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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로 대충 그린 듯한 간결한 그림들과, 그림처럼 간결한 짧은 문장들.
가령 이런 문장을 보면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알 때는 그나마 나아.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겠지만, 스스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자존감이 낮아졌기 때문일 수 있는데,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혐오나 인간혐오에서 기인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로 가득 차 자기 자신이 쓰레기통처럼 느껴질 때, 혹은 너무 공허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자신을 비우거나 채우기에 좋은, 그런 책.
역설적이게도 매우 극단적인 두 경우에 모두 처방 가능한, 그런 책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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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그림들.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가 않다. 양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그림에 글 두 줄 정도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어렵다. 어쩌면 내가 필요 이상으로 깊이 궁리한 탓일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깔끔하게 현대인의 모습을 확인해 보라고 했는지도 모르는데.
점들을 이어서 그림으로 만든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얼마만큼의 인내심이 있어야 가능할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작고 작은 인물들을 모아 형상으로 재창조한 형태. 꼼지락꼼지락 했을 작가의 손동작을 짐작해 보다가, 그러고 있는 작가는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짐작해 보다가, 아무런 생각 없이 무념 상태로 반복하고 있는 걸까 짐작해 보다가 '내게는 이런 재주가 없는 것이군.' 하는 자각에 이른다. 작은 동작을 모아 큰 의미로 만들어 내는 일의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작가의 능력 중 하나가 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에 출간되었지만 프랑스에서는 1970년대에 나온 모양이다. 40년이 흘렀다는데 이런 책을 보면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만 같다. 과학 기술이 발달되어 삶의 외형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사는 일에 느끼는 허무와 피로도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 요즘의 우리 모습과 이토록 비슷하다니.
유쾌한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가벼운 필치에 어울리지 않게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고 우울하다. 웃음이 떠오르지 않는다. 혼자 있어도 마주 보아도 보이는 상대가 원하는 상대는 아니다. 나 역시 상대에게 그러할 것이다. 같이 있어도 마주 보아도 막막하기만 한 현대 사회와 이후로 올 미래. 이만큼은 짐작할 수 있으면서 우리는 어리석게도 지금 다투고 투정부리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일까.
가까운 곳에 두기는 할 것이다. 종종 꺼내어 들여다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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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열감기에 걸려 많이 아팠다. 열감기는 처음이라 안절부절못하다 병원에 입원까지 했는데 정맥주사를 제대로 못 놓고 아이가 거의 경기 직전까지 가게 만들어서 반나절도 못 채우고 바로 퇴원을 해버렸다. 일요일 저녁,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고민하다 한 시간 반 거리의 대학병원까지 갔다.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가는데 안개까지 끼어 남편은 잔뜩 웅크린 채로 운전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괜히 우겨서 대학병원까지 가는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갔는데 심하지 않는데 여기까지 왔냐는 반응이어서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다행히 정맥주사를 한 번에 놓았고 초진을 담당한 의사와 전문의가 와서 친절하게,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어서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꼬박 밤을 새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남편은 바로 출근을 했다. 짠한 마음이 들어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간 잔소리하고 짜증 낸 원인들이 모두 당신에게 있는 것 같아 그랬는데 대학병원에 가는 길에 당신이 얼마나 든든한지,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평상시에 무뚝뚝한 남편도 이번일로 당신이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대단하고 안쓰러운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며, 또 당신이 내 아내이고 아이 엄마라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 문자 하나에 마음이 스르르 녹아 버렸다. 솔직히 요즘 남편과 나는 결혼 2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찾아볼 수도 없고, 뭔가 만날 부딪히기만 했다. 그런데 아이가 아파 전전긍긍하면서 먼 길을 다녀오다 보니 그제야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걸 보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도 건강해지고 며칠 사이에 남편을 보는 내 마음 상태가 달라져 이래저래 기분 좋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 책을 더 건성건성 보았을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고, 또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프랑스 유머(?)라는 식으로 건너뛰었을 것이다. 실제로 상뻬 할아버지의 그림과 짤막한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공감하기보다 ‘이건 뭘 의미하지?’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더 많았다. 사랑에 관한, 부부사이에 관한, 어떤 일화를 보는 시선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들이 담겨 있었지만 그 모든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라며 맞장구를 칠 수 없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때론 가볍게, 때론 블랙유머처럼,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빽빽하게 그려진 스케치가 있는가 하면 눈앞에서 팔랑팔랑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생한 이미지들도 있었다. 처음엔 꼼꼼하게 보면서 저자의 의도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금세 피곤해졌다. 그래서 눈의 흐름을 좇아 보았더니 다양한 시각이 드러났다. 상뻬 할아버지의 작품을 거의 다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을 보면서 짤막한 글은 그렇다 쳐도 그림들이 그 전보다 거칠다는 느낌이 받았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구석구석 살펴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휙휙 넘기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겨진 스케치나 글들을 하나의 연관성으로 보기는 힘들어서 개별적으로 보다 보니 느낌을 남기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다만 요즘 나와 남편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 와 닿아 그런 느낌이 나는 곳을 집중하다 보니 짧지만 글로 설명이 되지 않는 메시지들이 조금 보였던 것이다. 책 제목처럼 마주 보았을 때 우린 상대방을 잘 알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곳을 보았을 때 잘 알 수 있는지는 명확하게 결론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간에 내 편견에 휩싸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혹은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내가 요 며칠 사이에 느꼈던 감정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타인이든 나 자신이든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할 때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