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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에 관한 책 출간 소식이 들려올때면, 아직도 고흐에 관해 쓸 이야기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미술 책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다보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책을 읽으면서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았다. 고흐의 전 생애, 작품, 테오와 주고 받았던 수많은 편지들을 묶은 책들 외에 어느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읽은 적은 없었기에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고갱과의 불화로 귀를 자르고 잦은 발작을 일으키던 고흐가 요양원에서 격리 생활을 끝내고 오베르쉬르우아즈에 도착해서 죽기 전까지 70여일을 자세히 담고 있었다.
동생 테오는 카미유 피사로부터 가셰박사를 소개받았고, 고흐를 오베르에 머물게 했다. 1890년 5월 20일 오베르에 도착해 저렴한 라부 여인숙을 구했고, 짐을 풀었다. 우아즈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그 곳 풍경을 맘에 들어하는 고흐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했다. 오베르는 고흐가 살았던 곳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풍경화가 도비니, 카미유 피사로, 세잔등 많은 화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셰 박사의 초상]이라는 그림으로 알고 있던 가셰박사에 대해서 항상 궁금했다. 가셰 박사에 대한 글은 거의 만나지 못해서 궁금했는데, 의사로서, 화가로서의 삶, 고흐와의 관계를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고흐는 가셰 박사 집에 자주 방문하면서 친구로 지냈다. 의학적인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고흐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었던걸까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센트의 무덤을 보살피는 책임을 맡았고, 아들 가셰 주니어도 평생 오베르에 살면서 후세의 사람들이 고흐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고흐의 죽음에 대해서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라부 여인숙의 주인, 가셰 박사등 당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고흐가 남겼던 말들을 통해 진실에 가까워지는 노력을 했다. 현재로서는 타살보다는 자살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라부 여인숙의 변천사, 고흐가 유명해지면서 늘어난 위작들에 대한 자료, 살아있는 동안 한 점의 그림만 팔렸을 뿐이었던 고흐가 어떤 사람들의 어떤 노력으로 인해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동생 테오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서사에 가슴 아팠고, 남편을 잃은 아픔에도 무너지지 않고, 고흐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던 테오의 아내 요하나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베르에서의 고흐는 지금까지 만났던 고흐와는 다르게 삶의 의지가 충만했다. 개인적으로는 자살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오베르에서의 작품은 어두운 작품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꽃들, 더 넓은 밀밭, 다양한 모양의 집들. 특히 집을 그린 풍경화가 눈에 띄었다. 아름답게만 보였는데, 마틴 베일리는 이런 의견을 덧붙였다.
빈센트가 오베르를 거닐며 그림의 주제를 찾을 때 그는 이 전통 가옥에 사는 가족들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성인이 된 후 줄곧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녔고 제대로 뿌리 내린 경험이 없었다. 그는 사는 동안 20개의 도시, 소도시, 마을을 전전하며, 대부분은 인간미 없는 거처에서 가족, 친구와 떨어져 살았다. 오베르의 오래된 초가집 내부는 지극히 소박했지만 향기로운 늦은 봄날 그들은 한가로운 시골생활의 상징처럼 보였을 것이다. -p60~61
(마을을 그린 그림 중에서도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소개한 [오베르의 집] .1890년 6월)
소망을 담은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찬란한 슬픔이란 말을 떠올리게도 된다. 오베르에 도착한 순간부터 장례식이 치뤄지기까지 하루 하루를 담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림도 다수 수록하고 있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큰 그림으로만 알고 있던 부분들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면서 고흐를 따라다녔다. 저자의 수년에 걸친 연구 덕분에 고흐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마틴 베일리는 1980년대부터 반 고흐 연구를 시작한 저널리스트이자 반 고흐 전문가로서 반 고흐 전시회도 여러차례 기획했고, 반 고흐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써왔다. 그 중에는 아를에서 보낸 15개월( 1888년 2월~1889년 5월), 생레미드프로방스 외곽 요양원에서 보낸 시절 (1889년 5월~1890년 5월),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보낸 마지막 70일 ( 1890년 5월~ 1890년 7월 29일), 이렇게 프랑스에서 보낸 가장 위대한 시기를 다루는 3부작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두 번째, 세 번째 시기를 다룬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고독한 안식처, 생폴드모졸에서의 1년>과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 두 권만이 출간되었다. 역자는 아를에서의 고흐는 <반 고흐의 태양,해바라기>라는 저자의 책에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지만, 첫 번째 책도 꼭 번역이 되어 완전체로 제대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흐가 하루에 한 점 꼴로 7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오베르에서의 시간들.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시간으로 안내해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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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 먹먹하다. 읽고 정리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쓰야할지 막막하다. 화가의 삶을 알기에 다시금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쓴다는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빈센트 반 고흐의 책은 늘 가슴 뛰게 한다.
37세(1853년~1890년)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불후의 화가, 죽음 이후에 삶과 작품이 재평가 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짧은 삶을 책으로 마주할 때 마다 마음에 찬 바람이 스며든다. 녹록치 않았던 삶을 산 짧은 시간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때문에.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을 재조명한 책을 읽었다. 책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 예술가의 종착지, 오베르에서의 시간」이다.
아를 그리고 정신병원(1888년 2월~1889년 5월/15개월) 생 레미 수도원(요양원 1889년 5월~1890년 5월/1년) 오베르(1890년 5월~7.29./70일) 음울했던 파리 대도시를 떠나 3년간 아를-생 레미 드 프로방스 수도원-오베르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몸과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이 얼마나 많이 불안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동생 테오가 있었지만,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부담감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생 테오에 대한 미안함을 갚기위해 또 얼마나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을까? 그 마음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니 비로소 그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삶처럼 역설적이다.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음울한 마음을 밝은 노랑으로 때로는 보색으로 표현하는 그림은 역동적이지만... 참 많이 아프다! 반 고흐의 본격적인 화가의 삶 10년 가운데 프랑스 아를-생 레미-오베르에서의 3년간 작품이 가장 많았다. 고흐의 마지막 종착지 오베르에서 그린 70점의 그림을 엿볼 수 있어서 아울러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를 자신의 노란방에서 고갱과의 불화로 한 쪽 귀를 자르고, 불안한 마음과 우울증에 정신병원으로. 다시 생 레미 수도원에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고흐가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병이 회복되었다고 의사들은 진단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과 주변은 폭풍전야... 가난했고, 열악했고, 불우했다. 마음의 병은 주변 환경에 의해서도 좌우되기에 쉬이 낫지 않는다. 그리고 오베르행~~ 고흐도 오베르행이 자기 삶에서 마지막 일 줄은 몰랐을텐데... 지금보다는 낫겠지란 조금, 아주 조금의 희망을 품고서 오베르로 향하지 않았을까?
다시 시작하게 된 오베르에서의 삶, 여전히 가난했지만 오베르에서의 삶은 빈센트 반 고흐에게 나쁘지 않았다. 아픈 사람도 자연속으로 들어가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조금씩 회복되듯이, 오베르의 자연은 고흐에게도 평안을 주는 것 같다. 여전히 삶은 불안하지만... 그림을 그릴만한 소재들이 다양했다. 오베르에서 만난 가셰박사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호의적이고. 기꺼이 작품의 모델도 되어주었다. 가난한 고흐에게서 초상화의 모델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기에. 오베르에서의 짧은 70일, 그리고 70점의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데... 빈센트 반 고흐의 불꽃같은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힘드니깐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들을 떼어내고 잊으려고 하는 몸부림같이 느껴진다. 인간적인 짠함이 곳곳마다 베어있다.
오베르에서의 70일도 고흐에겐 녹록치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조금더 참아줬더라면... 동생 테오가 형 고흐에게 충분히 아주 믿음직스레 잘했지만 조금 더 세심하게 마음을 나눴더라면 고흐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오베르에서 평안의 시간이 더 연장되었을텐데... 가셰박사가 옆에 있었지만, 고흐와 자주 친밀한 시간을 가졌더라면 고흐가 위로받고 작품 활동을 즐겼을텐데... 동생 테오도, 가셰박사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고흐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로 하는 위로도 중요하지만, 그냥 그 마음 옆에 살짝 있음으로도 위로가 되니깐. 가난했고 불우했던 빈센트 반 고흐 옆에 단짝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히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는 내(우리)가 위로를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오베르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오베르 성당과 정원, 평원, 밀밭, 오베르 우아증강, 포도밭, 농가/초가집/주택 등 해질녘, 구름 낀 하늘 아래, 밤꽃/양귀비/덤불꽃/장미 등등 특히, 이런 풍경화에 대해 빈센트는 죽기 전 7월에 집중적으로 이런 풍경화들을 그렸다. "거친 하늘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밀밭이며, 나는 슬픔과 극한의 외로움을 표현하려 했다" 7월 중순의 이 감정적 토로는 그가 점차 가족과 친구의 지원 없이 버려진 느낌을 받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화가를 알아가고 이해한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오베르, 마산과 부산쯤 될려나? 아주 먼 곳도 아닌 작품의 주 근거지였던 곳에서 불과 1시간 거리 떨어진 곳에서 안식을 찾으려했던 고흐의 삶이 많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는 그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뿐인데..... 안녕,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오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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