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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은 피렌체가 아닌 베네치아였고, 밀라노도 피렌체 못지 않게 부유한 도시 국가였다.
그렇다면 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을까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베네치아나 밀라노와는 달리 “피렌체는 새로운 국가의 지배권을 놓고 성직자와 상인이, 그리고 상인들 서로 간에도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피렌체 인들은 이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pp. 34~35] 즉, 갈등과 경쟁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기도실 후원권한을 가진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들에게 특권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수도원은 이들에게 몇 가지 의무도 동시에 부과했다. 그 중 하나가 성당 내부의 기도실을 그림 등으로 장식하는 일이었다. 또한 지하에 안장된 선조들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는 사제에게 평생 동안 봉급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무도 부과했다. 만약 이 두 가지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기도실은 능력 있는 다른 가문에 양도되었다. 부유한 상인들은 경쟁적으로 기도실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하려 들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더 재능 있는 예술가를 찾아 나서게 됐다. 그들은 중세에 그려진 그림을 단순히 복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예술가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창조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예술가들에게 열광했다. 수도원 역시 자신들이 속한 수도회를 피렌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줄 재능 있는 화가를 필요로 했다. 이 시대의 종교화는 수도원의 주요한 홍보 매체였던 것이다. 상인들과 교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재능 있는 화가들에게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다. 화가들 밑에서 수련과정을 거치려는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유명 화가들은 공방을 운영해야만 할 정도가 되었다. 천 년 이상을 잠자고 있던 ‘아발론의 아홉 자매’[예술의 여신 무사(Mousa)]가 피렌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피렌체는 서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는 예술의 도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피렌체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pp. 25~27]
피렌체의 상인이 예술가의 스폰서가 된 이유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핀 것을 볼 때, 피렌체의 대상인들이 예술을 사랑하거나 예술을 보는 안목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작품들이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투자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서도 예술 작품이 투자의 수단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 초반에는 성당이나 수도원 내부를 장식하는 예술작품의 주제를 종교 지식에 해박한 고위 성직자들이 결정했다. 그리고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Medici, 1389~1464)에 이어 그의 손자인 ‘위대한’ 로렌초(Lorenzo de’Medici, 1449~1492)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에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국가의 가치를 고대 문헌에서 찾던 인문학자들에 의해 작품의 주제가 주로 결정되었다.” [p. 9] 즉, 르네상스기의 예술 작품은 투자의 수단이 아닌 선전의 도구였던 셈이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현세(現世)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피렌체의 대상인들에게 하나 남은 문제는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였다는 점이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니, 사후(死後)의 평안과 안식을 위해서라면 전 재산의 1/5 정도는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결국 사후의 안녕을 위해 선택한 스폰서는 수도원 지하에 묻혀 있는 수호성인들의 유골이었다. 사후에 이웃사촌이 된 수호성인들이 자신들을 비호해줄 것을 기대하고 수도원 내부의 기도실 후원 권한 등을 획득하려고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묏자리를 놓고 싸우던 양반네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푼돈(?)을 내고 사후에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이는 남는 장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당연히 악착같이 매달릴 수 밖에. |
| 예전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저작집 시리즈를 읽다가 아주 작은 파트로 등장하는 피렌체와 메디치가에 관한 부분이 너무 흥미로워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됐다. 피렌체의 상인들은 여러 유명 예술가들의 패트런 역할을 해왔고, 그 덕에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피렌체의 신흥 상인 계층에서 유력 가문으로 성장한 그들이 예술가들에 투자하고, 그림을 의뢰했던 이유는 단순히 예술에 관심이 많고 미적감각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종교적, 정치적인 지략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신흥 상인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내세의 평온을 위한 노력과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욕심으로 귀족과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이나 정계 진출과 같은 권력욕이 생긴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만고의 진리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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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인 도시. 르네상스를 꽃피운 꽃의 도시 피렌체.
피렌체하면 생각나는건 르네상스와 그 후원자 메디치 가문이 아닐까? 이 책은 친절하게도 그 메디치 가문이 나오기 전 부터 르네상스의 조짐을 주는 일들부터 설명해 준다. 우선 베네치아 인근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가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는 14세기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들에 대한 기초 공사가 된다. 피렌체의 토착 귀족가문 바르디 가문과 이를 잇는 신흥 상인 가문 스트로치와 브란카치 이야기. 토착 귀족세력이 담당했던 수도원 후원과 가문의 개인 기도실을 소유하고 이를 꾸미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 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100년전쟁에 휘말려 그 특권이 토착귀족세력에서 신흥상인계급으로 흐름이 넘어 오고 되고, 여기에서 다시 이민자출신인 피렌체 가문이 등장하게 된다.
코시도 데 메디치는 당시만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수도원을 후원하고 일반 평민계층이 즐길 수 있는 축제등을 후원하는 등 평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문화예술을 후원하고 피렌체 가문의 이론을 뒷받침할 인문학자들을 대거 키우게 된다. 이를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위대한 자 로렌초)가 확고히 하면서 피렌체 황금시대를 연다.
그러나 도가 지나쳤는지 이들은 로렌초를 신격화하기에 이른고, 로렌초가 죽고 이를 깨닫게 된 피렌체시민들은 로렌초의 아들을 추방하고 이때 등장한 이가 마키아 벨리! 책은 여기에서 끝난다. 메디치가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 이후로 곧 가문이 단절되지만 코시모(로렌초 할아버지) 동생에서 가계가 이어져 메디치가문은 18세기까지 지속된다.
그렇게 어렵게 씌여진 책도 아니고 사진자료도 풍부해서 쉽게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