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키아벨리가 얼마나 유명한지 알 수 있는 말이 마키아벨리를 잘 모르더라도 "군주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지혜, 이 두가지 모두를 갖출 필요가 있다" 라는 말을 알게 모르게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앞의 말과 함께 왠지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정이나 근본을 넘어선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정치나 그런 것을 강조하는 인정도 없는 사악한 정치가나 이론가로 다들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 그 시대의 잣대로 다시 재평가된다고 했던가... 예전의 마키아벨리는 비난과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다른 평가, 즉 호평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정도로 평가가 좋아졌다. 개인적인 견해로도 그의 여러 저서들을 읽어보면서 느낀 것은 마키아벨리는 小보다는 大를 중시하는 즉 100명이 잘 되고 살기 위해서는 1명은 버리는 것이 현명하고 이롭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물론 이 말에는 여러 말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등한시 하고 무시하는 태도도 용납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고, 소수 때문에 다수가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마키아벨리라면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버리는 것을 선택하는게 낫다고 생각 하는 쪽이다. 세상에 완벽한 이론은 없으니 역시 모든 것은 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인간의 몫이고,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그의 저서와 사상들은 단지 하나의 길을 제시 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 확실히 그는 대단하다. 시대를 꿰뚫어 보며 인간이란 종족의 멍청함과 나약함 어리석음을 확실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마키아벨리 그 자신이 말한 것과 본인의 생각에도 인간이란 다른 모든 것들을 지배하려 하면서 잘난척을 하지만 같은 실수와 행동을 반복하는 언제까지나 어리석은 동물 중 하나 일 수밖에 없을듯 싶다. 문득, 마키아벨리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한 문구가 떠오른다... "군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 |
| 마키아벨리가 생존하였던 15,16세기는 서양사상사에서 르네상스의 시기로 일컬어진다. 특히 그가 태어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고 갈등의 상태에 있었다. 바로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국가를 형성시키길 희망했었고 이를 위해 경국치세의 도를 다룬 [군주론]을 메디치가에 바치게 된다. [군주론]은 제 1장에서 제 11장까지는 군주정치에 관한 일반론, 제12장에서부터 제14장까지는 군사론, 제15장에서부터 제23장까지는 통치론, 제 24장은 이탈리아 정치, 제 25장은 운명과 자유, 그리고 제 26장은 이탈리아 평화를 각각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정치적 불안은 마키아벨리로 하여금 [군주론]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너무나 적나라하게 정치적 현실을 들추어내도록 한다. 그는 즉 "군주라면 누구나 자신의 신민을 결속시키고 충성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잔인하다는 평판쯤은 개의치 않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군주에게 위선자가 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가나 전제정치의 교사자 또는 권력정치의 공공연한 옹호자로 치부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 사상의 본질은 흔히 이 세상에서 이해되고 있는 마키아벨리즘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자유 도시공화제적인 자유의 사상을 주장한 것이고 이러한 자유의 퇴폐, 부패의 타계책을 군주론에서 찾은 것이다. 오히려 그는 군주의 경국치세도를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학이 한 과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 초석을 처음으로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현대에 있어서 그 가치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기업경영론의 측면과 처세술로서의 평가가 그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본질이 그 많은 역사적 변동 속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고 볼 때, 사기업을 경영하며 다른 다양한 인간을 다루어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혹은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타인과의 인간관계에서 [군주론]이 제시하는 인간관은 많은 도움을 주리라 여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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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이 그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국제 정치 분야에서다. 국제 정치의 냉혹성은 윤리적인 제약성을 무시한 적나라한 권력 정치적인 행동양식인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주권성이 명분상 감행되고 있는 것으로 현대의 정치 철학과 정치 기술로서도 그 장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는, 발전된 전술.핵공포.정보 통신 기관.대중 조작술 등이 국가 권력의 위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는데, 여기서 마키아벨리즘이 그대로 긍정 적용된다면 더없는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소수의 독재자들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몇몇 초강대국들이 약소 국가를 간섭.지배.침략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당시의 정치는 소군주와 소국가간의 분쟁이었고, 전쟁도 소규모적인 용병군의 충돌이었으나 오늘날의 국제 정치는 재래식 무기만이 아니라 전자 무기까지도 동원되는 대량 살육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분쟁이기 때문이다. 정치 현실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입장에서만 이해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임은 분명히 사실이나, 정치가 이상과 도의와 정의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정치적 행동과 실천의 모티브로서 이기적이고 권력 의지적인 성향과 측면을 경시할 수 없지만 정치 권력이 도의적 권위를 무시하며 윤리적 제약을 받지 않을 때 여기엔 무서운 횡포와 침략의 민족적이고 인류적인 비극이 따르게 된다. 정치에 있어서는 이상과 사명의 부단한 추구가 있기 때문에 권력이 필요악으로서 용인되는 것이다. 오늘날 국내 정치서 권력자의 자의와 독재를 저지.견제 하고 국제 정치에서 강대국들의 노골적인 국가이성의 추구와 힘의 지배를 규제할 수 있는 유효한 제도적 장치는 민주주의라 하겠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자유와 인간을 위한 참된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권력뿐이며 종교나 도덕에 구애됨이 없이 어떠한 모략을 사용해도 좋다는 현실주의적 정치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런 우수한 정치 이론에 의하여 그는 소위 근대 정치학의 시조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