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날에도, 백가연
“어른이 된다는 것. 어쩌면 평생동안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곳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 보려 한다.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날에도 사랑을 말하며.”

_ 나의 글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p.137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날에도 사랑을 말하면서, 당장 만질 수 없다 한들, 의미 없다 말하지 않으면서(p.12) 씩씩하게 걸어가 보려 한다는 작가의 글이 왜 마음을 파고들고 울게 만드는지 다 읽고나니 알겠다.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정의 중에서 이것만큼 강렬했던 것은 없었다. 글을 쓰는 시간들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면 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겠다. 사랑을 풀어내는 일이겠다.
_ ‘사랑’이라는 이름을 입고 나는 필요 이상으로 관대함을 바랐다. 사랑하니까 이 정도 말은 괜찮고, 사랑하니까 너를 잘 알고 있고, 사랑하니까 내 생각이 곧 너의 생각이어야 한다고. 사랑을 방패로 나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줘 왔던가. 그 말이 마치 너의 인생에 마음대로 개입해도 된다는 것과 동의어라도 되는 양 착각하면서. 사랑은 그 사람이 홀로 고민하며 보냈을 수많은 새벽의 시간을 믿어 주는 일,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안아주는 일이었다. p.26
사랑은 늘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저 믿어주고 안아주면 될 일이었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두려운 것도, 아픈 것도 그 마음을 알아주면 되었을 일이었는데. 나는 나만 생각하느라 바빠서, 나만 보느라 바빠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지난 일에 후회하는 연연하는 버릇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다.
_ 그러나 운명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온 세상이 깊이 잠든 시간, 홀로 새벽을 견디는 일은 고독하고 지루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밤 9시면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코를 고는 동생이 겨울잠 자는 곰 같으면서 부러웠다. 잠. 그놈의 잠이 대체 뭐길래 부럽다가, 한심했다가, 짜증이 났다가, 외로워지기까지 하는 걸까. p.92
_ 사실 결여가 없는 사람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여를 채우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결여를 한 사람에게만큼은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그놈의 귀찮고 번거롭고 지긋지긋한 사랑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결여의 생김새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각자 타고난 모양새대로 행복하기 위해서. p.113
아무리 씩씩해지자고, 괜찮다고 다짐을 해도 슬프고 외로워지는 순간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피곤해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오면 세상에 나 혼자뿐이란 생각이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날엔 잠으로 도망쳐 내내 잠만 자는 날들도 있다. 이렇게 기복이 심하고 시도때도 없이 동굴을 파고 들어가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밉기까지 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참 오래도 미워하고 미워했다. 하지만 이런 결핍이 있는 나처럼, 바보같기만 한 나처럼, 어느 새벽 고독하게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을 만났다. 그렇게 나만이 망망대해 외롭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많이도 위로받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내가 한심하고 부족하고 미운 건 아니라는 다정한 기운을 받고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면서.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가지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일어날까. 커다란 털실뭉치 같이 엉킨 세상에서 내가 당신을 알아볼 가능성, 용기를 그러모아 당신에게 다가갈 가능성, 무엇보다 당신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마음일 가능성.
그 모든 희박한 가능성이 같은 자리에서 운명처럼 교차할 때, 그때야말로 우리가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지 않을까. p.166
그런 때가 있었다. 울어도 되는 날이다. 기적의 머리채를 잡지 못했다.
_ 마음을 다 한 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에 족적을 남겼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어제 아름다운 문장을 읽은 내가, 오늘 조금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p.58
앞으로의 삶에 어떤 사랑이 올지는 모르겠다. 마음을 다 한 일이니 의미없지는 않겠지. 사랑이 없다고 믿었으나 사랑이 아무 것도 아닌 날에도 사랑을 말하자는 작가의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싶다. 이렇게 책을 읽고 또 마음을 다독이고 조금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보자. 조용히 문을 닫는 마음을, 그가 긴 새벽 내내 아무 꿈도 꾸지 않고 편하게 쉬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p.93)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