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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어느 여름날 아침 꽃받침, 꽃잎, 가시- 흠뻑 적신 이슬- 벌 한두 마리- 산들 바람- 살랑대는 나무- 나는 한 송이 장미다! 원래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는 제목이 없었다. 이름 없는 꽃이나 풀처럼 그야 말로 '무명'의 시이다. 그러나 그 소박한 아름다움에 산책을 하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작은 꽃처럼,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빛이 난다.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제 막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 같은 때 위의 시를 읽는다면, 이 시를 썼던 시인에게 완벽하게 동화된다. 이 시는 19번이라는 넘버링이 붙어 있다. 제목이 없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매겨진 숫자는 디킨슨 시 선집을 펴낸 존슨이 시 창작 연도에 따라 넘버링한 소위 '존슨 넘버'이다. 다시 말하자면, 존슨이 디킨슨의 시 선집을 출간한 1950년대에야 비로소 에밀리 디킨슨은 시인으로서 이름을 부여받고, 제대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 그녀는 철저히 무명 시인이었다. 때로는 이런 사실들이 묘하게 위로와 힘이 된다.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재앙을 경험한 개인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텐데, 소위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타인들과 '커넥트'되지 못할 때 느끼는 불안감이 있다. 사회적 연결망이 모두 사라지고, 사회도 국가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실체 있는 두려움이 커질 때, 혹은 나처럼 건강이 좋지 않아 타인과 만나는 것 자체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 인간은 고독을 느끼거나 불안이나 두려움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보다 200여년 앞서 자발적인 은둔을 택했던 여성이 있다. 그는 스스로 사회와 단절을 선택했지만, 끊임없이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연을 통해 느끼는 경이와 기쁨 시로 남겼다. 고독과 친밀했고, 스스로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의 시들은 소박하고 간결하지만, 아름답고 깊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영희 선생도 에밀리 디킨스을 좋아해서 몇몇 시를 자주 인용하긴 했는데, 1950년에야 비로소 재조명되기 시작한 에밀리 디킨슨이 1970년대에 다시 재평가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시인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이 우주만큼 깊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일상과 그 루틴이 가진 힘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통해 날마다 기쁨을 경험하는 삶이야말로, 지금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만한 삶, 그래서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오롯이 자신으로 설 수 있고, 살 수 있는 힘.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을 통해 그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 배움을 통해 시시때때로 내게 엄습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구한다. 비록 내가 무명의 존재로 사라진다고 해도,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은, 이미 나는 자존하며 충족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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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집이 하나도 없어서 이번에 구매했는데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번역도 매끄럽게 읽히고 감정적으로도 잘 읽혀서 정말 좋았음. 조애리 번역가 앞으로 기억하고 찾아서 봐야겠다.
아직 다 읽지는 못해서 다 읽고 더 추가 |
|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짧은 형식 안에 삶과 죽음, 사랑과 고독을 응축해 담아낸다. 단정한 언어 뒤에 숨은 날 선 통찰이 읽을수록 깊게 스며들며, 사소한 감정조차 우주처럼 확장된다. 반복해 읽을수록 문장 사이의 침묵마저 의미로 다가오는 선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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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싶은 시집이라서 구매했어요 여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에일리 디킨슨 어떤 시를 쓰는 작가일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좋아서 아껴 읽고 있어요 양장이 우선 예뻐서 한정판 말고 요 아이로 구매했어요 원서로도 읽고 싶어지는 시 모음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