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입니다. 점심을 언제 먹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삶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어느정도 했을 법한 시간, 하지만 정확히 이룬것은 없고 또 한편으로는 새롭게 무언가를 할수 있는 시간 이것이 우리의 점심이 가지고 있는 속뜻인것 같습니다. 방향이 틀릴수도 있지만 그것의 끝은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 늦었지만 끝은 화려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 아름답고 재미있는 곳입니다. 오늘 마음따뜻한 책과 함께 점심식사 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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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을 보면 간혹 부러울 때가 있다. 그들이라고 어찌 인생이 쉬웠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숱한 위기와 위험의 나날들을 견뎠고 살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견고한 삶의 지혜마저 자연스레 형성되었을 터이다. 늙어가며 죽을 날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건, 그만큼 고통스런 날들도 차츰 소멸되어 간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 오늘의 삶에 충실하며 당당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노인들을 보면, 몹시도 부러울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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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살아가는 하루에 죽음이 계획에 들게 하라
청춘은 활동성이 왕성한데도 시간은 더디고, 노인의 걸음걸이는 더디고 더딘데도 시간은 쏜살같이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그래서 늙은이는 재촉할 것도 없고 그저 시간을 더디게 나무늘보처럼 망중한을 보내듯 더딤의 미학을 실천하지만 무병 장수 총명을 갖추기가 진귀할 뿐이다. 근심&걱정은 생사生死에서 오는데 무생사無生死의 뿌리는 오직! 육신에 집착하는지라 알턱이 없다.
한편 청춘들은 또 다른 노인을 제 몸속에 가꾸고 있는데도 나는 늙지 않을 것 처럼 맘껏 젊음을 발산한다. 삶이여! 청춘이여! 늙음이여! 이 모든게 한 조각 꿈이 아니겠는가?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이란 책에서 위 모든 것들의 무아무상無我無想이 일 순간 필름처럼 흘러간다.
여행은 길이다. 아침에 눈 뜨고,학교가고 출근하고 설거지 하고 일련의 작용과 반작용의 연속이 여행이다.
여행은 길이다.
홀로 먼 길을 떠나 온갖 장애물들과 부딪히며 슬픔을 눈물을 여섯 가마 흘리고 기쁨을 눈물을 열 가마 흘리는 그런 간절함의 순례길, 닭어머니 새끼의 줄탁동시?啄同時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아니어도 좋다. 태어난 사명감을 증명하고 인생이란 여행길 종착역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노승의 일생을 화려한 점심속이란 책 제목에 독자들이 집착할 수도 있겠지만, 게으름은 큰 병이기 때문에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 자체가 보약이요, 마음 또한 닫아두면 곰팡이가 자잘 수 있기 때문에 수양이 사닥다리를 올라가서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듯이 한 참 묵은 나이인데도 나이의 나이테에 이끼가 끼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스스로 아침 맞이부처 저녁 잠자기 사이이의 모든 일들을 기꺼이 즐겁게 화려한 점심 만큼이나 부지런한 삶을 파도가 결국 바다임을 울렁거리림보다는 울림으로 生을 지극히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순례자로서의 외국 생활 15년 노승의 스펙트럼에서 깨달은 생사生死의 여정과 미륵산 사자암에서 진돗개와 고양이 그리고 자연들과 함께 수 놓는 세상은 절반은 어둠이요 절반은 빛이듯, 절반은 행복이요 절반이 불행이인지라 행복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의 숭고함을 받아들이면 행복으로 역전되지 않을까.
"내 죽거든 한 줌 재도 챙기지 말고 버려버릴것...
내 죽어 따스한 봄바람으로 돌아오리니..." -노승의 내 죽거든-
사람의 모든 병病은 집착執着에 비롯되니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잠시 후 햇빛이 들면 사라지듯 이것이 인생이거늘.
부부가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하기 때문에! 결혼은 상대방을 만나 내가 결국 이득을 보겠다는데서 출발하듯 하나되어 출발할 때 상대방의 인생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서서히 부부는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은 아내의 인생을 살아주고 아내는 남편의 인생을 살아주는것.
한 인생, 한 생각도 한 조각 꿈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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