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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을 다룬 다른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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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도 제 죽음을 앞두고는 자기가 살았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입니다. 내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어린 시절 가난한 마을, 낙동강, 동네 형, 동생, 친구와 어울려 놀던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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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도 제 죽음을 앞두고는 자기가 살았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입니다. 내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어린 시절 가난한 마을, 낙동강, 동네 형, 동생, 친구와 어울려 놀던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 동네 모양이 왜곡되었고, 그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예전 동네 청년들의 상포계 형태로 추억만 유지될 뿐입니다. 머리가 빠지거나 염색을 한 늙은이들의 모임으로 전락했지만 모이기만 하면 그전 살던 동굴을 향해 눈을 돌립니다.

 

 제주 4.3 사건 후 많은 제주도민들이 생존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는 말은 전에도 들었습니다. 밀항한 도민들이 주로 오사카에 모인 것은 그전 일본에 정착했던 친척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그랬다는 겁니다. 그때는 밀항까지만 생각이 머물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밀항한 도민들을 도운 ‘친척’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제주의 비극이 있기 전 이미 일본에 정착한 제주도민은 누구일까요?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재일 사회학자가 쓴 가족의 생활사’입니다. 도합 10남매가 되는 아버지의 형제들 중 막내 육남 박현규의 자식인 저자 박사라가 친척들을 인터뷰하며 생활사를 구술의 형태로 조사를 한 후 책으로 엮었습니다.

 

 책을 통해 힌트를 얻어 제주도민의 일본도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 일제강점기 초기에 제주와 오사카, 고베 등을 잇는 정기 기선 항로가 개설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민들이 일제의 가혹한 수탈, 일본 자본의 침탈로 인하여 경제난을 겪으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한 때가 1910년대~1920년대라고 합니다.

 

 이어 일제강점기 중 후반인 1930년대와 1945년 해방 전에는 전시 총동원체제에 의한 강제 비강제적 도일과 경제적 목적을 위한 자발적 이주가 증대했다고 합니다. 전쟁을 치르느라 부족한 노동력을 한반도에서 동원(총동원체제)했기에 제주도민들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그 후 일본이 도일을 엄격히 통제하고 감시하면서부터는 밀항의 형태로 경제적 생존을 위하여 불가피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 제주에서 4.3 사건이 일어나면서 생물적인 생존을 위한 밀항이 대규모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4.3 사건 후 밀항한 제주도민을 도운 친척이란 이전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으로 온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자 박사라의 친척들은 작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1938년에서 1940년 사이 일본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도일을 했고, 그 후 다시 제주로 귀향했다가 일본으로 재차 넘어온 가족사를 가집니다.

 

 사회학자가 친척들의 구술을 통하여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였기에 그들이 겪은 생활사를 감정적으로 표현을 하지 않아 전반적으로 내용이 딱딱하고 지루합니다. 만약 제주 4.3 사건이나 그전 일제강점기의 상황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무미건조한 대화의 연속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상식을 가미하면 이들의 수구초심이 엿보이고, 그들의 좌절도 보입니다. 재일교포 사회가 민단과 조총련으로 양분되어 살게 되면서, 더욱 이들의 수구초심은 잘못하면 가족의 낭패사가 될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을 겁니다.

 

 4.3 사건을 다룬 다른 장르입니다. 이념에 사로 잡혀 같은 동족을 죽였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것을 보면 좌절하게 됩니다. 좌파는 빨갱이였고, 빨갱이는 아무나, 아무렇게나 죽여도 되었던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없습니다. 2026년 우리 사회는 이미 한물간 이념으로 먹지도 못 할 개밥범벅을 만들었습니다. 늙은이들은 이런 사회를 바꿀 수 없습니다. 아직도 모진 옛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수구초심이란 말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이념의 동굴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앞둔 늙은이들의 망령이 수구초심이란 말로 미화되는 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회를 젊은이들이 받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의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믿습니다.  

s*****m 2026.10.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