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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시대별 성인, 종교적 위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날의 가슴에 크게 울림을 주던 성인전에 버금가는 위대한 신앙인들의 이야기가 정신분석학자의 시각을 더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대를 초월하여 생생한 신앙의 언어로 촘촘히 나열되어 있다.
어린시절에 세례 선물로 받은 동화로 된 성인전을 정말 책이 마르고 닳도록 읽었었다. 순수하던 시절의 그 동화책들은 신앙의 뿌리가 되어서 내가 종교적은 의구심으로 흔들릴 때마다 나를 살며시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첫 영성체 교리때를 기다려서 미리 학원 정리하고 몰입해서 교리공부하고 하느님안에서 실컷 놀 수 있게 해줬었다. 다시 오지 못할 그 기회를 잘 살리기 위해… 어린시절의 신앙 교육은 하느님을 순수함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나 같은 의심 많은 인간이 아직도 성당 열심히 가고 기도 열심히 하고 사는 것을 보면…… 그런데 지금 20대 초반인 나의 아이들은 어릴 때 성인전을 열심히 안 읽어서 그런 가……-애들이 책 읽는 것을 정말 싫어해서 이것도 억지로는 못했었다……
요즘 세상이 종교 활동까지 하기에는 애들이 너무 지칠 일이 많은 건가… 애들이 20대가 되면서 성당을 안 가는 게 요즘 나의 마음의 불편함의 원인중의 하나다… 어쨌든… 이 책에서 우리가 성당에서 흔히 만나는 세례명인 소화 데레사, 모니카, 아우구스티노 성인 등등 유명한 성인들도 만날 수 있지만… 흔히 접하지 못했던 테오도라성인, 후안 디에고 성인 등등의 일화도 나온다. 그래서 정말 역사가 오래된 종교인 가톨릭이라서 그런 가 중세이전 시대부터 근 현대까지 정말 많은 성인들이 있고 그들의 일화도 다양해서 교회 역사적인 상식도 넓어진 느낌이다. 특히나 이 책을 쓰신 이나미 교수님의 경우는 성서를 통독하다 보면 성서 속의 인물들의 행동심리가 궁금해서 평화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교수님의 강의를 자주 듣곤 했는데, 그냥 단순히 성서관련 전공 교수님 인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융 분석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교 심리학자이기도 하셔서…그래서 평화방송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셨구나 싶었다. 언제나 방송에서 조곤조곤 편안히 성서의 인물들에게 관해 그들의 행동, 생각의 배경에 관해 설명해 주시는 모습이 생각나서 이 책의 몰입도가 높았다. 여기서 새로 알게 된 토마스 모어 성인- 나는 이분이 가톨릭 성인인 것을 이 책에서 비로서 알게 되었다. 내게는 철학자였지 신학자가 아니었던 분이었던 관계로…… 그래서 성인 축일 뭐 이런 때는 미사 중에 그 성인에 관한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성인이 많으신 데 우리는 세례명을 작명? 할 때 늘 고민한다. 흔한 마리아, 세실리아, 글라라,,, 이 책에서 만난 여러 감동적인 인물들이 있지만…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테오도라 성인… P256-260 사실 테오도라는 동방 정교회에서만 성인품에 올랐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아직 그를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일종의 인신매매를 당했던 피해자였다고도 한다. 그런 전력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성인을 방탕한 여자라 비난한 듯하다. 가톨릭 성인전에 나오는 성인들과는 달리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지만, 혼탁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키워 나갔는지에 대한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황후를 신뢰하여 성 소피아 성당을 재건하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켜 냈다. 황제 부부는 성매매 여성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이혼법 역시 여성에게 덜 가혹한 쪽으로 개정했고 강간범을 사형하는 법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어려운 과거를 잊지 않고 타락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려고 애썼던 테오도라가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한참을 머물렀다. 중세 이전에 이렇게 멋진 여성이 있었다. 우리에게 시련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시련도 은총이라 하는 것이 세월을 살면서 이해가 된다.
이 책의 저자인 이나미 교수님 덕분에 내 신앙에 뿌듯함이 추가되었다. 이렇게 멋진 성인들과 내가 신앙 동문이라는 것이… 성모님의 사랑을 느끼기에 적합한 날씨와 풍경의 5월에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의 신앙적인 열망을 함께 하게 되어서 행복했다…
이 책은 세례를 앞두고 세례명을 고민하는 대부모, 대자녀들에게 적극 권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첫 영성체를 준비하는 부모님들께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어린 날의 성인전은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신앙의 길잡이가 되었었다. 아직은 스펀지 같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소중한 시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의 시기에 하나 하나 쉽게 풀이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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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의 내용을 감수한 예수회 심백섭 신부는 ‘감수자의 말’에서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교회의 별들과 함께 떠나는 내적 순례 여행의 가이드’ 이는 곧, 우리의 삶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때, 그 무지의 어둠을 밝혀 줄 별빛들로 인해 우리 안의 신앙의 힘이 일깨워져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변화된 우리 내면의 힘은 마치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 각자의 삶에서 어두운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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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합니다,’ 이 표현을 본 건, 서평 제목을 쓰기 위해 책 표지를 자세히 보면서였다. “하느님을….” 하고 타이핑하는데, 그 위에 귀여운(?) 글씨체로 ‘행복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뒤에 나온 문장 부호가 쉼표(,)라는 것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마침표로 분리한 게 아니라, 쉼표로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이 책의 제목을 읽어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다’를 낮게 깔면서 잠시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차분하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 그래서 이렇게 읽는다.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 제목만 읽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다음 이 문장을 읽으니, 마지막에 문장 부호 하나가 따라온다.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행복했을까?’ 소개된 성인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러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 처지였더라도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저자도 그 시대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가 이질적인 것이 안타까웠는지 곳곳에 그 마음을 남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경외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였다. 많은 부분 공감됐다. 그러면서 저자가 고백한 것처럼 필자도, 생각과 말로만 이야기하는 것에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저자가 30여 명의 성현(聖賢)들 이야기를 쓰면서 느끼고 다짐한 부분을, 필자는 여기서 발견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왜 고생스럽게 일해야 하는데?’라고 자못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춘기 시절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육십이 넘은 지금에서야 조금씩 알게 되는 것도 같다. 상처에 아파하면서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 주변의 모든 존재와 생명에 대한 사랑이고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을 역사에서 만나고 배울 수 있다는 굉장한 행운이 나의 삶에 녹아 의미 있게 앞으로도 성장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필자가 이 책에서 느낀 부분을 네 단어로 요약하면 이렇다. ‘희생-겸손-사랑-침잠’. 이 단어를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희생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마음은 겸손이다. 그리고 이 겸손은 사랑에서 온다. 이 모든 것은 깊은 자기 내면과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결국, 사랑이다. 사랑이 있어야 겸손한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으로 기꺼이 희생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와 묵상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제일 억울하고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책장을 그리 많이 넘기지 않아도, 금세 그 마음이 조금은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 필자도 며칠 전, 억울한 마음에 폭발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돌이켜보니, 내가 그중에서 제일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안에는 사랑도 겸손도 그리고 희생도 없었다. 기도와 묵상하는 시간도 많이 줄어있었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책을 들춰보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로마 13,12-14)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고백록』에서 밝힌, 성인의 긴 방황의 여정을 끝내게 된 성경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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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이었지만 오랜 세월 냉담하다가 다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우연히 절두산 성지 안에 있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었다. 조선 후기 성인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면서 순교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나라가 천주교 순교 역사에 자부심과 존경심으로 이전의 얄팍한 신앙이 조금은 다져지는 계기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인쇄물이나 교통이 발달한 때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순교하면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그런 확고한 신앙을 줄 수 있었던 게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는 서른세 항목에 걸쳐 성인과 현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알던 성인들도 있지만 새로 알게 된 성인들도 많았다. 특히 일본에서 순교한 조선의 순교자들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건강의학자인 저자가 풀어내는 성인들의 이야기와 심리는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저자의 전문분야로 융의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도 신선하고 재미있었지만 같은 신자로서의 느끼는 성인들에 대해 갖는 경외심도 솔직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때론 요즈음 우리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의 행복에 집착한 세대에 따끔한 비판과 자기 반성은 시원하기도 했다. 성서에 대한 해석이나 가톨릭 관련된 책을 꽤 여러권 읽어왔지만 이런 책은 색다른 분야여서 더욱 흥미로웠다. 한번 읽고 말 책이 아니고 두고두고 읽으면서 각 항목의 성인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게 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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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이자 융 분석 전문 심리학자인 이나미 박사님이 하느님을 사랑한 35명의 성현들의 이야기를 융의 분석 심리학적 관점으로 그 분들의 삶을 재조명하여 전해준다. 감수해주신 심백섭신부님 말씀처럼 <교회의 별들과 함께 떠나는 내적 순례 여행의 가이드>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다. 35분 성인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일화로 되어 있어 나처럼 세례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성현들을 잘 알지 못하는 분 또는 잘 알고 있어도 성경관련 독서를 하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때 백과사전처럼 옆에 두고 필요한 경우 찾아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 성현들의 신앙과 삶에 관한 묵상과 지혜에 더해 작가 자신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현대 문명에 대한 회고로 자기를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ego가 아닌 self를 찾아가는 인생여정에 많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거라 믿는다. 1.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 리드비나 성인 중학교에 들어가 세례를 받기 전 읽었던 성인전에서 리드비나 성인의 삶을 접했을 때, 한편으로는 충격이었고, 한편으로는 신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그저 방안에서 책 읽고 피아노 치는 것만 좋아했던 괴짜인 나는, 혹시 다리가 마비되면 나갈 필요도 없고, 아무도 안 만나도 되고, 누가 간섭도 하지 않아 좋을 터인데 하는 철없는 공상을 꽤 자주 했었다. 하지만 성인전을 읽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해, 더러운 집에서 대소변과 함께 지냈다는 대목에서나의 공상이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알아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전히 리드비나라는 존개가 너무 감동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 앞날과 관련해 무언가에 끌렸던 것인지 세례명을 발음도 어려운 리드비나로 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능력이 있건 없건, 의사로서 지금까지 수십 년을 살고 있으니, 성인과는 차원이 참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닮으려고 노력했던 시간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86~87쪽) 이 부분을 읽으며 리드비나 성인전을 읽고 받은 감동이 단순한 감동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나미박사님을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평생을 리드비나 성인을 닮으려고 노력한 점이 인상적이있다. 이렇게 과거의 성인들의 삶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수호성인으로서 우리를 이끌어주심을 신앙의 신비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받은 그 감동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 박사님도 대단하시다.) 나에게도 어머니의 모범이신 '모니카'님이 수호성인이시다. 나도 나름대로 닮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성모님께 전구의 기도를 드릴 때 모니카성인들에게 함께 기도드린다. 어리석고 부족한 저이지만 성모님과 모니카님이 도와주시면 저도 두 분을 점점 닮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런가 철딱서니 없고 무지했던 조금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려 노력하고 우리 보물 1호와 2호에게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냉정한 사랑을 연습 중이다. 그러나 매일 드리는 기도의 끝 부분은 하느님께 제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이 계획하신 사랑은 우리 두 보물에게 펼쳐주시길 기도드린다. 나의 기도가 기복이 아니라 진정한 어머니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도이길 바란다. 2.내적 체험을 외적 실천으로 확장해 간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학창시절 세계사 공부할 때 '예수회-로욜라'로 외었던 기억이 난다. (로욜라는 이냐시오 성인이 거주하신 지역명이다.) 성인은 영웅을 꿈꾼 군인이었으나 프랑스와의 전쟁 중 큰 부상을 당하며 회복하는 기간동안 읽은 2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그 당시 성인은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한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어떤 사람에게서도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종류이든 약간의 도움이라도 희망할 수 있다면 어떤 수고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어디서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길을 알려 주십시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개 뒤를 쫓아가는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 (나무위키 자료 참조) 병상에서 회복하며 단식과 기도의 은수자의 삼을 사는 시기, 성인은 하느님과 화해했다는 특별한 체험을 한다. 이후 자기학대와 같은 성찰을 그만두고 자신의 능력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33세 늦은 나이 공부를 시작하여 예수회를 창설하고 이후 사제서품까지 받는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이기도 하시고 자신이 깨우친 바를 행동으로 옮기 성인의 용기를 존경하고 싶다. 특히 성인이 만든 <영신수련>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영신 수련의 다른 중요한 축은 내적인 움직임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악한 영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알아보고 식별하는 과정이다. 어떤 이들은 식별을 차별과 잘 구분하지 못해서 문제 있는 이들을 배제하는 태도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또 식별에 지식이라는 어감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지적인 작업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신 수련은 차별, 배제, 지적인 작업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는 전체적인 과정이라고 필자는 이해한다. 또한 선한 영이나 악한 영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킬 때 주관적 감정의 관점에서 좋은 체험을 무조건 '선'이라고 보거나 나쁜 체험을 무조건 '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내적 움직임이 하느님과 더 가깝게 이끄는지, 아니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지를 식별하는 것이다.(182쪽) 예전에는 선의 반대는 악이라고 이분적으로 사고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할수록 그 선과 악이 모호하다. 가끔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그런 극악무도한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는 의심이 든다. 정말 하느님이 계실까? 아직 고민 중이라 답을 내리긴 힘들지만 이렇게 사고하는 것은 세속적인 관점이라고 믿는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절대 고통을 혼자 보내지 않는다. 그 고통과 함께 깨달음의 메시지도 함께 보내주신다. 부족한 인간이기에 우리는 그 깨달음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속에서 울부짖는다. 부족한 인간은 성인과 같은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 그러면에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인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데로 해주시는 해결사가 아니시다. 부족한 나이지만 하느님안에서 나를 돌아보며 나를 포함한 내 주변과의 화해와 용서를 해야 한다. 노력은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한꺼번에 하려기 보다 하느님 안에서 매일 성장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노력하는 나를 보시고 하느님이 참 좋다고 느끼시면 좋겠다. 책에서 이냐시오 성인의 편지 글에 "때로는 쉬는 것이 쉬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된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 문장을 읽으니 어찌나 안도감이 들던지. 삶에는 꼭 휴식이 필요하다. 내 삶에서도 때로는 정지버튼을 눌러보고 싶다. 하느님을 사랑한 35명의 성현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적 순례여행을 떠난 것 같다. 이제 강론시간에 이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더 귀를 쫑긋거리며 들을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이 병중에 읽었던 성인전 <금빛 전설>이 그를 변화시켰듯이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의 성현들의 삶을 통해 나도 나 자신을 찾으며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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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영성센터 신부님께서 감수하신 내적순례의 길로 떠나는 책은 어떤내용일까 라는 호기심으로 읽었습니다 심리학자이신 이나미교수가 분석심리학자이신 융의 관점에서 분석한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현실세계가 아닌 내적세계,하느님과 함께하는 세계에서의 행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적세계에서의 고통 속에서 사랑을 깨닫고 절대적 존재인 예수님을 내적세계에서 만나는 것이 참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성현으로 인정받은 33성인의 삶과 죽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한결같이 고통을 주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였고 그 은총을 겸손하게 받아들였고 용서와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책을 완독한 뒤 성현들의 삶을 본받고 그리스도에 대한 충실함과 사랑의 실천할때만이 천국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현을 소개하고 작가의 분석.작가의 성찰이 독자인 나를 부끄럽게하고 의구심이 많았던 제 신앙을 돌아보게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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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정신과의 교수님이십니다. 저자이신 교수님께서는 신부님의 감수를 받았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십니다. 책에는 제가 들어 본 이름도 있습니다만 처음 알게 된 이름도 많이 나옵니다. 개중에는 성인 및 복자품에 오르지 않은 일반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인이든 아니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모두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분만을 바랐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다.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들은 대부분 평탄한 삶, 부유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가난, 조실부모, 피살(순교 포함) 등 저마다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하느님을 증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열다섯 살에 수녀원에 들어가 갖은 무시와 따돌림을 겪고도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헌했던 소화 데레사, 자신을 겁탈하는 것을 넘어 살해까지 했던 청년을 용서하고 배려했던 마리아 고레티,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들, 이외에도 많습니다. 저자 교수님께서는 단순히 이들의 삶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과 본인의 나약하고 옹졸한 모습을 고백하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세속적이고 어두운 오늘날에는 하느님을 증명하며 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당장 오늘내일 먹고 사는 일에만 집착하고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설령 돈을 모은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안위를 위해서입니다. 저 또한 부끄러운 점이 매우 많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끊임없이 원하며,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편입니다. 나이에 맞갖은 성숙함을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투정을 부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일도 아니었는데 전 모든 일을 심각한 의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이 직장처럼 변질되면서 의무감과 중압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제단체 활동도 두 번이나 그만둔 것도 이런 이유에섭니다. 하느님을 사랑했던 옛 현인들의 삶은 오늘날에도 충분한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보다 더 가난하고 결핍된 환경을 살았음에도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하물며 경제적으로도 앞서고 문명도 발달된 세상에 사는 우리라고 못 할 이유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목숨을 바쳐야 할 일도 없고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당시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방법도 쉬워졌습니다. 당장 저부터 부끄러웠던 삶을 오롯이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