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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휴가 때 출국하는 비행기에서 모니터 여기저기 뒤적뒤적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예고편을 본 다음 흥미로워 보기 시작했던 영화 "항구의 니쿠코짱!". 30분 정도 봤는데 착륙이 다가와 자꾸 안내방송이 나오는 바람에 다 못 본 아쉬움에 잊지않고 '입국할 때 다시 꼭 끝까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잊을까봐 사진까지 찍어놓고 기억해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모니터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 영화가 보이지않더라구요. 서비스가 중단되어 있어서 정말 너무 아쉬웠습니다. 집에 돌아와 OTT로 보려고 여기저기 검색하다보니.. 원작 소설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으로 보지 않고 책을 얼른 빌려서 읽었습니다. 니시 가나코의 <항구의 니쿠코짱!>. 별점은 5점 만점에 6점입니다. <항구의 니쿠코짱!>은 명랑한 무드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니쿠코 肉子(기쿠코 菊子)와 기쿠린(기쿠코 喜久子) 모녀는 상황과 배경이 너무 좋지않고 어렵지만 밝고 명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호쿠리쿠 항구의 작은 마을의 니쿠코가 일하는 식당 '우오가시'의 주인 사스케(삿산) 할아버지, 어부 젠지씨, 동물을 사랑하는 펫살롱 주인 가네코씨, 열쇠공 마키씨 등 이웃들도 모두 정답습니다. 기쿠린의 사루가쿠 초등학교 친구들인 니노미야, 마리아, 가네모토, 리사, 모리, 아케치 모두 귀엽습니다. 사랑스럽고, 정답고, 귀여운 등장인물들이 허술하지 않게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 웃음을 주고, 감동을 주고, 공감과 안쓰러움의 눈물을 흘리게 해주고,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들을 줍니다. 정말이지 읽는 내내 행복해지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캐릭터들의 면면은 너무 달랐지만 인물들의 구조(앤-기쿠린, 마릴라-니쿠코, 매튜-삿산, 다이애나-마리아, 길버트-니노미야)나 이야기의 분위기(상황이 좋지않지만 시종일관 밝은 무드)에서 닮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앤 셜리가 저의 사랑스런 친구였는데, 이제부터 미스지 기쿠코도 저의 사랑스런 친구로 함께 하려구요. 둘은 구김이 없지만 성숙(애늙은이 같은 성숙함이 아닌 단단한 성숙함)하기도 합니다. 앤도 그렇고 기쿠코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안쓰럽고 동정심을 살 수도 있는 처지이지만 속이 꽉 찬 두 친구는 주눅들지 않고 건강하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통통 튀는 앤과 차분한 기쿠코가 친구가 된다면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저도 같이 삼총사.ㅎㅎ 이야기는 반전도 있습니다. 눈물, 콧물 대잔치 후에 책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책 자체도 너무 귀엽습니다. 표지그림도 귀엽고 책 속 단락을 구분짓는 부분에 삽입된 이모티콘 같은 쪼그마한 그림도 뒤이어지는 단락의 주제에 맞게 적절하면서 굉장히 귀엽습니다. 작가의 말도 참 좋습니다. "소설은, 아무리 온 힘을 퍼부어도 단 한 개의 주먹밥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아니, 알고 있다고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진은 제게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던 작가로서의 밉살스러운 자부심을 깨부쉈습니다. <<항구의 니쿠코짱!>>이라는 이야기는 남는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만두자. 그저 완성한 이야기를, 반짝이던 *이시노마키 덕분에 태어난 <<항구의 니쿠코짱!>>을 사랑하자고 생각했어요. 글을 쓴 제게 모든 책임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이야기를 사랑하는 건 저예요. 이토록 사랑스러운 작품을 저 이외의 누군가가 읽는 이 기적과도 같은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지레짐작'하지 말고 누군가가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려고 해요. 여러분이 <<항구의 니쿠코짱!>>을 읽어주셨다는 사실을 계속 생각하려 합니다."(작가의 말 p.293) *이시노마키와 오나가와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책을 세 권 주문했습니다. 한 권은 소장용, 두 권은 선물용. 화자인 기쿠린은 니쿠코에 대해 속으로 툴툴대기도 하고 허점을 펙폭하기도 하고 조금은 무시하는 투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그게 굉장히 위트있어서 웃음이 나고, 둘 사이의 갈등이나 틈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애정과 사랑으로 다가와서 좋았습니다. 둘은 서로 아주많이 아끼고 귀여워하고 사랑하는게 보였습니다. 책을 읽고난 다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아끼는 것, 귀여워하는 것이 다 똑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귀여운 두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아끼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이 책은 아마 저의 인생책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거창한가.. 아니면.. 이 책은 아마 저의 올해의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책갈피♧ -니쿠코가 없는 방은 한색이다. 니쿠코가 둔 촌스럽고 화려한 물건들은 그대로인데, 주황색이나 빨간색이나 노란색이 얌전해지고, 대신에 파란색이나 보라색이나 까만색이 힘을 내뿜기 시작한다. 색이 시간에 따라 주인공을 교체한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았다. 난색과 한색은 다 능력이 있다. 세계를 획실하게 물들인다.(p.42) -니쿠코는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것도 서툴다. 상대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분위기가 이상하게 꼬이지 않는지,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첫인사도 제대로 안하고서 성큼성큼 남의 영역에 발을 들이민다.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분위기를 읽는다거나 지금 상황을 확인한다거나, 니쿠코의 머리에는 그런게 없다. 누구 앞에 설 때도 언제나 전력으로 '니쿠코'다.(p.43) -니쿠코와 있으면 우리 관계가 꼭 연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니쿠코는 여자, 그것도 좀 귀찮은 여자이고 내가 바쁜 남자 같은 느낌이다.(p.75) -어린이의 신이 와서 어린이인 채가 좋은지 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테고, 어른의 신이 와서 어른이 되고 싶은지 물으면 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는 어느 쪽에도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에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어느 쪽에나 고개를 젓는 것은 결국 똑같은 일이지만, 그래도 다르다.(p.106) -나는 부정을 못 한다. 결정적인 자기 의사를 지녔더라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전부 받아들이는 주제에 그 전부에서 도망치고 싶다.(p.106) -니쿠코가 둔감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이것저것 캐물으면 귀찮으니까. 동시에 마음 어딘가에서 지금 내 상황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니쿠코에게 상담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지만, 이 너무나도 싫은 기분을, 자그마한 절망을 누가 알아주면 좋겠다.(p.114) -다들 마리아가 벽을 세웠다고 말하지만, 그 벽의 강도를 높인 것은 나였다. 나는 다른 애들이 마리아를 지긋지긋해할 거라고 멋대로 짐작했다. (중략) 마리아는 마리아인 채로, 모두와 있는 그대로 지내면 된다. 싸우거나 화해하거나 짜증 나는 애 취급을 받거나, 아무튼 알아서 하면 된다. 나는 친구로서 그저 지켜보면 그만이다.(p.197) -"니쿠코, 많이 울었네." 돌아오면서 니쿠코에게 말하자, 니쿠코는 "그야 사람이 죽으면 슬프니까!"라고 대답했다. 휴일이면 자동으로 기쁜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죽으면 자동으로 슬퍼한다. 고구마를 먹으면 커다랗게 방귀를 뀌는 니쿠코.(p.211) -"니쿠코는 어떤 애였어?" 묻고 나서 이런 평범한 질문을 니쿠코에게 하는 것은 처음이다 싶었다. 왠지 두근거렸다. 이상하다.(p.212) -"그러니까! 엄마도 남친이 있었고 형제도 일찍 집을 나갔으니께." 한밤중에 작게 속삭이는 니쿠코를, 자칭 소설남에게 밥을 차려주던 니쿠코를 생각했다. 니쿠코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떤 심정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쓸쓸했었다이!" 그렇구나. 나는 쓸쓸한 거구나. 그게 뭐람. 부끄럽다. 그러니까 어린애 같잖아. "쓸쓸했었다이!" 갑자기 니쿠코의 몸이 지방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쿠코의 그림자는 아주 크고 짙다. "그래도 할머니가, 죽어도 곁에 있을 거라고 했데이. 한동안은 쓸쓸했지만 그래도 괜찮아졌다!" 사람의 말을 100퍼센트 믿는 니쿠코.(p.213) -"지, 금, 도." "응?" "기쿠린이 있으니까 하나도 안 쓸쓸하다!" 오코노미야키남도 있으니까,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때 나는 놀랍게도 마음이 너그러웠다. 지금 당장 옛날로 시간 여행을 해서 초등학교 5학년인 니쿠코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혹시 누가 뚱보나 메주라고 놀린다면, 지금의 나는 온 힘을 다해 니쿠코를 지킬 수 있다. 얼마 전까지의 비겁하고 미운 애였던 나는 이제 없다. 없을 거다. "기쿠린이 있어줘서 참 좋다이!" 니쿠코의 그림자. 커다랗고 역시 짙다.(p.214) 기쿠린과 삿산의 에피는 전체가 눈물버튼.(pp.254-262) -"살아 있는 한 쪽팔리는 걸 두려워할 것 읎어. 애답지 않다는 소리는 안 할 기야. 애답다느니 뭐니는 어른이 만든 환상이니까. 모두 각자 알아서 있으면 되는 기야. 다만 마친가지로 제대로 된 어른이고 뭐고 읎다. 그러니 니가 아무리 노력해서 좋은 어른이 되려 해도 괴롭고 쪽팔리는 일을 반드시, 틀림없이 겪게 될 기야. 그건 피할 수 읎지. 그러니까. 그때를 위해 비축해두라. 어릴 때 잔뜩 쪽팔리고 폐를 끼치고 혼나고 일일이 상처 받으면서 그렇게 또 살아가는 기야.(pp.260-261) -"폐를 끼쳐도 괜찮아. 나는 니한테 조심하지 않을 기야. 남이 아니니까. 기쿠, 알아듣겠냐. 피가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족이 아닌 건 아이야. 나는 니를 가족으로여기고 제대로 화를 내련다. 니가 화를 내고 짜증 난다고 난리를 쳐도, 제대로 화를 낼 기라고." 가족이라는 말이 부끄러워서 나는 역시 삿산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니 괜찮다. 니는 쪽팔리지 않으려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뭐든 앞서 생각할 필요가 읎어." 나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 대신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괜찮으니까."(p.261) -"미쳤다." 중얼거리자 삿산, 모두와 먹은 부챗살 맛이 생각났다. 그건 정말 '미친' 맛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놀랐다. 슬픈 것과도, 감동한 것과도 다르다. 다만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아주 거대한 것과 대치했을 때처럼 가슴이 떨렸다. 나는 뭔가에 압도되었다.(p.281) -"사실은 한자도 나랑 똑같이 菊子를 쓰려고 했다. 그래도 내 호적에 올리면서 한자를 살짝 바꿨지.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그래서 喜久子야. 기쁨을 오래오래 느끼는 아이라고 써서 기쿠코라고 읽는다이!" 내 옆에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울었던, 내 엄마가 코를 골고 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p.282) -"제대로 된 어른이고 뭐고 읎다." 삿산은 어른을 넘어 이미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쯤 되어야 간신히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애초에 제대로 된 인간이란 뭘까.(p.283) -항구마을- -맨손으로 쥐를 잡아 바다에 던진다. 이 지역 사람들은 살생이든 뭐든 바다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pp.92-93) -이 마을에는 도시로 나간 사람이 아주 많지만 남은 사람도 많다. 어업을 잇는 사람도 있고, 공무원으로 일하는 사람, 이웃 마을의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경기는 절대 좋지 않으나,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면 어떻게든 일자리는 있다.(p.111) -둑까지 가서 바다를 구경했다. 철썩철썩, 콘크리트에 파도가 닿아 바닷물 냄새가 강렬하게 났다. 물고기가 떠다니는 줄 알았는데 익사한 쥐였다. '계절 가정요리 세쓰'를 보니, 간판과 기둥이 썩어 문드러진 채 고요했다. '우오가시'도 '나미'도 고요했다. 안에는 또 쥐들이 잔뜩 있겠지. 죽는 곳과 사는 곳이 이토록 가깝다.(p.137) -평범과 보통- -"기쿠린, 오늘은 어떤 날이었나?" "음, 보통." "보통! 보통이 아무렴 제일이지!" 자기 옷차림을 좀 보고 말하지.(p.93) -"젊으셔." 와하하, 웃는 니쿠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젊다는 건 칭찬이 아니다. 모두의 '평범한' 엄마답지 않다는 뜻이다.(p.124) -"딱히. 보통." "보통이구나! 보통이 제일 좋은 거 아이가!" 보통이 아닌 실루엣으로 니쿠코가 웃었다. 1반 여자들 상황이나, 새삼스럽지만 '수라장 소동'으로 니쿠코가 입소문에 올랐던 때가 생각나 화가 났다. "니쿠코의 보통은 뭔데." 가시 돋친 말투였을 것이다. 정확히는 최대한 가시 돋친 말투를 썼다. 니쿠코는 싸구려 비스킷을 넣고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더니, 잠시 후 입을 벌렸다. "보통은 밥을 먹고 똥을 싸고 공부하고 일하고 목욕하고 자는 거제!"(pp.153-154) -"... 애초에 니쿠코랑 내 생활이 보통인 것 같아? 우리 생활이?" (중략) 니쿠코는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니쿠코한테 말해봤자. "기쿠린이랑 엄마의 생활은, 밥을 먹고 똥을 싸고 공부하고 일하고 목욕하고 자는 거 맞제?" 니쿠코가 여전히 괴물 같은 실루엣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여전히 '신났어. 신났어'가 떠다니고, 왼손에는 비스킷을 들었다. 내 기분이 상한 줄 전혀 모른다. 조금 안도하면서, 아니 기막혀하면서 나는 차분히 말했다. "그야,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 세상에는 밥을 못 먹는 사람도 있고 집이 없는 사람도 있데이!"(pp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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