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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손에 든 꽃이 무색해라   일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을 맞는   저기 꽃보다 환한   불빛 지금 시간 12월 23일 23시 41분. 1, 2학년을 한 학년씩 진급시키기에 문제는 없는지 논의하는 진급 사정회를 마치고, 임기가 다 되었거나 다른 곳으로 발령난 직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송별회를 겸한 자리까지 갖고 들어왔다. 3년 반을 살아온 교내 관사. 이 늦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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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손에 든 꽃이 무색해라

 

일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을 맞는

 

저기

꽃보다 환한

 

불빛


지금 시간 12월 23일 23시 41분. 1, 2학년을 한 학년씩 진급시키기에 문제는 없는지 논의하는 진급 사정회를 마치고, 임기가 다 되었거나 다른 곳으로 발령난 직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송별회를 겸한 자리까지 갖고 들어왔다. 3년 반을 살아온 교내 관사. 이 늦은 시간 9호의 집 가운데 두 집은 불이 켜져 있고 나머지는 깜깜하다. 켜져 있는 곳도 나랑은 별 교류가 없는 분들이니 반가운 마음이 덜하다.

 

대학에 들어간 20살 때부터 대학 4년간, 군대 2년 반, 그리고 딱 1년을 외가에서 살고 다시 3년 반을 이 먼 곳에 와서 혼자 관사에서 살았다. 관사에서 지난 2년은 룸메이트가 있었으니 1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7년을 혼자서 살아온 것이다. 혼자 먹는 밥도, 혼자 자는 것도,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도 익숙하고 특별한 감흥도 없지만 가끔 고깃집에 다녀온 사람이 방에 들어와서 훅 끼치는 냄새처럼 순간적으로 외로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

 

집에 있는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꽃을 한 다발 샀던가보다. 굳이 찌개 끓이고 반찬 좀 놓고 밥상 차려 날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 놀라며 기뻐하는 얼굴 그 잠시간의 표정을 위해 꽃집에서부터 집 앞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들고 왔다. 일터에서 사람과 의견이 달라 다투고 서로 그랬냐며 이해하기도 하고, 아침에 준비해 간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나서 돌아오는 길. 그 빈자리를 그 사람의 기쁜 얼굴로 채우기 직전,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저기 꽃보다 환한 불빛. 춥고 어두운 길을 행여 잃을세라 불빛을 켜놓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마음. 그 마음이 있어 내일 하루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금 비록 몸을 멀리 있으나 꽃보다 환한 불을 밝히고 나를 기다릴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며 외로움을 이겨내고 잠자리에 든다.

s*************k 2014.12.2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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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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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 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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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 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서로

힘 돋워 함께 할 삶도 없이

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

혼자 밥 먹는 세상

 

밥맛, 없다

살맛, 안 난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을 같이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함께 매일 밥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하지 않는가. 20살때부터 집을 나와 자취를 하면서 밥을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일이 참 그립고 소중한 일이 되었다. ROTC 후보생이던 22살 때, 늘 밥을 함께 먹던 친구들이 있었다. 특히 학교 앞 중국집에서 먹던 고추쟁반짜장이 생각난다. 그 고추쟁반짜장은 매일 먹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 먹는데, 흔히 말하는 집합이 걸려 서너 시간쯤 떡이 되도록 기합을 받고 난 후 선배가 하사해 주시는 그런 귀한 음식이었다.

 

그때야말로 식구라는 단어가 눈과 식도에 와서 꽂히는 순간이다. 좀전까지 별로 잘못한 것도 없지만 선배의 위압에, 제복의 무게에 눌려 사람 수에다 100씩 곱해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앉았다 일어서고 지쳐 쓰러지는 동기의 허리띠를 잡아 끌어올려주면서 표시 안나게 뒤로 맞잡은 손의 힘으로 서로의 끈끈함을 느끼고. 하고 나면 1~2키로는 쉽게 빠지는 그 집합을 거쳤으니 접시까지 씹어먹을 듯도 한데 내 입으로 들어가는 젓가락보다 동기의 입에 들어가는 젓가락이 그렇게 흐뭇하고 고마울 수가 없다. '오늘도 함께 잘 버텼구나 친구야.'하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전역을 한지도 5년이 지나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현직 교사, 전도사, 은행원, 사업가 등등 각자의 분야에서 한창 일하는 나이가 되었다. 좀 전에 그 중의 한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한숨을 푹 쉬더니 은행에 멀쩡하게 다니던 동기 한 녀석이 다단계에 빠졌다고 한다. 자기만 빠진 것이 아니라 10년을 사귄, 내년에 결혼하기로 한 여자친구도 이미 가입시켰고 거미줄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동기들에게 하나둘씩 연락을 하고 있는 거란다.

 

은행은 퇴직 시기도 다른 업계보다 빠르고 일반 행원이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으며 집안도 넉넉하지 않고 내년에 결혼도 해야하는데... 그 참에 그 사업이 운명처럼 자기 앞에 나타났단다. 하아... 번듯한 직장을 잡은 것만으로는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아도 될 만큼의 생활이 안되는구나. 이건 사회탓. 아니라면, 남들에 비해 충분한 급여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눈을 돌리다가 제 욕심에 발목잡힌 개인의 실수라고 해야할까. 권유를 받은 친구는 그 두가지 이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이번 주말에 일단 만나나 보기로 했단다.

 

그 친구와 밥 먹은지 참 오래되었다. 밥이라도 자주 먹었더라면, 부족한 돈의 자리에 위안이 대신 자리잡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를 해 본다. 밥맛, 안 난다. 

s*************k 2014.12.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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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밥상] 따뜻한 한 끼, 시인의 밥상
"[시가 있는 밥상] 따뜻한 한 끼, 시인의 밥상" 내용보기
특이한 책을 읽게 되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집어든 책은 아니고, 초장부터 나를 확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책도 아니었다. 그저 읽다보니 어느 순간 끌려들어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어나가게 된 책이다. 첫눈에 반한 책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은은하게 빠져들어버린 책이다.   시집도 아니고, 산문집도 아니고, 요리책도 아니라지만, 이 책에서는 그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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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책을 읽게 되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집어든 책은 아니고, 초장부터 나를 확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책도 아니었다. 그저 읽다보니 어느 순간 끌려들어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어나가게 된 책이다. 첫눈에 반한 책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은은하게 빠져들어버린 책이다.

 

시집도 아니고, 산문집도 아니고, 요리책도 아니라지만, 이 책에서는 그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 먹고 싶은 것을 조금씩 다 맛볼 수 있는 샘플러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밥상같은 책이다. 어쩌다 한 번 근사하게 하는 외식이 아니고, 누군가 초대해서 격식차려 차려낸 부담스런 상도 아니다. 일상에서 꾸준히 먹게 되는 한 끼 같은 책이다. 소소한 한 끼 한 끼가 모여서 우리의 삶이 된다. 이 책 『시가 있는 밥상』을 읽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삶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소박한 한 끼 밥상에 살포시 올려놓은 메인 요리처럼 맛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오인태 시인. 일명 밥상 차리는 시인이다. 2009년부터 시작한 블로그 이름도 '시야 밥먹고 놀자'다. 시와 밥상을 차린다는 것,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본다. 왠지 글쓰는 사람은 요리를 할 줄 모르거나 그럴 돈이 있으면 술을 사먹을 듯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다.

 

'실종과 부재의 시대'라 할 만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잃고 있는 핵심 가치 체계를 나는 네 가지로 짚고 있다. 바로 이 책의 주요 코드로 장치된 '시'와 '인문 정신', 그리고 밥상으로 상징된 '집'과 저녁으로 대변된 '일상'이다. (7쪽)

오인태 시인은 '시든, 산문이든, 밥상이든 아무쪼록 이 책이 내 이웃들에게 한 그릇의 따뜻한 위안과 희망이 되길 바랄 따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바람이 나에게는 통한 책이다.

 

이 책은 글의 시작마다 정갈한 한 끼의 식사가 차려져 있다. 저자의 상차림 원칙은 다음과 같다. 우리 땅에서 난 식재료만 쓴다. 최대한 열을 덜 가하고 조리 과정을 짧게 해서 재료의 원형과 성질을 지니도록 한다. 화학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고 천연 조미료도 되도록 적게 써서 주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디 맛을 한껏 살린다. 그 원칙에 맞는 요리들이 한 끼 밥상으로 사진찍혀 올라와 있는데,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편안하고 은은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이다.

 

역시 시인의 눈은 일반인인 나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 라면같은 시를 읽을 때였다.

라면같은 시

꼬이지 않으면 라면이 아니다? 그럼, 꼬인 날이 더 많았던 내 살아온 날들도 라면 같은 것이냐 삶도 라면처럼 꼬일수록 맛이 나는 거라면, 내 생은 얼마나 더 꼬여야 제대로 살맛이 날 것이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름조차 희한한 '생라면'을 먹으며, 영락없이

 

맞다, 생은 라면이다

 

_시집《아버지의 집》에서

 

생은 라면이라니. 삶도 라면처럼 꼬일수록 맛이 나는 거라면, 내 생은 얼마나 더 꼬여야 제대로 살맛이 날 것인가. 라면을 보며 생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운 것은 왜일까?

 

눈으로 맛보는 소박한 음식과 함께 마음으로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나른하게 배부른 느낌이 든다. 이래서 책은 마음의 양식인가보다. 시인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에 마음이 든든해지고 힐링이 되는 시간이다.

s*****a 2014.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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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았던 기본, 밥상이 주는 기쁨
"잊고 살았던 기본, 밥상이 주는 기쁨" 내용보기
“시원하게 국수나 한 그릇하지. A 어디 갔어?”   엄연히 근무시간은 끝났지만 몸은 아직 사무실이다. 해야 하는 일이 있건 없건 그때부터는 자연스레 저녁을 먹어주어야 한다.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곳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따르는 게 우리 사회에선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밥은 꼭 집에 와서 먹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부모님의 뜻을 좇아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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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국수나 한 그릇하지. A 어디 갔어?”

 

엄연히 근무시간은 끝났지만 몸은 아직 사무실이다. 해야 하는 일이 있건 없건 그때부터는 자연스레 저녁을 먹어주어야 한다.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곳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따르는 게 우리 사회에선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밥은 꼭 집에 와서 먹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부모님의 뜻을 좇아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사무실을 벗어나곤 한다. 그 결과 저녁은 집에서 먹을 수 있게 됐으나 ‘집에 꿀 발라놨다’는 비아냥거림을 수시로 듣고 있으며, 저녁 시간에 오가는 공식적인 이야기들로부터도 소외되는 일이 잦다. 정보력은 곧 경쟁력이다. 경쟁력을 포기한 끝에 쟁취한 가족과의 저녁식사. 바람직한 것인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으나 그렇다고 남들처럼 아홉 시, 열 시가 넘도록 사무실을 지키고픈 마음은 없다.

여섯 시가 되자마자 사무실을 빠져나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직장인은 그리 많지 않다. 으레 직장생활은 그런 것이라고 여겨야 직장인으로서 성공적인 길을 걸을 수 있다. 신입사원을 뽑는 각종 면접에서도 극한 상황을 강조하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철인 3종 경기 완주, 북미 자전거 일주, 정글 마라톤 등도 하는데 주말 출근에 매일 야근 정도야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일까. 평범한 일상의 붕괴를 고민하는 이는 거의 없다. 너무도 기초적인 게 무너져버린 지 시대다. 오래전엔 당연했을 공동체를 뒤늦게 복원하겠다며 각 지자체가 힘을 쏟아 붓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그러면서 우리네 일상은 그와 반대를 지향하니, 이와 같은 불균형으로부터 비롯된 혼란을 어찌해야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인은 밥상을 차렸다. 비록 그의 밥상은 1인용이었지만 손수 차린 밥상인 만큼 정성이 가득했다. 밥과 국, 반찬 두어 개로 이루어진 조촐한 밥상을 차리며 그는 매일 물었다. 왜 우리는 홀로 밥을 먹어야만 하는가. 제 자신의 삶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서 어찌 세상을 고민할 수 있단 말인가. 과거처럼 밥상에서 시작되는 교육을 꿈꾸는 건 고리타분한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모두가 그리워하는 가족애, 인간에 대한 믿음 등은 여전히 가정에서 맛볼 수 있는 밥상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시인은 기꺼이 ‘밥상 차리는 시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 식재료를 사용하고, 되도록 가공하지 않고, 조미료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시인의 밥상에 모두가 열광했다. 그만큼 우린 기본으로부터 멀어진 상태였다. 밥상에 정성을 덜 들이고, 스스로를 먹이는 일에 덜 에너지를 쏟는, 지금은 분명 무언가가 잘못 됐다.

몇 해 전부터 나의 부모님께선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두 분 다 서울 분이신지라 모든 게 서툴렀다. 경험이 쌓이고 처음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고 계신다. 그래도 밭에서 난 쌈 채소가 저녁식탁을 가득 채워주고, 땀 흘려 일한 경험이 서로에게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하는 것을 보며 나는 느낀다. 삶의 혁명이라 하는 게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오래 전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온 방식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 사이의 대화는 늘어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진다. 비로소 강제 아닌 강제가 되어버린 야근에 대한 나의 혐오(!)에 가까웠던 감정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싫었던 건 기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30년가량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나’라는 정체성을 나는 지키고 싶었던 거다.

남해는 두 번 가보았다. 짭조름한 바다 향에 취하기가 무섭게 눈앞에 펼쳐진 다랭이 논에 반했고 나지막한 구릉의 등장에 놀랐다. 그 곳에는 없는 게 없었다. 심지어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삶의 터전을 이전할 수 있다면 이런 곳이 제격이라는 생각조차 했었다. 그 곳에는 바다를 대접하는 사람이 있단다. 저자의 기본에 충실한 밥상도 남해 바다로부터 탄생한 것이겠지? 지도를 펴놓고 아직은 익숙지 않은 지명, ‘미조’를 찾는다. 밥상도 시를 짓는 남해 미조, 특별한 곳임이 분명하다.

q*****2 2014.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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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조리에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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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조리에 가는 이유>   지금, 누군가   사람 때문에 절망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잊어버리는 일이 죽는 일보다 어려우시면   굳이 잊으려 말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일이 죽는 일보다 힘드시면   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 꼭 남해 미조리에 한 번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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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조리에 가는 이유>

 

지금,

누군가

 

사람 때문에

절망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잊어버리는 일이

죽는 일보다 어려우시면

 

굳이 잊으려 말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일이

죽는 일보다 힘드시면

 

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 꼭

남해 미조리에 한 번 가보시라

 

거기 누구 한 사람

만나게 되면

 

그리곤 죽든지 말든지

나는 모를 일이다


연말이 되니 자연스레 올 한해를 돌아보게 된다. 학교에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나를 움직이는 게 굵직한 사건들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였기에 한 해를 돌아본다는 것은 그동안 나와 관계했던 사람들을 돌아본다는 뜻도 된다. 이 시도 역시나 사람 때문에 겪은 절망감에서 출발하고 있다. 학창시절을 되돌아봐도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따뜻하게만 대해준 선생님보다는 이래저래 쥐어박히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던 선생님이 더 기억에 오래 남듯 한 해 동안에도 좋은 기억보다는 아팠던 기억이 오래 남는가보다.

 

그 사람 때문에 절망하면 그 사람을 잊으면 되는데 그 절망이 죽음보다 힘들어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럼 굳이 잊지 말고 그냥 그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근데 그게 안되니까 근데 죽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힘들다. 그러니까 힘든 순서가 '절망 > 잊음 > 사랑 > 죽음'이다. 절망도 옅어지지 않고 잊혀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랑할 수도 없으니 남는 것은 결국 죽음 뿐이다.

 

하지만 화자는 죽기 전에 남해 미조에 한 번 가보라 한다. 접싯물에 코박듯이 눈 앞에 있는 아픈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지 말고 잠시 눈을 돌려 저 멀리 땅끝 미조로 가보라 한다. 그 곳에는 누구 한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나의 절망, 잊음, 사랑과 관계 없는 그 한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내가 설정한 것이 아닌 새로운 거리를 두고 새로 등장한 그 사람으로 인해 나의 절망은 잊혀지고 사랑이 싹이 트고 죽음은 바다에 빠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화자는 '나는 모를 일이다'고 했으니 화자도 분명 거기서 비슷한 체험을 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확신에 차서 짐짓 의뭉을 떠는 것만도 같다.

 

결국 사람으로 인한 아픔은 '모두 내 맘같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그렇기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행동해주길 바라는 데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땅끝, 생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새로 만나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지금 묶여 있는 문제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절망은 어느새 먼동에 옅어지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무는 세밑, 깨끗이 비워내고 새로운 하얀 달력을 펼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남해 미조가 아니라도 좋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차가운 바람 속에 바다 냄새가 섞여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겠다.

s*************k 2014.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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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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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풀잎을 헤치고 뿌리째 캔 고들빼기의 쓴 물을 우려내서 김치를 담그면, 쓴듯하면서도 다디단, 단듯하면서도 쓰디쓴 맛이 가히 오묘하다. 삶도 시도 얼마나 더 살고 더 써야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봄이 오면 시를 읽어야 한다. 생명의 기운을 품고 봄의 생기를 터뜨리듯이 시 속에 담긴 삶의 의미들을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그 삶의 의미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시가 있는 밥상," 내용보기

마른 풀잎을 헤치고 뿌리째 캔 고들빼기의 쓴 물을 우려내서 김치를 담그면,

쓴듯하면서도 다디단, 단듯하면서도 쓰디쓴 맛이 가히 오묘하다.

삶도 시도 얼마나 더 살고 더 써야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봄이 오면 시를 읽어야 한다. 생명의 기운을 품고 봄의 생기를 터뜨리듯이 시 속에 담긴 삶의 의미들을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그 삶의 의미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 되었든. 그 힘으로 삶이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라 믿는다. 요즘 집어 든 책은 그냥 시집이 아니라 시가 있는 밥상이다. 처음엔 뭐지? 했다가 왠지 시와 밥상이 찰떡궁합처럼 잘 어울렸다. 밥이 영양이 되어 우리 몸과 마음을 지탱해 주듯 마음에 새긴 시 한 편은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마음을 품게 해줄 테니까.

 

사실 <시가 있는 밥상>이라 왠지 새로워서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삼시 세 끼'라는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한 끼의 소중함,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이 책에 나오는 밥상이야말로 소박하지만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알찬 밥상이다. 화려하게 차릴 필요도 없고, 비싼 음식으로 채워야 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소박한 밥상. 소박한 밥상만큼이나 소박한 작가의 시가 이 책에 있다.

...................................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도

참 푸근하게 덮어와

세상의 위안이 되는

저 눈송이처럼

 

사람들의 가슴속에

알 듯 모를 듯 잠시 내려앉았다가

소리 없이 녹아지는

그런 생애이면 싶어요

_사십대에 내리는 눈 中에서

 

언젠가 작가가 쓴 시와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 그리고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소박하게 담겨 있어서 부담도 없고 천천히 읽으며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매끼 밥상을 준비하며 고민할 때가 많다. 오늘은 뭘 먹지, 멀 먹으면 좋을까. 적지 않은 시간을 그런 생각들로 흘려보내다가 결국엔 에잇 그냥 있는 걸로 차리자,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렇게 차려지는 밥상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좀 더 멋지고 잘 하려고 해보지만 생각처럼 일이 되지 않을 때도 많고,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그대로를 보여줄 때 일이 더 잘 풀리기도 하는 것처럼.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 소박하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밥상을 닮은 소박한 시들이 그냥 좋다. 화려하게 뽐내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왠지 진국 같다.

 

 

YES마니아 : 로얄 i*****j 2015.03.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