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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자루의 삶을 산 최북
"붓 한 자루의 삶을 산 최북" 내용보기
『붓, 한 자루의 생』은 지인에게 받은 책이다. 지인의 지인이 쓴 소설인데 읽어보라는 의미로 선물을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니 최삼경 작가는 나와도 지인일 수 있는 인연이다. 학창생활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피차 춘천에서 오래 살았으니 오다가다 스치기도 했을 법하다.   조선 영조 시대의 화가 최북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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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자루의 생』은 지인에게 받은 책이다. 지인의 지인이 쓴 소설인데 읽어보라는 의미로 선물을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니 최삼경 작가는 나와도 지인일 수 있는 인연이다. 학창생활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피차 춘천에서 오래 살았으니 오다가다 스치기도 했을 법하다.

 

조선 영조 시대의 화가 최북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다. 요즘은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는데, 350쪽 가까이 되니 제법 두툼한 분량이다. 한편 나는 그림에 대한 안목이 거의 없다. 최북에 대해서도 성격이 괴팍해서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고관과 다투다 스스로 자해하여 애꾸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당대 유명한 화가라는 것 외에는 그의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책이 재미가 있을까, 아무튼 낭만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책을 펼칠 때 '흥미진진'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해서 나의 배경지식이 거의 없으니 혹시 그림에 대한 깊은 지식이 나온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것 같지 않고, 자해할 정도의 성격이라면 정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 듯하며, 조선시대 화가의 삶이라는 것이 풍류와도 관계가 없을 듯했다. 혹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일 테니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책을 펼치고 몇 장을 넘기면서부터 거의 놓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만큼 몰입했다고 할까. 읽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무엇이 그리 흥미진진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당대의 역사만 단순하게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서민의 삶까지도 마치 신문을 보듯 자세히 묘사했다.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들어간 듯 실감이 났다고 할까.

 

둘째, 작가의 깊은 연구에 재삼 놀랐다. 최북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 상황은 실록 등 참고 자료가 많으리라고 본다. 조선 시대를 비롯하여 조선에 영향을 미친 중국의 서풍이나 화풍도……, 아마 미술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자료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 시대 서민들의 생활까지 어찌 그렇게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놀랍기만 하다.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로 교단생활을 했다. 국어라는 교과가 거의 모든 학문의 도구적 성격이 있다. 국어 교과서를 지도하려면 문학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위인이나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인물과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아야 한다. 교재연구를 하면서 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그 시대의 신문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왕과 신하들의 붕당 정치뿐만 아니라 사상, 각 지역의 위치와 분위기, 상류층은 물론 하류층의 생활상까지 묘사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어떻게 찾았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만주의 생활과 풍속(최북의 장인인 란의 아버지의 회상 장면)까지 담긴 것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가와 같이 당대의 시대상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교재 연구를 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은 역사서나 기행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장면들이 작품의 전개에 전혀 어색하지 않게 펼쳐진다는 것은 작가의 연구와 내공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일 것이다.

 

셋째, 소설적인 완성도도 높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최북이 이순신이나 김유신같이 전쟁 영웅도 아니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애절한 사랑이나 감동적인 효행이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 흥미진진할 이유가 없으며, 스스로 자해해서 눈이 상한다는 것이 유쾌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최북이 그림과 글에 관심을 갖고, 이웃의 양반의 눈에 들어서 그림을 배우고, 화가가 되었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고 있는데……, 어찌 보면 평범한 이 이야기를 독자가 싫증 내지 않도록 이끈다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 역량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넷째, 사랑 이야기가 있으니 흥미를 더해준 듯하다. 최북의 장인인 란이 아버지가 만주에서 란이 어머니와 만나서 가정을 이룬 이야기, 최북이 란이와 만나서 결혼을 한 이야기, 최북은 그러면서도 기생 월향과 만나면서 풍파를 겪게 된다. 자세한 묘사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줄인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는 최북의 삶과 거리가 먼 허구이겠지만, 독자로서는 재미가 있었다.

 

다섯째, 뜬금없지만  이정명 작가의『바람의 화원』이 생각났다. 15년 전에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고, 단행본도 독자의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의 유명 화가인 혜원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단원 김홍도를 혜원의 스승이자 연인으로 가정해서 작품을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단행본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단원과 혜원의 작품이 삽화로 곳곳에 소개되면서, 작가는 그림에 얽힌 일화를 덧붙이면서 풀어주니 자연스럽게 그림 공부도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최북의 그림들을 자주 삽화로 소개하면서 작품의 배경과 연결시키고 있다.

 

『바람의 화원』이나 『붓, 한 자루의 생』은 전기나 작품 해설서가 아니라 평전이다. 작품에서 언급한 그림의 배경이나 일화가 반드시 사실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작가의 상상도 덧붙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감상은 독자의 몫이니 작가의 관점 역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또한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는 안목이 길러진다는 데서 두 작품의 공통성이 느껴졌다.

 

여섯째, 작품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꼈다. 중국과 한국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찾으려는 최북의 고뇌를 담은 대목에서는 화가의 집념과 열정을 느꼈다. 아울러 중국과 한국의 그림에 대한 나의 이해도 깊어졌다. 지금까지 동양화나 한국화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깊이 있게 쓴 글을 보지 못했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애정을 갖고 읽은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북(최북)은 산이며 강이며 들판에 나가 실경(實景)을 보며 대충의 밑그림을 그릴 때면, 과연 실제 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하고 자문할 때가 많았다. 실경이란 것이 같은 날에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어서 실재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기억이 어찌 이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기억을 통한 재현은 이미 왜곡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표암이나 겸재가 말하는 '진경산수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또한 산수화 자체가 그린 이의 화의(畵意)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 진경이라는 말이 참으로 애매하였다. (303~304쪽)"

 

최북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회의를 거듭하면서, 진정한 그림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번뇌를 하는 장면이다. 형식상으로는 최북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지만, 당대 모든 화가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화가나 그림에 대한 평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고민까지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이해가 깊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곱째, 나의 예상이 모처럼 맞는 것을 보면서 아직은 나의 생각이 녹슬지 않음을 느꼈다. 최북이 란과 월향을 마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최북의 부모는 백년해로를 못했고, 최북의 장인과 장모도 그랬다. 최북의 누이도 결혼과 동시에 소식이 끊기면서 친정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오지 못했다. 작품 속의 남녀 관계가 순탄한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최북과 란, 또는 최북과 월향의 관계를 암시하는 복선일 것이라고 보았는데,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예상대로 작품이 전개되었다.

 

여덟째, 이순원 작가의 『은비령』이 떠올랐다. 『은비령』은 실재의 지명이 아니고, 그곳은 작은 한계령 또는 필례령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이순원 작가가 동명의 작품에서 남주인공이 한계령의 아름다움에 반해 여덟 곳에 '은비팔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작품이 독자의 호응을 받으면서 소설 속의 지명인 '은비령'이 실제 지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작품 속의 지명이 실제의 지명이 된 드문 사례이다.

 

이순원 작가는 최근에 『춘천은 가을도 봄』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이 은비령을 지나는 대목이 나온다. 독자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은비령이라는 상호의 업소가 몇 곳 있고, 주변에서 은비령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명명한 은비령을 자신의 다른 작품 속에서 거론하면서 작가는 얼마나 뿌듯했을까?

 

최삼경 작가의 『붓, 한 자루의 생』에는 최북이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은 뒤에 그곳의 풍경을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 대목에서 최북의 여정이 배를 타고 춘천의 소양강까지 온 뒤에 육로로 금강산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영강, 소양강, 삼악산 등과 주변 풍경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최북이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일행이 춘천을 거쳤는지는 모르겠다. 서울에서 금강산을 갈 때는 반드시 춘천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강을 통해 여주와 횡성을 거쳐 갈 수도 있고, 철원 쪽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아마도 자신이 성장한 춘천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최북의 여정을 소양강으로 설정했을 것이고, 주변 풍경을 애정을 지니며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순원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 '은비령'을 거론하면서 득의의 미소를 지었듯이…….

 

아홉째, 김유정 작가의 『봄·봄』을 생각했다. 언젠가 문학회 모임에서 『봄·봄』을 주제로 평가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제목에 왜 봄이 두 번 나왔으며, 사이의 가운뎃 점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그때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1) 두 남녀의 봄을 상징 : 나와 점순이의 봄이므로 두 번, 가운데 점(·)은 서로 마주 봄.

2) '봄을 봄(봄을 보았다)의 준말'을 명사 형태로 표현함.

3) 점순이의 이름 : 아마 그녀의 얼굴에는 점이 있었을 것.

4) 작가 또는 인쇄소의 오타 : 그 시절 맞춤법에는 가운뎃점이 없었음.

 

정답은 모르겠다. 우리들이 정답을 알아낼 위치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붓, 한 자루의 생』에서 쉼표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쉼표가 없으면 어떻고, 느낌표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열째, 다시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을 되새겼다. 내가 이 작품을 열심히 읽은 이유 중에는 작품 속에서 단원과 혜원을 비롯한 여러 작가의 그림이 소개되면서 그 그림의 배경을 작가 나름으로 풀이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림과 풀이가 좋았다. 그 대목들은 내가 읽은 단원과 혜원의 그림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안내서였다.

 

『붓, 한 자루의 생』에서도 최북의 여러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인쇄 상태가 너무 흐렸다. 그림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실망이 앞섰다. 수십 장의 작품을 원색으로 제시하려면 인쇄비 등의 부담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다음 이미지)에 있는 최북을 검색하여 갈무리한 그림들이다. 이 책의 삽화를 이렇게 원색으로 만날 수 있었다면 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이 더욱 컸으리라고 본다.


속표지에 나오는 최북의 초상화이다. 최소한 이 그림만이라도 원색으로 소개하였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열한째, 붓 한 자루의 생을 산 최북이 부러웠다. 백과사전에 나온 최북의 출생과 사망은 '1720년(숙종 46) ~ 미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70세를 넘긴 것으로 전개하고 있다.

 

"북은 자신의 나이가 어느새 칠십이 넘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새삼 알았다. (328쪽)"

 

작가가 무엇을 근거로 최북이 칠십 세 이상의 장수를 누린 것으로 기록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의 벗인 원교와 필재 등이 먼저 떠났고, 그가 죽었을 때 신광하가 「최북가」를 지어 애도한 것 등으로 칠십 세를 넘긴 것으로 본 듯하다. 아무튼 최북은 최소한 환갑은 넘긴 듯하니 그 시대로서는 장수한 것이다. 자해 행위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고, 홀몸으로 술에 찌들면서 가난하게 산 것에 비하면 놀라운 체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왕성한 창작 활동은 아마도 체력의 뒷받침이 있었기게 가능했던 듯하니, 그림과 글의 능력에 더하여 체력과 수명과 명예까지 갖추었으니 이만하면 부러운 삶이 아닌가 싶다. 다만 부귀와 처복이 따르지 않은 듯하나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열두째, 옥에 티를 거론하라면 2%쯤의 부족함을 들겠다. 두 가지만 거론하겠다.

 

1) 헤어졌던 월향이 빈곤한 최북을 찾아와서 식사를 마련하고 냉방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온다. 한동안 불기가 없던 방에서 최북은 그날 모처럼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숙면을 취했다고 하는데…….

 

"북은 간만에 불구경을 한 구들에 뜨뜻하게 허리를 지졌다. 허리부터 시작한 불기운이 불기둥이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214쪽)"

 

글쎄, 나는 시골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황토방에 불을 때며 살고 있다. 한동안 불을 때지 않은 온돌방이라면 그렇게 금방 따뜻해지지 않는다. 겨울 같으면 2~3일은 때야 온기가 느껴지고, 여름이라도 일주일 이상 안 땐 방이라면 하루 정도 지나야 뜨뜻해질 것이다. 불기운이 하루 만에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려면 숯가마 정도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2) 최북의 장인인 난이 아버지는 만주에서 난이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한동안 거주했다. 최북 자신도 만주와 일본과 러시아까지 여행한 것으로 나오는데……. 작품 속에는 중국어, 일본어 등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최북이 중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림을 팔거나 그려주었을까?

 

혹시 작가가 나의 리뷰를 본다면, 억지로 옥에 티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보여 준다면 멋진 대답이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최북이라는 화가는 물론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품 속에는 그 무렵의 정치와 서민들의 삶을 거의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 이 글은 앞서 쓴 1~2차 리뷰에 몇 자를 덧붙여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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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3 2023.05.30.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생각지 않게 몰입한 최북의 삶 두 번째 이야기
"생각지 않게 몰입한 최북의 삶 두 번째 이야기" 내용보기
사흘 만에 완독했다.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던 나로서는 드문 상황인데, 여러 요인이 있는 듯하다. 그만큼 책의 가독성이 높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서울을 여행하면서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을 대여섯 시간 이상 타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책과 나는 좋은 인연인 듯하다는 생각 속에 책장을 덮으면서 스친 생각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작품에 대
"생각지 않게 몰입한 최북의 삶 두 번째 이야기" 내용보기

사흘 만에 완독했다.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던 나로서는 드문 상황인데, 여러 요인이 있는 듯하다. 그만큼 책의 가독성이 높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서울을 여행하면서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을 대여섯 시간 이상 타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책과 나는 좋은 인연인 듯하다는 생각 속에 책장을 덮으면서 스친 생각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작품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꼈다. 중국과 한국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찾으려는 최북의 고뇌를 담은 대목에서는 화가의 집념과 열정을 느꼈다. 아울러 중국과 한국의 그림에 대한 나의 이해도 깊어졌다. 지금까지 동양화나 한국화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깊이 있게 쓴 글을 보지 못했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애정을 갖고 읽은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북(최북)은 산이며 강이며 들판에 나가 실경(實景)을 보며 대충의 밑그림을 그릴 때면, 과연 실제 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하고 자문할 때가 많았다. 실경이란 것이 같은 날에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어서 실재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기억이 어찌 이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기억을 통한 재현은 이미 왜곡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표암이나 겸재가 말하는 '진경산수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또한 산수화 자체가 그린 이의 화의(畵意)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 진경이라는 말이 참으로 애매하였다. (303~304쪽)"

 

최북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회의를 거듭하면서, 진정한 그림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번뇌를 하는 장면이다. 형식상으로는 최북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지만, 당대 모든 화가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화가나 그림에 대한 평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고민까지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이해가 깊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둘째, 나의 예상이 모처럼 맞는 것을 보면서 아직은 나의 생각이 녹슬지 않음을 느꼈다. 최북이 란과 월향을 마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최북의 부모는 백년해로를 못했고, 최북의 장인과 장모도 그랬다. 최북의 누이도 결혼과 동시에 소식이 끊기면서 친정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오지 못했다. 작품 속의 남녀 관계가 순탄한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최북과 란, 또는 최북과 월향의 관계를 암시하는 복선일 것이라고 보았는데,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예상대로 작품이 전개되었다.

 

셋째, 이순원 작가의 『은비령』이 떠올랐다. 『은비령』은 실재의 지명이 아니고, 그곳은 작은 한계령 또는 필례령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이순원 작가가 동명의 작품에서 남주인공이 한계령의 아름다움에 반해 여덟 곳에 '은비팔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작품이 독자의 호응을 받으면서 소설 속의 지명인 '은비령'이 실제 지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작품 속의 지명이 실제의 지명이 된 드문 사례이다.

 

이순원 작가는 최근에 『춘천은 가을도 봄』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이 은비령을 지나는 대목이 나온다. 독자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은비령이라는 상호의 업소가 몇 곳 있고, 주변에서 은비령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명명한 은비령을 자신의 다른 작품 속에서 거론하면서 작가는 얼마나 뿌듯했을까?

 

최삼경 작가의 『붓, 한 자루의 생』에는 최북이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은 뒤에 그곳의 풍경을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 최북의 여정이 배를 타고 춘천의 소양강까지 온 뒤에 육로로 금강산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영강, 소양강, 삼악산 등과 주변 풍경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최북이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일행이 춘천을 거쳤는지는 모르겠다. 서울에서 금강산을 갈 때는 반드시 춘천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강을 통해 여주와 횡성을 거쳐 갈 수도 있고, 철원 쪽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아마도 자신이 성장한 춘천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최북의 여정을 소양강으로 설정했을 것이고, 주변 풍경을 애정을 지니며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순원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 '은비령'을 거론하면서 득의의 미소를 지었듯이…….

 

넷째, 김유정 작가의 『봄·봄』을 생각했다. 언젠가 문학회 모임에서 『봄·봄』을 주제로 평가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제목에 왜 봄이 두 번 나왔으며, 사이의 가운뎃 점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그때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1) 두 남녀의 봄을 상징 : 나와 점순이의 봄이므로 두 번, 가운데 점(·)은 봄.

2) 봄을 봄(봄을 보았다)의 준말을 명사 형태로 표현함.

3) 점순이의 이름 : 아마 그녀의 얼굴에는 점이 있었을 것.

4) 작가 또는 인쇄소의 오타 : 그 시절 맞춤법에는 가운뎃점 없었음.

 

정답은 모르겠다. 우리들이 정답을 알아낼 위치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붓, 한 자루의 생』에서 쉼표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쉼표가 없으면 어떻고, 느낌표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다섯째, 다시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을 생각했다. 내가 이 작품을 열심히 읽은 이유 중에는 작품 속에서 단원과 혜원을 비롯한 여러 작가의 그림이 소개되면서 그 그림의 배경을 작가 나름으로 풀이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림과 풀이가 좋았다. 그 대목들은 내가 읽은 단원과 혜원의 그림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안내서였다.

 

『붓, 한 자루의 생』에서도 최북의 여러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인쇄 상태가 너무 흐렸다. 그림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실망이 앞섰다. 수십 장의 작품을 원색으로 제시하려면 인쇄비 등의 부담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속표지에 나오는 최북의 초상화이다. 최소한 이 그림만이라도 원색으로 소개하였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여섯째, 옥에 티를 거론하라면 2%쯤의 부족함을 느꼈다. 두 가지만 거론하겠다.

 

1) 헤어졌던 월향이 빈곤한 최북을 찾아와서 식사를 마련하고 냉방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온다. 한동안 불기가 없던 방에서 최북은 그날 모처럼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숙면을 취했다고 하는데…….

 

"북은 간만에 불구경을 한 구들이 뜨뜻하게 허리를 지졌다. 허리부터 시작한 불기운이 불기둥이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214쪽)"

 

글쎄, 나는 시골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황토방에 불을 때며 살고 있다. 한동안 불을 때지 않은 온돌방이라면 그렇게 금방 따뜻해지지 않는다. 겨울 같으면 2~3일은 때야 온기가 느껴지고, 여름이라도 일주일 이상 안 땐 방이라면 하루 정도 지나야 뜨뜻해질 것이다. 불기둥이 하루 만에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려면 숯가마 정도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2) 최북의 장인인 난이 아버지는 만주에서 난이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한동안 거주했다. 최북 자신도 만주와 일본과 러시아까지 여행한 것으로 나오는데……. 작품 속에는 중국어, 일본어 등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최북이 중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림을 팔거나 그려주었을까?

 

혹시 작가가 나의 리뷰를 본다면, 억지로 옥에 티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빈다. 다만 더 좋은 작품으로 대답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최북이라는 화가는 물론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품 속에는 그 무렵의 정치와 서민들의 삶을 거의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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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3 2023.05.29.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생각지 않게 몰입한 최북의 삶 첫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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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자루의 생』은 지인에게 받은 책이다. 지인의 지인이 쓴 소설인데 읽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니 최삼경 작가는 나와도 지인일 수 있는 인연이다. 학창생활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피차 춘천에서 오래 살았으니 오다가다 스치기도 했을 법하다.   조선 영조 시대의 화가 최북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다.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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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자루의 생』은 지인에게 받은 책이다. 지인의 지인이 쓴 소설인데 읽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니 최삼경 작가는 나와도 지인일 수 있는 인연이다. 학창생활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피차 춘천에서 오래 살았으니 오다가다 스치기도 했을 법하다.

 

조선 영조 시대의 화가 최북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다. 요즘은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는데, 350쪽 가까이 되니 제법 두툼한 분량이다. 한편 나는 그림에 대한 안목이 거의 없다. 최북에 대해서도 성격이 괴팍해서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고관과 다투다 스스로 자해하여 애꾸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당대 유명한 화가라는 것 외에는 그의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책이 재미가 있을까, 아무튼 낭만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책을 펼칠 때 '흥미진진'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해서 나의 배경지식이 거의 없으니 혹시 그림에 대한 깊은 지식이 나온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것 같지 않고, 자해할 정도의 성격이라면 정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 듯하며, 조선시대 화가의 삶이라는 것이 풍류와도 관계가 없을 듯하다. 혹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일 테니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책을 펼치자 거의 놓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만큼 몰입했다고 할까. 읽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무엇이 그리 흥미진진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단순한 당대의 역사만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서민의 삶까지도 마치 신문을 보듯 자세히 묘사하니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들어간 듯 실감이 났다.

 

둘째, 작가의 깊은 연구에 재삼 놀랐다. 최북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 상황은 실록 등 참고 자료가 많으리라고 본다. 조선 시대를 비롯하여 조선에 영향을 미친 중국의 서풍이나 화풍도……, 아마 미술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자료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 시대 서민들의 생활을 어찌 그렇게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놀랍기만 하다.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로 교단생활을 했다. 국어라는 교과가 거의 모든 학문의 도구적 성격이 있다. 국어 교과서를 지도하려면 문학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위인이나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인물과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아야 한다. 교재연구를 하면서 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그 시대의 신문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왕과 신하들의 붕당 정치뿐만 아니라 사상, 각 지역의 위치와 분위기, 상류층은 물론 하류층의 생활상까지 묘사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어떻게 찾았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만주의 생활과 풍속(최북의 장인인 란의 아버지의 회상 장면)까지 담긴 것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가와 같이 당대의 시대상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교재 연구를 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은 역사서나 기행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장면들이 작품의 전개에 전혀 어색하지 않게 펼쳐진다는 것은 작가의 연구와 내공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일 것이다.

 

셋째, 소설적인 완성도도 높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최북이 이순신이나 김유신같이 전쟁 영웅도 아니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애절한 사랑이나 감동적인 효행이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 흥미진진할 이유가 없으며, 스스로 자해해서 눈이 상한다는 것이 유쾌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최북이 그림과 글에 관심을 갖고, 이웃의 양반의 눈에 들어서 그림을 배우고, 화가가 되었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고 있는데……, 어찌 보면 평범한 이야기를 독자가 싫증 내지 않도록 이끈다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 역량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넷째, 사랑 이야기가 있으니 흥미를 더해준 듯하다. 최북의 장인인 란이 아버지가 만주에서 란이 어머니와 만나서 가정을 이룬 이야기, 최북이 란이와 만나서 결혼을 한 이야기, 최북은 그러면서도 기생 월향과 만나면서 풍파를 겪게 된다. 자세한 묘사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줄인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는 최북의 삶과 거리가 먼 허구이겠지만, 독자로서는 재미가 있었다.

 

다섯째, 뜬금없지만 『바람의 화원』이 생각났다. 15년 전에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고, 단행본도 독자의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의 유명 화가인 혜원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단원 김홍도를 혜원의 스승이자 연인으로 가정해서 작품을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단행본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단원과 혜원의 작품이 삽화로 곳곳에 소개되면서, 작가는 그림에 얽힌 일화를 덧붙이면서 풀어주니 자연스럽게 그림 공부도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최북의 그림들을 자주 삽화로 소개하면서 작품의 배경과 연결시키고 있다.

 

『바람의 화원』이나 『붓, 한 자루의 생』은 평전이나 작품 해설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작품에서 언급한 그림의 배경이나 일화가 반드시 사실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작가의 상상도 덧붙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감상은 독자의 몫이니 작가의 관점 역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또한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는 안목이 길러진다는 데서 두 작품의 공통성이 느껴졌다.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절반을 약간 넘긴 218쪽(전체 348쪽)까지 읽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리뷰 2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최북이라는 화가는 물론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품 속에는 그 무렵의 정치와 서민들의 삶을 거의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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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3 2023.05.27.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최삼경 작가의 앞날에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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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최고의 화가로 추앙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지. 스스로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된 조선의 화가 칠칠이 최북은 그에 빗대어 조선의 반 고흐라고도 한다. 기준은 유명세에 따른 것일까? 그래서 나이로만 따져도 141년 전 사람 최북을 고손자뻘이나 되는 고흐에 견준 것일까? 나는 이 빗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고흐는 고흐이고 최북은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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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최고의 화가로 추앙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지. 스스로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된 조선의 화가 칠칠이 최북은 그에 빗대어 조선의 반 고흐라고도 한다. 기준은 유명세에 따른 것일까? 그래서 나이로만 따져도 141년 전 사람 최북을 고손자뻘이나 되는 고흐에 견준 것일까? 나는 이 빗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고흐는 고흐이고 최북은 최북일 뿐.

최북은 조선 영,정조 시기에 활약했던 중인 화가로 뛰어난 실력으로 도화서에도 발탁되었으나 배짱이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 주로 이광사(李匡師)·강세황(姜世晃) 등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소론이나 남인 계열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는데 기이한 행동으로 광생(狂生)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최북의 일대기를 그린 것.

작가는 기록으로 전하는 역사 사실, 이 뼈마디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 생동감 넘치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흥미진진하다. 만주와 조선, 일본까지를 넘나드는 배경이며 그 안에서 얽힌 인연과 설킨 사연들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책장을 넘어 간다. 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비극적 로맨스도 있는데 이름부터 여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조강지처 '란'과 남자가 먹고 살만 하면 꼭 나타나고는 하는 기생 월향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그것. 애들이라면 결코 지어낼 수 없는 이순(耳順), 작가의 연륜이 묻어난다.

말이 나온 김에 굳이 꼬집어 보자면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는 최북 처가의 고향은 함경도인데 감칠맛 나는 사투리의 대부분은 강원도 방언. 강원도가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일 테지만 어쩐지 무언가 살짝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어색한 면도 있다. 중간에 한 장 씩 들어 있는 그림의 인쇄 상태도 너무 조악하기만 하다. 오히려 소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 조금만 더 신경써서 깨끗하게 잘 보이도록 했으면 좋겠다.

칠칠이 최북의 이름을 듣고 보아서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한 편의 소설로 다시 만나 보니 새롭고도 반갑기 그지없다. 왕유의 산거추명을 란이와의 사랑이야기에 접목해 달리 해석한 것도 좋았다.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이광사의 글씨도 살갑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구성과 전개, 깔끔한 문장이 소설의 진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 향기에 흠뻑 취했다. 최삼경 작가의 앞날에 영광을!

질문 하나.

제목에서 붓 다음에 쉼표는 도대체 왜 찍은 것인지? 붓 한 자루가 바로 칠칠이 최북이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쉼표를 빼도 괜찮을 것 같은데 운율과 시각적 효과를 노렸을까? 표지에서 부터 궁금증이 인다. 

r****l 2023.05.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