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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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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특이한 글이다 . 내용도 형식도 소재도  그렇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멕시코인 젊은 여성작가, 이 또한  눈 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자전적이거나 한 부류 혹은 종족적 자전성을 가지고 있는듯 싶다.  무슨 기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네 점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출발하여 피라미드의 꼭지점처럼 한 점으로 집약이 된다. 이런 형식의 소설은 꽤 되는데 베르나르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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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특이한 글이다

. 내용도 형식도 소재도  그렇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멕시코인 젊은 여성작가, 이 또한  눈 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자전적이거나 한 부류 혹은 종족적 자전성을 가지고 있는듯 싶다.

 무슨 기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네 점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출발하여 피라미드의 꼭지점처럼 한 점으로 집약이 된다. 이런 형식의 소설은 꽤 되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가 유명하지 않나 싶다. 

 이 소설은 시점, 기점을 좀 단순화시켰다. 공간적으로 네 점이 아니라 두 점인데  대신에 시간적 두 점이 더해져 오히려 4차원적 시공을 만들어 4차원적인 네 점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된다. 그래서 묘하다.  저 건너편과 여기, 현재와 과거가 그 시작을 향해 더듬어 가는 것이 궁금증을 유발하여 따라 들어가게끔 한다.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바는 '여기'이고 글의 중심도 '여기'이지만 독자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저 건너편'에서 '여기'를 볼 수 밖에 없다. 또 하나의 형식은 소설이 리얼리즘과 동화가 역시 두 점에서 출발하여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저 건너편'의 독자인 나는 '여기'의 소녀 후아나의 얘기가 마치 동화처럼 들린다. 그림동화나 안델센의 동화의 비극적 모토처럼 보인다. 동화 속의 후아나와 현실 속의 아델리나가 서로를 찾아 일 백개의 산을 더듬어 나가는것이...

 '저 건너편', 현실 속의 저 건너편은 멕시코의 가난한시골마을에서 본 미국이지만 아마도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현실의 '미국'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냥 일 백개의 산 너머의' 저 건너편' 이라 한다. 미국이 답이 아나라는 것은 작가도 알고 독자도 아는 일일 것이다.

 '아버지', 저 건너편으로 사라진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 '아버지'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정체성의 탐색이 애처로울 정도로 소녀 후아나의 여행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理想으로의 인도자이거나 유신론자의 神일 것이다. 아버지가 후아나와 가족을 버린 것이 아니라 理想을 혹을 善을 가족에게 가져다 주기위해 저 건너편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멕시코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 낯설고 특이한 것을 찾았다. 뜻 밖의 소득이었다.  번역자에게 감사드린다. 레이나 그란데의 다른 글들도 보고 싶다.

 

후아나 "...아빠는 저 산들 바로  건너 편에 계실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빠가 필요할 때마다 그 산들을 바라보라고 제게 말씀하산 걸요!"

 '아빠는 이 산들 건너편에 계시는 것이 아나었다. 그리고 그를 찾기 위해서는 이 산들만 넘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산을 백개는 더 넘어야 하 것이었다.'

c******1 2014.05.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