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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배움을 찾아 떠난 문학자의 여행기, 나의 문학 답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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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서울대에서 교양과목을 맡았던 저자가 수업을 위해 답사 다니고 여행하며 썼던 글들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었다. 문학과 역사 그리고 여행의 만남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엇보다 국문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이전에 분명 다녀왔던 곳이 모르던 곳인 것마냥 새롭게 느껴졌었다. 그래서인지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깊이감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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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서울대에서 교양과목을 맡았던 저자가 수업을 위해 답사 다니고 여행하며 썼던 글들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었다.

문학과 역사 그리고 여행의 만남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엇보다 국문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이전에 분명 다녀왔던 곳이 모르던 곳인 것마냥 새롭게 느껴졌었다.

그래서인지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깊이감이 달라짐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저자, 정병설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완월회맹연』과 같은 한글고전소설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조선시대의 인간과 문화를 탐구해 왔다. 기생의 삶과 문학을 다룬 『나는 기생이다』(문학동네, 2007), 그림과 소설의 관계를 연구한 『구운몽도』(문학동네, 2010), 음담에 나타난 저층 문화의 성격을 밝힌 『조선의 음담패설』(예옥, 2010), 사도세자의 죽음을 통해 조선정치사의 이면을 살핀 『권력과 인간』(문학동네, 2012), 조선 후기 천주교 수용을 다룬 『죽음을 넘어서』(민음사, 2014) 외에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한국고전문학수업 수업』(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혜빈궁일기』(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등의 책을 펴냈으며, 『한중록』과 『구운몽』을 새롭게 해석하고 번역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문화의 위상과 성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Ⅰ 여행을 향한 갈망

 

여행은 위대하다. 석가모니의 출가와 성불, 원효의 유학 여행 도중 각성, 연암 박지원의 연행과 북학의 깨달음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위대한 깨달음 중에 여행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다.

 

한국인은 대대적으로 여행 DNA를 물려받지 않았나 싶다.

전근대 조선 사람들도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가까운 중국도 사신단 신분으로 수도 베이징에만 갈 수 있었으며 바다에서 배가 난파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쇄국 상태였던 조선에서 지식인들이 가진 여행에 대한 갈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열하일기」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따르면 중국에 들어서자마자 울고 싶다고 표현했을 정도였으니깐.

박지원은 정식 사신은 아니었지만 팔촌 형인 박명원이 사신이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따라갔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중국 문화에 빠진데다 선배 학자들의 중국여행기를 읽으며 언젠가 떠날 날만을 갈망했으니 울고 싶다고 표현한 부분이 새삼 이해가 간다.

 

조선시대처럼 폐쇄된 것도 아니지만 여행이 절실하지 않았던 저자는 1993년 신혼여행 때 첫 비행기를 타봤다고 한다.

문학연구자로서 해외 대학에서 선진 학문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한국까지 찾아와 학문적 교류를 청하는 벗을 만나게 된다.

하버드대학 박사과정에 있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가 서울대학교 연구생으로 오게 되어 저자의 박사 지도교수이신 이상택 선생님에게 한국고전소설을 함께 읽을 학생을 구해달라고 청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카투사 경력이 있는 저자에게 청했지만 처음에는 거절하였는데 결국 그는 제안을 하게 된다.

매주 한 번씩 만나되 저자는 한국문학을 영어로 소개하고 임마누엘은 미국의 중국문학 연구 성과를 한국어로 말하자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도 있었다.

아, 질문이 사람을 빨리 성장시킬 수 있구나!

유대계 미국인인 임마누엘은 유대인의 전통적 질의토론식 학습법인 하브루타가 익숙해서 저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것이었다.

한국 밖 대학을 한 군데도 가보지 못했던 저자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세계 유수의 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미숙했지만 그 시절 멀리 찾아온 벗과 만나던 때가 그의 학문적 황금기였다고 덧붙였다.

 

 


 

Ⅱ 옛 서울 나들이

 

전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지리적으로는 단연 '서울'이 으뜸일 것이다.

서울 성내로 들어오면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청계천이 가운데서 흐르고 있으며, 북한산, 도봉산 같은 명산을 옆에 끼고 한강이 흐르는 수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때문이다.

 

조선시대 소설이 전공인 저자는 부전공을 서울로 여긴다고 한다.

나라의 중요한 일이 서울에서 벌어지며 인재 또한 서울로 모이니 문학 역시 서울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내세우던 인물도 서울에서 나고 자랐거나 주로 활동한 경우도 많다.

이렇듯 역사 또한 조선사는 결국 서울의 역사이지 지방사는 찾기 어렵다.

 

조선시대 서울은 행정적으로는 서울 성곽 안쪽과 성 바깥 10리까지를 가리킨다. 당시 서울 인구를 20~30만 명 정도로 추산하니, 도성 안쪽에는 20~30만 명 가까운 인구가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높지 않은 산이 있다. 북에는 북악, 동에는 낙산, 남에는 남산, 서에는 인왕산이다. 서울 성곽은 이 산들을 둘러가며 쌓았다. 각각의 방위마다 중심 성문이 있고 중심 성문 사이에 다시 작은 성문이 하나씩 있다. 그 문들 중 동대문이 가장 크며 남대문 또한 왕래가 많던 중요한 문이다. 서소문과 동소문은 서민의 상업 활동 등 일상생활에 많이 이용되었다.

서울 성내는 청계천에 의해 남북으로 구획되었으니 조선시대에도 일종의 강남과 강북이 존재했던 셈이다. 청계천 주변 종로와 그 이남은 평서민이 많이 사는 상업과 유흥의 거점이었고, 북쪽에는 궁궐과 관청을 출입하는 상층 양반이나 서리, 아전 등이 많이 살았다.

 

저자에게 북촌은 곧 궁궐 답사나 다름없다.

헌법 재판소 자리에는 고종 때 정승 박규수의 집이 있는데 할아버지인 연암 박지원의 집이기도 하다.

혜경궁 홍씨의 친정 또한 북촌에 있는데 이에 대해 여러 말이 오간다고 한다.

수락산 기슭 벽운동 계곡에 별장이 있다는 말은 불확실하며 오래 머문 흔적 또한 없다고 한다.

다만 저자가 친정집 위치를 추적하며 깨달은 것은 우리가 옛날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잘 옮겨다니지 않고 한평생 한곳에서 보냈을 것이라는 편견을.

남편인 사도세자가 폐세자된 후 뒤주에 갇히는 벌을 받자 아들 정조와 함께 궁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이때 궁궐과 멀지 않은 곳에 친정집이 위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혜경궁의 후손들은 서울 공예박물관 자리에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오빠 홍낙인이 남긴 「피음정기」에 따르면 이곳보다 약간 북쪽 언덕 부근에 자리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조선시대에서 양반이었다면 서울집, 시골집, 서울 근교의 별장을 가지고 있었어서 북촌 골목골목에 있는 한옥들을 보면 조선시대 최상층 양반의 일상이 묻어나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남쪽은 북쪽에 비해 상인이나 서민이 많이 거주해 있었다.

"남대문이 개구멍이요. 인정이 매방울이요. 선혜청이 오 푼이요. 호조가 서 푼이요. 하늘이 돈짝만하고 땅이 맴돈다." _춘향전

남촌 중에도 특히 광통교 주변은 상업 지역이자 문화 구역이었다.

광통교 가에는 그림 가게가 있어 다리에 걸린 그림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고 한다.

광통교 남쪽으로 가면 다동을 다방골이라 불렀는데 그곳에는 기생집이 많았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논 기생과 취객이 다음날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하니, 이를 다방골 잠이라고도 불렀다.

갤러리, 술집, 상점이 많은 곳, 즉, 돈과 술 그리고 유흥이 어우러진 곳이 남촌이었다.

 

 


 

초등학교 때, 영어만큼 좋아했던 책이 바로 사회과부도였다.

지도 보는 것이 좋아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보고 깨알같이 써져있는 글들까지 읽으며 뒷부분에 나오는 나라, 수도까지 다 외우곤 했었다.

저자는 세계 지리부도를 보며 세계여행에 대한 꿈을 꾸었다고 하던데 나 또한 책상 위에 놓인 미니 지구본을 떼굴떼굴 굴려가며 여행하는 꿈을 꾸곤 했다.

 

작년에는 못했지만 못해도 매해 두어 번은 궁 나들이를 다녀온다.

창경궁,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을 살펴보다 마음 가는 대로 북촌이나 서촌 혹은 인사동, 명동까지 다녀오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여유와 힐링을 느끼고자 다녀오는 것인데, 책을 읽고 나니 주제를 정해놓고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갔던 그곳이 곧 문학과 역사였으며 나들이가 곧 배움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아도 걷는 게 참 좋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저녁 산책은 빼먹지 않을 정도니깐.

근래 다쳐서 오래 못 걷다보니 마당 산책만이 숨통을 틔여주고 있는데 올 가을에는 꼭 다녀와야겠다.

올해 강원도만 전부였던 내게 남원부터 군산, 안동, 광양 그리고 서울 곳곳을 살피며 떠난 인문학적 여행은 꽤나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었다.

이러니 내가 책을 끊지 못한다.

 

 


 

s*****3 2023.06.0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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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찾아 떠난 국문학자의 여행, 나의 문학 답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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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알듯, 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조금 더 세분화한다면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보다는, 어떠한 ‘장소’에서 의미를 찾은 여행을 좋아한다. 이른바 답사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그런가, 언제나 내 여행 속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장소들이 많았다. 아니, 대부분이 그런 여행지였다.   사를 위한 여행은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여행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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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알듯, 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조금 더 세분화한다면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보다는, 어떠한 ‘장소’에서 의미를 찾은 여행을 좋아한다. 이른바 답사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그런가, 언제나 내 여행 속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장소들이 많았다. 아니, 대부분이 그런 여행지였다.


 

사를 위한 여행은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장소에 대한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비로소 그 장소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는 그런 배경지식을 위해 여러 책들의 도움을 받았다. 오늘 리뷰하는 『나의 문학 답사 일지』라는 책 역시 답사 여행에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라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서울대 교수이자 국문학자인 정병설 교수다보니, 이 책의 메인은 기본적으로 문학을 기반으로 한 국내 답사 여행책이다. 하지만 그 문학이라는 것이 쓰일 당시의 정세나 사회적 배경이 녹아들어가있고, 당시에 있었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도 버무려있으니, 이보다 더한 인문학책이 또 어디있을까? 국내 여행책으로도, 인문학책으로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답사 여행책은 총 9곳의 국내 답사지를 소개한다(물론 중간중간에 해외 답사지도 있긴 하다).

 

  1. 남원, 소설의 고향

  2. 군산, 강과 바다의 만남

  3. 옛 서울 나들이

  4. 궁궐산책

  5. 천주교 순교자를 찾아서, 전주에서 나가사키까지

  6. 노근리 평화공원의 장미

  7. 동학 기행, 인간이 하늘인 세상

  8. 안동 답답이들의 고을

  9.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하동과 광양

 

의도하진 않았는데, 내가 답사를 다녔던 지역과 겹치는 곳이 꽤 있었다. 첫 번째 지역인 남원부터 말이다. 남원, 군산, 서울 (궁궐 포함), 전주 등등. 안 가본 곳을 꼽는게 더 빠를듯한?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이 몇 년 만 더 빨리 출간되었다면 좋았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건, 역사유적지 등에 기반한 답사를 해왔던 터라, 문학을 기반으로한 답사여행이 정말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분명 내가 답사를 갔었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장소로 느껴졌다. 그것도 첫 챕터인 남원 편에서부터.

 

남원은 한국소설의 고향 같은 곳이다. 소설사에서 한국 최초의 소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실린 가장 흥미로운 단편이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이 남원이고, 한국고전문학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춘향전』 역시 그렇다. 최초와 최고의 소설이 모두 남원을 배경으로 한다. 이 밖에 최근 고등학교에서 많이 읽히는 「최척전」의 주 배경 역시 남원이다. 대표적인 고전소설이 모두 남원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p 027

 

황산대첩비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전설적인 판소리 명창 송흥록과 박초월의 생가가 있다. 동편제 판소리의 길을 연 송흥록은 귀곡성으로 유명한데 그가 비전마을 출신이라는 사실이 우연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수많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영혼이 떠도는 산 아래 시냇가 마을에서 음혼과 함께 살아왔으니 그에겐 귀신 울음소리가 낯설지 않았으리라. p 033

 

내가 남원을 갔을 땐 임진-정유재란에 초점을 맞췄고, 문학적인 부분에서는 『춘향전』의 배경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남원은 문학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지역이었다니! 그저 설화로만 알고 있었던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이 남원이라는 것도, 「만복사저포기」가 쓰인 배경이 고려말 무인 이성계와 이지란이 앞장 섰던 황산대첩이었다는 것도, 황산대첩에서 만복사저포기를 지나 그 연속 선상에 귀곡성으로 유명한 명창이 태어난 비전마을이 남원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가 남원에 갔을 땐 오롯이 임진-정유재란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만 하나에만 초점을 맞췄었는데, 시야를 문학적으로 넓히니 새로운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이다. 이제와 말하지만 황산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지역이 현재 남원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이제서야 인지했다. 그니까 난..남원을 오롯이 임진-정유재란 딱 하나의 사건으로만 바라봤던 것이다.

 

남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정유재란 때의 남원성 함락이다. 1597년 8월 16일 오만 육천 명의 일본 주력군을 상대한 사천 명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총공세에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고, 성민 육천 명과 함께 몰살되고 말았다. 지금 남아있는 ‘만인의총’은 칠천 명 조선인과 삼천 명 중국인의 합묘다. (…) 후대인은 전몰한 사람들을 기려 충렬사라는 사당을 지었고 그들의 무덤을 의총으로 높였지만 그런 방식이 피해자들을 진정 영광스럽게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그들의 죽음을 진정 인간적으로 대접하려는 뜻이 읽히지 않고 처참한 죽음을 국가주의의 충성관 아래에 두려는 뜻이 보이기 때문이다. p 036

 

「최척전」은 전쟁의 참상을 다루지만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충성이나 애국심을 말하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최척은 의병으로 나서나 이는 자의가 아니었고 모병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다. 최척은 또한 정유재란 때 남원의 군민들과 함꼐 남원성에 들어가 싸우다 죽으려 하지 않고 피란을 갔다. 일본인이나 중국인도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있기는 마찬가지다. 옥영을 끌고 간 일본인 돈우는 조선인을 적대하지 않고 오히려 자상하게 돌봐주었고, 여유문과 주우는 낯선 나라의 이방인 최척을 멸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잘 도와주었다. (…) 이처럼 「최척전」은 전쟁을 유발한 권력자의 명분을 따라 적대하고 공격하기보다 인간적 우호에 따라 서로 돕고 연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p 042

 

요즘 한국전쟁 관련 책을 읽고, 국가에서 강요아닌 강요로 세뇌시킨 ’호국전쟁’ 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비단 한국전쟁에 국한된 것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남원 답사 당시 보고 왔던 ‘만인의총’. 남원에서는 호국과 애국의 대명사인 만인의총이 진정, 당시에 죽어간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이 맞는지도 다시끔 생각해보게되었다. 특히나 조선시대 문헌 까지만해도 ‘만인의총’이라는 단어가 확인되지 았는다고 하니, 더더욱.

 

우리나라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유독 충성, 호국, 애국의 개념을 세뇌시킨 편이다. 그러다보니 전쟁이라는 단어 안에는 숨어있는 또 다른 개념인 민간인들의 피해나 학살, 국가의 잘못 등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은 편이랄까? 그래서 어떤 피해자들의 죽음은 충성과 애국으로 포장되어 대내외적 선전용으로 전락하고, 또 어떤 피해자들의 죽음은 비난을 받는다. 만인의총은 대체적으로 전자에 해당되는 느낌이랄까.

 

흥미롭게도 판소리 중 『춘향전』만 배경이 한곳으로 고정되어 있다. 『흥부전』이나 『심청전』 등 여타 판소리 작품들은 이본에 따라 공간 배경이 여러곳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 『춘향전』만큼은 작품 배경이 남원 외 다른 지역인 이본이 없다. 실제 어떤 모델이 되는 특정한 사건이 남원에서 일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남원이 아니고서는 작품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살리기 어려워서 그런것 아닐까 싶다. p 048

 

남원에서는 춘향 사당을 만들고 춘향 영정을 그리며 춘향제라는 축제를 열었따. 또 춘향의 성을 성씨라고 밝힌 이본에 따라 성씨 성을 가진 부사를 아버지로 찾아주기도 했다. 춘향의 성이 보이지 않는 이본도 있고 안씨나 김씨로 나오는 이본도 있는데 굳이 성씨를 고집하여 남원부사 성안의를 춘향의 아버지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선정비를 찾아 광한루 경내에 세운 것이다. 심지어 광한루 구역을 벗어나 지리산 구룡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춘향의 무덤까지 조성해두었다. 1962년 남원에서 도로공사를 하던 중 ‘성옥녀지묘’라는 지석을 발견하자, 이를 춘향의 묏자리로 간주하고 ‘성춘향지묘’라는 이름을 붙이고 봉분을 씌웠다. p 049

 

남원의 대표적인 관광지 광한루는 『춘향전』을 빼면 섭하다. 나 역시 『춘향전』을 생각하고 광한루에 갔던거기도 하고. 가서 느낀건 남원이 관광자원으로써 춘향이를 잘 살렸구나 싶었다. 다만, 남원이 춘향이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역사를 왜곡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예컨데 문학작품 속 주인공을 실존인물로 되살린 점이라던가, 뚜렷한 증거 없이 실존인물을 춘향이의 부모로 둔갑시키고, 역시나 뚜렷한 연구도 없이 춘향이의 묏자리를 만든것도.

 

이는 비단 남원만의 일은 아니다. 어떤 지자체든 역사적 인물에 대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건 최대한 활용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왜곡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러 지역에서 역사 왜곡을 마주한 적도 있고. 과연 관광자원 개발에 따른 역사왜곡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번엔 노근리 평화공원에 대한 이야기다. ‘노근리’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곳이라 알고는 있었는데, 그곳이 충청북도 영동에 이위치한 곳이라고는 이번에 이 문학답사 여행책을 읽으며 처음알았다. 수없이 국내여행을 다니면서 충청도 지역도 거의 다 보고 왔음에도, 영동 만큼은 볼게 없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도시이기에 스스로에게 무안했달까.

 

잘 생각해보면 노근리 학살사건은 내가 학교다닐 당시에는 배우지 못했던 이야기다. 노근리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일어났던 ‘미군범죄’로 국제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민간인 학살사건이지만, 적어도 내 학창시절에는 배우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럼 어떻게 알게되었느냐? 훗날 성인이 되어서 관객이 몇 없던 영화 『작은연못』을 보면서 알게된 내용이었다. 당시 받은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내가 배웠던 한국전쟁은 ‘호국전쟁’이었고 미군은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쳐 싸워준 동맹국이었으니까.

 

그런 한국전쟁 안에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수없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해 많은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뭐, 조선사도 다름없긴 하지만). 뭐, 그래도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학교에서도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가르치고, 여러 TV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이런 부분에 대해 방송하기도 하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물론 사람들이 자주 안보는 교양/다큐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그해 초 부모님 댁에 갔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어머니의 6.25전쟁 경험담이었다. (…) 외할머니는 그날 산청에서 진주로 피란 짐을 싣고 트럭을 타고 오시다가 진주 부근에서 길이 막혀 짐을 트럭기사에게 맡기고 차에서 내려 걸어오셨다. 그때 멀리서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들리더니 산에 흰 빛이 가득 찼다. 흰옷 입은 민간인들이 사살당해 시신이 널린 모습이 멀리서 그리 보였단다. 외할머니는 집으로 오자마자 외할아버지의 소재를 물었고 집에 계신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구한 이야기의 전후를 조합해 추리해보니 외할아버지가 진주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의 희생자가 될 뻔했구나 싶었다. p 184

 

전쟁 직전에 좌우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좌익 혐의점이 있는 요주의 인물들을 국민보도연맹이라는 조직에 가입시켜놓고 관리했는데, 전쟁이 발발해 전황이 불리해지자 위험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듯 이들을 ‘멸절’시키려고 했다. ‘사상검사’ 오제도가 국민보도 연맹 조직의 실무를 맡았는데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농부들에게 비료 등을 나누어주며 가입을 권유해 회원 수를 늘렸다고 한다. 이렇게 가입한 인원이 수십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당초 의도한 좌익 인사만이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학살한 것이다. p 184

 

6.25전쟁 시기 우리 고향에서 일어난 학살은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그치지 않았다. 전쟁 초기 국군이 후퇴할 때 대전 등지에서 교도소 수감자 천 명 이상을 대규모로 학살한 일이 있고, 1951년 1.4후퇴 때 전쟁에 동원한 보충대 천여명을 굶겨 죽이고 얼어 죽게 만든 국민방위군 사건도 있었다. 1950년 당시 16세로 고향 함양에 계셨던 아버지는 간간이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으로 올라간 작은할아버지 뒷수발을 드셨다고 하니, 함양, 산청, 거창의 학살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자세히 말씀하시기보다는 학살로 인해 제삿날이 한날인 동네가 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하셨다. p 185

 

그래도 즉시 거창 출신의 용감한 국회의원 신중목의 폭로로 외부에 알려저 국회에서 직접 조사까지 했다. 그런데 그 깊은 골짜기로 들어오는 조사단을 국군이 빨치산으로 위장해 총질을 했다. 국회의 조사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할 정도로 학살 집단의 소행은 대담했다. 이런 사실까지 밝혀지며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하자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는데 결국 처벌은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조직적으로 전국에서 살인 범죄를 진행한 이승만 정권의 만행 중 일부였으니 그들이 스스로를 처벌할 리 없었다. p 188

 

저자는 노근리 평화공원 답사를 이야기하면서, 본인의 부모님이 겪으셨던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도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의 부친은 함양, 모친은 산청이 고향. 즉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이 일어난 지역이었다. 이른바 거창·함양·산청 양민학살이라고 불린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은 정부가 일부 국민들을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단체에 가입시키면서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방이후 한반도는 미국이 점령한 남한과 소련이 점령한 북한으로 나뉘어 극심한 사상대립이 있었고, 그 결과는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후 남한에서는 좌익사상을 가진 국민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가입시켰는데, 흔히 말하는 나랏님들의 실적을 부풀리기 위하여 좌익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순박한 농민들까지도 대거 가입시켰다. 물론 어디까지나 농민들의 ‘자발’적인 가입이긴 했다. 나랏님들이 이 단체에 가입하고 이름만 올리면 쌀도 주고 비료도 준다고 하는데, 가입안 할 농민들이 어디있겠나? 그 결과 어떤 마을은 마을 구성원 통채로 국민보도연맹원이 되기도 하고 뭐 그런 상황이었다.

 

이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이승만 정부는 좌익사상을 가지고 있는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을 지시한다. 혹시나 그들이 북한군에 협조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다만 위에서도 말했듯 진짜 좌익 사상을 가진 인물들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사상은 1도 모르는 순박한 농민들이었다는 점이다.

 

정말로 아주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정말 좌익사상을 가진 인물이라면, 당대에 책을 꽤나 읽은 엘리트라는 것인데 그들이 바보천치가 아닌이상에야 스스로를 옭아맬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을까? 스스로 북으로 올라갔거나(당시만해도 교류가 쉬웠으니), 아니면 스스로를 숨기고 살았겠지. 이 말은 즉, 대다수의 국민보도연맹원은 사상은 1도 모르는 순박한 농민들이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함정 하나. 한반도에서 농민이 차지하는 비율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안된다. 이때만해도 우리나라는 온리 농업국가였으니, 당시의 농민이란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게 이승만 정부는 국민보도연맹 학살을 시작으로, 이제는 보도연맹을 떠나서 마을 단위, 읍 단위, 면 단위로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한다. 혹시나 북한군이 들어왔을때, 그들에게 협조할 것을 우려하면서 말이다. 심지어는 국군들이 북한군 또는 빨치산으로 위장까지하면서 학살을 하기 시작했다.

 

정작 이 나라의 수장이었던 이승만은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자신이 자택에서 사용하던 집기류까지 싸그리 들고 남쪽으로 피난을 갔으면서 말이다.

 

사건 발생 10년 후 4.19혁명으로 비로소 유족회가 결성되어 진상 규명에 나섰으나 5.16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유족회 회장을 형장에 보내버렸다. 학살 가담자들이 경찰에 군대에 권력 요로에 있는 상황이었다. 학살 피해자와 유족은 다시 깊은 침묵에 잠겼다. 그들은 빨갱이가 아닌 빨갱이가 되어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도 하지 못했으니 피해 사실을 가슴 깊숙한 곳에 박아놓고 다시는 꺼내지 못했다. p 190

 

1950년 7월 남쪽으로 가던 피란민들을 후퇴하던 미군들이 기관총으로 사격해 이삼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란민 가운데 민간인으로 가장한 북한 병력이 있다는 그릇된 정보를 믿고 그랬다지만, 아이들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학살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묻는 일이 적지 않다. 그 출발은 대게 제주 4.3사건에서 찾는다. 미국이 지휘하고 한국이 실행한 이 사건은 뒤에 이어질 수많은 학살의 전조였다. 다만 노근리 사건을 공부하면서 부러웠던 부분은, 가해 미군 중에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백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 학살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 한명도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p 194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국전쟁이 끝나고, 학살의 생존자와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빨갱이로 몰리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왜? 학살의 가해자들은 권력자들이었으니까. 그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일본 경찰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일본이 패망했으나, 미국이 그들을 다시 요직에 앉치고 권력을 주었다. 무엇보다 학살의 가해자이자 최고 책임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었다.

 

4.19혁명으로 인해 이승만이 쫓겨나다시피 국내를 떠나며, 다시 진상규명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그들은 또 다시 빨갱이로 몰리고, 또 다시 침묵을 강요당했다. 5.16쿠테타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를 필두로 남한에선 꽤나 오랫동안 군부독재가 이어졌고, 그들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그렇게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던 가해자들은 호국선열이 되어 현충원에 묻히거나, 그들의 무덤이 성지가 되는 등 이 땅, 대한민국에서 충성과 애국의 상징이 되었다. 반면에 학살된 희생자들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갔다.

 

국민을 지켜야할 나라의 수장이 지시하고, 국민을 지켜야할 국군과 경찰들이 자행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은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잊혀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혀졌던 민간인 학살사건이 ‘문학’을 방패삼아, 사람들의 기억속에 하나, 둘 자리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김정한 선생은 함양, 산청, 거창 사건의 참혹함을 되새기며 ‘차라리 개를 배우자’라는 칼럼을 썼다. 그는 “팔순이 넘은 노인들을 비롯해서 주로 부녀자, 어린애, 젖먹이들까지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서 한꺼번에 사오백 명 내지 칠팔백 명씩 피란이다 시국강연이다 해서 몰고 나와 총화와 휘발유로써 쏘아 죽이고 태워 죽였던 것이다. 동족이라 믿었기에 ‘설마’ 하고 끌려나왔으나 어느 이민족도 일찍이 그렇게는 안했던 무차별 사살을 했을 때 그들은 조국을 무어라 부르며 쓰려졌을까?” 라고 말하면서 당시 참혹한 현장의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p 192

 

지금까지 학살 만행과 참상을 알리는 데 문학이 큰 역할을 했다. 제주 4.3사건은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이나 김석범 선생의 『화산도』와 같은 소설로 알려졌다. 194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경상북도 문경의 한 골짜기 마을에 국군이 들이닥쳐 어린이 9명, 여성 44명을 포함해 온 마을 사람 86명을 학살한 문경 사건은 남상순의 『흰 뱀을 찾아서』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거창 학살은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에 그려져 있으며, 피카소가 그림으로 남겼던 황해도 신천의 크고 작은 학살은 황석영의 『손님』으로 되살아났다. p 197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그 중에서 문학작품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물으면 정말 손 꼽을 정도로 내가 읽은 문학잠품은 적다. 왜 그렇게 문학은 잘 안 읽냐고 물어본다면, 개인적 취향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문학작품은 나에겐 꽤나 ‘모호하게’ 다가오는 글이었기에 그랬다. 그래서.... 문학이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잊고 있었다. 문학의 힘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바다 건너 섬에 갇혀있던 제주4.3 사건을 육지로 끌어올려 대중이 알 수 있게 한 것도 문학이었고, 한국전쟁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알린 것도 문학이었다. 문학은 침묵의 바다에 가라앉았던 비극을 물 위로 끌어올렸고, 그 비극이 비단 피해자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문학 덕분에 세상이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게 되었고, 생존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침묵하지 않고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토록 큰 힘을 가진 것이 문학인데, 나는 왜 문학을 등한시 했을까. 지금까지 수없이 문학작품을 읽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것이 후회가 된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문학작품부터 차근차근 읽어봐야지.

 

c******0 2023.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의 문학 답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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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을 읽고 작가에게 매료된 적이 있다. 물론 직전에 <옷소매 붉은 끝동>을 읽고 정조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한 상태에서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를 제쳐두고서도 그의 글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 다른 글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온전히 글 솜씨로만 매력을 뽐내는 이 분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 어릴 적부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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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을 읽고 작가에게 매료된 적이 있다. 물론 직전에 <옷소매 붉은 끝동>을 읽고 정조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한 상태에서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를 제쳐두고서도 그의 글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 다른 글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글 솜씨로만 매력을 뽐내는 이 분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 어릴 적부터 지도 보기, 무작정 걷기를 좋아했다는 그는 여전히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매년 전국 각지로, 해외로 답사를 다니며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관찰과 사유로 역사의 공백을 채워가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문학 답사 일지>는 '한국문학과 여행'이라는 교양과목을 맡아 가르치면서 때로 학생들과 동료 연구자들과 답사여행을 하며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 출간한 것이다. 저자의 풍성한 식견이 담긴 여행 가이드북이자 역사와 문학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인생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국문과 문학 답사를 함께 하는 기분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답사를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답사는 <만복사저포기> <춘향전> 등 소설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군산과 서울 옛 도심 그리고 구중궁궐을 거쳐 전주와 노근리, 보은과 우금치, 안동, 하동과 광양까지 전국으로 뻗어나간다.


국내여행지와 더불어 중간중간 옛 기억을 소환해 이탈리아, 네덜란드, 도쿄, 로마까지 짤막한 해외여행 이야기도 담겨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문학의 배경이 되는 역사에 주목한다. 현대에 들어 여러 사정으로 그 시절의 자취가 미미한 곳에도 상상을 더하면 마치 과거를 복원해놓은 듯해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인생은 여행을 닮았다 : 좋았던 문장들


- 인생은 여행을 닮았다. 여행은 공부를 닮았다. 오늘 도착하면 내일 또 떠나야 하는 영원한 미완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지 않고 깊게 바라보는 법. 오직 공부와 독서만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 갈 곳이 있다는 것, 봐야 할 것이 있다는 것, 다시 갈 이유가 생겼다는 것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내일의 과제는 고통이 아니라 더 알고 싶어 궁금한 걸 찾아 떠나는 모험의 이유가 된다.


- 멀리 가려면 지쳐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하려면 조급해하지 말자. 내 길을 가자. 돌아보며 가자. 생각하며 가자. 쉬엄쉬엄 가자. 대신 멈추지는 말자.


- 어떤 아름다움은 시간을 들여야만 볼 수 있다. 얼마를 지불했는지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찾으려 했다.


선후완급(先後緩急)
인생에 있어 어떤 일이 중요한지, 어떤 일을 급히 하고 어떤 일은 천천히 할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세


나는 국문학도라고 하면 막연히 문학을 읽고 연구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문학 답사를 다니며 자연스레 역사로까지 지적 호기심을 확장시켰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를 그 과정 덕분에 인간과 문화에 대한 그의 통찰을 배울 수 있었다.


요즘처럼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문학을 읽는 이유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소재에 재미를 곁들여 낸 <나의 문학 답사 일지>를 읽으며 여행의 이유는 물론이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s******9 2023.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의 문학 답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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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 그는 서울대에서 '한국문학과 여행'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책은 직접 땅을 발로 밟으며 상상력으로 공백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배움을 찾아 떠난 국문학자의 여행기. 소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남원, 군산 뿐 아니라 옛 서울과 궁궐산책, 천주교 순교지인 전주에서 나가사키, 노근리 평화공원,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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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

그는 서울대에서 '한국문학과 여행'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책은 직접 땅을 발로 밟으며

상상력으로 공백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배움을 찾아 떠난 국문학자의 여행기.

소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남원,

군산 뿐 아니라 옛 서울과 궁궐산책,

천주교 순교지인 전주에서 나가사키,

노근리 평화공원,

동학을 따라가는 기행,

,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함양,

록펠러 학술센터와 도쿄 디즈니랜드까지......

여행을 통한 배움까지 곁들인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있으니 여행과 이야기는 둘이면서 하나처럼 여겨졌다. 여행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고 이야기는 말로 펼쳐놓은 여행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좋아하기 마련이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으레 여행을 좋아한다.

_14p

여행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여행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온 박지원은 그전의 삶을 살지 못했다. ......

......여행을 떠나지 전의 박지원은 죽었고, 요동 벌판에서 다시 태어난 박지원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존재로 힘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_18p

옛날 사람들이 우리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대체로 역사적 설정과 잘 부합한다.

_84p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하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_97p

지친 눈에는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_127p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앞을 향해 뛰고만 있던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건가 싶었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살지는 생각하지 않고, 남들을 따라서 또 남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만 뛰며 살았던 것이다. 남들을 따라가는 삶이 정말 내 삶일까 싶었다.

내 길을 가자. 돌아보며 가자. 생각하며 가자. 쉬엄쉬엄 가자. 대신 멈추지는 말자.

_138p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여행자를 다섯 등급으로 나누었다. 여행하면서 역으로 관찰당하는 사람, 그냥 관찰하는 사람, 관찰하여 체험하는 사람, 체험한 것을 오래 지니고 있는 사람, 체험한 것을 자기 삶에 활용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통해 각성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자기 삶을 전환시키는 사람을 최고 수준의 여행자로 보았다.

_231p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반드시 전환이 필요하다.

_239p

돌이켜보면 여행은 결국 사람과의 만남이다. 누구랑 가느냐 누구를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_284p

 

광양여행에서 ''의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네가 김을 만들었으면 ''이 아니라 ''이었겠다' 하면서요...

그리고 천주교 순교사를 따라간

바닷가의 비석 '침묵의 비'에 적혀 있다는

한 줄의 글이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_176p

우리가 늘 읖조리는 기도가

순교의 시대를 살다간 그들의 믿음 앞에서 부끄럽지만

어쩌면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과 여행의 멋진 어우러짐이 빛나는 책이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o 2023.05.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의 문학 답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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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가 읽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아무튼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하는 나를 다시한번 알게 되었다.작품속에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든 문학에 대한 이야기이다.답사후에 꼭 찾는 다는 남원의 유명빵집근대문학의 산실 군산요즘 내가 전주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있어 그런가 이쪽 근교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조선말 서원폐단에 대해 배웠는데 그 서원이 현대에 와서도 자기 종중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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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가 읽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아무튼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하는 나를 다시한번 알게 되었다.

작품속에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든 문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답사후에 꼭 찾는 다는 남원의 유명빵집
근대문학의 산실 군산
요즘 내가 전주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있어 그런가 이쪽 근교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조선말 서원폐단에 대해 배웠는데 그 서원이 현대에 와서도 자기 종중을 미화하는 폐단이 되고 있는 사례
'본전은 뽑아야지' 하며 관광객이 아닌 채권자가 되어버인 여행셈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꼭 읽어봐야겠다.
여행하면서 역으로 관찰당하는 사람
그냥 관찰하는 사람
관찰하여 체험하는 사람
체험한 것을 오래 지니고 있는 사람
체험한 것을 자기 삶에 활용하는 사람
여행을 통해 각성할 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자기 삶을 전환시키는 사람을 최고 수준의 여행자로 평가했다고 한다. 
니체가...

 
l***1 2025.05.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