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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잃은 윌, 의미를 찾는 피비, 종교를 만든 존 사랑과 집착 사이, 상실과 믿음 사이, 열정과 광신 사이 주목받는 신예 권오경의 강렬하고 빛나는 첫 소설 - 책 뒤표지 소개 글 -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질 즘, 다시 맨 앞으로 돌아와 다시 읽고서야 퍼즐이 맞추어진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지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수용소 안에서든 밖에서든 신앙을 갈구했다. 하물며 그 독재자가 자기 제자들이 믿는 만큼 올바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큰 것을 성취했을까. 만약 그가 그들을 사랑했다면.... 존 릴의 아이디어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존 릴 - 14~15pgae
작가는 처음부터 숨기는 것이 없이 오픈했는데, 나는 이야기가 끝날 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야기의 끝을 알고 다시 처음부터 읽으니 더 쉽게 빠져들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에게 신물이 났던 까닭은 오히려 그 분을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내가 지어낸 유령을 잃고서 마치 진짜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기 때문이었다고. 윌 - 65page
내가 따르던 신은 살아 있는 사람만큼이나 생생했다. 아니 그보다 더 생생했다. 그분을 지어내는데 너무나 많은 노력을 쏟았으니까. - 나 같은 배교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 하지만 나는 노력했다. 노력했다는 사실도 참작해주시나요, 주님? - 한 가지 계기가 있었던 것도, 사소한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최대한 억누르려고 했던 의문들, 의혹들이 쌓일 만큼 쌓였던 것이다. 신앙이 남아 있었던 마지막 시간 동안 나는 무릎을 꿇고 표적을 보여달라고 빌었다. 그분은 일찍이 다른 이들을 돕지 않았던가. - 다시 일어났을 때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게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 - 91~92page
전체적으로 이 책은 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결핍으로 가득 찬 윌 자신을 포장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윌 윌이 종교를 버린 이유가 그러했듯, 피비를 놓친 이유도 어쩌면 그의 집착적인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인간의 내면의 연약함과 그 연약함을 파고드는 사람의 교활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피비는 약한 여자였을까? 피비는 과연 수동적인 사람이었을까? 피비는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사랑에 빠진 윌, 남자라기보다는 아이인 사람. - 소원이 있어. 나를 놓지 말아 줘. 나는 생각했어요. 윌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떠돌아다녔으니까요. 그가 나를 이 땅에 붙들어줬어요. 피비 - 130page
어릴 적 엄마의 보호, 그늘.. 어쩌면 통제 아래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던 피비 그녀에게 자신의 삶의 한 축이었던 엄마의 부재는 상당한 심적 타격을 주었고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다 윌을 만났다. 그녀는 윌의 약함을 알았다. 하지만 서로의 결핍이 자석과 같이 상대를 끌어당겼고 그렇게 하나가 된다.
미처 몰랐는데 나는 규율을 갈망하고 있었더라고요 그건 피아노를 그만두면서 덩달아 잃어버닌 생활이었어요. 정해진 일정, 엄격한 요구. 매일 밥 여섯 시간 이상을 연습하면서 규칙들로 나 자신을 한자리에 고정할 수 있었어요. 규칙들이 나를 떠받쳐줬던 거죠 피비 - 199page
삶을 살아가면서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거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인 반복 강박! 피비는 윌을 통해 자신의 느슨한 삶이 엄마의 관리를 받을 때처럼 조여들길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엔, 윌의 현실과 그가 지닌 인정욕구로 인한 도전과 전진으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고 채워졌다고 생각한 공허가 다시 원점이 되면서 그 약함을 파고드는 존의 위로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피비 스스로 자신의 반복 강박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구속 상황(?) 의지할 대상이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피비를 볼 때마다 그녀의 엄마 이야기를 꺼내고 이제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자기라는 것을 인식시킨 존의 가스라이팅
어느 늦은 밤, 존 릴이 무심코 말하기를, 아버지가 내가 부자라는 걸 안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저축한 돈과 생명보험 때문에. - 나는 단 한 명의 친구에게도, 심지어 윌에게도 말한 적 없는데... - 당신이 물려받은 것은 선물입니다. 아뇨, 정말이에요. 그렇다고 그걸 간직할 의무가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른 누구에게 넘길 수도 있겠죠. 피비, 다른 사람들도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해요. 내가 그걸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어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어요 피비 - 202~202page
고통은 우리 대부분에게 닫혀 있었던 것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살이 베였을 때처럼, 이제껏 배제되었던 가능성들이 우리에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자리에 빛이 들어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분이 꺾으신 뼈들은 기뻐할 것이라고. 존 릴 - 225page
존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고통의 밖이 아니라 그 안에 함께 거하신다고 말했어요. - 그리스도께서 내리는 정화의 불길은 고통이 아니라 죄에요. 모든 상실에는 보상이, 모든 악에는 용서가 포함되어 있지요. - 만약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만약 내가 그리고 여러분이 너무나 큰 죄를 지었다며, 여러분과 내가 얼마나 강해 질지 생각해 보세요. 피비 - 246page
윌이 헤어지고 피비를 향한 존의 가스라이팅은 더욱 강화되었고 피비는 그렇게 자신의 공허를 잘못된 신념으로 채우게 된다.
존 릴이 6월부터 영적 수을 하러 갈 장소로 북부 지역에 있는 한 오두막을 임대해두었다고 했다. 모든 신도들이 각자가 저축한 돈을 제자에 바쳤다. 그중에서도 피비가 가장 많이 냈다. 존 릴은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 피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에 따라 그리스도를 필요로 했다. 그녀는 하나님이 보증한 약속들에 대고 소원을 빌었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고 과거는 무효가 되리라는 약속 결함 있는 이 세상은 지나가고 완전한 빛의 장소가 도래하리라는 약속 진정한 믿음이 없었던 그녀는 그분의 약속에 걸맞게 행동하기로, 자신이 갈망하는 신앙을 스스로 입증하기로 다짐했을 것이다. 윌 - 295~296page
이 책이, 표면적으로 인간의 결핍을 파고든 사이비 종교의 위험함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간략히 정리하기에는 그 안에 짜임새와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강력하다. 인센디어리스(Incendiaries) Incendiary - 방화의, 불을 지르기 위한, 자극적인, 선동적인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책의 제목과 맞닿아있다.
모든 신앙인을 광신도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의 정당성을 찾을 수도 있으려나? 이 책이 종교가 가지는 힘과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맞으나, 삶의 공허를 타인으로 채우려고 할 때, 공허는 외로움과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듦을 종교라는 매체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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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9.11 테러를 기억한다. 3,500명의 사상자를 낸 끔찍한 사건이다. 이외에도 축제 현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건물을 폭파하고, 희생자가 생기고, 사회는 두려움에 떠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소름끼친다. 그들은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을까? 그 이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이 책은 윌, 존 릴, 피비의 시점에서 번갈아가며 서술되고 있다. 존 릴은 '제자'라는 모임을 만든다. 이 모임은 폐쇄적이며, 자신을 학대하기도 하고, 친한 사람들과 멀어지게 해 이 모임에만 의지하도록 만든다. 그는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사이비 종교를 창시하는데, 이 곳에 윌이 사랑하는 피비가 빠져들게 된다. 윌은 그리스도를 버렸다. 아주 간절히 원해서 시민들을 예수님에게로 이끌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기도 있었으나, 구멍이 뚫린 것 같은 허망함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그가 생각한 '고결하고 질서정연하고 평온한 세계'는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피비는 과거의 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방탕한 생활을 하고 가족과도 멀어진 상태에서 만난 존 릴에게 서서히 흡수되어 간다. 처음에는 가벼운 모임으로 시작했으나 갈수록 충성을 강요받았고, 그 충성을 자기 학대라는 모습으로 증명해야 했다. 신을 저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신을 받아들인 다는 것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사이에는 열정과 집착, 믿음과 상실이 존재한다. 윌이 바라보는 피비의 변해가는 모습과 자신을 이야기하는 비피의 모습은 상이하다. "피비, 못 믿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의 계획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진실이에요. 그분의 이름 아래 당신의 이름이 높아질 것입니다." 198p- ?? 이 글은 @moonji_books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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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ROKwon #김지현옮김 #문학과지성사 #서평단당첨 서평단 모집글을 보고 너무 흥미로울 것 같아서 얼른 손을 들었는데, 감사하게 선정 해 주셨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한 느낌이다. 작가의 데뷔작이 맞나 싶을만큼 흡입력이 강렬했다. 윌, 피비, 존 릴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윌이 회고하며 전체적인 이야기가 진행되고, 각자의 시점에 맞게 진행된다. 무엇보다도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인 문구들이 많았다. 원문의 표현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옮긴이가 잘 살린것 같다. 피아니스트 신동 피비.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겨루기에 신물이 난다. 무엇에도 의미를 찾지 못 하고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정처 없다. 그러다 윌을 만난다. 신앙을 믿었던 윌. 신을 믿었고 닿기 바랐다. 하지만 신이 그를 버린것인지, 그가 신을 버린것인지, 그는 그렇게 자신이 그렸던 세계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존 릴. 탈북자들을 밀항시키는 단체와 일을 하다 북한 수용소에 갇혔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듯 폭군을 믿는 그들을 본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시작된다. 우리는 왜 종교에 빠져들까? 어느 순간에 사랑에 빠져 있을까? 사랑하는 순간에도 외로움을 느낀다면? 사랑의 이해관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종교는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많은 물음을 제시하기 좋았던 작품이었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는 물음들과 함께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 해 주고팠다. 모든것은 어느날,어느순간, 닿아있는거니까.!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신을 믿는것에도,믿지 않는 것에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기준도 불명확하다.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도 그것을 따르고 믿는이들은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지 못 한다. 어쩌면 그들이 가진, 갖고자 하는 열망에 닿을 수 있다는 광적인 믿음이 더 강하게 존재하기에 그렇지 않을까? 이민자의 삶에서 오는 씁쓸함과 고독감이 피비를 통해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이 피비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존 릴 이었다. 서사가 조금 약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에 관한 정보를 많이 주지 않고, 미스테리하게 남김으로 독자들에게 상상의 배경을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하다. 중심 인물들 이외에도 이야기가 풍성해 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폴, 리슬, 줄리언도 흥미로웠다. #파친코를 연출한 #코코나다감독이 드라마화를결정했다니 기대가 된다. 피비의 옷 차림새, 윌이 고군분투 하는 환경들, 존이 만든 신앙의 요새들, 광란의 파티들이 벌어지는 공간들 등등. 상상으로 나래를 펼치는 공간들이 색감을 입어서 영상화 된다니 볼거리가 더욱 풍성할 것 같다.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책으로 선정될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매체들의 찬사를 받은 이유가 있구나?! 오랜만에 흡입력있는 소설에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속도감의 소설들은 한 번 열면 닫을 수가 없네! #록사나독서기록2023 #책은사랑 #책사랑 #책이주는기쁨 #책스타그램 #202301_8 #극찬의이유가있구나 #인물묘사가탁월함 #흡입력있는문장들에빨려들어감 #긴장의끈을놓지못해 #펼치자다읽었더니 #동이트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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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욕망을 부추긴다. 욕망이 향하는 곳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쌓아올린 그것을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결핍을 인정하고 자신을 갈고닦아 나를, 주변을, 채운다. 행복에 가까운 것으로. 어느덧 결핍이 자리한 곳은 더 이상 결핍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결핍이 불러일으킨 욕망이 이로운 방향으로 향할 때, 그 모습이란 자기 발전이라는 비슷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반대로 흘러갈 때, 욕망이 만들어내는 그것은 저마다 사뭇 다르다. 괴물을 빚어내고, 집착으로 변모하고, 광신을 낳는다. 나와 주변을 모두 불행으로 물들인다. 여기 등장인물들이 보인 욕망의 형태는 어둡고, 섬뜩했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한 피비와 구원과도 같은 신앙을 저버리고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으려는 윌 그들 모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어떠한 결핍을 마음속에 지닌 채 남들처럼,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한다.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그 둘은 우연한 만남 한 번에 서로에게 이끌리는데 아마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상대는 어렵지 않게 들여다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들 모두 서서히, 그리고 은연중에 자신을 괴롭혀 온 결핍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때부터 그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어머니의 부재가 낳은 결핍과 사이비 교주 존 릴과의 만남이 더해져 피비는 그가 이끄는 기독교 기반 사이비 종교 모임인 ‘제자’에 가입한다. 그 모임에서 그녀는 어머니를 여윈 자신의 결핍을 점점 더 선명하게 확인해가고, 그럴수록 남자친구인 윌에게 의지하는 대신 존 릴과 어울리는 빈도를 높인다. 그녀가 자신의 통제에서 점차 벗어나자 분노와 질투에 휩싸인 윌은 그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집착으로 바꾸며 둘의 관계를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신앙이 자리한 곳을 피비로 채우려는 윌과 그럴수록 제자에 깊숙이 스며드는 피비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극명하게 드러나며 둘은 어쩌면 상반된 선택을 내리는 듯 보였다. 끝끝내 피비를 포기하지 못하는 윌과 테러를 자행하는 피비.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데 애를 먹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결핍이 자리한 곳을 욕망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그 욕망이라 함은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띠어 예측을 벗어나기에 인간을 이해하는 게 더욱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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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이라고요?
“많은 사람이 신앙의 양극단에 서 있습니다. 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과 아예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나뉘죠. 그 사이의 균열을 넘고 싶었습니다.” 저자의 인터뷰 일부입니다.
주인공 피비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결혼생활동안 아내를 지켜주지 못했던 아버지는 아내를 찾아 미국으로 옵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이 심한 집안에서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잘못을 보상하려고 왔겠지만, 사람 변하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던 중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시 헤어집니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직업은 목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아버지는 아내와 딸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신을 아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을 믿지 않는 딸은 양극단에 서게 됩니다. 아버지와 딸 피비 사이의 균열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메워지지 않을 것 같은 균열을 어떻게 넘어설까요? 균열을 넘어서기는 한 걸까요. 아버지는 딸의 정보를 자기가 믿는 사람에게 주고 딸에게 접근을 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믿었던 자는 광신도 집단의 리더였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은 딸을 광신도에게 넘기게 됩니다. 아버지의 신과 광신도의 신, 그리고 딸이 믿는다고 한 신은 같은 신일까요? 이들은 모두 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피비와 아버지의 균열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아닌 듯합니다. 둘은 다 믿음을 가진 자이니까요.
피비가 사랑한 남자가 있습니다. 윌이라는 남자입니다. 윌은 신학대학을 다니다 신을 포기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비가 윌을 사랑한 것과 윌이 피비를 사랑한 정도를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피비가 더 사랑한 것 같기도 하고, 윌이 피비를 더 사랑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피해 도망한 피비와 한때의 신앙을 버린 윌은 처음 만날 때는 균열이 없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미울 때면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놀고 공부하고 일하며 삽니다. 그런 둘의 관계를 균열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피비가 제자라는 종교집단에 가입하고 모임에 자주 가면서부터 둘 사이에는 균열이 발생합니다. 윌은 종교집단의 리더인 존을 믿지 못하고, 그런 존과 만나는 피비를 믿지 못합니다. 믿음의 균열이 발생하고, 둘의 동거는 깨집니다. 이제 둘 사이의 균열은 마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균열로 보입니다. 소설은 이 둘의 균열을 넘어서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도 같습니다. 한때 믿었으나 그 존재가 없음을 확인했다는 윌과 아버지의 신을 피해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던 피비는 만나서 사랑을 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지만, 어느 날 피비에게 신이 생기고 그 신 때문에 윌과 헤어지면서 생긴 균열을 메우려는 이야기, 그렇지만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피비와 윌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피비가 임신중절수술병원을 폭파하고, 그 와중에 어린 학생 다섯 명이 폭발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둘은 여전히 사랑하는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물론 이야기를 주도하는 윌이 하는 이야기라 다 믿을 수 없다면 사실관계가 달라지겠지만 둘의 사랑을 확인해 줄 증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윌과 피비의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피비와 친했던 친구는 줄리언입니다. 줄리언과 윌은 피비 때문에 친한 사이입니다. 피비가 폭발 사고를 일으킨 후 윌은 길을 가다 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줄리언을 만납니다. 하지만 줄리언은 윌을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줄리언의 팔을 잡은 윌은 줄리언이 쓴 안경이 전등 같아 놀랍니다. 전등처럼 겨눈 안경 속 눈초리는 매섭기만 합니다. “너하고 말도 섞고 싶지 않아. 나는 네가 어떤 놈인지 알아, 윌.” 무슨 말을 하냐는 윌의 반응에 줄리언은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냅니다. “걔는 네가 다치는 건 싫다고 하더군. 나는 너무 답답해서 후회할 말들을 뱉어버렸어. 그 이후 우린 서로 연락 안 해. 걔는 너를 사랑했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됐지만. 피비가 제자에 완전히 빠져든 건 너 때문이야. 네가 그걸 깨닫길 바라. 오 네 실체를 사람들에게 까발리는 상상도 했지. 하지만 네가 지금 그대로 지옥에서 살게 해 줘야겠더라고. 누군가가 지옥에 박혀 있기를 바라는 건 처음이야.”(306쪽)
신앙인과 비신앙인 양극단의 균열을 넘고 싶어 한 작가의 이야기는 신을 믿는 누군가와 신을 믿지 않는 누군가를 전제로 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신이라는 이름이던 어머니든 아버지든 아니면 친구든 애인이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와 자기에게 바쳐진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는 존재 그들의 균열을 얘기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피비는 자기의 운전 미숙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생각하지만, 사고 순간에 자신을 보호하려고 안전벨트를 풀고 피비를 안으며 딸을 보호한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죄를 잊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는 그 죄를 용서받고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회복하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죄에 짓눌려 악몽 속에나 존재하는 어머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균열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요. 피비가 너무도 사랑한 윌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광신도에게 속아 몸과 마음을 다 주는 어리석은 존재로 오해받을 때 피비는 자기가 사랑한 윌과 자기를 사랑한 윌 사이의 균열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다른 존재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신의 이름은 혹시 ‘사랑’이 아닐까?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 사이의 균열에 관한 이야기는 작가가 이 소설을 쓴 1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을 법도 합니다. 그게 왜 10년이나 필요하냐고요? 말이 ‘사랑’이라고 표현하니 간단한 것 같지만, 사랑이라고 믿는 사랑 아닌 것이 얼마나 많은 지 생각해 보시면 저는 10년도 짧은 세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이라고요?”라며 이의와 불만을 제기하더라도 저의 답은 한결같습니다.
“그럼요 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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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지난해부터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과 인연이 이어진다. 작가님들의 작품들이 드라마 원작 소설로 인기 있는 탄탄한 스토리 덕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뒤늦게라도 국내에서 번역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반갑다.서울에서 태어나서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 예일 대학교에서 경제학,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고 뉴욕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등에 글을 발표했다는 권오경 작가의 첫 장편소설 《인센디어리스 The Incendiaries 》은 출간 5년 만에 코고나다 감독의 드라마 제작소식과 함께 국내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 책 소개 문장에 마음이 끌린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천주교 모태신앙이었던 나에게 '신앙을 잃은, 의미를 찾는, 종교를 만든' 세 명의 주인공이 속 사정이 결말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왔다. 윌의 시선인 첫 페이지는 다시 찾게 하는 시작이자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주교 모태신앙이었던 나에게 종교란 10대 이전과 성인이 된 20대 이후로 나눠진다. 어린 시절에는 종교란 없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더 많았고, 지금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많다. 처음부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야 했던 믿음은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한 가정의 균열과 함께 믿음도 깨어졌다. 처음 듣는 한국계 작가의 영미소설인 <인센디어리스>는 그 균열에 스며들듯이 왔다. '신앙을 잃은 윌'보다는 '의미를 찾는 피비'가 내가 더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윌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잃어버린 신앙이 그립다는 윌이 누구보다도 이해가 됐다. '그립다'라는 사전적 의미에 간절하다 보다는 아쉽다가 가까울 수도 있는 거창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았던 것 같지만 항상 절박한 상황에서는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20년 동안의 신앙의 찌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들었다. 성인이 되어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말로 부모님께 주일 미사를 빠질 궁리를 했던 나였고, 회사 상사 따라 어쩔 수 없이 갔던 개신교의 예배를 근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선악의 기준이 점점 모호해져 가고 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성경 구절의 진리는 왜 다 다른 것일까? 그래서 그렇기에 '종교를 만든 존'들이 판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숨에 읽었지만 읽은 시간보다 여운이 너무나 길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옮기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제목 '인센디어리스'는 '인센디어리 Incendiary'의 복수형이고 '방화, 폭탄, 선동적인' 뜻 자체가 표지와 함께 연결되어 잠재되어 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오히려 잠으로 눌러버리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나이기에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그만큼 권오경 작가의 소설의 파장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 만큼 컸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는 이야기와 상관없다는 오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국적과 성별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비슷한 주제의 소설들과 비교해도 다른 형식에 서술 방식에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올해 첫 소설로 추천한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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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의 문항을 풀고, 본격적으로 심리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상황파악(?)을 빨리 해서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웃픈 에피소드가 있는 나에게 이 소설은 가히 충격적이다. 귀신보다 더 무섭고, 소름끼치게 느껴지는건 왜 일까.
한 사람의 인생이, 어느 경계선에 서 있는 지인이나 가족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면, 나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어둡고 암흑 속에서 발버둥치는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구제해 줄것인지,
세 사람 사이에서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거짓말 같은, 믿고 싶지않은, 위험한 이야기.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한 순간에 어그러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리고, 결말이 주는 후 폭풍과 허탈함이 독자의 영혼을 탈탈 털어버리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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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cendiaries 인센디어리스 l 권오경 장편소설 l 문학과지성사]
“이곳이 환상을 팔기 때문이야. ..... 그런데 무슨 환상일까?”
인간은 살면서 무엇인가 한 가지는 믿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종교든, 사람이든, 혹은 본인 자신을 믿고 산다든지 말이다. 그리고 믿는 것에 ‘환상’을 불어넣어 삶을 지탱하는 것이 아닐까.
<인센디어리스>는 권오경 작가 자신이 직접 종교적 경험으로 얻은 작품으로 쓰인 장편소설이다. 서술시점은 3명으로 연인 피비와 윌 그리고 교주 윌이다. 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남자주인공 윌이다.
종교의 믿음에 빠져 본 윌은 믿음을 막 시작한 피비를 이해했다. 그리고 본인도 냉담했던 믿음의 길을 함께 다시 가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빠진 종교는 '사이비 종교‘였다.
‘제자 공부’라는 시간을 통해 그녀는 정신을 지배당하고, 폭력을 당하면서도 ‘환상’에 도취 돼 남자친구를 떠나고, 사회에 테러까지 일으키는 무리에 속하게 돼 신문 지면에 얼굴이 실리게 된다.
3명의 서술시점이 전개되는 소설의 흐름은 터질듯 터지지 않는 폭탄을 손에 쥐고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마침내 터지는 순간을 보았을 때, 시원함 마저 없는 사실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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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 권오경 / 문학과지성사 2023.02.14. 완독 #14 언젠가부터 유독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이 많아진 것 같다. 가볍지않은 작품이고 내용이 조금 어렵지않을까 걱정했지만 깊이도 있고, 재미도 있고, 빠른 전개와 가독성까지 갖춘 작품이었다. 피비, 윌, 존 세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는 진행방식으로 처음엔 좀 헷갈리기도 했으나, 이내 푹 빠져서 쭉 읽어내려간 작품.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피비. 피비는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마음을 잡지 못하는 인물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나 종교를 버린 윌. 윌은 삶을 감사하고 타인을 사랑하며 종교의 힘을 알고 살았던 예전의 삶을 그리고 하고 있다. 윌과 피비는 사랑하는 사이. 탈북민을 구출하려다가 북한 수용소에 잡혀간 존. 독재자에 대한 충성을 보고 종교를 창설하게 된다. 피비는 마음을 잡지 못하는 와중에 존이 창설한 종교에 빠져들게 되고 윌은 그런 피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저렇게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흔하지 않은 소재를 재미있고 강렬하게 잘 그려낸 작품으로 사랑과 집착 사이, 상실과 믿음 사이, 열정과 광신 사이를 정말 잘 그려낸 것 같다. 어렵고 위태로운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라도 홀로 오롯이 견뎌낼 수 있지는 않을테니.. 단숨에 읽어내려간 작품이지만, 길게 여운이 남는 좋은 작품이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예요. 하지만 사랑 자체는 여전히 당신에게 남아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변치 않는 선물이죠.(p.146)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센디어리스 #문학과지성사 #권오경 #ROKWON #소설추천 #도서협찬 #도서지원 #도서서평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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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피비는 '제자'라는 사이비 종교에 헌신한다. 낙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임신 중절을 하는 산부인과에 폭탄 테러를 하는 과격한 단체에서 그녀는 무엇을 얻었을까. 기대에 못 미치는 재능에 좌절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방황하다가 새로 발을 디딘 곳이 수렁이라니. 공허한 마음을 채운 신념에 마냥 행복한 피비는 발밑을 살필 겨를이 없었겠지만. 상처입은 사람을 흔드는 교묘한 말은 상상도 못할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못할 일이 없게 되니 말이다. 자기만족에 빠져 삶의 의미를 찾았다 여기는 사람의 귀에는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일상이 무너질지라도 자신의 신념이 중요할 뿐이다. 무슨 일에든 그 정도로 깊이 빠진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이든 종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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