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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여성에게 지워진 억압을 의미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이 말은, 시몬 드 보부와르의 저서 <제2의 성>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기존의 문화를 통해서 남자 혹은 여자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이것이 단순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차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남자는 ~’ 혹은 ‘여자는 ~’이라는 규범으로 작용할 때 차이가 아닌 ‘차별’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가 당대 사회에서 기득권의 유무로 구별될 때, 그것은 분명한 차별의 문화일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보부아르는 이 책을 통해서, 서구 문화에서 오랫동안 존속해온 남성 중심의 문화가 지닌 남녀차별의 문제를 본격적인 이론으로 정립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방학을 맞이하여 서가에 방치했던 이 책을 다시 정독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전체 2부로 이뤄진 목차에서, 제1부는 ‘사실과 신화’라는 제목으로 서구 문화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의미 등을 조목조목 해부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1949년으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시점이라, 1부의 내용은 조금은 고리타분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미 다양한 문헌과 이론들을 통해서 남성 중심의 문화가 지닌 실상과 대안이 다양하게 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간 당시만 하더라도 저자는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남성 중심 문화의 폐해와 허구성을 진지하게 입증해야만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리하여 당시에는 여성 차별의 문화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상황을 제시한 후, 그것이 초래된 ‘역사’는 물론이고 ‘신화’로부터 형성된 관념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아닌, 당대 사회를 통해서 제기되는 제2부의 ‘체험’이 저술의 본래 목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성’이라는 제목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주체로 살아가지 못하고, 당대 문화의 관점에서 ‘타자(他者)’로 살아야만 했던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는 1부의 내용이 방대한 분량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던 남성 중심의 기득권에 대한 치밀한 이론적 근거가 필요했음을 역설하고 있다고 하겠다. 전체 2권으로 번역된 이 책에서 ‘상권’은 제2부 ‘체험’의 일부까지 수록되어 있다.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진실한 삶의 주체로서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위한 투쟁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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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재작년인가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열풍. 강남역 살인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그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남녀가 평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믿는 내게 이런 현상은 아주 반갑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의 페미니즘은 잘못되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한다. 분명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면서 밥값은 남자가 내야지, 여자가 몸을 대주면 남자는 이런 걸 해줘야지 등 비뚤어진 관점을 갖고 있는 여성들도 여럿 보았다. 그들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 오류를 범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페미니스트'들에게만 완벽을 기대하는가. 한국의 페미니즘은 잘못되었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미국의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페미니즘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지. 그 안에서도 오류는 존재한다. 세상 어느 '-이즘'도 완벽한 것은 없다. 더군다나 한국같은 후진국에서 이제 막 그 열기를 더해가는 페미니즘에 얼마나 오류가 많겠는가. 무조건 싸잡아서 비판하지만 말고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 적어도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의 기저에 남녀평등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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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도 여자, 내 누이도 여자, 내 아내도 여자, 내 딸도 여자.
이렇게 나와 가장 가까운 여자들이 내게는 있다. 어릴적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을 적부터 내 주위에는 여자가 있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여자가 있다. 그러나 남자인 내가 여자라는 존재를 잘 알고 있을까? 아마 여자가 아닌 한 잘 알기도 충분히 알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제 여자로써의 티가 나기 시작하는 딸 아이를 보면서, 여전히 나와 다른 모습으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내 아내를 보면서 좀 더 깊이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자고 나머지 반은 여자다. 인류의 역사속에 여자의 존재에 대한 사실, 시몬 드 보봐르는 그것을 숙명과 역사로 표현했다. 생물학적 차이를 가지고 태어나는 여자의 숙명과 그 차이때문에 그녀들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여자들의 역사. 남자이기에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함께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신화라는 제목이 붙은 짧지않은 이야기들은 몽테를랑, 로렌스, 클로델, 브르통, 스탕달과 같은 문학가들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기때문에 나에겐 지루했다. 지금부터 한 두 세대전만 하더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들의 삶은 지금과 큰 차이가 있었기에 더욱 멀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어린 시절부터 여성이 겪게되는 정신적, 신체적 상황과 변화를 기초로 한 여성담론은 제법 이해할 만 하다. 그렇게 여성들은 피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심지어 내 아내조차도...
결국 사회참여와 경제력 확보를 통해 남성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도달한 현대의 여성은 이제 여성상위의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요즈음 학교나 학원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남자아이들을 앞서고 있으며 한 마디로 석권하고 있다고 한다. 남자들보다 잘나기로 유명한 한국여성들이 올림픽에서의 성공을 넘어 조만간 사회의 주류를 이룰것리라는 예감이 든다. 여자도 이제 호주가 되고 자신의 성을 물려줄 수 있다. 이제 여성들이 쟁취해야 할 것이 아직도 더 있을까? 가장으로서의 전통적인 남성의 지위가 흔들리는 세상에서 과연 한 세대가 더 지난다면 남자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우월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 '여자'라는 것은, 남자에게는 인생의 한 시기를 신비로운 물음의 화두로 빼곡히 채우곤 했던 경험이 있다. 사춘기 이후로 조금씩 성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순간 여자는 쉽사리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존재하는 특별한 타자로서 인식되고 남자는 신비로운 타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여성을 찬미하기도 때로는 수줍은 모습으로 속내의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여자가 신비한 존재로 추켜세워지는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다. 남자는 갖은 전략을 동원하여 여자를 끊임없이 세계에서 소외된 타자로 전락시킴으로써 여자의 자주적 생존권을 빼앗아 존재를 무력화시키고 수동성의 덫에 걸린, 연약한 여자의 모습으로 영원히 고착시키기 때문이다. 보봐르는 저서를 통해 시종일관 여성들을 향해 남성에게 억눌린 자아를 찾고 스스로의 실존을 회복할 것을 정언적 명령으로 요구하고 있다. 남성과의 타협이나 협력을 일체 배제한 체 여성의 의지로 남성이 만들어놓은 신화와 제도를 혁파할 것을 주장하는 보봐르의 문체는 마치 비타협주의자 내지 과격한 전투주의자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물론 그녀는 남성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여 고립을 초래할 뿐인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이나 남성과의 성적 교류를 혐오하고 회피하여 오로지 동정녀의 운명으로 생을 마치는 (신비주의적) 종교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을 경계한다. 여성과 남성이 갖는 독립성과 상호 의존성이 서로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어느 한 쪽의 자유가 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를 건설하기 위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여성의 자각이라 보봐르는 판단하고 있다. 남성 지배 문화의 폭력성을 거침없이 폭로하는, 때로는 절규에 가깝기도 한 보봐르의 글은 아무런 의식 없이 그저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그러한 상황을 압축하여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여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 무슨 불행인가? 게다가, 여자이면서 자기가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지독한 불행이다." 자각이 모든 대안일 수 없다.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더라도 남녀 평등의 사회는 요원해보이기만 하다. 결론에서 보봐르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성교에 있어서 체위나 행위의 영역까지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라 말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반문한다. 평등은 물질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의식의 차원에서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이데올로기에 노출되고 감염된다. 특히 반성적 자아가 확립되기 이전의 교육이나 환경은 하나의 인간이 갖을 수 있는 성격이나 행동 패턴에 대해 절대적인 변수가 된다. 의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정제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이 여성을 나약하고 내재성에 갇힌 '영원한 여성'으로 매몰시키는 사회적 관습이나 습관ㅡ 가령 여성을 육아, 가사에만 한정시킨다든지ㅡ또는, 페니스를 둘러싼 우월/열등 컴플렉스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봐르는 역설한다. "사내아이는, '우월 컴플렉스'를 불어넣어 주지 않고, 여자를 남자와 동일시하는 습관을 심어준다면 그는 자발적으로 우월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 아이는 나르시시즘이나 꿈 속에서 보람없는 보상을 찾지도 않을 것이다.(p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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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적인 여성해방입문서이다. 그의 분석은 여전히 예리하지만 그 당시의 틀에 갇힌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이 부차적인 지위, '제 2의 성'으로만 인식된다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다. 그러나 그 안의 긍정성을 발견, 또는 의미화하지 못하고 단순히 부정적인 '객체'로만 인식했다.
보봐르는 여성해방을 남성성의 획득, 혹은 남성성으로의 편입 이상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명예 남성'이 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현재에도 남아 있는) 일부의 편향과 연결된다. 읽어볼 가치는 있지만 경직된 사고를 비판하면서 우리의 현실에 맞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내용은 어려운 편이다. [인상깊은구절] 여자의 비극은, 부단히 본질적인 것으로서 자기를 확립하려는 모든 주체의 기본적인 요구와, 여자를 비본질적인 것으로서 형성하려는 상황의 요청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여성의 신분에서 어떻게 인간 존재가 완성될 수 있는가? 여성에게는 어떤 길이 열려져 있는가? 어떤 길들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가? 종속의 한 가운데서 어떻게 독립을 찾아내야 하는가? 어떠한 환경이 여자의 자유를 제한하며, 여자는 그 환경을 뛰어넘을 수가 있는가? 이런 기본적인 문제들이야말로 이제부터 우리가 구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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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페미니즘 이론서의 고전(1949년 출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1,000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제1부는 '사실과 신화', 제2부는 '체험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이 보부아르가 타자화된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명명하고 남성과 '같은' 초월성을 지난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이후의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다른' 차이를 적극 수용해 긍정적인 가치로 전환시키게 된다. 성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여성성과 여성 육체를 찬양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차이의 정치학'을 강조, 이후, 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근대 철학이 보는 이성을 핵심으로 하는 홀로주체성을 강조하다면, 영은 듣는 것과 만남을 바탕으로 하는 서로주체성을 강조한다. 차이를 가진 몸들의 위계서열화를 낳고, 또 그 위계 구조를 일상 생활과 문화에서 부단히 재생산하는 담론들을 그 근본에서부터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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