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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SF 소설의 새로운 시작"
팻 머피의 <사랑에 빠진 레이철> 를 읽고
“이제, 페미니즘 SF의 계보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표제작인 <사랑에 빠진 레이철>을 비롯한 20편의 SF 단편들 모음집-
SF의 소설 속에서 보이는 작가의 상상력은 무제한적이다. 이 소설 속에서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처럼 시간여행자도 될 수 있고, 영화 <스타워즈> 처럼 우주 공간을 여행하며 외계인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SF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 책 『사랑에 빠진 레이철』을 통해 우리는 20편의 SF 단편 소설들을 만날 수 있다. 각 단편들은 다양한 SF적인 무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다채로운 SF 세계로 우리들을 초대한다. 저자인 팻 머피는 페미니즘 SF 여성 소설가로서, 괴롭힘을 당하고 매맞는 아내와 부랑자 여성들, 가난한 노파, 비천한 상황에 있는 여성들을 구원하는 SF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다양한 SF 상상력으로 쓰여진 20편의 단편들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는데,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먼저 표제작인 <사랑에 빠진 레이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레이철' 이라는 이름만으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침팬지였다. 이 침팬지는 다른 여타의 침팬지와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레이철이 10대 소녀의 뇌를 이식받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겉모습은 침팬지이지만 내면은 10대 소녀의 마음을 가졌다. 집 안에만 갇혀있던 침팬지 레이철은 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자아 정체감 측면에 있어서 혼란을 겪는다. 과연 우리는 레이철은 겉모습 그대로 침팬지의 모습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10대 소녀인 레이철의 뇌로부터 이식받았기 때문에 겉모습은 비록 인간이 아니지만, 그 자체로는 사람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난 진짜 소녀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수화로 말한다. -p. 90
침팬지인 레이철조차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레이철은 수화를 통해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 덕분에 청소부인 제이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청소하는 것도 도와주며 인간 대접을 받으며 감금된 유인원센터에서 생활하게 된다. 또한 잡지를 통해 인간의 성과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나 구속과 억압을 못 참고 레이철은 수컷 침팬지인 존슨과 함께 우리를 탈출해서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가 소녀로서, 침팬지로서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괴물이라고 인정하게 된 레이철은 존슨의 손을 잡고 더이상 사막에서의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집으로 가게 된다. 특히 작품의 제목처럼 처음으로 침팬지인 레이철이 성과 사랑을 알아버리고 난후 받은 충격을 솔직하게 나타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인간과 동물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 괴물과 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겪을만한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레이철의 모습 또한 흥미로웠다.
두번 째 작품인 <채소 마누라>에서는 저자는 여성을 식물처럼 구매해서 심을 수 있고 수확할 수 있는 존재로 설정한다. 이 채소 마누라는 마치 식물처럼 모래땅과 햇빛을 좋아하고 식물처럼 싹이 나고 60센티미터로 자라면 옮겨 심을 수 있다. 다 자라면 여성의 몸을 가지며, 구매한 농부의 아내가 되어서 성적으로 착취당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여성을 성적으로 폭행하고 착취하는 남성들의 모습과 그런 남성들에 의한 성적 억압과 폭행에 항거하며 마침내 땅 위에 우뚝 선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저자인 팻 머피가 페미니즘 SF 소설의 계보를 이었다고 평가를 받나보다.
또한 매 맞는 아내에 대한 묘사와 가정폭력에 대한 고발이 두드러진 작품인 <숲속의 여자들>속에서도 작가의 페미니즘적 생각을 잘 엿볼 수 있다. 땅 주인의 할머니가 어렸던 시절에도 참나무는 늙은 나무였고 숲은 늘 그곳에서 달아난 여자들을 보호해 주었다. 남성의 가정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 작품 속의 '숲'과 같은 안전한 공간이 우리 사회에서 있기를 바래본다.
이 외에도 시간여행자를 소재로 한 <오렌지 꽃이 피는 시간>, 외로운 중년 여성이 외계인을 만나는 이야기인 <유성은 우주에서 날아온 돌멩이다>등 여러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SF 상상력이 만든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이 책 『사랑에 빠진 레이철』 속 20편의 단편들을 통해 제임트 팁트리 주니어상 창설자인 팻 머피가 안내하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SF 셰계와 페미니즘적 요소를 만나보길 바란다.
이 글은 동아시아 허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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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의 전유물, SF" 1976년 일명 '팁트리 쇼크'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가장 남성적인 SF를 쓴다고 평가받아 온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실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현대 시대에서 그게 뭐가 쇼크일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SF계에 남성 작가들이 매우 우세했던 시대이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오던 때에 아더와이즈상(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을 수상한 팻 머피는 그러한 흐름을 끊어내는 작품을 쓴다. 동시에 페미니즘 SF의 시작이 되는 여러 단편 작품들이 바로 이 책 <사랑에 빠진 레이철>에 담겨 있다.
저자 팻 머피가 작가인 동시에 과학자인 만큼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과학적인 소재를 꽤 많이 가지고 있다. 채소인간, 어류인간 등 꽤나 공상적인 소재와 외계인, 네안데르탈인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재들이 등장하는 이 단편 소설들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읽는 내내 계속 의문점이 들고,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드는데 동시에 마지막 작품인 <무척추동물의 사랑과 섹스>에서 첫 문장인 "과학과 아무 관련이 없다"라는 문장은 묘한 의문점을 자아낸다.
"비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이야기" 소설 속 이야기들은 꽤나 충격적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 담겨 있다. 전에 읽었던 몇몇 다른 SF 소설 역시 SF스러운 배경 속에서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미 겪어보았거나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팻 머피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느낌에 가끔은 기괴하면서도 찝찝한 느낌도 든다. 소설 속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딘가에서는 놀랍게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간 여행을 다루는 <오렌지 꽃이 피는 시간>을 시작으로, 너무나 충격적인, 그러나 자주 발생하는 여성 대상의 범죄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채소 마누라>, 이 책의 제목이면서 소녀와 침팬지의 감정이 뒤섞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에 빠진 레이철> 등 읽어나갈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페미니즘 SF 소설에 맞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작품 속 여성들은 약자로 여겨지고, 피동적인 대상이 되지만 결국은 한계를 넘어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나아가는 결말을 맺는 부분에서 팻 머피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세대의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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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이 행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아가는 별종들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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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SF를 담은 워프시리즈의 5번째 책, 팻 머피의 <사랑에 빠진 레이철>은 2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내 스스로를 구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겨있다. 이방인, 외계인 같은 존재, 알 수 없는 존재도 다수 등장해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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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멋스러운 검은 색인데 읽을수록 주황색이 자꾸만 떠오른다. 세상에 여자는 왜 존재 하는 것일까? 이 책에 나오는 여인들은 모두 행복해진걸까? 이 책은 현실인 듯, 상상인 듯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 과거에서 오렌지를 가져오는 시간여행자,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여인으로 성장하는 채소여자, 침팬지 속에 갇힌 소녀, 먼 옛날에서 온 곰의 영혼과 대결하는 여자,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여자, 우주선을 기다리는 여자, 우주로 가버린 소녀, 숲 속 여자들이 지켜준다는 매맞는 여자, 바다 폭풍이 부른다고 생각하는 여자, 자신이 만든 진흙인형이 악마가 된다고 믿는 여자, 하수구에 외계인이 산다고 생각하는 여자 등 일반적이지 않게 보이는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오렌지 꽃이 피는 시간에서 여인은 왜 시간 여행을 할까? 스러져가는 미래 도시에 자꾸 친절을 베풀려고하지? 채소 마누라에서 등장하는 씨앗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세상은 자기 주장을 하는 여자가 필요 없다는 뜻인가? 사랑에 빠진 레이첼에서 박사는 개인의 욕심으로 딸의 정신을 살렸을까? 왜 아내의 정신은 살리지 않았지? 머나먼 곳의 무더운 여름밤을 읽으면 정말로 남미 어딘가 산 속 깊은 동굴에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도시 빈민들이 사라지면 전부 우주로 가 버린 것일까? 뼈에 나오는 박사와 거인의 승자는 누구일까? 지팡이일까? 모두 다는 아니지만 각 단편마다 주인공여인들 뒤에 있는 남성의 욕망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사랑에 빠진 레이첼에 등장하는 침팬지에게 딸의 의식을 살려둔 아버지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딸을 가두고 싶었던 건 아닐까? 레이첼은 침팬지로 살아야 하는 걸까?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인간이 다른 종에 대해서 허용적인가? 레이첼은 침팬지이지만 동시에 십 대 인간 소녀이기 때문에 성인 남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또 침팬지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성 침팬지를 받아들인다. 박사가 살아서 레이첼이 동반자 침팬지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걸 봤다면 과연 인정을 할까? 책 속으로 들어 갈수록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인간세계에서 도피하고 싶은 여자들의 현실이 보여서 씁쓸했다. 매 맞는 아내가 숲 속에 여자들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믿지 않았다면 도망칠 수 있었을까? 나는 왜 SF가 아니라 사회고발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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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과 젠더에 관한 문학적 시야를 넓힌 작품에 수여되는 상인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현 아더와이즈상)'의 창설자가 팻 머피라는 책의 소개 글을 읽었다. 이어서 '페미니즘SF 계보의 시작'이라는 뒤표지 글을 훑었다. 그녀의 단편들을 읽어갈수록 앞선 문장들을 모두 납득할 수 있었다. 팻 머피의 소설 속 여자들은 억압되어 있었고, 짓밟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마침내 자유를 쟁취해낸다. SF적 세계관 안에서 행해지는 이 여성들의 투쟁과 결단은 더욱 강력하고 고귀했다. 고통받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읽을수록 불편하고 괴롭다. 동시에 어떠한 투쟁심이 타오른다. 자연스럽게 독자는 그녀가 그녀를 폭행하고 강간하는 남자로부터 벗어나길, 복수하길,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길 바라게 된다. 저자는 기묘하고 몽환적인 묘사로 그 성공적인 여정을 알린다. 「채소 마누라」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내로 삼을 채소를 심고 키우고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충격적인 설정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수동적이고 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식물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결국 자유를 쟁취해낸다는 점 때문이다. 수동적인 식물, 곧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죽은 그의 시체를 마치 식물처럼 땅에 묻어버리는 결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또한 팻 머피의 소설은 '이방인'을 다룬다. 현실과 섞이지 않고 기이하게 겉도는 '이방인'의 존재는 당연한 세계를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느끼도록 한다. 독자는 그 이방인의 주변인 또는 제3자의 시각으로 무난하게 둥근 세상에서 모나고 특별한 그들을 관찰한다. 「군도에서」는 시각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드넓은 모래사장과 짠 바다 내음이 가득한 베이 군도에 사는 ‘모리스’는 반은 수중 인간이고 반은 육지 인간이다.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돋아나고 옆구리엔 아가미가 존재하는 모리스를 관찰하는 해양생물학자 ‘닉’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닉은 아마 본인의 태생적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을 분석 욕구로 인해 모리스를 해부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친구가 그를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닉은 밤에는 죽은 모리스를 차가운 해부대에 눕혀 아가미가 돋아난 옆구리에 날카로운 메스를 박아 넣는 꿈을 꾸고, 낮에는 모리스와 함께 해양 생물을 관찰하고 밥을 먹는다. 모리스는 닉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바다로 돌아갈 것을 다짐한다. 모리스는 서로가 있어야 할 곳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 물에 빠져 죽을뻔한 닉을 구해주고는 작별을 고한다. 애정과 호기심과 소유욕 그 경계가 불분명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기묘한 세계관 속에서 각자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나아간다. 은유적인 문장들과 몽환적인 소재가 가득해 끊임없이 책장이 넘어갔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말 즐겁게 읽은 단편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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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레이철/팻 머피/허블 *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랑에 빠진 레이철>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읽으면 그저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은 원래 단순히 행복한 곳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자괴감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 해결할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모순의 굴레에 뛰어들게 하는 단편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평소에 자각하지 않고 지냈던 수많은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고, 인물들이 그러한 상황을 해결해가는 모습을 읽고 싶다면 추천하고픈 책이다. ?? <사랑에 빠진 레이철> 「마침내 그녀는 존슨의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레이철은 집으로 가고 있다.」 만약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지성을 가지고 소통이 가능한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이는 사람의 자격을 갖고 사람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한 대접을 위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막대한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당장 그렇다고 긍정의 대답을 내릴 순 없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의견은 아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종 내에서의 사소한 표현형의 차이만으로 서로를 박해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표면적으로나마 인간은 모두가 동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결국에는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갖고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생명체들도 어느 순간에는 사람의 범위에 편입되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고 누군가의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말이다. ?? 보통 단편집에는 한 명의 작가가 쓴 비슷한 색채를 가진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유독 그 스펙트럼이 넓어서 어떤 이야기는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팻 머피라는 작가가 그리는 다채로운 세계를 활자를 통해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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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가득~!
"넌 밖에 나가면 안 된다. 네가 살기에 좋지 않은 곳이야. 세상은 속 좁고 옹졸하고 멍청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사람들은 널 이해하지 못할 거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를 해치려 들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미워한다. 네가 다르다는 걸 알면, 네게 벌을 주고 해치려 들 거야. 널 가두어 놓고 절대 내보내 주지 않을 거다."
올 상반기에는 좋은 단편집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 최고가 바로 <사랑에 빠진 레이철>이다. 팻 머피. 그녀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였다.
1987년에 네뷸러 상을 수상한 표제작 <사랑에 빠진 레이철>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온몸이 찌릇찌릇했다. 그리고 레이철이 겪게 되는 일들 앞에서 인간으로서 저지르는 끔찍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침팬지 속에 갇힌 어린 소녀의 성장기. 침팬지에게 죽은 자신의 딸의 뇌 전기장을 덮어 씌워 되살려낸 애런. 그래서 인간과 침팬지 두 가지 기억을 갖게 된 레이철. 수화로 대화를 하고 글도 읽고 쓸 줄 알지만 목소리는 낼 수 없다. 아빠 애런의 죽음 뒤에 유인원 연구소에 실려간 레이철이 겪는 일들은 동물 학대의 매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기에 그 어떤 실험에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인간의 모습에 레이철이 투영된다. 현명한 레이철은 청소부 제이크에게 연정을 품지만 결국 자신에게 살뜰하게 구애하는 침팬지 존슨과 함께 연구소를 도망친다. 침팬지이자 인간인 레이철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채소 마누라> 는 여성을 식물화했다. 밭에다 식물을 심으면 여자로 자라게 된다. 채소 신부, 채소 처녀가 있지만 농부는 채소 마누라를 심는다. 점점 여자로 자라나는 채소 마누라를 쳐다보는 농부의 끈적한 시선. 다 자란 채소 마누라를 거칠게 대하는 농부의 모습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그리고. 팻 머피는 위대한 반전을 심어놨다. 채소 마누라는 농부가 자기에게 한 짓을 되갚아 준다. 농부가 묻힌 그 땅에서는 무엇이 자랄까?
시간여행자에게 받은 오렌지. 그녀가 시간여행자임을 알아챈 순간 그녀에게 가진 호감은 질투로 바뀐다. 나도 시간여행자가 되고 싶다. 나도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다. 전염병이 그들의 아파트를 덮치고 그도 병이 든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깨어날 때마다 눈앞에 그녀가 있다. 조금씩 늙어가는 그녀의 모습. 시간 여행의 대가일까? 두 사람은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의 오렌지 농장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시간은 끝난다. 공룡과 인간들, 우리의 시대는 끝난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사랑이. 나는 미래를 꿈꾸고, 금속 집게발의 달각거리는 소리가 나의 꿈을 채운다.
핵폭탄이 터지고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 로봇을 만드는 케이티. 사랑할 줄 아는 의갈목 수컷과 암컷을 만들고 죽음을 기다리는 케이티. 그가 만든 그 로봇들은 인간이 멸한 세상에서 또 다른 생명체가 될 수 있을까?
과학의 시대는 끝났다.
20편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과학과 여성을 모티브 삼아 이 지지리도 어리석은 시대를 맘껏 놀려대는 팻 머피의 글들은 통쾌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위기의식과 동시에 짜릿함을 절망과 함께 희망을 보여준다.
복합적인 감정을 계속 느낄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앞에서 새로운 SF 소설의 실체를 보는 기분이다. 쓸데없이 거창하지 않아서 좋고 전혀 본 적 없는 세상인데 익숙해서 소름 돋고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상대를 서술하고 있어서 놀랍다.
표제작 <사랑에 빠진 레이철>만 읽어도 팻 머피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그 짧은 단편에 인간의 오만함과 남성들의 우월감을 드러내면서도 현명하게 빠져나가는 레이철의 선택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둔다.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상상력에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과학의 시대가 끝났듯 우월감으로 똘똘 뭉친 시대도 끝날 것이다. 그 뒤에는 온건한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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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무너져버릴 것이다"라는 한 페미니스트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음지에서 숨죽여야 했던 여성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는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로 인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여전히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삶을 걸어야 한다. 일반적인 폭력 사건과 달리 유독 성폭력 사건은 피해와 가해라는 말이 여전히 애매하게 다루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 짓기도 힘들뿐더러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상황을 누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까? 강간과 섹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강간 문화를 드러내는 것, 성폭력은 누구 혹은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문제임을 밝히는 것이 바로 많은 여성들이 소리 높여 말하고 있는 페미니즘인 것이다. <무척추동물의 사랑과 섹스>로 이미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던 페미니즘 SF 소설가인 팻 머피의 단편집 <사랑에 빠진 레이첼>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죽은 딸의 전기장 패턴을 어린 침팬지의 뇌에 덮어 씌워 의사소통이 가능한 암컷 침팬지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사랑에 빠진 레이첼>,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오가며 시간 여행을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오렌지 꽃이 피는 시간>, 식물처럼 심기만 하면 자라나는 한 여성이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을 살해한다는 이야기인<채소 마누라>, 자신에게 무관심하던 영화배우 아버지에게 상처받으며 자란 한 여성이 아버지를 상징하던 TV를 버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 <TV 속의 죽은 남자들> 등 오랜 시간 여성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어온 그녀의 작품들에는 상처받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종국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그들을 억압하고 있던 사회 속으로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인류 역사상 사회적 약자에게 정의로운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피해와 가해는 일상이지만, 자신을 가해자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피해는 저절로 자명한 사실이 되지 않는 것은 모두가 합의하는 피해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는 인정 투쟁, 집단행동, 사회 운동, 여성주의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실천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 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저절로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가부장적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는 존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 되기'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서 위치성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그런 그녀는 여성들의 입장에 서서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며, 불완전한 여성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과 고통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해왔다. 적어도 나에게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겪어나 듣거나 보았을 이야기보다는 SF라는 상상력의 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작품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 문학을 이해하기에 가장 부담이 적었던 작품이었고 이 책을 접하게 될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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