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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를 먹으면 세상 이치 다 알고, 궁금한 건 없고 남들에게 알려줄 일만 남았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상은, 산다는 건 모르는 일 투성이입니다. 나이가 마흔에 가깝고, 아이들도 이제 제 이름 석 자 정도는 알아서 쓸 줄 알만큼 컸는데 지금도 ‘도대체 산다는 건 뭐냐’는 배부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옛날보다 벌이도 좋아지고 살아가는 모습도 제법 번듯해졌는데 그래도 곤궁한 순간, 절박한 순간, 도무지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한 순간,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날들이 있습니다. 인과관계가 정확한 슬픔과 기쁨이라면 좋겠지만 산다는 건 너무나도 흐리멍텅합니다. 나보다 적어도 20년은 먼저 산 부모가 옆에 있다면 넌지시 물어보기라도 할텐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인터넷에 질문글을 써 보지만, 말 좀 한다는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답을 구하지만, 답은 정해져있지도 않고 대부분 내 성에 차지도 않습니다.
산다는 게 도대체 뭐냐, 원래 산다는 게 이런 거냐,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쿠팡 로켓배송도 없던 시절의 엄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냐는 생각이 꼬리를 물 때 ‘세일즈 우먼의 기쁨과 슬픔’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한 세월 부지런히 살아온, 나이 들고 착한 여자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며 지금의 내 삶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것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작가의 말이 나오는데, ‘올해로 일흔아홉 살이 됐습니다’라는 첫문장부터 충격이 어마어마합니다. 박완서 선생님도 나이 마흔에 등단을 했는데 일흔아홉에 세 권의 책을 펴낸 작가가 계시다뇨. 일흔아홉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은, 게으름부릴 틈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집 남자에게 시집와 아이 셋을 키우며 시댁식구들 건사하려니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장난감을 떼다가 학교 앞에서 팔고, 친정엄마가 시골에서 올려보내신 더덕을 팔고, 나중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고급 냄비를 팔았습니다. 굳건히 닫힌 현관문을 일일이 두드리며 빵도 팔고 세제도 파는 ‘방판 아줌마’도 했습니다. “세일즈 우먼으로 나서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어느날, 한탄을 멈추고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많은 주부를 볼 수 있었다”는 게 전순예 작가의 말입니다.
“주부들이 살림하면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1인 2역이 아니라, 1인 3역, 4역도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일이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살이를 같이 하는 많은 주부가 있어 위로가 되었습니다. 돈도 벌고, 아이들도 키우고 살림도 하느라 편히 잘 시간도 없고 쉬는 날도 따로 없었지만 바쁜 중에도 꿈을 잃지 않고 자기도 함께 성장을 했습니다. 주부들은 빛나는 자리는 아니라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작가의 말 중
전순예 작가가 뭔가를 팔러 보따리를 이고 지고 세상으로 나가면 그의 어린 아이를 대신 돌봐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순예 작가가 물건을 다 못 팔고 남은 물건 앞에 놓고 울고 있을 때 대신 팔아준 이웃들이 있습니다. 휘슬러라는 고급 냄비를 팔러 다녀야 하는데 마땅히 비빌 곳이 없는 서울살이의 서러움에 눈물 지을 때 그래도 애 엄마가 열심히 사는 게 기특하다며 마땅히 제 옆을 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음도 여리고 심성도 고운 전순예 작가가 일평생 세일즈 우먼으로 살았던 것에는 그의 우직한 천성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사람 죽으란 법 없다며 여기저기서 그에게 손을 뻗어주었던 이웃과 좋은 사람들의 덕도 컸을 것입니다. 그시절 세일즈우먼이 먹고 사는 게 워낙에 힘들어 그것이 ‘슬픔’으로 자리매김했다면, 그럼에도 ‘기쁨’이 공존할 수 있었던 것에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도움을 불편하고 부끄럽다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고마워할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꾸 산다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괴롭고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게 디폴트가 된 세상에서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흔아홉에 작가가 된 전순예 할머니가 말하길 ‘인생은 용기내어 도전하고 꿈을 잃지 않으면 분명히 좋은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앞서서 인생을 살아본 여성이 한 말이니 의심없이 믿음이 갑니다. 자꾸 일상에 무너지고, 익숙한 것이 더 무뎌져 모든 게 분명하지 않은 시절을 겪고 있다면, 내가 나로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조차 두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면 하루 쯤 마음을 열고 전순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대단한 명언 한 줄 없이 가슴이 따뜻하고 건강하게 데워질 것입니다. 오늘은 그 힘으로 살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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