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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은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 안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의 일이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극적이라 많은 이야기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요즘도 끊임없이 내용을 부풀리기도 하고 변질시키기도 하면서 이 일이 소재로 되어 화면과 지면이 확대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는 어느 것이 진실인가 모호해질 때도 있다. 역사란 있는 것을 그대로 제시하고 보는 자들이 판단하면 될 것인데,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사생활 부분에는 자료가 없다보니 추측을 해야 하고, 그것이 개인의 주관이 들어가는 일이 되어 많이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글쓴이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바르게 인식되어야 할 역사, 이것은 확실히 문제가 된다.
역사가 있는 그대로 제시되면 지각을 가진 독자들이 그 속에서 진실을 캔다. 그런데 평가를 내린 내용들이 제시되면 스스로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평가가 들어간 역사나 상상으로 쓴 역사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가지는데 치명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 요즘 드라마 ‘주몽’을 통해 고구려 건국의 시기를 아는 사람들은 소서노와 주몽이 연령대도 비슷하고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로 안다. 그런데 역사적 흔적을 쫓다보면 소서노가 주몽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략적으로 결혼이 이루어지고 왕비의 자리에 앉는다. 그러다 그녀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아들들인 비류,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를 세우는 인물로 나타난다. 즉 나라를 2 개나 세우는 철혈여인이 소서노다. 이것을 드라마에서는 주몽에게 순종적인 여인으로 그려낸다.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적 지식이 가지는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흔히 범하는 잘못이다. 그들이 이렇게 잘못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창작자에 의해 역사를 수용하고 그것을 그대로 역사로 인식하는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문제다.
이 책은 18,9세기 조선의 역사의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영조가 어린 시절 성장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겪었던 역사적인 사실들로 인한 편협한 성격, 그리고 자식은 자신처럼 되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 무리하게 시킨 교육, 그렇게 하여 아들 사도세자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반발하기 위해 태도를 보이는 행동, 아버지의 압박에 따른 견디기 힘든 눌림에 의한 사도세자의 병을 얻음 그리고 광증 등이 그려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궁중에서 가족들의 비극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느끼는 서로간의 불신이다. 사도세자는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는, 그리고 윤리와 거리가 있는 일들을 자행한다. 영조는 아들의 이런 광적인 반발에 왕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되고 결국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조는 성장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숙빈 최씨를 통해 소심과 인내를 배운다. 그것이 그의 삶을 일관하는 자세가 된다. 그리고 사적인 은혜와 공적인 의리라는 두 개의 축으로 자신을 만들며 살아간다. 사적인 은혜의 공간에서는 친소가 분명하게 갈린다. 가까이 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다주는 모습을 보이지만 소원한 자에게는 거리감을 둔다. 이것이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감이 어그러진 상황에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대하는 태도가 된다. 그래서 영조의 감시 아래 생활한 사도 세자가 그렇게 일탈한 삶을 보이고, 옷을 입기가 힘이 드는 ‘의대증’이란 병을 얻게 된다. 그것은 영조를 대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러한 관계가 둘의 사이에 아물 수 없는 틈을 내었고, 그것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이처럼 영조의 성격에 의해 형성된 아픈 관계가 조선 최고의 궁중 비극으로 탄생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회한의 현장을 만든 것이다. 아마 영조는 성격적 의리를 통해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마음으로는 후회를 한 듯하다. 그러기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 정조를 그렇게 보호하며 성장을 지켜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은 영조의 성격적 결함, 그리고 사도세자의 훈육에의 문제점, 사도세자가 느낀 부담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성장, 그리고 광증을 보이는 삶으로 인한 세자에서의 폐위,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게 제시해 주고 있다. 궁중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과도한 부담, 권력자가 느끼는 고충 등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가를 역사의 한 페이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비교적 무던한 성품을 지녔던 어릴 적 사도가 성장하면서 환경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 진다. 그것이 공적인 나라의 일과 관련되어 문제가 되어 나타난다. 사적인 사랑과 공적인 의무 사이에 서로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황이 들어낸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을 이 책에서는 비교적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추려 주고 있다. 나에겐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임오화변의 실상을 다시 재음미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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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아버지와 아들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
영화 <사도>를 보고서 거의 마지막 부분부터 클로징 이후까지 내내 울면서 나왔다. 엇갈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아버지는 미약한 심신 탓에 정치권력의 관계 속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고 아들을 희생시켰고 아들은 바라고 바랐던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그냥 부자 사이였더라면 아들이 죽음에까지 이르렀을까. 왕과 세자의 관계였기에 불미스러운 일을 기어코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내린 아버지. 사도라는 시호를 세자에게 하사한 임금 영조. 이들의 비운은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과 세자였기 때문에 빚어진 것인가.
많은 이들은 영조와 아들 사도 세자의 일을 거론할 때 정치 때문이라 말하며 당쟁 때문에 임오화변이 일어났다고들 한다.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통해서 왕궁 안의 일이기에 쉽사리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말하는 척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비호한다. 영조는 성격적 결함이 있었으며 사도세자는 정신질환자였다고.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거론한 많은 책이 있지만 이 책은 특히 '임오화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하게 한다. 영화 <사도>의 많은 장면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고스란히 겹치게 되는 것은, 이 책이 비슷한 맥락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오화변은 당쟁과 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뭉뚱그려서는 실상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며 여러 차원에서의 접근을 시도한다. 결론은, 임오화변이 일어난 주된 원인은 영조와 세자의 성격적 갈등에 있다는 것. 영조는 특히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을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영조는 개미의 무리를 보면 밟지 못하며 파리가 간장에 빠지면 그것을 모두 건져서 놓아줄 정도로 어진 마음을 가졌지만 신하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과 같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불편한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결백함을 보여주기 위해 식사나 탕제를 거부했다. 땅에 주저앉아 운 적도 있고, 옛집으로 돌아가 며칠씩 궁궐을 비우기도 하고 어린 세자에게 왕위를 내어 놓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그런 아버지에게라도 칭찬의 말 한 마디, 다정한 어루만짐을 기대했을 법한 세자에게 영조는 미움을 드러내기만 했다. 불결한 일이나 불길한 일들을 떠넘기기 위해 세자를 귀씻이의 대상으로 삼았고 좋지 못한 사건은 세자가 처리하도록 하며,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세자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인해 세자는 이상행동을 하게 된다. 칼쓰기, 활쏘기, 말타기, 여자, 음주, 병술, 의술, 잡기 등에 관심을 쏟던 세자는 영조의 질책으로 야기된 병증이 발전하여 의대증, 가학증, 자학증의 정신질환을 보였다. 누구 하나 나서서 세자의 이런 행동을 이야기하지 않던 중, 나경언의 고변 사건으로 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기에 이른다.
사도세자의 어린 아들은 뒤주에 갇힌 아버지가 왜, 무엇 때문에 죽어가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아들을 죽이라 명령하는 임금 뒤에서 사도 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선희궁), 혜경궁 홍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도 세자가 일찍 처리되었어야 하는 이유를 정조 탓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영민한 후계자가 일찌감치 정해졌으니 눈엣가시같은 사도세자는 오래 살려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 뒤주 하나를 가운데 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시각은 엇갈리고 그들의 가슴 속 진실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당쟁 속에 묻혀 있었던 아버지와 아들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이야기가 이제 와 새삼 주목을 받고 널리 회자되고 있을 뿐. 한 왕조의 권좌를 차지하고 있던 왕이었기에 아들에게 더욱 매몰찰 수밖에 없었던가... 엇갈린 아버지와 아들의 시선은 사후에 한 곳으로 모아졌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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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은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 안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의 일이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극적이라 많은 이야기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요즘도 끊임없이 내용을 부풀리기도 하고 변질시키기도 하면서 이 일이 소재로 되어 화면과 지면이 확대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는 어느 것이 진실인가 모호해질 때도 있다. 역사란 있는 것을 그대로 제시하고 보는 자들이 판단하면 될 것인데,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사생활 부분에는 자료가 없다보니 추측을 해야 하고, 그것이 개인의 주관이 들어가는 일이 되어 많이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글쓴이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바르게 인식되어야 할 역사, 이것은 확실히 문제가 된다.
역사가 있는 그대로 제시되면 지각을 가진 독자들이 그 속에서 진실을 캔다. 그런데 평가를 내린 내용들이 제시되면 스스로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평가가 들어간 역사나 상상으로 쓴 역사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가지는데 치명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 요즘 드라마 ‘주몽’을 통해 고구려 건국의 시기를 아는 사람들은 소서노와 주몽이 연령대도 비슷하고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로 안다. 그런데 역사적 흔적을 쫓다보면 소서노가 주몽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략적으로 결혼이 이루어지고 왕비의 자리에 앉는다. 그러다 그녀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아들들인 비류,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를 세우는 인물로 나타난다. 즉 나라를 2 개나 세우는 철혈여인이 소서노다. 이것을 드라마에서는 주몽에게 순종적인 여인으로 그려낸다.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적 지식이 가지는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흔히 범하는 잘못이다. 그들이 이렇게 잘못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창작자에 의해 역사를 수용하고 그것을 그대로 역사로 인식하는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문제다.
이 책은 18,9세기 조선의 역사의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영조가 어린 시절 성장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겪었던 역사적인 사실들로 인한 편협한 성격, 그리고 자식은 자신처럼 되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 무리하게 시킨 교육, 그렇게 하여 아들 사도세자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반발하기 위해 태도를 보이는 행동, 아버지의 압박에 따른 견디기 힘든 눌림에 의한 사도세자의 병을 얻음 그리고 광증 등이 그려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궁중에서 가족들의 비극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느끼는 서로간의 불신이다. 사도세자는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는, 그리고 윤리와 거리가 있는 일들을 자행한다. 영조는 아들의 이런 광적인 반발에 왕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되고 결국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조는 성장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숙빈 최씨를 통해 소심과 인내를 배운다. 그것이 그의 삶을 일관하는 자세가 된다. 그리고 사적인 은혜와 공적인 의리라는 두 개의 축으로 자신을 만들며 살아간다. 사적인 은혜의 공간에서는 친소가 분명하게 갈린다. 가까이 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다주는 모습을 보이지만 소원한 자에게는 거리감을 둔다. 이것이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감이 어그러진 상황에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대하는 태도가 된다. 그래서 영조의 감시 아래 생활한 사도 세자가 그렇게 일탈한 삶을 보이고, 옷을 입기가 힘이 드는 ‘의대증’이란 병을 얻게 된다. 그것은 영조를 대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러한 관계가 둘의 사이에 아물 수 없는 틈을 내었고, 그것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이처럼 영조의 성격에 의해 형성된 아픈 관계가 조선 최고의 궁중 비극으로 탄생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회한의 현장을 만든 것이다. 아마 영조는 성격적 의리를 통해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마음으로는 후회를 한 듯하다. 그러기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 정조를 그렇게 보호하며 성장을 지켜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은 영조의 성격적 결함, 그리고 사도세자의 훈육에의 문제점, 사도세자가 느낀 부담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성장, 그리고 광증을 보이는 삶으로 인한 세자에서의 폐위,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게 제시해 주고 있다. 궁중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과도한 부담, 권력자가 느끼는 고충 등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가를 역사의 한 페이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비교적 무던한 성품을 지녔던 어릴 적 사도가 성장하면서 환경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 진다. 그것이 공적인 나라의 일과 관련되어 문제가 되어 나타난다. 사적인 사랑과 공적인 의무 사이에 서로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황이 들어낸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을 이 책에서는 비교적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추려 주고 있다. 나에겐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임오화변의 실상을 다시 재음미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