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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무척이나 유쾌하게 글을 쓰셨지만 스님이 지나오신 그 과정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걸 읽으면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통도사 주변 개발 저지나 박물관 건립이나 그 당시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 갑니다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스님의 모습에 절로 박수가 나왔어요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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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쉽고 재치 있으며 할아버지가 장난스럽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스님이 끊임 없이 일 하시고 투쟁 하셔서 전 ‘일 하면서 놀고, 놀면서도 또 놀고 싶어요!’를 외쳤습니다. 통도사 앞 상인들을 내보내는 일, 통도사 주변을 유흥지로 개발 하려는 것을 막으시는 일, 박물관 만드시는 일…가볍게 말씀 하시지만 그 시절에 얼마나 힘 들게 싸우셨을 지 상상이 안됩니다. 스님은 ‘전통 문화를 되살리려는 엄청난 욕심의 소유자’ 이십니다. 한시, 도자기, 도자 삼천불, 16만 도자대장경, 식물 키우기, 참꽃 (진달래) 동산… 신정희 도예가님, 이성자 화백님, 중광 스님… 반가운 분들도 나오십니다. 1980년대 아파트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항아리 중, 일본 제조 방식이 아닌 50년 이상 된 항아리만 모아서 된장, 간장을 만드십니다. 된장, 간장은 전통 음식 문화의 존속을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시주‘ 권고 안하고도 스님께서 하고 싶으신 일,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적 수단이 됩니다. 1980년대 초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 기술을 되살리십니다. 이는 고려 시대 이후 단절된 기술로 여기저기 수소문하셔서 쪽을 구하고 쪽물 들이는 법을 아시는 분을 찾으십니다. 천과 달리 종이에는 쪽물 들이는 게 쉽지 않아 종이를 뜨는 법을 직접 배우셔서 종이를 만드십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닥을 직접 구해 오셔야 합니다. 하시는 일이 너무 많으셔 전 읽으면서 숨이 찹니다. 이판사판은 원래 불교 용어라고 합니다. 한국 불교에만 있는 용어로 이판은 수행하고 경전 공부하는 스님, 사판은 종무 행정, 즉 살림을 맡는 스님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승려는 모두 천민이 되면서 이판사판 모두 억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절 살림을 위해 사판승이 종이 만들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스님은 2020년 가로 3m, 세로 100m 초대형 한지를 만드십니다. 부처님 걸개그림용입니다. 감지 재현 위해 시작한 쪽 염색으로 파리 패션쇼에도 초대받아 가십니다. 신기하죠? 르 몽드지와 인터뷰도 하십니다. 이성자 화백의 권유로 산수화 공부도 하십니다. 중국에서 엄청난 규모의 산수화 전시를 마친 뒤….산수화는 4~5년 만에 일단락. 세게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경지에 오르셨는데 일단락이라니요. 이는 옻칠 민화를 그리시기 위함입니다. 스님은 민화가 절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십니다. 우리 그림에는 색채를 쓰지 않았고, 절 단청 제작 시 색채를 사용 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자리가 없어진 사찰 단청 제작자들이 민화를 그렸고, 양반, 상놈 지위 체계가 흔들리면서 돈 있는 사람들이 민화를 샀다고 합니다. 옻칠을 한 민화는 방수가 됩니다. 수중 ‘반구대 암각화’ 전시…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이 수많은 작품들은 절대 팔지 않으십니다. 우리 전통을 복원하시려는 목적으로 제작하시는 거니까요. 통도사 전체가 전통 문화 박물관이고 주변은 우리 나라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는 청정구역입니다. 통도사도 건립 이래 1300여년간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1984년 ‘성파 시조 문학상’, 1985년 전국 시조 백일장..한시는 중국의 것이며 시조가 우리 전통 문화라고 생각 하시어 시조 보존 사업도 하십니다. 시조 문학상 상패는 직접 구우신 도자기에 우승한 시를 써주시는 겁니다!! 스님 시조입니다. ‘뜰기뜰기’, ‘히히 호호 히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