주의’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백성들의 삶을 일일이 보살폈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던 온갖 ‘구습’을 타파했다.

또한 경제적인 실험을 통해 수원화성을 당시의 구습이 아닌 일용직을 구해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건설하기까지 한다. 

정조가 행한 수많은 개혁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부분 중 하나인 무의 재편이다.

훈련도감에서 작업했던 병서를 왕의 친위 부대격이었던 장용영에서 만들게 했다. 정조는 장용영 초관이었던 백동수와 그의 친구들에게 새로운 병서를 만들 것을 명하고 제목까지 지어 하사했는데, 그것이 바로 『무예도보통지』였다. 따라서 정조의 개혁 의지와 노선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조의 애민정신과 과감한 개혁사상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d*****2 2023.05.0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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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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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언뜻 보면 정조와 무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역사를 읽어가면서 그 둘은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암살시도가 있었다 한다. 현직 왕을 암살하려고 궁궐에까지 침입을 했다니, 그런 정조에게 무술, 무예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비단 개인의 신변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니라, 무술은 나라를 지키는 데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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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언뜻 보면 정조와 무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역사를 읽어가면서 그 둘은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암살시도가 있었다 한다. 현직 왕을 암살하려고 궁궐에까지 침입을 했다니, 그런 정조에게 무술, 무예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비단 개인의 신변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니라, 무술은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했었다.

 

이런 기록 살펴보자.

 

대내외적인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곳이 군대다.

만약 적군의 전술이 바뀌었었는데, 그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 없다. 임진왜란이 그 대표적인 예다. (118)

 

조선 초기부터 북방의 여진족을 주적으로 방어하는 데는 기병으로 주축을 이루었고, 왜구에 대한 방비도 기병을 위주로 했다는 것이다. 왜구들이 배를 타고 육지로 상륙했을 때, 기병들이 빠르게 추격해 소수 병력으로 각개 격파하는 방법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은 근접 무기로는 왜검과 장창을 내세워 조선군의 기병 전술을 깨뜨리는 전법을 구사했다. 그래서 개전한지 불과 20일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것을 살펴보면, 국왕이 무예를 알고 그런 전법까지 알고 있어야 나라 전체의 국방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조는 바로 그런 능력이 있는 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나라를 통할하는데 필요한 무예, 그것을 위하여 정조는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여 보급하도록 한다.

 

이 책은 그런 정조의 리더십과 그 리더십의 결과 도출된 무예도보통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장 정조의 정치 읽기

2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사람들

3무예도보통지속 무예 이야기

 

각각 정리해 둘 것들, 기록해 둘 것이 많이 보인다.  

 

1장 정조의 정치 읽기

 

정조에 관해서는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 책에서는 정조의 또다른 면을 살펴보게 된다.

 

정조가 왕위에 앉자마자 내세운 정치개혁 4가지 사항이 있는데, 그건

민산 (民産) :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인재 (人才) : 교육을 통해 좋은 사람을 키운다.

융정 (戎政) :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국방력을 증진한다.

재용 (財用) : 국가의 재정 상태를 건전하게 운용한다. (16- 17)

 

그런 개혁방침을 확실히 하여,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수를 갚는 대신 나라 전체를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나갔다,

특히 인재에 대해서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능력이 있으면 버리지 않고 일을 맡겼다. 구선복이라는 사람이 그 예다. (94)

 

이 중 융정에 대한 정조의 노력은 바로 무예도보통지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에 대하여는 이 책 2장과 3장에 자세하게 드러나고 있다.

 

2, 3무예도보통지

 

무예의 핵심은? (157- 158)

 

일담(一膽) : 용기를 말한다.

이력(二力) : 담력을 갖추었다면 그 다음에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삼정(三精) :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쾌(四快) : 실전에서는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여도장 동여풍우 (止如堵墻 動如風雨)

멈출 때에는 담장처럼 굳건하게, 움직일 때는 비바람처럼 매섭게 하라. (162)

 

활쏘는 자세는? (175)

안전을 위해 지형을 살피고, 바람의 방향을 가늠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자세를 바로 잡는다.

앞 손은 힘껏 밀고, 시위를 잡은 뒷손은 화살을 쥐고 팽팽히 끌어당겼다가 쏜다.

그러니 선찰지형, 후찰풍세다.

 

그밖에 여러 방법이 등장한다.

 

틈홍문세( 177)

항장기무세 (183)

한고환패상세 (185)

 

이런 것들이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들, 이야기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그러니 이런 무예를 배우다 보면, 저절로 역사상의 사건들도 이해하게 된다.

 

이런 것도 알게 된다.

 

사극에서 지휘관이 수천수만 명 되는 부대 앞에서 목이 터져라 돌격하라고 외치는 식의 지휘방법은 불가능하다. 해당 부대를 상징하는 깃발로 지휘하는 것이 옳다. (192)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좋은 시절에 인재를 길러야 난세를 풀어갈 인재를 만들 수 있다. (96)

 

다시. 이 책은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것에서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

 

여기에서 온()은 따뜻할 온이 아니라 배울 온이다.

배운다는 다른 글자도 많이 있는데, 왜 여기서는 온을 쓸까 

저자는 이를 따뜻한 배움으로 풀이한다. (78)

 

따뜻한 배움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다시 이를 풀어 말하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차가운 지식이라면 그것은 서고에 먼지와 함께 처박힌 낡은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생각에 공감한다.  

그래서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정조의 백성과 나라를 위한 따뜻한 마음씨가 부쩍 그리워진다. 그런 임금이 있었다는 것, 역사의 행운이었다.  

이 책, 모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달의 사락 s***h 2023.05.0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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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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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최형국, 인물과사상사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운동이나 무예에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대략적인 개요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고 가끔 수원 화성행궁에서 펼치는 시범을 통해 저런 무예가 실려있구나 감탄하기도 했었다. 이 책은 무예를 통해 강건한 조선을 꿈꾸었던 정조와 그가 담고 싶었던 내용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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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최형국, 인물과사상사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운동이나 무예에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대략적인 개요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고 가끔 수원 화성행궁에서 펼치는 시범을 통해 저런 무예가 실려있구나 감탄하기도 했었다.

이 책은 무예를 통해 강건한 조선을 꿈꾸었던 정조와 그가 담고 싶었던 내용이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무예도보통지라는 제목에서 습관적으로 세글자씩 끊어서 무예도 보통지라고 읽었는데 무예도보 통지 라고 읽는게 맞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다.

무예도보는 무예도를 묶은 기록으로 그동안을 것을 집대성 한 것이라는 의미로 통자를 첨가해서 통지를 붙인 것이다.

그 이야기는 무예도에 대한 모든 것 정도로 풀어서 설명해도 될 것 같다.

결국 정조는 무예도를 집대성하고 싶어했고 그것은 왜란과 호란을 겪고난 조선에서 강성한 군대를 위한 숙제를 풀어내고자 한 의지를 반영한 결과였다.

이 책은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조의 리더십에 대해 세종과 비교하기도 하고 개혁군주로서 인재를 등용하는 방식에서 변화를 가진 점과 같은 다양한 면들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던 정조와 백동수와 같은 주변인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장용영이 가지는 가치와 수원화성의 의미를 재조명해 준다.

특히 이 책에서 나에게 재미를 주었던 부분은 무예도보통지 언해본이 있으나 실제로 그 당시 사용되던 한글이 지금과 달라서 생기는 해석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어려움과 함께 무예에 대해 저자가 가지는 진지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무예는 용기, 힘, 정교함, 신속함으로 이루어진다는 표현에서 아직은 미숙하지만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운동과 비교하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에 대해 모든 걸 그대로 직접 소개하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제작과정이나 정조가 품었던 이상에 대해 무예도보통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된 책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j****o 2023.05.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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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마음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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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마음의 정신   전창수 지음     우리나라에서 정조는 아마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정조의 시대는 화려했고, 그나마 조선시대 중에서는 화창한 중흥기를 이룬 시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정조가 너무나 잘 났었다는 사실에 있다. 정조 사후, 조선시대는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정조의 시대에는 비록, 정조의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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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마음의 정신

 

전창수 지음

 

 

우리나라에서 정조는 아마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정조의 시대는 화려했고, 그나마 조선시대 중에서는 화창한 중흥기를 이룬 시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정조가 너무나 잘 났었다는 사실에 있다. 정조 사후, 조선시대는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정조의 시대에는 비록, 정조의 뛰어난 정치능력 덕분에 중흥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정조는 후대를 대비하지 못하였다. , 정조는 현실적인 부분, 지금 닥친 위기나 정세에든 밝았지만, 정조의 생각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정조에게서 배울 게 있을 것이다. 정조는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다. 무예가 뛰어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무예도보통지. 무예로 정신을 가다듬고 무예로 사람을 익히고 무예로 정세를 읽은 삶의 시작. 무예로 조선을 꿈꾼 정조의 시대는 그렇게 강력한 국가가 되었고, 조선시대 중에서는 가장 잘 사는 시대였다.

 

그렇게 잘 사는 시대였기에, 오히려 사람들은 후손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정조의 리더십은 분명 배울 만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많다.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에서 나오는 무예에 관한 정조시대의 기록들은 그렇게 정조의 통치철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될 듯 하다.

 

강력한 국가,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뛰어난 정치성과.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중에 올 사람들, 나중에 살 사람들이 지금처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저, 지금 현대의 정세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어떤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정조의 리더십에서 배울 수 있는 것. 그것은 정조가 무예로 단련한 것도 또한 정신수양의 한 과정이었으며, 또한 그 무예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단이엇다는 것. 그리고 그 무예의 리더십을 통해 현실을 극복해 나갔다는 것. 그러나, 정조에게서 남는 아쉬움. 후손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오늘만 생각하는 어제가 아니라, 내일도 생각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즐겁게 즐기며 살아가지만, 내일도 생각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의 미래는 더 밝아지고, 우리 시대의 미래 사람들은 더 많이 밝아졌으면 좋겠다. 그 시대의 행복을 위해 오늘 작은 글을 또 내보낸다. 오늘도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글이 되기를.

 

 

 

 
h******o 2023.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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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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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즐기는 왕, 활쏘기 실력도 신궁에 가까웠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이야기 담겨있습니다. 영조는 민산(백성의 삶의 풍요롭게), 인재(교육을 통해 좋은 사람을 키움), 융정(국방력을 증진), 재용(재정 상태를 건전하게 운용)이라는 4가지 정치개혁을 공표합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고 온갖 고생 끝에 왕위에 올라서 신변을 위협을 느끼면서 살았기에 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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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즐기는 왕, 활쏘기 실력도 신궁에 가까웠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이야기 담겨있습니다.

영조는 민산(백성의 삶의 풍요롭게), 인재(교육을 통해 좋은 사람을 키움), 융정(국방력을 증진), 재용(재정 상태를 건전하게 운용)이라는 4가지 정치개혁을 공표합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고 온갖 고생 끝에 왕위에 올라서 신변을 위협을 느끼면서 살았기에 융정, 군사제도 개혁을 통한 군권의 완전한 장악이 필요했습니다. 

수원화성과 버드나무를 심는 네가지 목적에 대해 알게 해줍니다.

계획적 신도시 수원화성이 궁금해집니다.

기록을 가장 중시하며 사적인 감정을 접어두고 오로지 일과 사람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였으며 1776년 군사 무예를 통일화하는 작업 끝에 결과물이며 군사들이 익혀야 할 모든 군사 무예를 담은 책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가지, 즉 무예 24기에 대해서도 알게되었습니다.

각종 무예이야기와 한자가 많아서 그런지 조금 어렵게 느껴졌으며, 더불어 정조의 백성을 위한 마음과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었던 것 같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j******8 2023.05.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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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정조의 리더십과 무예도보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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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문화 유적지나 역사 관련 명소에서 한국의 전통 무예 공연을(꼭 조선 시대에 한정된 무예 공연은 아니었지만) 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 멋진 모습에 감탄했고 호기심도 생겼었다. 좀 더 자세한 역사적인 한국의 무예에 관해 늘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 호기심에 어느정도 답이 되어 주는 책이었다.제목은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무예로 조선을 꿈꾼 주체인 정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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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문화 유적지나 역사 관련 명소에서 한국의 전통 무예 공연을(꼭 조선 시대에 한정된 무예 공연은 아니었지만) 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 멋진 모습에 감탄했고 호기심도 생겼었다.

좀 더 자세한 역사적인 한국의 무예에 관해 늘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 호기심에 어느정도 답이 되어 주는 책이었다.

제목은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무예로 조선을 꿈꾼 주체인 정조의 리더십과, 그의 통치기에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무예를 집대성한 「무예도보통지」무예서를 주제로 삼고 있다.

(저자의 내력도 독특한데, 연구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청년 때부터 오랜 기간 말도 타고 무예 수련도 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무예사가 궁금해 인문학적 연구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무예에 관한 문무를 모두 익히는 길을 걷고 있다고.)

처음엔 무예에 관한 내용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전반적으로 '정조'와 '무예'라는 두 주제에 균형이 고루 분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정조의 리더십과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책의 전반부는 정조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다. 덕분에 당시에 정조가 무예에 왜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는지, 정조의 정치적 위치와 이상, 그리고 정신에 대해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정조가 노론을 견제하고 학문에 열심하여 시력이 나빠졌으나, 활을 연습할 때 구태여 멀리 있는 작은 표적인 장혁에 정신을 집중하며 연습하곤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외내면적으로 모범을 보이려 하고, 심안을 기르려 한 부분에서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오래된 폐단을 고치고, 백성을 생각하고, 자신의 사익이 아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어린 세손 시절부터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고 행한 왕이라, 그의 행보에도 그 영리한 움직임과 소'통'의 마음이 드러난다.
시대가 변하고 세계 정세가 변하는 만큼, 그리고 조선이 전쟁을 겪으며 전술과 전쟁의 도구들이 변한 만큼 새로운 무의 체계의 정립이 필요했다. 그리고 정조는 서얼과 같은 이도 적극 용인하는 열린 인재등용과, 저자의 말로 하자면 '공성의 리더십'으로 무예 체계를 정립해 갔다.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는 작업을 하며, 편찬인들에게 '선배들의 아름다운 뜻을 이어 받고 후세에 비난 받을 짓을 하지 말'도록 주의한 점도 인상적이다. 즉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안목,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접근으로서 무예 체계가 표준화되어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된 것이다.

2장에서 무예에 대해 더 세부적인 설명이 나오는데, 무예를 익히는데는 늘 불필요한 힘을 빼고, 또 비우고 다시 채워가는 과정이 중요함을 읽다 보면, 궁극적으로 모든 삶의 진리가 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기초를 허투루 하지 말고, 작은 세부 사항도 소홀히 하지 말고, 욕심과 번뇌를 버리고 올바름을 채워가는 삶...

책의 후반부에서 기예, 창, 검, 권법 등 다양한 무예를 사진과 그림과 함께 살펴볼 수도 있었는데, 설명만으로도 흥미로웠지만 무예 24기의 방법 자체가 다 세밀히 설명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무예도보통지를 읽어봐야 하는 걸까..? 여하간 언젠가 시연하는 것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 시기에 그의 정치적 행보와 더불어 무예에 초점을 맞추어 쓴 책이니만큼, 흔하지 않은 무예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어 특히 더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s******3 2023.05.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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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정조가 남긴 조선 최후의 무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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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는 가장 전투적인 인간의 몸짓이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 칭할 정도로 인간은 전쟁 속에서 더욱 강인해지고 발전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완전한 파괴는 또 다른 변혁을 만드는 시험의 장이기에 전쟁은 인류의 문화 속에서 늘 함께했다. 그런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인간적인 몸짓의 강화로 무예가 발전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어릴 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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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는 가장 전투적인 인간의 몸짓이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 칭할 정도로 인간은 전쟁 속에서 더욱 강인해지고 발전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완전한 파괴는 또 다른 변혁을 만드는 시험의 장이기에 전쟁은 인류의 문화 속에서 늘 함께했다. 그런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인간적인 몸짓의 강화로 무예가 발전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어릴 적부터 배운 말 중에서 지금까지도 늘 기억하는 명문장이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健身健神’는 사자성어다. 그런 까닭에 난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무술을 습득하려고 도장을 꾸준히 다녔다. 성인이 된 후에도 한동안 체력단련 목적의 운동은 계속되었다.

 

공부가 지식을 함양하기 위한 정신 키우기라면 무술과 무예는 건강한 몸과 체력 키우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공부를 통해 작은 지식들이 하나둘 모여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되듯이, 신체 또한 마찬가지다. 꾸준한 훈련으로 말미암아 튼튼한 몸과 강철같은 체력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학습량을 증대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저자 최형국은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가 무예를 통해 강한 조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된 무예 24기技를 29년 동안 수련한 무사武士이자 한국사를 전공한 인문학자이다.

 


 

 

그런데, 조선 정조 때에 편찬된 <무예도보통지>는 한중일 3개국의 145권 무예서를 집대성한 것으로 그 가치가 입증되어 2017년 북한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는 북한의 첫 세계기록유산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은 <무예도보통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조선의 군사들은 어떻게 무예 수련을 했는지, 정조는 어떻게 조선 사회를 바꾸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유까지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는 정조가 왕으로 등극하자 처음 던진 말이다. 사실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은 아버지는 정치적 희생양이었음을 밝힘과 동시에 정적들과의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었다.

 

정조의 개혁과제

 

민산民産~ 삶의 질을 풍요롭게

인재人材~ 인재 선발과 교육 환경의 개선

융정戎政~ 국방력 증진

재용財用~ 재정 운용의 건전성, 지나친 세금 징수 방지

 

4대 개혁 과제 중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문제를 융정, 국방력 강화로 판단한 정조는 군사제도의 개혁과 함께 군권軍權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신변에 끊임없이 가해지는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정조는 자신의 정치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 유능한 인재들의 집합소인 규장각을 싱크 탱크로 활용하고, 장용영壯勇營이라는 최정예 부대를 양성하여 친위부대로 삼았다. 말하자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염두에 둔 셈이었다.

 

정조는 개혁의 완성을 위해 신도시 건설을 구상했다. 기존의 한양을 떠나 새로운 도읍지로 천도遷都를 희망했는지도 모르겠다. 경기도 수원에 화성華城 건설을 명령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花山으로 이장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정暴政은 부패한 권력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은 갈수록 더 많은 자본을 갈구함에 따라 갈수록 더 악독한 가렴주구로 이어지므로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 된다. 따라서 정조는 ‘고인 물이 썩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감안, 권력의 분산을 위한 ‘공간의 재구성’을 시도함으로써 한양 중심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새로운 상업도시를 표방하는 수원 화성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냈다.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조총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 대비책으로 훈련도감을 창설, 수도인 한양의 경비를 담당하게 됨으로써 중앙군軍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도성 안팍에 다섯 개의 분영을 유지했다.

 

정조는 즉위하자 <병학통>이라는 집법서의 편찬에 나섰다. 중앙 군영인 오군영 군사들이 훈련할 때 사용하는 규범 용도였다. 그런데, 훈련 때 군사들의 무예가 제각각이었다. 이에 군사용 무예의 통일화 작업으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무예도보통지>였다. 무예 실기 담당 무인은 간서치 이덕무의 추천으로 서얼 출신의 백동수(무과에 합격했지만 출신 문제로 등용되지 않았음)가 기용되었다. 그의 증조부는 함경도, 황해도,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름 난 장수였지만, 조부가 서자였기에 그 신분은 대물림되었던 것이다.

 

무예 수련의 이유

 

단단한 마음 만들기

힘力 기르기

정교함 만들기

신속함 만들기

 

이 네가지를 골고루 조화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만약 다른 모든 것은 뛰어난데, 용기만 없다면 아예 시도조차 못하고 끝날 것이다. 역시 다른 모든 것이 부족한데 용기만 있으면 그것은 ‘만용’이 된다. 무턱대고 돌진하면 처참하게 부서질 뿐이다. 반대로 용기, 힘, 정교함이 모두 부족한데 빠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활쏘기는 기본적으로 이 땅을 지켜온 가장 중요한 군사 전술의 핵심이었다. 한국의 지형은 높고 험준한 산지가 많아 군사들은 침입한 외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산성山城에 움추리고 있다가 몰려드는 적에게 쉼 없이 화살을 쏘아 접근조차 어렵게 만드는 전술을 펼쳤다.

 


 

 

조선시대에도 권법은 마치 체조처럼 군영에서 훈련되었다. 맨손 무예인 권법은 모든 무예를 익힐 때 기본이 되는 신체 훈련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를 ‘초학입예지문初學入藝之門’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자신의 몸을 알아야 칼을 잡든, 도끼를 잡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권법은 명나라의 척계광이 저술한 <기효신서>(1560년)를 비롯한 몇 가지 책에 그 기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식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식의 권법을 수록했다.

 


 

 

#한국사 #무예로조선을꿈꾸다 #무예도보통지 #정조리더십 #최형국 #인물과사상사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5****0 2023.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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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살피는 정조의 정치와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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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에 갔을 때 수원행궁 앞 광장에 무예를 하는 사람들의 그림이 바닥에 새겨진 걸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아마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다고 적혀있었을테지만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더라. 그 그림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의 책 소개를 보는 순간 그 그림과 관련된 책이 바로 <무예도보통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정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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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에 갔을 때 수원행궁 앞 광장에 무예를 하는 사람들의 그림이 바닥에 새겨진 걸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아마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다고 적혀있었을테지만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더라. 그 그림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의 책 소개를 보는 순간 그 그림과 관련된 책이 바로 <무예도보통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정조와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내용을 보다 깊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들어가는 말', 서문에서부터 저자가 무예에 갖는 애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직접 무예를 익히고 배우면서 그 의미를 찾아 깊이 있는 연구를 한 저자가 대단해보였다. 애정을 갖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애정을 바탕으로 직접 배우고 느끼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책의 부제가 '정조의 리더십과 무예도보통지'인 만큼 제일 앞서서는 정조와 정조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 최초의 계획 도시인 수원화성이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함께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도. 그러면서 정조가 수원화성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게 무엇인지도 엿볼 수 있었다. 3장에서 무예도보통지의 내용에 대해 나오는데 이곳에서 내가 봤던 무예 그림들을 볼 수 있다.


 

평소 인문서를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인데 생각보다 술술 잘 읽혀서 놀랐다. 비교적 쉬운 표현을 사용해 이해가 쉽기도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정말 잘한 것 같다. 내용을 크게 3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각의 장에서도 주제를 세분화해서 나누고 있다. 소제목을 붙이고 해당 주제에 대해 집중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짧고 굵게 해당 주제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어 좋았다. 수원화성은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는 수원화성은 또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서 조만간 한번 방문해서 수원화성 성곽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무예로조선을꿈꾸다 #최형국 #인물과사상사 #무예도보통지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컬처블룸서평단

p******1 2023.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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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와 정조를 다룬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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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닌자, 중국엔 쿵푸. 그런데 우리나라는 뭐가 유명하지?  항상 의문이 있었어요.   굳이 얘기하자면 화랑이라고 하긴 하지만, 문화 컨텐츠적으로 발달한 건 아니라서 우리 나라도 무예를 문화로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죠.   그런 생각 때문에 제목만 보고 읽어보고 싶어진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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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닌자, 중국엔 쿵푸.

그런데 우리나라는 뭐가 유명하지? 

항상 의문이 있었어요.

 

굳이 얘기하자면 화랑이라고 하긴 하지만,

문화 컨텐츠적으로 발달한 건 아니라서

우리 나라도 무예를 문화로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죠.

 

그런 생각 때문에 제목만 보고 읽어보고 싶어진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하지만 이 책은 막상 읽어보면

무예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진 않아요.

 

정조의 리더쉽과 사회상,

그리고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요.

 

무예도보통지는 총 4권으로 된 책인데

조선군이 익히고 숙달해야 할 무예를

정리한 책이라고 하네요.

검, 쌍검, 활을 쓰는 법도 소개해 놓았다고 합니다.

정조의 문무겸전 국정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편찬한 병서이니,

그 시대상을 이해하고 병서로써

조선 군에 대해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인 거 같아요.

 

근데 제 생각이 맞더라고요.

이 책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무예를

집대성한 유일한 무예서라고 합니다. 대단하죠?

 

정조가 고생 끝에 왕위에 올라

국정 안정을 위해 군권 장악을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남기고,

당시 나라를 강건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이기도 했으니

정조는 정말 뛰어난 왕이었던 거 같습니다.

 

 

 

 

 

 

 

 

 

 

우리 나라는 역사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무협물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무예를 잘 살린 작품이 나와서

유명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보고,

우리나라 무예에 대해 잘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활은 우리 나라가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요?

상대적으로 검술은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인데,

책에 있는 사진들을 보니

우리 나라의 무예도 엄청 멋있더라고요.

절도 있고, 예의 있고,

우리나라의 특징이 잘 담겨 있는 동작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린다는 의미에서

이런 책이 계속 나오고 소개되는 건 중요한 일 같아요.

더군다나 단순히 무예서가 아니라,

무예서를 통해 바라본 정조 시대의 고찰이란 점에서

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m*****a 2023.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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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서평]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내용보기
국방의 중요성은 100번, 1000번 강조해도 지나치지않는다. 물론 경제도 뒷받침이 되어야하지만, 이 도서의 주제는 무예이므로, 여기에 초점을 두겠다. 문(文)과 무(武)를 병용하는 것이 국운을 장구하게 하는 계책이다. 무예도보통지. 이것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조선 최후의 무예서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재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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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중요성은 100번, 1000번 강조해도 지나치지않는다. 물론 경제도 뒷받침이 되어야하지만, 이 도서의 주제는 무예이므로, 여기에 초점을 두겠다. 문(文)과 무(武)를 병용하는 것이 국운을 장구하게 하는 계책이다. 무예도보통지. 이것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조선 최후의 무예서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재라는 점에서 한 편으로는 뿌듯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무예란 적으로부터의 창과 칼날을 그치게 하고 멈추게 하는 것이다. 건강하고 강인한 체력을 증진하면서 수련하는 인간의 전투적인 자세와 행위다.

정조 임금으로한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는 많이 나온 편이다. 정조 임금은 문무를 두루 갖추신 분이다. 죄인의 신분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유가적 종법제에 따라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위협을 많이 받으신 분이다.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의 전술을 보강하고 누구나 쉽게 무예를 익힐 수 있도록 무예도보통지를 펴내게 되었던 것이다. SBS 무사 백동수 드라마도 봤다. 영조 시대에는 조선제일검 검선 김광택이 있었고, 정조 시대에는 조선 최고의 무사 백동수도 있었다. 이 도서의 저자는 최형국(崔炯國)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예 24기를 29년간 수련한 무사武士이자 무예인문학자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이런 전통을 되살리고 계승하면서 더 발전시키는 일을 하시니 가히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목차를 알면 이 책의 내용과 컨셉 그리고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1장 정조의 정치 읽기 / 2장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사람들 /3장 『무예도보통지』 속 무예 이야기 총 3장으로 구성된다. 정조가 무예를 통해 강인한 조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검선처럼 간결하게 풀어내 독자들이 『무예도보통지』와 정조 시대를 좀더 손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옛말이 있다. ‘건강한 신체’는 이 말이 성립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런 정신을 통해서 도서를 본다면 더 이해가 가지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k*****e 2023.05.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