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릴 적,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학생이고 열다섯이었던 그 어떤 날 비 오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괜시리 우울해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날들이 내게는 많았다.
슬퍼야만 했고, 아파야만 했고, 때로는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신나야만 살아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하루하루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오래된 낡은 서랍 속의 기억들로만 자리잡고 있었던 시간들이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를 통해 다시금 생기를 머금고 되살아났다.
지혜롭지 못했지만, 너무나도 어설펐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충만할 수 있었고 가슴 벅찰 수 있었던 날들을 떠올리며 멋쩍은 미소를 짓게 하는 책, 바로 그런 책을 만난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여중생들의 마음을 최설 시인은 가만히, 그리고 끝끝내 섬세한 눈길로 바라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던가, 시인이 자세히 바라본 그들의 세계 속에서 소녀들은 마음껏 수줍어하고, 설레하고, 마음껏 울고있다. 자신의 성장을 바라봐주는 따뜻한 어른의 시선. 그 시선으로 인해 읽는 이마저 안심하고 감사하게 되는 시집,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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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창비 청소년 시선의 44번째 선물,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 제목과 표지그림부터 뭔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거쳐온, 그리고 내 딸이 걷고 있는 길을 보여줄 것 같은 느낌. '미쳤다'에서 툭하면 이 말을 내뱉는 딸아이의 모습이 그려졌고, '엄마 is 뭔들'에서는 그런 딸아이를 닦달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생각 많은 딸아이의 모습이 '발걸음'을 통해 드러나고, 그런 딸아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교육부 장관'에 드러났다.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자꾸만 나와 딸의 모습이, 생각이, 서로를 향한 위로와 희망의 말이 읽혀서 계속해서 손이 가고 마음이 갔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딸의 마음에 노크를 하고 싶다면, 그리고 함께 눈을 마주보고 싶다면 그 '시작'은 '핑크'다'.
* 출판사에서 해당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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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딱 여중생이다.
시집은 잘 읽지 않는다. 문학적 감수성이 바닥을 치는 내게 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길게 늘여 쓰는 이야기를 짧게 줄인 글, 노래 가사처럼 리듬감 넘치는 글, 함축적 의미로 꽉 들어찬 심오한 글... 시에 대한 나의 편견은 이렇다. 아이들과의 수업 활동을 위해 읽는 몇 편의 시를 제외하면 내 손으로 시집을 골라 구매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내가 내 손으로 선택했다. '중학생의 이야기'라는 소개글에 고민없이 선뜻 택했다. 중학생인 큰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이 책을 읽고 나면 중학생 딸에 대한 이해와 교감이 좀 더 용이할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 찼다. 책은 쉽게 읽혔다. 시의 특성상 글이 짧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내가 생각하는 딱 그런 중학생들의 이야기였고, 엄마인 나와 중학생인 딸 사이에서 평소에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했다. 반면에 드러나지 않는 주변 중학생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져 있기도 했고, 상처 받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태연하고 당당한 태도로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가 가슴 아리게 전해지기도 했으며, 나이 답지 않게 속깊은 아이들의 마음이 보여 안타깝기도 했다. 첫사랑 선배, 선생님의 이야기로 가슴 떨리는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여중생의 일상 이야기를 실감나게 시로 표현했다며 공감의 끄덕임을 남발하기도 했다. 혼자만 읽고 덮기엔 너무 아쉬워 기어이 중학생 딸을 불렀다. 인상깊었던 몇 작품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생활이라며 공감하고 신나게 읽어내려가리라 믿었건만 지나칠만큼 무덤덤하고 실상은 이보다 더 하다며 뭘 모른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딸의 모습에 당황했다. 글쓴이가 중학교 교사로 오랜 기간 재직하며 지켜봐 온 아이들의 솔직하면서도 천진한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따뜻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어른이 원하는, 어른들이 보고싶은 아이들의 모습인 건가 싶어 혼란스러워졌다. 편부 가정에 대한 편견에 맞서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핑크 공주, 다문화 가정을 드러내기 싫어 엄마와 거리를 두면서도 한편으로 늘 미안해하고 신경쓰는 츤데레, 첫 사랑 선생님의 스케줄을 꿰고 있는 천진난만 골수팬까지... 다양한 환경에 놓인 다양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쓰여져 있다. 실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쓰여진 시를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그랬었지 하며 흐뭇하게 웃으려나, 아니면 속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한다고 비웃으려나... 딸아이의 무심한 표정을 본 순간 나 역시 우리 아이에게서 내가 보고 싶어하는 모습만을 잘 포장해서 그렇게 믿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복잡해졌다. 어른이라는 교만함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단정짓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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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중학생의 세계에 살고 있다. 30여년 전의 나는 나의 세계에 몰두하느라 친구들을 둘러보지 못했다. 살고 죽는 문제, 특히 죽음에 관한 우울이 나를 뒤덮었던 것 같다. 중학생 특유의 톡톡 튀는 발랄함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우울이란 감정은 너무나 컸다. 늘 '언니들'과 어울렸던 터라 또래보다 어른스럽게 다녔다. 그것에 좋은 것인 줄만 알았다.
오늘도 나는 중학생의 세계에 살고 있다. 내가 마주한 중학생의 세계는 폭풍 같다. 폭풍 전야 처럼 고요함 뒤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폭풍에 가려진 몽글몽글한 세계를 둘러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핑크 라는 말이 주는 설렘처럼, 최설의 시는 설렘이 가득 담겨있다. 중학생이 느끼는 섬세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반 아이들이 한 명씩 떠올랐다. 거대한 폭풍을 마주하느라 놓치고 있던 중학생 아이들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졌다.
그래, 오는 00이는 먹는 이야기로 흠뻑 젖어있었지. 맞아, 오늘 ㅁㅁ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났었지. 선배가 부르는 소리에 잔뜩 긴장했던 ㄴㄴ이도 있었지. 홍콩 할매 귀신을 부르짖으며 화장실 가기를 겁내했었던 나의 어린 추억까지 소환했다. 아이들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건만, 나의 감각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몽글몽글, 말랑말랑한 세계에 젖어 들어 오늘의 아이들을 다시 본다. 아이들은 오늘도 중학생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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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를 보게 되었다. 직업의 특성상 사춘기- 특히 여중생들의 마음이 궁금한 까닭도 있겠지만, 제목부터가 뭔가 말랑말랑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이 되었을, 가장 먼저 찾아본 시 '핑크공주'는 예상대로의 생기발랄한 톡톡함으로 시작했다가 '핸드크림 발라 주는 엄마 없어도 핑크 로션 꼭 챙기거든 꽃처러 향기 내면서 잘 살고 있어 매일 핑크빛 나는'라는 반전으로 끝맺는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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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작가는 중등 국어 교사이고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문학적인 글을 쓰고 싶은 나로서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시는 참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시 수업을 종종 하고 매년 인쇄소 재본을 통해 시집을 만들고 있지만, 정작 나는 시를 잘 읽지 않고 쓰지 않는다. 또 읽는다 하더라도 동시나 어린이시를 주로 읽다보니 성인 대상의 시가 더 어려워진 면도 있다. 이 시집도 중학생 아이들의 이야기에 눈높이를 맞추긴 했지만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많아 시는 역시 쉽지 않다 느꼈다. 다음은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10쪽 <발걸음> 어둠은 학원 버스 불빛을 달고 길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안개가 자욱하고 컴컴한 밤에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가 지나가면 불빛이 안개를 비추며 길게 보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것을 시에서 불빛을 달고 길어진다고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광경을 표현한 것일까?
30쪽 <D-10> 시험을 앞둔 마음을 표현했다. '금세 닥칠 거라는 걸 너무 잘 생각하면서' 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생활하면서 만나는 부담스러운 일들. 날짜가 남았다 하더라고 어느새 그날은 오고야 만다. 그리고 또 결국에는 지나간다. 결국 지나갈 일인데 우리는 참 마음을 졸인다. 그렇게 몇 차례 마음을 졸이다보면 또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26쪽 <한글날>, 50쪽 <궁금해?> 글 전체적인 모양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 눈에 띈다. <한글날>에서는 산을 이루었다 라는 내용이 있고 글자 배치를 통해 산 모양을 만들었다. <궁금해?>에서는 짝사랑하는 K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담았기에 글자 배치가 K다.
78쪽 <홍콩 할매 귀신> 화장실 청소하시는 할머니를 담았다. 어린 시절 '홍콩 할매 귀신' 아이들 사이에서 꽤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홍콩 할매 귀신'은 그저 방송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넘어서서 현실에서도 어두운 곳을 지날 때면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때로는 동네에서 무섭게 혼내는 할머니에게 홍콩 할매 귀신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버릇 없는 일이다. 홍콩 할매 귀신을 제목으로 삼았다는 것을 볼 때 저자도 나와 비슷한 세대이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