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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의 "귀향의 영성"을 읽으면서 그의 일상속에서 만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보게 되었다. 그는 삶과 사역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났다. 그는 주님이 자신의 삶에 가까이 계심을 고백했다. 그는 주님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기쁨을 함께 하심에서 찾게 된 것이다.
그는 삶의 큰 문제가 아니라 작은 문제부터 출발하라고 말한다. 삶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고통을 무시하는 한 결코 삶의 기쁨도 맛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고 말한다.
" 주님, 저의 존재 전체를 주님의 임재 안으로 가져옵니다. 저의 분노와 고통까지 다 가져옵니다. 저의 십자가가 주님의 십자가와 연합되게 하소서. 저의 짐은 주님의 짐이 될 것이며, 주님의 짐은 저를 새 생명과 새 희망으로 충만하게 할 것이니라"
나우웬은 삶 전체를 주님과 연결시켜려고 한다.
귀향의 영성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삶에 대한 소중함이다. 소중한 삶을 우리는 가치없는 버려두었던 것이다. 삶에 가치를 깨닫는 자는 삶의 주인이신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주님께 돌아가지 않는 인생은 가치를 찾지 못한다. 또한 삶의 안식을 원한다면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주님께 들어가지 않는 이들은 진정한 삶의 안식을 누리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우리의 안식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고향이시다. 그곳은 사랑과 용서, 안식과 평안이 있다. 그곳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주님의 부르심과 초대하심에 우리는 응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다. 자유이다. 자유는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죄에서 해방, 어둠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 이는 주님만이 주신 선물이다.
주님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다. 귀향의 기쁨과 귀향의 즐거움을 우리는 함께 누려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주님께 돌아가도록 깨닫게 해 준다. 깨닫는 자가 행동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본서를 통해 다시 귀향의 소중함을 찾아갔으면 한다. 그곳은 나에게 주신 참된 집이 있다.
'나'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면, 사람들의 고민, 아름다움, 친절이 새상 똑똑이 보인다.
예수님을 따르는 용기는 순종이다. 순종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것을 갖게 한다. 그 세상이 주님의 세상이요. 우리의 세상인 것이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이 귀향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짐을 놓게 된다. 그분 안에서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갖게 되면서 섬김의 도를 따르게 된다는 삶의 진리를 따라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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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너무 분주하다. 스마트 폰, 인터넷의 홍수 속에서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진다. 서울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은 생각보다는 잠과 스마트폰 속의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과 기쁨보다는 피곤과 짜증이 담겨져 있다.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고, 더 낫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데 헨리 나우엔은 하버드대의 교수라는 성공과 번영의 직함을 버린 채 캐나다의 작은 발달장애인 공동체를 향해 떠나 10년이란 세월을 장애인들과 보냈다. 그 곳에서 쌓은 영성의 저력이 이 책에 잔잔한 어조로 담겨져 있다. 헨리 나우엔의 <귀향의 영성>은 예수님을 나의 집으로 삼는 하루의 마음을 담은 책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사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집의 이름을 헨리 나우엔은 4가지의 집으로 부르고 있다. 그 4가지의 집은 풍요의 집, 용서의 집, 회복의 집, 기쁨의 집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신다. 그 이유는 함께 살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집 주인으로 만찬을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준비된 사람들을 부르신다.
책 속에는 시적 표현들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집에 오기를 원하신다”(p.36),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며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p.46), “자비로 충만한 곳에 이르려면 예수님과 함께 가야만 한다”(p.59), “주님, 이 세상에 세워진 주님의 십자가는 새로운 희망의 표지판입니다”(76)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잃어버린 침묵, 묵상, 기쁨, 회복, 용서라는 단어들이 이 책의 주요 단어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영성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생겼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치 커다란 성의 벽돌처럼 하나씩 쌓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성을 쌓은 건축가처럼 신앙의 영성은 자신만의 작은 벽돌을 쌓아 올려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헨리 나우엔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현재 속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서는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기도생활과 성경 읽는 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여전히 영성의 허기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했는데 헨리 나우엔은 한 가지를 더 첨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섬김”이라는 단어였다. 헨리 나우엔은 지체 장애 아이들을 섬기면서 살아있는 영성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주님도 섬김의 대상으로 사시지 않고 섬기는 삶을 기꺼이 사셨다. 그래서 섬김을 통해 신앙이 자라고, 성숙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편이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외치는 고함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잔잔하면서 깊은 어조의 묵상이 담겨져 있다. 주님이 원하시던 섬김의 공동체인 교회와 섬김의 주체인 지도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바른 섬김이 무엇인지 더욱 깨닫게 되는 책이다. 진정한 귀향이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삶을 뛰어넘는 기도도, 삶을 뛰어넘는 설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에 힘이 있는 것은 바로 삶을 통한 기도와 섬김의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찬양의 행렬에 동참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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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나우웬의 책들을 보면, 읽으면 읽을수록 더 곱씹어보게 되는 영성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이번에 접하게 된 귀향의 영성도 책의 두께는 100페이지 남짓하지만 한장 한장 넘기는데 쉽지가 않았다. 한 귀절귀절 그의 일상에서 묻어나는 체험있는 영성의 깊이가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 듯이 한참동안 시선을 고정하고, 묵상하게 한다.
'와서 보라' 주님의 초대에 가까이 머물라 ( 본책 p49)
크리스챤이면 늘 예수님을 본받아 따르는 삶을 살고 싶고, 그러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진정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떤가는 막막하고 거대한 희생이 따른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헨리나우웬의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진짜집,귀향 으로 돌아가는 여정으로 편안하게 인도하고 있다. 주님의 따스한 초대에 그저 먼저 응할때, 우리는 그의 초대에 따라가면서 참된 안식의 집을 찾게 된다. 그가 인도하는 풍요의 집, 용서의 집, 회복의 집, 기쁨의 집을 초대받아 함께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나의 참된 집을 찾게 된다. 예수님을 삶을 따르는 여정 속에서 나는 어느새 나의 중심적 삶도, 과거의 상처, 두려움, 미움의 쓴 뿌리도 서서히 사라지고, 나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한발자국 작은 걸음을 먼저 내딪을 용기도 생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큰 희생을 원하시지도 않는다. 단지 우리 가까이 있는 단순한 섬김부터 행동으로 시작하면 된다. 물론 예수님의 따르는 삶 속에서 내가 지어야할 십자가,, 점점 강도 높은 훈련도 씨름하면서 이겨내야하지만,, 귀향의 길에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짐을 대신 가볍게 해주시는 주님안에 힘을 얻고, 다시 걷다보면 참된 귀향길에 있지 않겠는가~~~
'나를 따르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부터 내가 너로 사람을 취하게 하겠다. 전혀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너를 인도하겠다' (눅5:10참조) (본문p44 중)
풍요의 주님이 우리를 자유와 평안과 기쁨의 나라로 부르시는 초대에 응하면 우리는 나의 참된 집(귀향)에 거하게 된다.
상처받고 과거의 아픔의 쓴뿌리를 가진 이들에게도 참된 안식의 길로 인도하는 주님의 초대,,, 우리 모두 그런 초대에 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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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나의 집으로 삼는 하루를 귀향의 영성이라고 한다. 헨리 나우웬의 영성은 스폰지에 물이 살며시 스며드는 것처럼 내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는 것 같다. 예수님을 나의 집으로 삼는 하루는 과연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새로운 것을 찾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곧 하나님의 집이며, 그분이 집으로 삼으신 곳을 우리도 집으로 삼도록 초대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몸과 손과 얼굴과 마음은 점점 하나님과 우리가 자유로이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되어간다.”(p29) 맞다. 내가 곧 하나님의 집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의 집으로 삼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인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끊임없이 우리를 초대하시고 우리를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잠시 잊고 있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며 나아가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평안을 잠시 잊고 있었다. 경청해야 하고 묻고 거하는 방법을 잊고 있었다. 천국의 삶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나의 집으로 삼는 귀향의 영성이 바로 천국의 기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아직도 내 삶의 중심을 나에게 예수로 바꾸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이 중요합니다”라고 고백하라고 하는 뜻인 것을 잠시 있었다. 다시금 새롭게 찾은 진리가 있었다. 예수님의 초청은 “‘나밖에 모르는’ 세상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과 한 집에 있으며 자신의 참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는 걸을 믿는”것이다.(p40) 나를 넘어 4차원의 하나님의 세계에서 나라는 사람의 참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삶을 잠시 잊었다.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방해하는 나의 상처를 일상에서 삶에 허덕이며 눌리며 살았던 나를 ‘회피에서 십자가로’, ‘눌림에서 누림으로’ 옮기는 삶을 배운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서든 이 귀향의 영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매순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나의 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기대된다. 다시금 찾게 되는 귀향의 영성의 삶을 기대해 보게 된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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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헨리 나우웬이 쓴 삶의 영성을 읽고 많은 깨달음과 도전을 받은 바 있다. 채 그 은혜의 잔영이 남아 있는 때에 다시, ‘귀향의 영성’을 읽는 행운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서문에서 밝혔듯이 ‘1985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나눈 헨리의 사순절 강론 시리지를 다듬은 것’ 설교문이다. 사순절이라면 더 큰 은혜가 되었으리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갖고 이 책을 읽었다.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과 헨리 나우웬이 정신 지체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은 의미적인 면에서 일치한다고 하겠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간증을 했듯이, [프랑스의 라르쉬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꼭 집에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예일이나 라틴아메리카나 하버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15페이지)] 그래서 헨리를 ‘하나님을 삶의 한 복판에서 만나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았던 분으로 평가한다.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예수님을 따라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분의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고 도전을 주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셔서 함께 살자고 하는 내용이다.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에게 포로 신세인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백성임을 선언하면서, 자기를 섬기도록 해방을 시키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에 불복한 바로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방을 얻게 되었고, 명실 공히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예레미아 31장에서 더 적극적이며 직접적인 새 언약을 예고해 주셨고, 결국 예수님을 친히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보내 주심으로 함께 하심을 완성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하시기에 열심히시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신다.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삼으시고 임재 해 계신다. 이 책은 설명한다. 하나님과 동거하는 구체적 증거는 ‘기도’라고 선언한다. ‘진정한 기도란 주님의 십자가와 연합되게 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나의 짐을 예수님께 맡겨 드리는 삶이 주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살고 있음을 일깨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야 한다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셨음을 안다.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신 건 우리가 그 분의 삶을 살며 기도와 섬김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 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별리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손실이 아니라 풍부한 부요가 된다는 의미라고 부연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을 마치면서 105페이지에서, [사랑하는 친구여 이 책도 마친가지다. 책이 끝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당신이 여기서 읽고 경험한 내용은 어쩌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열매를 맺을지도 모른다. (중략)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새로운 섬김으로 우리를 부르실 것이다]고 기대를 피력하고 있다. 아마, 그렇게 변화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작가의 확신에 찬 선언이라고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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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책제목 '귀향의 영성'만 보아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워 원제목을 보았더니 A Spirituality of Homecoming이라는 제목으로 귀향이라는 뜻이 고향이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돌아갈 본집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헨리나우헨은 예수님을 나의 마음의 집에 모셔 사는 것이 귀향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영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마음속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끊임없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게 된다. 하나님은 머나먼 하늘이나 깊고 은밀한 미래에 계시지 않고 지금 여기에 우리의 마음에 계시니 얼마나 멋진가,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기쁨이며 힘이 된다. 귀향의 가장 큰 근거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되 결핍되고 상처 입은 사랑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결핍되고 상처 입은 사랑으로 사랑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즉시 극적인 변화를 보이기에는 부담이 크다. 주님은 큰 변화보다는 평소 나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을 좀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과 같은 작은 변화를 원하신다. 평소에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사람은 작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으로 그 걸음들을 내딛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작은 변화들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님을 닮게 한다. 어쩌면 극적인 변화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 역시도 순종하며 나아가면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멋진 계획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귀향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신비는 우리의 짐을 없애주시기 위해 주님이 오신것이 아니라 우리의 짐을 하나님의 짐과 우리의 고난을 하나님의 고난과 연결시키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하신 짐이 가벼운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대신 그것을 져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난은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으면 그리스도의 고난과 하나가 되며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게 된다. 우리는 기도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게 된다. 기도는 우리가 이 순간에 현존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이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있는 것에 계신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현재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꾸준히 기도하며 하나님이 지금 여기 우리안에 계심을 안다면 자기자신에 몰두하는 정도가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주목하게 되고 섬김의 삶을 살게 된다. 각자 섬김의 삶을 살게 되면 점점 공동체가 형성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귀향의 영성을 통해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까지도 변화되도록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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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헨리 나우웬이 쓴 <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 나우웬은 자신의 아픔과 상처, 불안과 염려, 기쁨과 우정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영적 위로와 감동을 준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그는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사, 교수, 성직자로서의 삶을 성실히 수행했으며, 수많은 강연과 40여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는 모범을 보여줬다. 오늘 읽은 책은 <귀향의 영성>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을 소개하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었고, 그때부터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분을 조금씩 알아갔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집에 오기를 원하신다.”고 하면서 그 집은 ‘풍요의 집’, ‘용서의 집’, ‘회복의 집’, ‘기쁨의 집’이라고 말한다. ‘풍요의 집’에서는 중심을 ‘나에게 예수로’ 옮기는 영성을 귀향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풍요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기도와 묵상의 목적은 우리의 눈을 그분의 얼굴에서 떼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영적인 삶은 무엇을 버리는 삶이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삶이며, 사랑하는 그분 쪽으로 옮겨가는 삶이라고 말한다. ‘용서의 집’에서는 힘을 ‘미움에서 사랑으로’ 옮기는 영성을 귀향의 영성이라고 말한다. 상처받은 영혼의 치료자는 하나님이시다. 그 분의 풍성하고 사랑의 위로는 하늘을 덮고 바다를 메우는 충만함이다. 그 사랑을 회피할 이유는 우리들 중에서 아무도 없다. 나의 진짜로 돌아갈 집은 어디인가를 저자는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회복의 집’에서는 상처를 ‘회피에서 십자가로’ 옮기는 영성이 귀향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똑같은 삶을 살되 그분과 함께 산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그것의 값 지불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쁨의 집’에서는 일상을 ‘눌림에서 누림으로’ 옮기는 영성이 귀향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인간의 고통을 하나님의 기쁨이 거하는 집으로 데려간다고 말한다. 헨리 나우웬은 주님께서는 우리와 ‘한 집’에서 살기를 원하신다고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전하며 일상에서 날마다 그 초대에 응하는 훈련을 할 것을 권면한다.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그는 그 부르심을 듣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과 상처를 수면 위로 올린다. 그리고 그 것들을 처리하는 영적 지혜도 제시한다. 예수님을 나의 집으로 모시고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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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가을의 문턱에서 삶을 성찰하며 영성과 지성을 갖춘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기독교 고전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독교 고전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던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파스칼의 [팡세],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존 밀턴의 [실낙원], 헨리 나우웬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등이다. 여러 고전 중에서도 [두려움에서 사랑으로]는 불안과 염려가운데 살아가는 이 시대를 향한 헨리 나우웬의 성경적 위로와 권면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세계적인 영적 스승 헨리 나우웬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우리 일상에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책이다. 헨리 나우웬은 어린아이처럼 열렬한 기대감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았고,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삶의 한복판에서 만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헨리 나우웬은 193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57년 사제품을 받았고 심리학을 병행해 1966년부터 미국 노트르담대, 예일대, 하버드대 교수로 일했다. 1986년 캐나다 토론토의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 공동체-데이브레이크’로 옮겨 지도신부로 사목했으나 1996년 심장마비로 선종했다. 나우웬은 “하나님께서 ‘한 집’에 살자고 당신을 부르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머나먼 하늘이나 깊고 은밀한 미래에 계시지 않고, 지금 여기에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집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집을 우리 집으로 삼을 수 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마음의 집에 이를 수 있다.”(p25)고 말했다. 헨리 나우웬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주님, 이 30분을 주님과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제가 몹시 바쁘고 할 일이 많지만,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며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하신다는 걸 믿습니다.”라고 말해야 된다고 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있으라. 조용히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 그분이 당신을 집으로 초대하신다. 점차 우리는 그 30분만이 아니라 온종일 자신이 그분의 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주님의 집에 있음을 깨닫는다. 주님과 함께 기도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이 적대적이고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도 내 집에 거한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p.35)고 말했다. 저자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분을 따라하고 그분의 행동방식을 모방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만의 독특한 모습, 나만의 독특한 성육신을 하나님의 사랑에 내어드린다는 의미라고 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분이 그분답게 사셨듯이 나도 가장 나답게 산다는 뜻이다. 내 자존심을 버리고 사랑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 방법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다.”(p.54)고 했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와 ‘한 집’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전하며 일상에서 날마다 그 초대에 응하는 훈련을 할 것을 권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들을 같은 고민 속에 끌어들이면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영성 훈련을 하라고 권한다. 이 책에서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인간적인 고뇌와 반성, 신앙과 깨달음을 격조있고 자상한 필치로 풀어내 크리스천이 아닌 비종교인에게도 큰 깨달음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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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이 그분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안다.그 거대한 사랑이 나를 집으로,하나님의 삶으로 인도한다.
언제나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해내고 믿음의 연단을 통한 영성이 자라며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은혜를 주는 저자의 탁월한 귀향의 영성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는 말씀이다.이론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길 원했던 저자의 탁월한 영성이 잠자던 나의 믿음을 이끌어내는 귀한 축복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언제나 그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의 마음처럼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