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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관점에 대한 잡지 뉴필로소퍼의 22호는 용기를 주제로 담았다. Taking Risks. 용기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용감한 사람은 위험요소를 등지고, 위험에 사로잡힌 사람은 용기로 부터 멀어진다는 것이 흥미롭다. 용기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를 "두려움phobos과 태연함tharsos의 중용"이라고 말했다. 무섭지만 더 큰 '대의'를 위한다면 용기를 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시대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표지에 나치 경례를 거부한 란트메서를 보면 그것은 꼭 단상 위에서나 영웅적인 면모로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이번호에서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은 마리나 벤저민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의 메커니즘>이다. 산업화사회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게 된 인간은 이성을 방어구 삼아 '닫힌 자아'를 형성하여 원자화되었다는 설명이다. 과학적 사고, 이성적 사고를 우선삼아 완전무결함을 추구하였지만 그만큼 인간성의 본질이 훼손되었으며 '열린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동체의 연대와 교류의 가치를 소홀히 하면 친밀감을 잃어버릴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것은 가장 사적인 연인관계에서 자신을 드러낼 '용기'까지 포함한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진정 서로에 대한 '동의'의 범위는 동등한지, 취약성에 대한 정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민을 제시하며 열린 태도에 대한 중요성을 시사한다
상처받더라도 나아갈 힘, "대담성"은 위험을 쳐다보지 않아야 가능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