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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전하는 위로 [러브 인 뉴욕] 바짝 치켜 세운 발톱을 보지 말고 부드럽게 만질 수 있는 털을 먼저 보자. 앙칼진 목소리를 듣지 말고 가르랑거리며 평온함을 더해주는 자그마한 숨결을 들어 보자. 새침하고 도도한 자세에 맘 상하지 말고 상냥하고 온화하게 쳐다보는 눈빛을 읽어 보자.
고양이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중간은 없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이 있다면 바로 이 고양이 일 터. 당신은 고양이를 사랑하는가? 싫어하는가? 둘 중에 하나로 답하라!! 긍정의 답이든 부정의 답이든, 이 책을 읽고 나면 고양이에 대한 생각은 긍정 쪽으로 옮겨오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고, 쉽게 다가오지 않으면서 존재 자체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줄 아는 고양이라면 더더욱 보기 어려울 것이니, 이 책 속의 고양이 프루던스를 만나는 순간 그 누구의 마음이라도 무장해제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진실을 숨길 때 두 가지 방식을 쓴다. 그 중 첫 번째 방식은,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때와는 조금 달라서 이해가 잘 안 된다. 사라가 하얀 내 발을 보고 ‘양말’이라고 부를 때처럼 말이다.-8 이게 누구의 말이냐고? 바로 고양이 프루던스의 말이자,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고양이 프루던스의 시각에서 주욱 기술되어 나가는 소설. (중간에 서술 시점은 몇 번 바뀌기도 한다.) 첫 부분부터 까칠하고 도도하며 시크하기 까지 한 고양이 프루던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인간들이 진실을 숨기는 또 다른 방식은 대놓고 서로를 제대로 속이려 들 때이다. 로라는 사라의 집에 와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못 와서 미안해요, 엄마. 정말로 들르고 싶긴 했지만...” 하지만 얼굴이 발갛게 변하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10 고양이 프루던스의 눈에 비친 사라와 로라는 모녀지간이면서도 살갑지 않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아기 고양이 프루던스는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한 황량한 공사 현장에서 사라를 만나게 되었고, 그 뒤 3년 동안 사라와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살아왔다. <러브 인 뉴욕> 종이봉투는 그 중에서도 프루던스가 특히 사랑하던 것이다. 사라의 노랫소리도...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눈치 빠른 프루던스의 눈에 사라와 그다지 친한 것 같아 보이지 않던 로라가 남편 조시와 함께 상자들을 들고 집에 왔다. 그 이후로 프루던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직 사라의 죽음을 알지 못했던 고양이 프루던스는 로라와 조시와의 생활에 적응하기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엄마와의 관계에서 불편하기만 하던 로라 역시 엄마 사라를 잃고 나서 힘든 일들을 한꺼번에 많이 겪게 된다. 남편 조시가 잡지사에서 해고를 당했고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조차 마음같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듯하다.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자신도 파트너로서의 승진을 꿈꾸고 있었으나 사건 의뢰인(조시)과 사적 관계를 형성하고 결혼까지 감행했던 자신의 결정이 승진에 플러스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사퇴까지 결심해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만다. 로라는 인생에 있어 무지막지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게 마음대로 되지 않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상처 입히는 말만을 내뱉고 돌아선 로라. 일자리라도 지켜야겠다며 변호사 사무실에 나가 회의를 하고 있을 바로 그 때, 고양이 프루던스가 백합을 씹어먹고 몸 속에 독이 번져 생사를 오가는 기로에 놓여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비로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벼락맞듯 깨닫게 된 로라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온다. 모두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어머니의 고양이였어요. 클레이 파트너님.” “그 고양이는 어머니가 제게 남긴 전부예요.” 라고 말하며 걸어 나온 로라. 로라의 상처는 싱글맘이었던 엄마 사라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프루던스라는 “고양이”를 매개로 하여 과거의 기억을 헤집으면서 떠올리게 되고 과거의 엄마를 만나 마음속으로 화해를 하며 치유를 하기에 이른다. 로라가 무너지려는 건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도 고양이 때문이었는데, 겨우 고양이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걱정 때문에 딸의 안부를 먼저 물어야 했던 미숙한 엄마 사라는 딸을 몰아세우고 말았고, 그래서 딸의 믿음을 잃게 되었다. 그 때 갈라진 그들의 마음이 사라의 죽음 이후 한참 지나서야 다시 고양이 프루던스를 매개로 하여 이어졌던 것이다. 가끔 사람들 사이의 감정 표현이 이렇게 어긋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 마음아프다. 그럴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이렇게나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음을... 함께 부르던 옛 노래. 낡은 사진 그리고 고양이의 부드러운 등과 조용한 눈동자. 가장 외로운 순간 당신을 위로하는 것들. 당신은 외로운 순간, 못 견디게 쓸쓸한 순간 무엇으로부터 위안을 얻는가? 가족. 가장 가깝다는 가족조차 나에게 상처가 될 때, 그 때는? 말은 못해도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고, 가르랑거리는 소리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줄 반려동물이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그게 고양이라면 더할나위없이 좋겠다.
고양이가 전하는 위로에 관한 책. [러브 인 뉴욕] 따스한 기운이 번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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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히 전해지는 우리 삶의 이야기 러브 인 뉴욕. 고양이 프루던스를 매개체로 긴 긴 매듭이 풀리워가는 여정이 힘겹다. 나는 아직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았는데 섬세한 화법이 반려 동물을 키워본 이들만이 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초반부에 지리하리만치 섬세한 필체는 답답함과 궁금증을 유발하여 나로 하여금 안절부절하게 한다. 책을 읽어나가며 우리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라 잔잔하면서도 애잔하게 다가온다. 14년간 딸 로라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바친 젊은 엄마 사라, 6월의 폭풍우(안전을 가장한 재개발)로 인해 자신의 집을 잃고,가장 소중한 딸을 잃고 , 아니 삶의 모든것을 잃었다. 그 폭풍의 현장에서 사라의 말처럼 로라가 자신에게 기대어 왔다면 아마 포근히 안아 주었을것이다. 우리 인생이 참 그렇다,바로 그 시점 그 순간에 한 쪽 팔을 뻗지 못하여 모녀는 돌이 킬 수 없는 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삶을 마감하며 맡겨진 프루던스로 인해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게 되는 로라. 만델바움 부부,고양이 허니,엄마 사라가 만들어준 로라의 사랑하는 가족말이다.
재개발,실직,싱글맘 아주 이슈가 될만한 소재로 이루어진 작품이면서도 작가는 직설적으로 이 문제를 들추지 않는다.
15년이 지난 현실에서 또 다시 그 악몽이 벌어지고 있다,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뉴욕이라는 도시도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도시인 모양이다.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뉴욕을 설정하여 자본주의의 논리를 더욱 실감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힘겹게 살아 왔기에 화폐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고,어찌보면 돈에 노예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얼핏 스쳐 지나간다. 조금은 여유있게 오늘을 즐기며 진정한 노동을 하고 싶다.
프루덴스를 통해 반려동물과 인간과의 교류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만델바움씨와 로라에게의 허니의 존재,사라와 프루덴스. 사라의 바람대로 프루덴스는 로라에게 그들과 함께한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여 주었다.
며칠전은 우리의 최고 명절인 설날이었다. 시끌벌쩍한 이 명절이 모든이들에게 축복의 날이 아님을 인식한지 이미 오래다. 만나면 반가워야만 하는 관계가 더욱 서먹하고 힘겹고 부담 스러워지는 인관관계.. 그 관계라는 것이 정말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발생함을 알기에 더욱 안타깝다. 우리 모두에게 프루덴스와 같은 매개체가 있어서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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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고양이 프루던스의 러브 인 뉴욕
안녕하세요~! 최근 그래도 뜸하던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올리려고 노력중입니다! 상업적용도이던 그냥이던 제 블로그 꾸준히 찾아주시고 이웃추가 해주시는분들도 많이 늘고있고 제가먼저 다가가 싹싹하게 코멘트 달지않아도 먼저 용기내어 말걸어 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있어서 최근에 블로그 하고 나서 처음으로 블로그를 한다는것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어요
항상 다이어리나 일기장을 사면 10장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제가, 이렇게 블로그, 카페에 열씸히 글을 쓰고 많은 분들과 소통하게 된것을 보니, 감개무량 하기도 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카페에 최신글을 보거나, 이웃분의 새로운 글을 읽거나 하면서, 일상에 활력소가 되니, 참 소통이라는것이 중요한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낮잠자다가 일어나서인지 조금 오글오글한 멘트들을 하고있네요 양해부탁드려요 ㅎㅎ
2주전?3주전 ?받게된 러브인 뉴욕입니다. 사실 처음 서평단 신청할때 막연히 소설 책이라고 야옹이들이 나와서 모험하고, 탐정냥이들이 나오고 왠지 제가생각하는 뉴욕은 셜록홈즈 같은 탐정들이나오고 다리가 길쭉한 미녀들이 시크하게 걸어다닐것 같은이미지라
읽기도 전에 판타지같은 아기자기한 이야기일거라고 혼자 단정지었었네요 ㅋㅋㅋ
![]() 설전에 받은 기억이나네요 ㅎ 택배 도착샷입니다. 너무너무 잘받았어요 저희동네 우체국택배 아저씨가 그렇게 친절한줄은 몰랐어요 ㅎ 도무지 아무리 생각해도 올물건이 없어서 뭐인지 여쭈어봤더니 "좋으시겠어요~ 책인것같은데 이벤트 당첨되신것같아요~"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ㅎㅎ ![]() 여튼 부랴부랴 뜯어본 러브인뉴욕 종이에 곱게 쌓여서 공지사항을 올려주셨어요 ![]() ![]() 연출로 이쁘게 한번 놔봤는데 카니털이 장난아니네요... ![]() ![]() 표지의 빨간 목줄을한 귀여운 삼색냥이가 레코드 판을 밟고있어요 몽실몽실한 고양이털 특유의 질감을 잘살린 표지 일러스트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평후기가 익숙치 않아서 조금 어색합니다. ㅜㅜ 프루던스는 사라를 기다리며 사라와 처음만난순간을 회상합니다. 프루던스가 아주 작은 어린고양이 시절, 비오는날 길을 잃고 공원에서 헤메이는데, 어떤여자가 다가와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프루던스는 경계심을 세웁니다. 사라는 그런프루던스에게 프루던스라는 노래를 불러줍니다. 프루던스는 신중한, 조심성있는 이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신중한 우리 프루던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기를 바라는 사라가 처음 프루던스에게 불러준 노래입니다. 프루던스는 그런 사라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갑니다. 지난 기억을 회상하면서 벌써 5일이나 말없이 집을 비운 사라를 프루던스는 계속 창밖을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부분에서 프루던스가 너무너무 애타게 사라를 기다리고있어, 대체 사라는 어디가고 너혼자 그렇게 기다리고있는거니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라는 더이상 프루던스의 곁으로 돌아올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엾은 프루던스, 프루던스는 사라대신 사라의 딸 로라가 낮선 남자와 집에 찾아와 집을 마구 뒤지고 다니는것을 겪게됩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사라가 죽었다는것을 몰랐어요 ㅜㅜ 나중엔 프루던스가 사라를 너무 애타게 기다리고 찾고 그리워하는것을 보며 죽었다는걸 막연히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프루던스는 결벽증처럼 청결을 유지하기 좋아하는 로라의 집으로 가게됩니다. 로라,프루던스는 사라라는 접점으로 이루어저 둘다 소중한 사라와 이별을 하게되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둘은 서로 낮선사람 낮선환경 소중한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겪습니다. ![]() '인간들이란 참 이상해.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숨기는걸까?' 프루던스가 생각합니다. 도입부에 나오는 프루던스의 말입니다. 후반부까지도 사실 저는 그냥 크게 깊은 뜻은 없는 소설중하나일꺼라... 사실 생각했었는데 선입견이라는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어요. 읽다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것인지 알려고 조급해 했거든요 ![]() 책을 끝까지 읽었을때 알았습니다. 소통이라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누구든 생각을 유추할수는 있어도 생각을 알수는 없어요 정말 독심술이 없는 이상... 프루던스는 예고되지않은 이별에 많이 당황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떨어지게 될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은 사라에게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통,대화가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는 이책을보고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사람간에, 동물과 사람간에 소통이 이루어 저야 한다는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숨김없이 서로간에 이루어 저야 하는 아주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숨기고, 진심을 숨기고 그진심을 방어하기위에 상대에게 날카로운 혀로 상처를 입히고 합니다. 오해는 오해로 쌓아두는것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그냥 내버려두는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무자비한 행동인것인지를 이책의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렸을때 끔찍한 일을 겪었던 로라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배웠던것은 최대한 자신을 방어하는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솔직히 현대인들도 본심을 제대로 말하고 남들과 소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것을 제대로 꼬집은 듯했습니다. 저도...부모님께 항상 제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나 어떤날이면 다정하게 밥먹으러 가자는 말이나 한번도 제대로 꺼내본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말을 했을때 돌아올반응이 쑥스러워서 라고 생각했던것같은데 알고보니 그냥 부모님께 ... 자식으로써의 고집으로 머리숙이고 들어간다는 생각을 했던걸지도 모릅니다. 오해는 오해를 낳고, 로라도 사라도 둘다 서로에게 오해를 한체 변명도 사과도 하지않은체 그렇게 무심하게 세월만 지나간뒤, 왜 서로에게 말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을까, 너무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 사진의 페이지는 제가 읽는 중간중간 울컥 했던 내용인데... 사라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힘들어하는 프루던스입니다. 너무너무 애잔해서 코끝이 찡했어요... ![]() 끝으로... 오랜만의 주말인데 내일 부모님이랑 다정하게 손잡고 막창에 소주나 한잔 하러갈까 싶어요 최근들어 점점 소원해지는 부모님께 ... 이책도 한번 읽어보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항상 제가 부모님께 했던말이 거의 농담조로, 말은 안해도~ 다~~~~그렇다! 하는말인데... 거의 내용의 80%가 압축된 말이에요 ㅋㅋ 말은 안해도 부모님들 생각하고 있다, 사랑합니다? 그런 뜻이 함축된말은데 중요한 단어는 다 쏙 빠젔죠?.... 저보다 심하신분들 분명히 더 많으실거에요... 동물소설이라고 저처럼 선입견 가지시는 분들... 없이 동물 별로 안좋아하시는 분들께도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심을 숨기는게 너무 습관이 되어버려 점점 하고싶은 말과는 다른방향으로 자꾸 향하는듯 해요... 차가운 겨울 이제 곧 따스한 봄이 찾아오는데 그동안 쌓아두었던 오해나, 혼자서만 꽁하니 숨겨뒀던 이야기들 건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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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과 교감한다는 내용은
어쩌면 신파에 가까울 정도로 흔한 포맷일 수 있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그리고 한 두 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할 때는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 갈수록 고양이 역할과 그 관점에서 보는 시선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고양이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핵심 인물의 갈등과 해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무엇보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교감을 한 대상이다.
그 고양이의 시점으로 서술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와는 별개로 고양이 관점의 서술 형식은 신선한 각도로 인물들을 관찰해보는 재미를 주며,
인물과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낯설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 어느 날 갑자기 가족 이상이었던 주인 '사라'는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곧이어 그녀의 딸과 사위가 나타나 자신과 주인이 함께 살던 공간을 정리하고,
사라의 짐을 챙겨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양이 프루던스는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에 당황한다.
그럼에도 영원한 친구이자 가족 '사라'를 기다린다. 자신을 데려 온 사람이 다름아닌
그녀의 딸이기에, 프루던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사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다시 함께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사라'의 딸 '로라'는 엄마와 많이 닮았지만 둘 사이는 몹시 건조하며, 두터운 벽이 존재한다.
레코드샵을 경영할 정도로 음악을 즐겼던 사라와는 달리 로라는 음악을 거부한다.
고양이에게도 거리감을 유지한다.
닮은 듯하지만 다른 그녀에게 프루던스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대신 사라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로라의 남편 '조시'는 프루던스와 친해지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여러 노력 끝에 결국 프루던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음악으로 교감했던 그의 장모 '사라'와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본다면 이야기의 입체적인 전개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사라와 로라의 과거를 이야기를 할 때는 프루던스의 시선에서 벗어난
전지적인 작가 시점을 택한다.
'고요함'을 병적으로 추구하던 엄마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맞이하면서
'사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선택하게 된다.
모처럼 허락을 받아 떠난 여행에서 열차를 잘못 타면서 맞게 된 인생의 전환점은,
우연하게 들르게 된 중고품을 파는 가게, 이 책의 제목이자 상징적 의미인
'러브 인 뉴욕(Love in New York)'에서 시작되었다.
사라는 이 가게를 통해 일생을 이어가는 우정의 주인공 '애니스'를 만나게 되었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을 얻게 되었다.
그 시작점이 바로 '러브 인 뉴욕'이었다.
만일 그녀가 제대로 기차를 탔더라면 그녀는 다시 그 고요 속으로 빨려 들어가
봉인된 채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녀는 그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법처럼 이끌린 상황에 겁먹고
도망가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음악으로부터, 그보다 더 소중한 그녀의 딸 로라로부터.
그러나 로라가 14살이 되던 어느 날.
그들은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는 가족만큼 사랑했던 이웃,
'만델바움'씨와 그의 고양이가 있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렀던 사라와
순수하게 사랑할 줄 알았던 로라는 '고양이' 사건으로 인해 점점 멀어지게 된다.
'프루던스'와 '사라'의 만남은 우연이기도 하지만, 사라가 로라에게 사과하기 위한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모녀 간의 사랑과 같은 개인의 사랑에서,
그 사랑을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더 큰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라의 남편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 낸 약자에 대한 박애의 '사랑'이 그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태동, 확산이 어울어진 그 곳이 바로 '러브 인 뉴욕'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만도 같은,
자본주의의 마수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의 과정을 따라 가노라면
결코 책장이 가볍게 넘겨지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의 인물과 사건은 허구적 상상력일 지라도
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무겁게, 아프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우린 희망을 가져야 한다.
거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노래 불러야 한다.
겨울은 지나갔지
눈도 녹아 내렸고
모든 것이 화창해
그리고 모든 게 환히 빛나고.......
지금 사라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우리가 서로를 발견했던 날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다. 사라의 노래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아름다운 것, 우리 삶의 다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한꺼번에 다같이 다가오는 것과 같다. --- p.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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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프다... 난 항상 사랑을 그렇게 정의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사람과 동물의 사랑은 언제나 아프게 끝이 난다. 러브 인 뉴욕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뮤지컬 <러브 인 뉴욕>이 떠올랐다. 그 이야기인가? "러브 인 뉴욕 (그웬 쿠퍼 지음, 김지연 옮김, 샘터 펴냄)"은 고양이 푸르던스의 마음을 읽는 시간들을 담아낸 경청과 공유, 이해의 시간을 제공한 책이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어른이다. 그냥 알 수 없는 그 묘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길냥이들을 만나도 먼저 놀란 표정을 지어 그들이 나를 무심코 지나치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푸르던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고양이의 묘한 표정인지 복잡미묘한 그들의 눈빛인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나의 감정이 그들에게 이입되어 그들의 눈을 통해 나의 복잡미묘함을 엿보고 겁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러브 인 뉴욕을 읽는 중 만난 길냥이들과 나는 요즘 인사를 나눈다. 멀리서 그들이 보이면 '야옹~'소리를 내며 다가간다. 그렇게 나는 고양이들과 소통을 꿈꾼다.
마르고, 다지증을 가진 깜찍한 양말을 신은 푸르던스는 사라와 3년 넘게 가족으로 지낸다. 어쩌면 푸르던스가 사라를 사라가 푸르던스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어느 한쪽이 선택한다고 인연이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 사라와 푸르던스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이별을 마주했을 때 푸르던스는 사라를 걱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본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사라의 딸 로라와 그녀의 남편 조시가 사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집에 방문했을 때 푸르던스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더 이상 이곳이 사라의 공간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사람처럼 푸르던스는 상실감과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며 몸도 마음도 아프다. 사라와 음악을 듣고, 밥을 나누어 먹고, 둘이 함께 공유할 것이 많았던 그때가 그립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는 시간이 푸르던스에게는 외로움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을지 몰라 마음이 아팠다. 엄마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로라가 엄마를 이해하는 시간, 조시와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고양이의 눈으로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러브 인 뉴욕은 변화와 이해, 경청과 공유 라는 낯설지만 익숙한 감정을 배우는 시간을 내게 선물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를 보는 그 눈이 어쩌면 '내가 널 이해한다. 잘 견뎌내고 있구나.'라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푸르던스처럼 내 마음을 읽고 있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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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에 나오는 고양이만큼이나 슬픈 눈을 가진 고양이가 보인다. 이 고양이는 누구를 이렇게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창문의 그림자가 바닥에 있는걸 보니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있는 날인가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느낌도 따사로운 햇살만큼이나 포근한 느낌일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고양이와 햇빛은 정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표지에 있는 고양이의 눈빛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LP들이다. 지금은 만날수 없지만 학창시절 용돈을 모아 샀던 추억이 있어 유난히 관심이 간다. 이렇게 표지에 많은 LP들이 있는걸로 보아 이 책의 내용과도 많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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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증 브라운 태비'. 호랑이 무늬를 가지고 있으며 발가락이 다른 고양이들보다 많이 있는 프루던스. 프루던스는 이런 자신의 발가락 중에 어떤 것이 남는 것인지 모르겠고 하나같이 쓸모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가족들과 헤어져 거리에서 생활하던 프루던스와 사라의 만남. 인간들에게 발견되는 것이 싫어 숨어사는 길고양이 프루던스가 이제 누군가의 손길을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인간들에게 쫓기며 내지르는 고함처럼 위험하거나 겁나는 소리들만 듣던 프루던스에게 사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노래를 듣고 인간을 피하던 프루던스가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람들끼리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과 고양이가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은 다르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로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프루던스를 '사교적인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하면 '프루던스는 올바른 예의를 갖춘 인간들하고만 놀아요'라고 말해야한다고 생각하는 프루던스.
사라가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서 난 아직도 무척 화가 난다. 하지만 언젠가 사라를 다시 보고 싶다는 바람이 그보다 크다. 사라는 지금까지 내가 사랑했던 유일한 인간이니까. - 본문 45쪽
이렇게 마음을 열고 동거인이 아닌 가족으로 사라와 함께 살고 있는 프루던스. 누구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사랑하는 사라가 아무말 없이 며칠째 집에 오지 않는다. 함께 살던 곳에는 사라와의 추억만이 가득하다. 며칠 뒤 찾아온 것은 사라가 아니라 사라의 딸 로라와 그의 남편 조시이다. 그들조차 사라가 왜 오지 않는지 설명해 주지 않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치우고 있다.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체 사라와 살던 곳을 떠나 로라와 제시의 집으로 가게 되는 프루던스.
고양이가 바라본 인간들의 모습이 있다면 이제는 사라와 로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모녀지간이지만 너무도 다른 두 사람. 좁혀지지 않는 두 사람의 거리. 어쩌면 형식적인 모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삶이란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중 한 명이고 로라 자신은 삶이란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늘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사는 자신과 달리 엄마는 즐거움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더 이상 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상반된 생각을 가진 두 사람. 하지만 프루던스가 혼자 남겨진 이유로 인해 로라도 엄마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프루던스를 보며 엄마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알게 되는 로라.
만약 누군가를 기억한다면 그들은 언제나 나와 할 것이라고 사라가 말했을 때,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사라는 지금 이 곳에 우리와 함께 있다. 사라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사라가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꺠닫는다. - 본문 472쪽
처음 표지를 보고 따사로운 햇살처럼 우리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라 생각했던 것이 맞다. 사랑하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들. 떠난 뒤에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였는지 알게 되는 조금은 슬픈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된다. 프루던스가 인간의 사랑을 알게 되었듯이 로라도 자신의 소중한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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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어요. 강아지와 다르게 새침하고 때로는 도도하기까지한 고양이의 마음속에는 우리와 많이 닮은 것들이 들어있었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자제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그리워하는 마음도 담고 있어요. 고양이 프루던스를 통해서 본 세상은 냉정하지만 여전히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살아본 만한 곳이었어요.
프루던스와 함께 살던 사라는 어느날 떠났어요. 그녀의 딸 로라가 엄마의 짐을 정리하러 오고, 프루던스는 사라와 이별을 깨닫게 되지요. 자신이 온통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던 존재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보면..정말 답이 안 나와요. 막막하고 슬프고 기가 막히고, 원망까지도 느끼게 되겠지요. 고양이 프루던스는 웬만한 사람만큼 섬세했어요. 그것의 느낌과 생각을 쫓다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삶이 나와요. 사라와 프루던스가 주인공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사라의 딸 로라와 그녀의 남편 조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네요. 사라를 추억하는 장면도 자주 나왔고요.
나에게 이별을 알리지 않고 누군가 떠난다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황당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거예요. 프루던스가 사라와 이별을 하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받아들이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요. 로라의 집에 가서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모습도 볼 수 있고요. 다른 집에 오게 되면서 첫 5일은 배앓이로 보냈어요. 그만큼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것이겠지요. 로라와 조시의 만남부터 어려움이 닥치는 상황,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도 솔직하게 그려져 있어요. 남편의 실직을 받아들이는 모습, 그 안에 숨어 있었던 로라의 과거 상처들이 하나씩 들어나면서 소설의 재미는 더해가지요.
로라와 사라의 갈등과 그 원인도 조금씩 드러나요. 그들이 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사소한 것에 오해하게 되고 그것이 아픔이 되어 관계를 망치는 과정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로라가 조시를 떠나게 되지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그녀의 상처는 조시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렵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소지으면서 책장을 덮을 수 있었어요. 어렵고 아픔으로 가득한 세상이라도 한번쯤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발견했어요.
저는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해요. 더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반응 덕분에 더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고양이는 웬지 냉정하고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듯해 보였어요. 눈빛이 무섭기도 했고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후다닥 도망가는 도둑고양이가 살짝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의 마음이 더 깊고 고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람을 더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가까이 오기 어려웠을 거란 생각도 했고요. 작은 것에 감동하고, 소소한 것에 토라지는 모습도 귀여웠고요.
돈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로라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라도 로라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충분히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로라는 돈 때문에 더욱 소중한 걸 놓치지 않았어요. 그녀는 현명했어요. 왜 엄마가 죽은 후에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정말 안타까웠어요. 살아있을 날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뒤로 미루어 둔 사과와 대화와 타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더 많은 대화시간을 가지면서 다가가고 싶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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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고양이를 보면 눈빛으로 무언가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고양이란 존재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마음을 읽는 고양이 프루던스', 소재 자체가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고양이에 대한 책이라면 일단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기에, 이 책 또한 마찬가지의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어머니 사라와 딸 로라, 남편 조시. 이 책에 주로 나오는 사람들은 고양이 프루던스가 바라보는 대상이다. 아기고양이 프루던스는 공사 현장에서 사라를 만났고, 그녀와 함께 생활해왔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는 나타나지 않고, 로라와 조시가 집으로 와서 모든 물건을 정리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라의 물건은 정리되어 일단 로라의 집에 가지고 온다. 하지만 고양이 프루던스가 보기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로라는 이 상자들을 들여다보며 나와 함게 사라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 걸까? 그러면 사라가 왜 돌아와야만 하는지 알 수 있을텐데."(88쪽) 아무도 프루던스에게 사라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프루던스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프루던스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만 인간에게 말을 할 수는 없다. 로라가 "프루던스는 사실 사교적인 고양이가 아니예요."라고 조시의 누나에게 말할 때, "프루던스는 올바른 예의를 갖춘 인간들하고만 놀아요."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화가 치민다. 목소리도 예쁘지는 않다. 사라의 말에 따르면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생선 장수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단다. 생선장수 목소리를 가진 고양이 프루던스,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며 그들의 행동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하며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하지만 책은 프루던스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펼치지 않는다. 프루던스가 백합을 먹고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에는 로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로라의 속상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가슴 뭉클해지는 느낌이다. 나또한 고양이 프루던스가 얼른 깨어나기를 내심 바라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 몰입되어 함께 안달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을 읽는 묘미였다.
저자가 고양이에 대해 섬세하게 관찰하고 글을 썼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 꽤나 많았다. 왜 고양이들이 물을 자꾸 쏟는지,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반응하는지,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 쉽게 적응하지 않았던 일 등등 고양이 프루던스의 생각을 통해 우리집에 자주 드나드는 길고양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또한 로드킬 당한 아기고양이의 머리만 흔들거리던 장면을 보며, 나 또한 보았던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고양이들과의 기억이 다양한 사람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소설이라 생각된다.
얼마 전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었다.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인간을 바라보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거기에 빠져들어 읽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묘사가 탁월했다는 것이 오히려 이 책 <러브 인 뉴욕>의 초반에 몰입을 약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고양이 이야기라는 점, 다양한 시선으로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보게 된 점 등 이 책은 읽을수록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으며 마지막에 허무한 마무리를 느꼈다면, 이 책은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안타까움과 애잔한 느낌이 교차되며 내 심금을 울리는 묘미가 있었다. 처음에 몰입되는 속도는 아주 느렸지만, 마지막으로 향해갈수록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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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동물들을 꽤나 무서워하기에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도는 낮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쉽게 볼 수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한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졌음을 나 스스로도 느끼는 요즘이다. 프루던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프루던스는 꼭 만나고픈 고양이.
이 책은 고양이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아기 고양이 프루던스는 맨허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공사현장에서 사라를 처음 만나게 된다. 사라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자신이 간택해야할 인간임을 깨닫고 그 후 3년이라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낸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사라와 관계가 좋지 않은 딸 로라가 남편 조시와 함께 상자들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프루던스는 사라와 함께 한 이 공간에서 사라를 기다리고 싶지만 자신의 운명이 그렇게 되지 않음을 예감한다. 결국, 프루던스는 로라와 조시가 함께 사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야기 초반부는 책장이 쉬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사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프루던스의 환경이 바뀌는 부분이 조금은 지루하게 보여지기도 했다.
중반부부터 조시의 해고통보,사라와 로라의 관계가 소원해진 까닭, 로라와 조시의 부부갈등 등의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그 모든 문제를 프루던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깨달아가는 과정은 지루하게 읽히던 초반부와는 달리 이야기에 빠져들게끔 되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간다. 그 속엔 분명 기쁨, 슬픔, 오해등등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채 살아간다. 그러면서 소원해지는 관계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프루던스처럼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있다면? 이란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동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게 이 책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에게 주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얀 네 발을 가진, 갈색 줄무늬를 가진, 녹색 눈망을 한 프루던스. 따스함을 준 너를 잊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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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들더라도 꼼꼼히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섬세한 묘사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분위기 차이까지 감지해가며 한 자 한 자 놓치고 싶지 않은 책! 프루던스를 만날 수 있었던 <러브 인 뉴욕>이 그런 책이었다. 초록색 눈을 동그랗게 뜬채 이쪽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은 빨리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간절하다. 얼마나 수다스런 고양이기에 500 페이지에 가까운 두께를 능히 소화해낸다는 걸까?
대중 매체를 통해 만나는 뉴욕은 미국의 주요 도시답게 화려하고 번잡스럽다. 금융 중심의 월가와 브로드웨이 42번가, 센트럴 파크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고층 빌딩과 복잡한 거리를 오가며 바쁘게 살아가는 뉴요커들의 삶은 이따금씩 멋진 이미지로 포장되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할렘 가 역시 뉴욕이다. 인종차별과 마약상, 강력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 무법천지의 뉴욕 거리를 혼자서 활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1960년대 뉴욕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도 방화범과 마약 밀매업자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사라'의 레코드 가게가 있던 A 애비뉴 9번가는 달랐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허물없이 어울리고 이민자들과 창녀, 흑인과 경찰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곳. 사라는 어린 '로라'를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세상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로라만 있다면 음악도, 디제이가 되려던 꿈도 접었지만 지금처럼 레코드 가게를 하며 '애니스'와 '만델바움 부부'처럼 좋은 이웃들과 살아가는 것도 행복하리라. 고양이 '프루던스'는 말도 없이 사라진 사라를 그리워하며 '로라'와 '조시'가 사는 집에서 그녀의 흔적을 더듬는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한 사라의 물건이 담긴 상자를 헤집으며 그녀의 냄새를 추억하는 모습은 사람이나 고양이가 절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랑이 두 발과 네 발을 구분할리 없으니까. 로라는 프루던스가 사라의 물건들을 끄집어낼 때마다 마주쳐야 하는 유년의 기억들로 혼란스럽다. 사랑하면서도 죽도록 원망했기에 사라의 죽음 앞에서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않았던 딸이 아니었던가! 가난때문에 아무 것도 지키지 못했던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지독한 일벌레가 되어야했던 자신을 남편조차 이해할 수 있을까? 강아지를 키우는 날이 곧 집을 나가는 날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남편의 협작에(?!) 의해 달콩이를 키운지 두어달이 넘었다. '허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프루던스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로라처럼 나역시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런 가족이 되어버렸으니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프루던스가 없었다면 사라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으며 목숨을 다해 지키고 싶어했다는 걸 로라가 깨달을 수 있었을까? 프루던스의 말처럼 인간은 때로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여서 서로 좋아하면서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침묵으로 상대를 고문하기도 한다. 왜 후회는 늘 한 발짝 늦게 찾아와 돌이킬 수 없는 아픔으로 삶을 후려치는걸까?... 당장이라도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말해놓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크레인을 몰고온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이 빼앗은 건 집이 아니라 빼앗긴 자들의 삶이자 전부였기 때문이다. 돈 없고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함부로 다루어져도 좋다는 말인가. 시장이라는 인간이 자본의 편에 서서 가난한 시민들을 사지로 몰아넣어도 된다는 말인가... 죽어가는 친구의 머리맡을 지키는 심정으로 삶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사라의 참담함 앞에서 차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잠도 못 자고 일에 매달리며 자신의 감정을 숨긴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온 로라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동생을 잃고 말문을 닫아버린 엄마를 벗어나 따뜻한 가족을 갖고 싶었던, 하지만 결혼 삼 년만에 혼자서 딸을 키워야 했던 사라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었다. 사라가 '러브 인 뉴욕'에 가지 않았더라면 삶은 달라졌을까?... 로라가 유년의 상처 앞에서 더이상 물러서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로라와 사라에게 용서하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프루던스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랴. 누군가를 기억한다면 그들은 언제나 나와 할 것이라는 걸 알려준 사라의 말처럼 나역시 그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하얀색 양말을 신은 것처럼 네 발이 하얗고 검정색 줄무늬를 가진 도도하고 새침한 프루던스를...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랑스럽게 노래하던 사라와 로라의 그때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