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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체제를 이해하기 위한 '사건' 중 가장 큰 것은 아마 유교적 문화가 강한 북한사회에서 최고지도자의 매형인 장성택을 처형한 것이다.
장성택은 2013년 12월 전격 처형된 것으로 국내 언론은 보도했다. 이 책은 장성택이 처형된 지 한 달만에 출간되었다.
북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국가전복음모행위’로 사형집행된 것은 2013년 12월 12일이었다. 당시 국내외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리가 나왔다.
당시 북한이 장성택에 대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결정서와 판결문을 전격적으로 공개했지만 아직까지 ‘장성택 숙청’의 전모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장성택 사건은 당시 북 내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많은 숙제를 던졌다. 북의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고, 남북대화를 복원한 상호 신뢰를 마련하는 조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었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장성택 숙청과 관련해 북이 공개한 정치국 결정서와 판결문을 분석하고, 최근 북 내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글을 모았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지만 이번 사태를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향후 북의 정책방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책을 펴내며 中)
저자는 국내외에서 정확성이 높은 북한전문가로 알려져있다. 주류 언론이나 학계 전문가들이 ‘소설’을 써대고 있을 때 가장 사실에 가깝고 가장 풍부한 내용으로 균형잡힌 논지를 오랫동안 일관되게 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보도 내용과 특별군사재판 판결문, 김정은 제1위원장의 노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 연설문 등 1차 자료에 충실히 근거해 역사적 맥락과 다양한 정보들을 추가해 이 사건을 총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 장성택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이와 관련 장성택이 2012년 12월 ‘은하 3호 장거리 로켓’ 발사와 2013년 2월의 3차 핵실험에 대해 반대의견을 갖고 있었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장성택 핵실험에 반대했나?, 65쪽)
“두 전언의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장수길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의 자금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당 행정부 간부들에 대한 내사가 이때 시작됐다고 한다.”(한 달여 동안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아, 69쪽)
“노동당 중앙당 과장급 이상의 간부 중에서 장성택 사건과 직접 관련돼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은 국내 전문가나 언론의 예상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이른바 장성택 라인은 없다, 74쪽)
뿐만 아니라 “장성택은 누구인가”, “김정은 시대 북의 ‘경제와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장성택은 ‘내각책임제 원칙 위반’을 위반했나”, “김정은 시대 북은 어디로 가나” 등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사안들을 하나하나 짚고 있다.
장성택이 김일성 주석의 딸 김경희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승낙받은 이야기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생간부직을 도맡고 “동서고전을 읽어 이색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박식한 편”이었다는 인물평, 73년 ‘70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았지만 76년 평양주민 소개작업 때 비판을 받은 이야기 등은 북한에 대해 거의 무지한 우리들에게 낯설지만 흥미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김정은 시대의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해서도 “1990년대 초반 김일성 시대에 제시된 마지막 노선을 대외적 정책의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라며 경제노선으로 ‘3대 제일주의’와 대외노선으로 요즘식 표현으로 ‘포괄적인 대외전략’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장성택 사건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김정은 시대 북한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셈이다.
북한에 대한 단편적인 ‘첩보’들이 마치 사실인 양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우리 언론과 학계의 현실에서 저자의 북한 문헌 분석 작업과 최선의 정보취합 및 가공작업은 학자이자 기자인 저자만의 단연 돋보이는 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장성택의 측근들이 실제로 ‘1번 동지’라는 말을 했는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불확실하다”거나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전언이다” 등 모르는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미덕까지 갖추고 있다.
북한에 대해 궁금한 이들에게, 북한의 정책과 움직임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장성택 사건이 여전히 궁금한 이들에게, 아니 김정은 시대 북한의 향방이 궁금한 모든 이들에게 <장성택 사건 숨겨진 이야기>의 일독을 권한다.
[ 2016년 12월 1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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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남쪽에서 북측 전문가라 자칭, 타칭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북 역시 당연하게도 엄연한 주권국가이기에, 북의 모든 것에 통달한 전문가는, 심지어 북 내부에서조차 존재하기 힘들다. 기껏해야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세밀한 분야로 나눌 때 전문가란 표현을 그나마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자. 얼마나 될까. 남북문제나 통일문제에 평소 관심이 적었던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그 수가 적지 않다. 종편까지 포함한 방송 매체와 언론 매체에 등장해 이른 바 북의 행동을 분석하고, 나름의 전망까지 주절거리는 이들이 꽤 많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런데 그들이 정말 북 전문가란 표현에 어울리는 이들일까. 과연 그 중 몇이나 북의 실체, 작동원리, 본질에 접근하고 있을까. 여기에서 김진향 카이스트 교수가 총괄 기획해 최근 펴낸 <개성공단 사람들>의 추천사를 쓴 경북대 대학원 철학과 김성룡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북 사회에서 상당한 고위층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길더라도 인용하겠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글이나 책을 본 적이 없다. 제대로가 아니라 목불인견이었다. 왜곡과 오도의 일반화는 물론, 차마 논문이라고 하기에도, 책이라고 하기에도 가당찮은 글들이 버젓이 인쇄되어 공론화되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총체적 무지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전체를 왜곡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루라도 북한을 욕하지 않고는 이 사회가 온전히 돌아가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여기에 기막힌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정작 북에서 살다온 사람이 보는 한국사회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북측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해 한마디 씩 떠들 수 있다. 누구나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북을 비난할 수 있다. 듣다보면 마치 살다온 양반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그런데 그 중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이 있을까. 남측의 시민들은 대부분 북측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말하는 북, 그리고 방송과 언론이 말하는 북을 실체라 믿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이 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겠는가. 또한 먹고 살만한 이들이라도, 재미없는 북 문제를 파고들 생각이 전혀 없다. 그다지 돈이 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리하게도 방송과 언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북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데 왜 굳이 수고를 들여 따로 북을 생각하고 바라보려 하겠는가. 때문이다. 북에 대한, 북측 사람들에 대한 허황되고 악의적으로 왜곡된 이야기들이 판치는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 엉터리 전문가와 야매 언론인들이 만들어 내는 잔인한 ‘북 판타지’는 분단 극복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지금 우리들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반통일 세력이자 반민족 세력이라 불러 마땅하다. 북에 대한 연구나 전망, 언론보도가 형편없는 수준이 된 것에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작용한다. 먼저 오랫동안 분단되어 있었기에, 우리가 직접 북에 가볼 수 없었다. 그러니 어설픈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라, 전쟁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비록 특정 장소에 한정되었다 하더라도 북측을 마음대로 다녀올 수 있었던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북측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경험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서로 만나고 접촉해야 온갖 루머와 설이 가라앉는다. 직접 보고 들었는데, 소설을 지어낼 순 없는 것이다. 그리고 북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내고 왜곡하고 뒤틀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숱한 국내 언론이 북에 대한 오보를 양산해왔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독자에게 진정 사과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정정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아니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평양에는 장애인이 거주할 수 없다는 오랜 ‘전설’은 우리 언론이 평양을 직접 방문해 그곳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고쳐질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북 당국의 조작이자 음모라고 헌신적으로 지금까지 주장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북에 대한 기사나 방송을 하는 언론인 중 무책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때로는 굳이 이런 기자들이, 방송인들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심각하게 느낄 때도 있다. 아무리 부처를 순환해야 하고, 상대방이 정정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의 소설과도 같은 기사를 써댈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으로서의 기본적 소양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데스크가 닦달하는 것에 못 이겨 꾸역꾸역 글을 끄적거린다. 그것도 될 수 있는 한 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달할 수 있음 더욱 좋다. 한심한 수준이다. 물론 뛰어난 기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 수가 적을 뿐이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나 지식이 입력되면 결과는 안 봐도 빤하다. 광복 70년, 그 세월 중 우리는 고작 10여 년의 시간 동안만 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살렸는지는 아직 온전히 평가할 수 없지만, 적어도 비난 일변도, 조롱 일변도의 이야기들은 덜 생산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용’의 정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그 밖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자주성 없이 행동함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유사 이래 어느 시대에나 어용은 존재했다. 가까운 과거를 생각해봐도, 4대강 사업이 진정 홍수를 예방하고 우리 자연을 더욱 보호하는, 진정한 강 살리기라고 주장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이름 하나 하나까지 다 기억난다.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 하는 권력에 빌붙어, 되도 않는 논리를 들이밀며, 목줄에 묶인 개 마냥 자신의 지식을 파는 이들이 존재한다.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때에도 정부와 권력의 편에서 감히 시민들을 훈계하려 한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언론인들이 존재했다. 우습고도 기막힌 모습이다. 개가 사람을 훈계 하는 꼴이다.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어용은 존재한다. 아니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패거리를 이루어 상이한 의견이나 생각을 가진 이들을 핍박한다. 그리고 그들은 남북관계를 말해도, 통일 문제를 다뤄도, 신기하게 모든 결론을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에게 빌붙어버리는 요술을 부린다. 남북문제도 미국이, 핵 문제도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도 미국이, 이 땅의 빌어먹을 모든 것이 죄다 미국이나 중국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 이게 현실이다. 쇼와 같은 현실이다. 부패한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진실이 오히려 질식사하곤 한다. 거짓이 화려하고, 진실이 누추한 비정상화가 정상화로 비치게 된다. 현재 남북관계의 오랜 경색국면에 있어, 그 책임의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 땅의 지식인, 언론인들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더럽고 누추한 것들이 너무나 당당히 떠들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신경숙과 같은 이들이 대세인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언론인 출신의 학자이다. 때문에 그의 글에는 기자와 지식인의 경계가 아슬아슬하다. 물론 왜곡이나 거짓을 진실로 치장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럴 생각도 깜냥도 없다. 그는 다만 객관적으로 북을 바라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분단을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통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로, 북의 오늘을 꼼꼼하게 살피고 분석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장성택 처형의 수수께끼. 아마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 사건은 진실을 드러낼지 모른다. 하지만 처형 당시나 혹은 지금까지도 남측에는 이를 둘러싼 온갖 소설이 난무한다. 근거도 빈약하고,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들이 말 그대로 버젓이 전파를 타고 활자화되어 대중에게 전달된다. 반면 북의 근현대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북의 역사를 되짚고 오늘을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서 내일을 전망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나 전망이 물론 100%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틀릴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그의 말과 글에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어용이 아닌, 부지런한 언론인의 피를 가진 학자이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처형은 향후 꽤 오랫동안 북에 영향을 끼칠 중대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지금도 강력하다. 언제나 그래왔듯 저자는 객관적 자료와 오랜 시간 바라본 북의 특성을 바탕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전망한다. 이는 북측을 연구하는 이들이나, 북측에 관련된 기사를 쓰고 있는 언론인들 모두에게 좋은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는 어쩜 외눈박이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부분에선 의외로 무력하고 또한 무책임하다. 하지만 지금의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조차 당당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고 진실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이 어용임은, 분명 스스로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모든 직업이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역할과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한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꼴이 될 것이다. 분단이 그 무슨 자랑이 아니라면, 광복 70년이 그 무슨 영광이 아니라면, 남북문제나 통일을 연구하는 이들은, 그리고 남북관계나 북에 대한 기사를 쓰며 생계를 꾸려가는 언론인은 그 무거운 책임과 역할을 항상 느껴야 옳다. 그리고 자신의 글이, 자신의 말과 행동이 분단된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늘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실력이 없다면 양심과 책임감이라도 가져야 한다. 알량한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잘난 특종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평화다. 화해다. 그 지겹도록 단단한 분단 구조를 깨부수고 진정한 상생과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