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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하고 너무 익숙한 그 말을 떠올려본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약간은 코믹하게 광고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실제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아포리즘처럼 고정된 문장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을 했건 안 했건 알 수 있는 말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것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집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반발심으로 하는 가출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경우는, 아마도 그 고생의 대상이 아이들이 될 때가 아닐까 한다.
『쓰레기 왕』 속에서 배경이 되는 그곳,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길 위에 내몰린 아이들은 그 누구도 본인의 의지로 거리로 나온 게 아니다. 가난으로 인해, 부모의 부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살 곳이 없어 떠돌게 되는 아이들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누나와 단둘이 남게 된 마모. 어느 날 마모는 자신을 삼촌이라 속인 남자를 따라가 시골의 농장에 팔려가게 되고 어렵게 탈출한다. 다시 돌아온 아디스아바바에서 마모를 기다리는 것은 멀리 떠난 누나의 빈자리와 어디로든 돌아갈 곳 없는 자신의 신세뿐이었다. 한편, 부유한 집의 아들인 다니는 적응하지 못하는 학교생활과 교유관계, 만족할 수 없는 성적과 강압적인 아버지의 태도에 견딜 수 없어서 가출한다. 약간의 용돈과 몇 벌의 티셔츠를 챙긴 다니니 역시 거리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렇게 마모와 다니는 거리에서 만나게 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낸 후, 거리의 아이들인 밀리언의 갱단에 합류하게 된다. 도둑질과 싸움은 안 된다는 엄격한 규정을 바탕으로 밀리언 갱단의 아이들은 규칙을 지키며 함께 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모든 것은 함께 나눈다는 원칙을 지키고, 함께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아주 쓸모 있는 것을 몽땅 주워온 마모에게 ‘쓰레기 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해가 지면 더욱 추위가 찾아오는 길 위, 몸 뉘일 곳 없어서 맨바닥에 얇고 낡은 담요 한 장으로 버티는 시간, 음식점에서 버린 쓰레기로 연명하는 생활... 서로가 거리로 나온 이유는 달랐지만, 마모나 다니의 길 위의 생활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읽으면서 자꾸 궁금해진다. 이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의 미래, 혹은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거리의 이 아이들이 보호받을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이 상황의 원인을 찾을 수가 있을까. 춥고 배고픈 이 생활이 어떻게 마감될 수 있을지 암담하다. 하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이 아이들의 현재를 보면서 답답해하기보다는 긍정적인 것을 보면서 위안을 받고 싶어진다.
가난으로 인해 거리로 나갔던 마모와 하나의 인격체로, 사랑받는 아이로 인정받고 싶었던 다니, 그리고 밀리언 갱단의 아이들은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배우고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하고 착한 면을 보는 시선이 남아 있었다. 부잣집 도련님이 왜 자신들과 어울려서 먹을 것만 축내고 있는지 화가 났던 순간에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다니의 능력을 존중했다. 다니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다 팔아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먹을 것을 구해오는 마모의 재주를 기뻐했다. 허름하더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집이라는 공간이 아닌, 길 위에서 생활해야만 하는 자신들의 현재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아는 아이들이었다. 미래가 없고,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반짝이는 눈빛을 만들어준 것은 다니의 이야기였다. 다니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상상의 날개는 잠깐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이야기를 만다는 게 재주가 되고 돈이 된다는 것 또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들 가야 할 길이 다를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간직하고 싶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다니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남아돌던 살들이 다니 곁을 떠났고,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조심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민첩해졌다. 다니도 다른 아이들처럼 여위고 푸석푸석하고 꾀죄죄하게 변하고 있었다. 거만한 태도도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음식이 오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아이들을 배려했다. 달라진 건 마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 안에 있는 뭔가가 더 단단해지고 더 예리해지고 있었다. 길 위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살아남는 법을 더 많이 터득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는 어느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할 거야. 마모는 끊임없이 다짐했다. (206~207페이지)
저자는 아디스아바바의 길 위의 아이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경험으로 이 아이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두게 된 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내전과 기근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냈을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실상을 그대로 담아놓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의 경험으로 더욱 사실적으로 들려오기도 하면서, 저자가 만난 아이들이 직접 들려준 자신들의 이야기와 자신들이 사는 곳을 보여주면서 더욱 생생해진다. 그리고 저자는 다른 이의 당부를 통해 같이 말하고 있다. 가출을 동경하는 아이들에게 길 위 생활의 현실이 전혀 쉽지 않음을, 절대 재밌지도 않고 즐거울 수도 없음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용기가 필요함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이미 길 위 아이들의 현실을 봤기에 말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러한 염려와 함께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희망일 것이다. 이 책의 결말에서 다니와 마모를 통해 보이는 부분이다. 달라진 마음과 자세, 거리에서 구걸하면서 이어갔던 생활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는 것. 문맹에 가까운 마모가 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움츠러들고 겁부터 먹었던 다니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아이로 거듭난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생활이었지만, 그 시간이 절대 만만치 않았지만, 그 험난한 시간이 가져다준 것은 또 다른 배움과 경험이었을 거로 생각한다. 그 시간을 바탕으로 달라진 아이들에게는 몰랐던 세상의 한 단면을 배운 시간으로, 지금도 여전히 길 위를 헤매고 있을 아이들에게는 길 위의 세상 말고 또 다른 길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그 희망이, 크든 작든, 이 아이들에게 보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빈민촌아이들 길 위를 떠돌아 다니며 삶의 희망을 기대하며 위태롭게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만나볼 수 있어요. 엄마가 죽고 마모와 누나 티기스트만 남게 되고 어느날 누나가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사이 외삼촌이란 수상한 사람에게 속아 외딴 시골농가에 팔리게 된 마모는 소를 돌보면서 잘 먹지도 못하고 감시속에서 노예처럼 살다가 필사적으로 도망쳐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왔지만 파리다 사모님 밑에서 일하는 누나는 만날 수가 없었어요. 홀로 남겨진 마모는 길위를 떠돌다 우연히 묘지에서 집을 가출한 부잣집 아이 다니를 만나게 되고 거지 아이들의 집단인 갱에 들어가 그곳의 규칙에 따라 구걸을 하며 살아가게 되지만 다니는 그런 환경에 힘들어 하게 되면서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요. 마모와 갱단 친구들은 마모를 유괴했던 사람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해주기도 하네요. 서로 살아왔던 환경은 다르지만 길위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마모와 다니는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 가면서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지만 앞으로의 삶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생활 모습에 놀라기도 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도 배움을 갈망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생각이 나면서 쓰레기 왕 마모를 통해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빈곤과 아동인권문제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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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은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니다. 한참 고민을 했다.... 두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 먼저 이야기 하자면 정말이지 두 아이 대책없은 아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책을 읽으면서 "어 이게 아닌데" 이말을 몇번인나 했는지...
두번째 단순히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의 내용이 맑아서 좋았다. 물론 나쁜 사람도 등장하고 따돌림도 등장하고 괴롭힘도 있지만 그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은 아니다. 두 주인공과 더불어 갱에 속해있는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도둑질과 싸움은 하지 않는다 다. 이점은 나쁜 어른들보다는 훨씬 낳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갱들의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앞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슬픈 책이 아니고 맑은 책이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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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왕'이라니, 제목부터 쇼킹하다. 표지에는 깡마른 소년이 옷을 허술하게 입고, 등에는 빈병과 공책을 담은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서 있다. 웃는 표정을 그린 종이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어떤 얼굴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걸작선 35번째 책인데, 청소년과 '쓰레기왕'이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한 마음에 읽게 된 책이 바로 <쓰레기왕> (2014, 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미래인 펴냄)이다.
저자는 1943년생으로, 올해 70대의 할머니 작가님이다. 책 표지의 저자 소개를 보면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고, 후에 말레이시아, 에티오피아, 인도에 이어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제3세계 어린이들의 힘겨운 삶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썼고, 60살이던 2003년에 <쓰레기왕>을 쓰셨다. 이 책은 카네기 메달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에 들어가 보자. 책을 열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길 위의 아이들을 위해'라는 글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런 다음 아프리카 지도와 함께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에티오피아의 지도가 실려 있다. 마모와 다니가 살던 아디스아바바, 마모의 누나 티기스트가 사모님을 따라가 머물렀던 아와사, 다니가 집에서 쫓겨나 가게 될 뻔했던 지지가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부모님을 잃고 누나 티기스트와 둘이 남은 열세 살 정도의 마모는 낯선 남자에게 유인되어 시골 마을로 팔려간다. 한편 부잣집 도련님인 다니는 병약한 엄마의 그늘에서 안일하게 머물면서 공상만 하는 소심한 소년이다. 이처럼 극과 극인 마모와 다니가 저마다의 이유로 아디스아바바의 길 위에서 지내는 '길 위의 아이'가 되어 함께 지내는 것이 줄거리다. 너무나도 다른 이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반감과 몰이해로 함께 지내기 시작하지만, 마침내 서로를 인정하고 챙기는 사이가 된다. 구걸해서 끼니를 해결하고, 쓰레기를 뒤져서 쓸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한뎃잠을 자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 누구도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이 생활의 막막함이 아프기만 하다. 남자아이들이라서 <어둠의 아이들>(2010, 양석일 지음, 문학동네 펴냄)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다행일까. 저자는 따뜻한 할머니의 마음으로 이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엔딩을 선물했는지도 모르겠다. 길 위의 아이들이 길을 떠나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가족이 없다면 나라가 품어줄 수 있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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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TV의 영향 덕분인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아이들' 이라는 단어로 떠올리 는 것은 언제나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이라던가, 나라가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보 호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식의 일종의'보호대상'이라는 인식이 재배적이다. 때문에 나는 처 음 이 소설을 받아 들었을때 "어째 읽어보지 않아도 내용이 상상이 된다"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 실제로 그 내용을 읽어보니, 나의 그러한 생각이 '조금 맞아 들어가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게 는 아니였다'라는 미묘한 감상? 이 나의 뇌리를 지배하게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였다.
책속에서 벌어지는 주인공 이야기는 오늘날의 에티오티아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버려진 아이들' 의 일반적인 생활상이다. 부모도 없고, 국가도 외면한 그러한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서 일자리를 찾고, 갱단을 조직하고, 구걸을 하고, 심지어 절도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 기본 교육인 학교의 교육도, 복지의 첫걸음인 병원을 이용하는 것도 모두 그들에게 있어선 감히 넘지 못할 험난한 벽이다. '오로지 돈때문에 발생하는 차별'...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동떨어진 거지이자, 난민으로 불리워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에서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
쓰레기 왕이 말하는것, 특히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명확 하다. 그것은 바로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티아에 살아가는 어린이의 인귄이 어디까지 추락 하였는가? 하는 문제점을 사람들이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소설의 주인 공인 마모와 다니를 통해서, 현재 살아가는 어린이 난민들이 얼마나 여려운 삶을 사는지를 표현 한다. 노예로 팔려 배고픔과 폭력 등으로 지옥과 같은 경험을 한 마모와, 부잣집 도련님이지 만, 아버지의 엄격함에 질려 가출한 다니. 그들은 분명 하늘과 땅에 버금가는 극명한 생활을 누 린 아이들이지만, 아디스바바에서 서로만나 밀리언의 갱단에 들어가면서, 그속에서 살아가는 거 지들의 생활상에 점차 동화되어 간다.
그들이 말하는 갱단은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범죄의 온상지'가 아니다. 그들은(갱단) 서로에 게 차별이 없고, 개인재산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벌어들인 수입으로 공평하게 먹고, 서 로가 서로를 보살피지만, 그들 스스로가 만든 법을 어기면 그들의 공동체에서 추방하거나, 심한 처벌을 받는다. 큰 공동체 속에서 기생하는 작은 공동체, 그것이 주인공들이 접한 갱단의 모습이다.
주인공들은 그 갱단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간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무시당하지만 끼리끼리 뭉치는 결속력을 자랑하는 그들의 생활상은 그야말로 영국의 셔우드 숲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자 들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리디 어린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굶어죽고, 질병으로 죽어가 는 현실은 분명히 (오늘날의 시각으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일 것이다. 자유보다는 보호를... 어 린이가 어린이답게 보호받을 권리를 누리는것, 그야말로 지금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이 누려야 할 것은 그러한 보호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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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청소년 소설 <쓰레기왕>을 미래인 출판사에서 선물 받고 서평을 쓰겠다고 해 놓고 이제서야 포스팅을 하게 되어 죄송스럽다라는 말씀부터 전하며 리뷰를 전하고자 한다.
일단 내가 미래인 출판사 블로그에 올렸던 1월 21일자 댓글부터 이야기하자면,
학부 전공을 사회복지로, 2012년까지 사회복지사이자 기업사회공헌 담당자로 근무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회생활 일년차 때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 있는 사회복지센터 행정업무를 맡으며 늘 고민했던 게 바로 아프리카 대륙의 '아동인권'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스와힐리어도 배우면서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가슴아픈 현실은 다큐나 뉴스 보다는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같은 스토리텔링 자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좋은 서적이 나오다니 독자 입장에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제 댓글이 재밌지 않지만, 진지하게 그러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리뷰를 꼭! 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제 사명으로요.
잠시 과거를 이야기하자면, 사회생활 일년차 때 나는 아프리카에 파견을 가기 위해 약 육개월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연세대 교환환생에게서 스와힐리어 스터디도 하며 현지어를 익히기도 했었다. 정작 케냐로 비행기표도 다 끊어둔 상황에 돌연 마음을 바꾸긴 했지만..........
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가고자 하고 꿈꾸었던 일이었으나 너무나 두려웠고, 아프리카에서 혼자 그 모든 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건, 갖지 못해 이루지 못한 꿈은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다라는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노년엔 사랑하는 사람과 해외에서 봉사하며 사는 게 나의 꿈이니깐.
어른이 되어도 틈틈히 읽고 있는 청소년 소설은 성인 소설과 다른 매력을 더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 창비청소년문학상과 자음과모음 수상작들은 꼼꼼히 챙겨 보는 편인데,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바로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모호한 그들의 꿈과 자아가 초점이 주어져 지금 내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인 사랑, 성공과 다른 인간 본연의 성장에 초점을 두어 어릴 적 내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위저드 베이커리와 시간을 파는 상점은 꼭 추천 드리고 싶네요.)
이번에 읽은 <쓰레기왕>은 청소년 소설 중 하나인데, 이번 소설은 기존 청소년 소설들과는 다르게 특별하다. 바로 무대가 한국이 아닌 에디오피아, 그리고 작가는 엘리자베스 레어드라는 영국인이다.
자신이 태어난 국가가 아닌 곳을 무대로 써 내려간 청소년의 이야기이라................?
저자는 젊은 시절에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소외된 세계 어린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으로 돌아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녀가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는 <제 3세계 아동들의 현실> 이미 영국에서는 그녀의 청소년 소설들은 카네기 메달 후보로 선정되고 각종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언론에서 찬사를 받으며 그녀의 작품에 주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그녀가 써 내려간 <쓰레기왕>은 길 위에서 사는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두 소년의 가슴 아픈 집 찾기 여행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예술원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카네기 메달 후보작이기도 했다고 한다.
자, 이제부터 내가 읽은 <쓰레기왕>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고자 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에디오피아는 그저 나에게 있어 아프리카에 있는 척박한 제 3세계에 불가한 국가였다. 그리고 이 나라를 접하는 왠만한 잡지와 언론의 내용들은 가난과 정치적 혼란으로 둘러싼 비극적인 에디오피아의 모습을 담은 정도였고.
그러나 <쓰레기왕>은 이런 에디오피아의 모습을 떠나 두 소년 마모와 다니가 집을 떠나 살아가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었고, 이 책을 읽으며 에디오피아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이든, 에디오피아든 그냥 모두 사람 사는 곳이라고.
어릴 때 그런 적 다들 한 번도 있지 않은지? 부모님의 업악이 싫어 훌쩍 떠나고 싶고,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 말이다. 나 같은 경우 몇 번 그렇게 가출을 시도한 적이 있어 늘 아빠가 나를 찾으러 출동 아닌 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딱히 갈 곳이 없어 나는 숲 속을 방황하거나, 바위 틈에 숨어 있곤 했다. (믿진 못하겠지만 나는 꽤 깊은 시골에 살아서 이게 가능했다)
소설 속 두 친구도 그렇다. 에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마모. 그리고 부잣집 아들 다니. 이 둘은 경제적, 환경적 상황은 다르지만, 마음 속 공허함은 비슷하다.
마모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외삼촌이라며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에게 속아 먼 시골 농가에 팔려가 누나와 헤어지는 상황에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 다니는 엄격한 군인 출신 아빠의 기대만큼 공부도 운동도 하지 못해 늘 움츠려 아빠의 눈치를 보며 도망갈 궁리만 한다.
운좋게 시골에서 도망쳐 다시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온 마모, 그리고 엄마가 심장병 수술을 받으러 영국으로 떠나던 날, 아빠가 그를 엄격한 부하 직원의 집으로 보내려 하여 가출을 시도했고 그 둘은 숨을 곳을 찾아 헤매다 공동묘지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 남은 건 이제 몸 하나뿐. 기댈 곳 하나 없는 그 둘은 마모가 알던 친구의 갱단에 들어가 의식주를 해결하려 하지만, 부잣집 아들로 자라난 다니에겐 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길거리에서 거지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낯선 현실이었다. 마모 역시 누나를 찾지 못하고 다니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버겁기만 하고...............
미워하고 싶으나 미워할 수 없는, 도망가고 싶으나 도망갈 수 없는 현실과 그 둘의 관계. 마모는 다니를 부러워하고, 다니는 마모를 부러워하며, 그 둘은 서로의 이해 격차를 좁히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어려운 현실을 잘 헤쳐 나가며 길거리에서의 방황을 마치게 된다. 이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대한민국도 이런 청소년들의 가출 그리고 갑팍한 현실과 탈출, 그리고 마모와 다니 같은 친구들이 아직도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을 것이라고. 가장 좋은 해결책은 기다림과 대화다. 좋은 부모는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란 걸. <쓰레기왕>은 무대는 에디오피아이지만, 결국 우리네 청소년들의 문제를 소설로 잘 풀어낸 듯한, 그리고 에디오피아의 청소년들의 문제도 가슴 아프지 않게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이번 <쓰레기왕>은 미래인 출판사 청소년 걸작 35번째 작품이란다. 현재 미래인 출판사에서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은 세계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책 선물해 주신 미래인 출판사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많은 이들이 <쓰레기왕> 나아가 청소년 소설을 읽으며 생각의 폭을 넓혔으면 한다.
참고로 2013년이 한국-에디오피아가 외교를 수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과거 6.25전쟁에도 참전하여 대한민국에 도움을 주었던 국가. 이젠 대한민국이 에디오피아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 깊은 인연을 이어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 리뷰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 짓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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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년부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한답시고 에티오피아산 공정무역 원두커피를 구매해서 마시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에티오피아였다. 지금 분쟁중에 있는 수단과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많이 불안정한 나라.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가 많이 사는 나라. 나는 그 나라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 나라 한가운데에 아디스 아바바라는 지역에는 마모 라는 소년이 살고 있다. 엄마가 죽은지 일주일이 지나던 어느날 왠 낯선 남자가 방문하여 , 자신은 마모의 엄마 즉 마모의 외삼촌이라면서 좋은곳에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마모를 데려간다. 그렇게 인신매매를 당한채 농가에 팔려 노동착취를 당하던 마모는 결국 그곳을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해서 아빠에게 늘 구박을 당하다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엄마가 심장병 수술을 위해 영국으로 떠나던 그날 가출을 한 다니 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둘은 갱단에 들어갔고, 갱단의 룰을 따라 구걸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다버린 음식물로 허기를 채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이야기는 길위에 선 아이들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감내하며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 고생스러운 생활속에서 속깊은 아이로 내면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로 치면 1960년대 정도의 사회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이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바람막이가 엄마라고 하는데.. 그런 바람막이를 잃고 길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는 국가가 바람막이가 되주어야 한다. 그게 국가와 국민과 정치가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에티오피아가 그려내는 모습들이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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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과,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사람, 혹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하루하루 끼니를 떼우는 것도 힘들어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하야 한다. 가끔 TV채널을 돌리면 나오는 난민어린이들을 돕자는 방송이나, 모금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나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정작 시간이 지나면 이내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리고 만다.
<쓰레기왕>은 뜻하지 않게 '길 위의 아이들'로 전락해버린 두 소년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힘든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간는 이들이 있는데 정작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과 돕고 싶지만 막상 하려니 생각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것이었다.
흔히 이야기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집이 없어서 또는 돌봐줄 부모가 없어 노예로 팔리고 , 인신매매까지 당하는 아이들이 거리에 수두룩하다.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거친 물쌀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는 이들의 모습은 갈 곳을 잃은 이방인의 모습이다.
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미모"와 "다니"는 길거리에 나앉게 되면서 갖가지 일들의 경험하며 성장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으며 그 힘든 길을 걸어나가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또는 전 세계적으로 고쳐나가야만 하는 그런 문제를 이제는 방관하지마는 말고 우리가 주도해서, 우리 힘으로 이뤄내 아이들의 미래가 좀더 밝고 희망찬 미래로 가득차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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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왕? 에티오피아?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과거 TV에서 본 스토리가 생각이 났다. 많은 후진국 아이들이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생활하고 있다는 비참한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참고로 지금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진학예정인 두 아이를 둔 40대 초반의 아빠임.) 시골에서 자라나서 쓰레기장이 특별히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기보다는 집에서 빈병을 모으거나 길거리에서 빈병을 주워(개당 30원 또는 50원이었던 것 같다) 동네 구멍가게(지금도 구멍가게가 하나뿐인 동네임)에서 과자를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의 경우는 현재의 후진국 아이들처럼 생존의 문제가 아닌 용돈벌기 수준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아버지(할아버지 포함) 세대가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의 아픔을 알고 있지만, 요즘은 우리나라 소득수준이 급상승하여 예전과 같은 상황은 전혀 아니다. 아파트에서 재활용 쓰레기(빈병 포함)를 무료로 수거해 가고, 소주병에도 공병 가격이 써 있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이 너무나 귀하게 자라고 있어 배고픔이나 가난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보인다. 아이들이 성냥을 본 적이 없어 “성냥팔이 소녀”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여간 서두가 길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세대간에 이러한 인식차이가 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 세가지로 나의 리뷰를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이 작품은 어린이의 성장스토리다. 매우 가난하고 부모도 없는 쓰레기왕의 별명을 가진 주인공 마모와 (이와는 정반대로) 부모 모두 있고 부유한 집안의 다니가 “유괴”와 “가출”이라는 사건을 통해 “가족”과 헤어진다. 어린나이에 혼자 있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다. 그러나 거지아이들의 집단인 갱단에 들어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마모와 다니에게 변화가 생긴다. (지엽적일 수도 있지만) 마모는 ‘수리’라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따뜻한 누나가 생각이 나고,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영어노래를 부르면서 문화를 즐기고, 다니가 쓴 이야기를 팔러 다니면서 자신의 영업력에 흐믓해 한다. 그리고 다니는 공부도 운동도 못하는 낙오자(?)였고 갱단에 와서도 구걸을 못하는 존재감이 없는(아니 오히려 동료들한테 도움이 못돼는) 일원이었지만 자신만의 특기인 이야기를 만들고 이것을 마모가 팔아 돈을 벌기도 하며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준다. 버팔로와의 싸움에서 이기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마모와 다니 모두 가족과 헤어져서 거리 생활을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가족의 품으로 들어간다. 다행이다. 해피엔딩. 아니라면 아이들이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인생이란 비참한 것이야’라고 비관론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었지만, 행복한 결말로 ‘역시 가족은 소중한 것이야’라고 깨달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작품은 (나쁜) 어른에 대한 복수극이다. 마모가 나쁜 아저씨의 유괴 때문에 유일한 혈육인 누나와 헤어지고 시골에서 노예처럼 살았다. 그리고 다니 또한 평상시 아빠에게 자주 혼나고 두려움을 갖게 되면서 급기야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모를 유괴한 나쁜 아저씨와 아들을 잘 키우지 못하고 진심어린 애정을 주지 못한 아빠에 대해 아이들은 통쾌한 복수를 한다. 마모는 자신을 유괴했던 아저씨를 우연히 찾게 되어 같은 갱단의 아이들과 함께 차 타이어를 펑크내고 차에다가 악행을 적어 도망치게 만든다. 그리고 다니는 자신을 아껴주신 선생님 메스핀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엄마가 아직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가족에게 돌아가지만 아빠의 말에 당당하게 “NO”라고 대답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약자”를 이해할 수 있는 소통거리다. 에피오피아처럼 후진국 아이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며 기아, 질병에 방치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 돈걱정없이 잘 먹고 잘 쓰지만,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더미를 뒤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어려운 아이들을 늘 잊지말고 겸손해지기를 바라며 어른이나 아이할 것 없이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도 강자인 “어른”으로서 약자인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른의 말과 행동에 따라 아이들이 달라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보다는 아빠가 강압적이고 애정어린 관심이 적어 아이와 대화가 단절되기도 하고 아이가 아빠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아이들의 심리를 잘 표현하였고 필자가 마모나 다니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기보다는 마모나 다니의 ‘아빠’라는 입장에서 읽으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도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나 자신도 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아빠)이 좋은 어른(아빠)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따라서 위 세가지 이유로 이 책은 참 재미있고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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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를 넘기기전 책 소개글을 읽으며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매 끼니 걱정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미래가 없는 정처없는 하루 연명 삶을 살꺼라 그 아이들을 동정하는 맘으로 이 책을 손에 쥐게된 내 솔직한 동기이다. 단지 아프리카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유로 난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자연하게 누리며 살아왔던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땐 감사함이 느꼈다. 단순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게 내가 선택함이 아니라서 감사함이 더욱 컸다.
인신매매로 힘든 곤역을 당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살기바라며 탈출하는 마모는 얼마나 용감하고 대담한가. 사실 요즘 아이들은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으매도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사소한 작은일에도 죽을것처럼 칭얼대기 일쑤이다.내일은 없을것처럼.. 쓰레기왕이라 호칭을 갖게되는 마모와 밀리언 패거리들은 그들만의 규칙을 세워 서로를 보호하며 길거리 생활을 한다. 이들은 비로 구걸을 하고 쓰레기더미를 뒤집고 길거리에서 생활하지만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고 어른이 지켜주지 못하는 안락한 삶에서 그늘 나름대로 성장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그들의 눈으로 통해 익히고 있다. 부강하지 못하는 나라가 잦은 내전으로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는 어른들에겐 미래 나라를 이끌고 지켜나갈 아이들은 이미 유령의 존재인듯하다. 이또한 비극이 아닐수 없다. 그속에서도 절대 친해질수 없는 환경을 가진 마모와 다니의 우정도 참 예쁘다. 비록 힘든 상황에서 서로의 존재를 의지하며 부자니깐, 가난하고 거지니깐 그런 편견없이 어려운 여건을 단념하지 않고 이겨 나가련는 두 주인공의 스토리가 부끄럽지않으나 내 마음속 한구석에서 겸손이라는걸 끄집어내는것 같다.
부유한 집의 아들이지만 잘하지 못하는 학업과 아버지의 높은 기대치에 항상 주눅이 들어있는 다니는 가출을 한다. 마치 우리의 별다를게 없는 청소년 모습니다. 밀리언 패거리와 같이 생활하며 길거리 생활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배를 곯아가며 추운 길거리 생활을 하는게 다니에겐 더 낳은 삶이라한다. 우리의 가출 청소년아이들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라 하지말고 그 아이들을 품어주고 가슴속의 문제점을 먼저 해결해봐야할 것이다. 다니의 아빠를 보면 일상적인 아빠일것이다. 아들에게 거는 기대치는 우리들의 아빠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가 없어보인다. 부모와자식의 곯아가는 문제를 해결못한다면 우린 다니같은 아이를 많이 보게 될것이다. 물론 다니는 결국 아빠와 타협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도 어디선가 헤메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싶다.. 돌아가서 왜 방황을 하는지 왜 대화가 어려운지 당당하게 말해보길 권한다.
며칠전 티비속 아프리카 아이들이 나오며 후원금을 모금하는 광고를 내 아이랑 봤다. 거기에 나오는 삐쩍 마르고 힘없는 눈동자를 가진아이가 클로즈업되자 내 아이가 말했다. " 엄마, 아가 이쁘다 " 38개월 아이의 눈에 보이는 그 아프리카 아이는 그냥 예쁜 아인것이다. 그래~ 그렇지.. 예쁘다~ 그런아이가 왜 무엇때문에 그 고통에 있어야하는지를 생각하며 겸손하고 하루하루 감사함이 절로 나온다.
스코틀랜드예술원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인 쓰레기 왕! 주면에 학업과 가정사에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손에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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