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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보고, 금정연이라는 이름 보고 이 책을 샀다. 뭔가 덕후의 느낌이 확~오는 제목에 어울리는 책이 도착했을 때, 이 얇고 어여쁜 책을 어떻게 읽어줄 것인가 고민했었다. 요즘 커피숍 타이밍을 잘 못맞춰서 계속 실패하는데 그날은 어찌 시끄럽던 멤버들이 다 일어나는 바람에 자리잡고 키득거리며 이 책을 읽었다.
예상대로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쓴 글이고, 그들이 고른 그에 못지 않는 책 덕후들이 쓴 책에 대한 글이다. 그래서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이 되었다. 번역가, 기자, 마케터, 디자이너, 서평가 등 다양한 책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책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을 비롯하여, 이젠 절판되어렸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한다> 등 각자 한권씩 책을 정해 소개도 하고 자신의 책이력을 늘어놓는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선정한 책 자체도 굉장히 책 중독자들이나 알법한 책들인데, 그들도 하나같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책 한권에 좌절하고 웃고 우는 그런 차원을 뛰어넘어 자신의 집에 넘쳐나는 책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독하게 마음먹고 손에 피, 아니 잉크, 아니 눈물을 묻히며 책장에 자리 잡지 못한 책들을 떠나보낸다고 해도 그때뿐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책장에 하나둘 누운 채로 쌓이며 불어나, 어느새 뒤에 세워진 책등을 가리고 있는 책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역설이 있다. 책들이 늘어날수록 책들은 사라진다. 집 안에서 책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아지고,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사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책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책이 누워있는 것 뿐 아니라 누워서도 책등을 가리는 처지다보니 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분명히 산 책인데 책이 없어서 앞에 꽂힌 책을 치우며 한참을 찾아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많은 책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양심이 없냐) 책을 눕혀도 좋으니 제발 책등은 가리지 않는 책장을 가지고 싶다...
제대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카드 빚 때문이었다. 200만 원. 모두 군대에서 책을 사 보느라 생긴 밎이었다. 말년 휴가를 나와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물론 PC방에서 습관처럼 인터넷 서점을 접속했다가 도서 데이터 등록 아르바이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때마침 그날이 지원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부랴부랴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했고, 전역과 동시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서점 때문에 생긴 빚을 서점에서 일하며 갚는다니! 모든 것이 맞아떨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찐이다. 군대에서 책을 사 보느라 빚을 졌다니. 이걸 어떻게 이겨. 게다가 그 빚을 서점 아르바이트로 갚았다니. 요즘같으면 그래도 군인 월급이 좀 올라서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을 듯 한데, 또 모르지. 그 월급을 다 쓰고도 빚을 졌을지도. 참 대단한 책덕후들을 봤지만 이 사례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찾아오는 회의와 냉소의 시기였을까. 기계처럼 움직이며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책이 뭘까? 이 많은 책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었지? 그렇게 책에 묻혀 산 다음 나는 어떤 인간이 되었지? 박학다식한 지성인이 되지도 못했고, 성숙한 인격자가 되지도 못했고...
책을 많이 사고, 모으고, 읽을 때는 솔직히 많이 행복하다. 하지만 쌓인 책을 볼 때 현타가 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 뒤엔 이런 느낌이 늘 따라온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나의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가. 그렇게 뛰어나게 똑똑하지도,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있을 뿐더러 그래, 다 양보해서 많이 아는만큼 내가 포용적이고 관대한가? 그것 역시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면 자괴감이 든다. 결국 책은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고, 많은 양의 책으로 인해 물리적인 짐이 되고 있다는 것에, 책과 관련된 내 인생 전부가 부정당하는 기분도 든다. 아마 책을 읽는 이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처분하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그 기분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다시 새 책을, 갖고 싶었던 책을 보면 이성이 마비되고 눈을 반짝이며 책을 사모으기 시작한다. 그렇게 일생을 살다보면 아마 인생의 끝에 남는 것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식과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른 책무덤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전자책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이분들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 듯 하다. 아직 전자책 기기가 없는 분도 있고, "전자책의 저자 사인은 어디에 받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으니 이런 책을 쓰셨겠지. ㅎㅎ 책을 만들거나 마케팅을 하거나 어떻게든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책에 대한 책"을 주제삼아 자신의 책이야기를 하고 있는 특이한 책.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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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표지도 그렇다. 판권 페이지를 과감하게 표지로 가져다가 썼다. 잘못 인쇄된 것 같은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표지다. 표지를 넘기면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등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재미있는 점은 각각 '책에 대한 책'을 한 권씩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제목처럼 '책에 대한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책만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저자들의 작업과 책에 대한 생각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매우 알차고 재미있었다. 책, 출판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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