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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실종은 언뜻 보기엔 일련의 순서 없이 실려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것은 그의 연작들이 각기 분리되어 있고 그 발표년도 순서 또한 일정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배열은 이청준 특유의 예술론과 일상의 아련한 상황이 애뜻하게 접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작품으로는 눈길과 선학동 나그네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타의 다른 작품들도 언급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만 지면상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눈길은 그의 작품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은 모성애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아니 모성애를 다루는 작품 중에 백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의 어머니는 쫓겨난 집터에서 홀로 생활합니다. 그것은 집 떠나간 아들을 따뜻하게 마중나오기 위한 배려입니다. 하지만 자식은 어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쉽사리 아는 척 하지 않는, 몹쓸 버릇이 있습니다. 또한 눈길과 다소 대비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선학동 나그네는 부성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딸 자식의 눈까지 멀어버리게 만든 아버지. 그 아버지는 자식에게 소리, 한을 풀어내는 소리를 쥐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딸 자식은 소리를 하며 비상하는 한 마리 학이 되어 날아가는데, 이 작품은 이청준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한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무겁고, 비합리적인 모순들을 가볍게 풀어쓰려는 의도가 잘 맞아떨어진 뺑소니사고 같은 작품도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아직도 날이 밝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우리는 어찌 되었던가. 나는 차를 타고 떠나가 버렸고, 노인은 다시 그 어둔 속의 눈길을 되돌아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뿐이었다. 노인이 그 후 어떻게 길을 되돌아갔는지는 나로서도 아직 들은 바가 없었다. 노인을 길에 혼자 남겨두고 차로 올라서 버린 구 순간부터 나는 차마 그 노인을 생각하기가 싫었고, 노인도 오늘까지 그 날의 뒷얘기는 들려 준 일이 없었다. 한데 노인은 웬일로 오늘사 그 날의 기억을 끝까지 돌이키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장터 거리로 들어서서 차부가 저만큼 보일 만한 데까지 가니까 그 때 마침 차가 미리 불을 켜고 차부를 나오는구나. 급란 김에 내가 손을 휘저어 그 차를 세웠더니, 그래 그 운전수한 사람들은 어찌 그리 길이 급하고 매정하기만 한 사람들이더냐. 차를 미처 세우지도 덜하고 덜크렁덜크렁 눈 깜짝할 사이에 저 아그를 훌쩍 실어 담고 가 버리는구나." "그래서 어머님은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잠잠히 입을 다문채 듣고만 있던 아내가 모처럼 한 마디를 끼어 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다시 노인의 이야기가 두려워지고 있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다음 이야기를 가로막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