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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의 만화책이란 책 제목에서 어린 시절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다름 아닌 보물섬이란 이름의, 두툼한 만화잡지를 서랍 속에 숨겨넣고 공부 하는 척 책상에 앉아 서랍을 빼고 만화를 보다가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책상 옆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연탄을 갈려고 밖에 나왔다가 아들놈 공부 잘 하고 있나 창문 너머 쳐다보셨던 엄마랑 내 눈이 딱~ 마주쳤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서랍 속에 장난감 로봇도 넣어놓고 부루마불 게임도 넣어놓고 종종 그렇게 공부하는 척 딴짓을 하곤 했었는데 딱 걸렸던 것은 하필 만화책인 보물섬을 볼 때였었으니 서랍 속의 만화책이란 제목부터가 내게 있어서 무척이나 공감이 간다고나 할까.
공감가는 부분, 아니 공감을 넘어서 뜨끔한 부분도 꽤 있다.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에게 다가가 고무줄을 끊어놓고 달아나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 또래 여학생들에게 짓궂게 굴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땐 내가 왜 그랬나 부끄러워 싶어지고 키가 작은 소년이 썰매놀이를 앞두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보여주겠노라고 다짐하는 장면에선 10살 무렵 반장 선거에 나가서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치곤 몰표를 받아 당선되었던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정작 나란 인간은, 매운 음식을 먹질 못해 크고 싱거운 아삭이 고추만 먹으면서 작은 고추가 맵니 어쩌니 그땐 그런 말도 호기롭게 잘 했으니 추억은 참 추억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 키 크면 싱겁다...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그 시절엔 지금처럼 키 작은 사람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문화가 없었다. 아마도 그 시절엔 다들 못 먹고 못 컸던 시대라서 그랬을까, 키 작은 군인이 오랫동안 대통령 자리에 있어서였을까... 키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던 것 같다.
지금이야 어린 학생들이 학교 수업과 영어 학원, 수학 학원, 태권도 학원, 바이올린 학원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바쁘지만 나 어릴 적만 해도 코흘리개 시절의 학원이라면 주산 학원과 피아노 학원 정도가 주류를 이뤘었다. 아침엔 두부요~ 두부~ 오전엔 칼 가~뤄~ 카~알~ 구성진 목소리가 골목길에 울러퍼지고 난 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오후 시간이 되면 만화영화 주제가 소리가 동네 어디선가 들리곤 했었다. 말 몇 마리 몰고 목마 아저씨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주머니 속 동전 몇 개면 놀이동산에서나 즐길 수 있는 목마가 움직인다. (이 책 속 목마는 어릴 적 내가 탔던 것보다는 구식이다만은 아무튼) 그때 그렇게 아이들 곁으로 찾아온 목마 아저씨는 이젠 보이지 않는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나갔을까...
요즘이야 인터넷과 스마트트폰으로 개봉영화 소식을 접하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의 그 시대엔 신문 하단 극장 이름을 내세운 영화 광고와 동네 광고판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로 개봉영화 소식을 접하곤 했었다. 빙수 한 그릇이란 소제목 하에 나온 벽 가득 붙은 영화 포스터는 그때의 추억을 더듬게 만든다. 책 속에는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 빨간 마후라 같은 영화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지만 나 어릴 적에 봤던 광고판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은 서울극장, 국도극장, 명보극장 등등 극장 이름을 내세운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람바다, 레이더스, 백 투더 퓨처, 사랑과 영혼, 마지막 황제, 취권, 황비홍, 태극권 이런 영화들이었다. 지금에야 팥빙수를 인테리어 잘 된 카페에서 먹고 망고빙수며 눈꽃빙수며 신제품도 많지만 그때 그 시절엔 시장통 안쪽 어딘가 얼음을 드르륵 드르륵 갈아서 만들어주던 팥빙수가 빙수의 정석이었더랬다. 사진 속 푸른색 수동식 빙수 기계는 딱 그때 그것이라 추억에 잠겨 사진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당시에는 학생들 상대로 고문에 가까운 체벌도 종종 시행되곤 했었는데 걸상을 들고 벌을 서있거나 책가방을 팔 위에 올리고 팔을 뻗고 있거나 등의 벌은 직접 몽둥이를 들고 때리는 수고스러움 없이도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곤 했었다. 개구쟁이 삼총사가 걸상을 들고 벌을 서고 있는데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아 단체기합으로 그런 가혹한 벌을 받으면 개인적으로 참 억울했고 그런 벌을 주는 선생이 밉곤 했었다. 교실 안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 모두에게 눈을 감게 만든 뒤 그런 식의 가혹한 벌을 서게 만들어 범인이 자백하도록 만드는 교사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돈을 훔쳐간 범인이 자백을 쉽게 하지도 않거니와 고통에 못이겨 차라리 (없어진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내가 훔쳤다고 말해버릴까, 그렇게 하면 이 끔찍한 고통을 멈출 수 있을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무지막지한 체벌의 고통에 대한 기억은, 단지 책 속 못난이 인형들이 걸상을 들고 벌을 서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에 울분을 느끼게 만든다.
책 속의 내용들이, 내가 겪었던 어린 시절보다 십 년 어쩌면 이십 년 정도는 앞서 일어난 일 같지만 의외로 내가 비슷하게나마 경험해봤던 일이 많아서 놀라웠다. 스마트폰 화면을 콕콕 누르며 자라고 있는 지금의 코흘리개 어린이들은 모를, 목마와 뽑기 과자, 고무줄 놀이의 추억들이 책을 보고 있는 내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진 것이 아닌 손으로 직접 만든 인형으로 재현된 옛 교실과 시골의 모습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로 진행되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보다 정겹게 느끼도록 해준달까. 주판알을 손가락으로 올리고 내리며 일원이요 이원이요 삼원이요 ... 를 목청껏 외치던 그 시절, 부르조아 가정의 상징 같게도 느껴졌던 부르뎅 아동복 한 벌이면 어깨가 으쓱 올라가고 설탕과 소다로 맛을 낸 달고나 과자를 조심스레 바늘로 콕콕 찔러 그림대로 잘라내면 주변 아이들로부터 환호를 받던 그때의 멋과 맛을, 요즘 어린 세대는 알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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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상으로 우리는 지난 20여년 간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뤄 왔습니다. 20년 전에 저의 부모님은 "아마 먼 미래에는 설날, 추석이 없어지겠거니"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요? 세시 풍속과 명절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많은 분들이 극심한 불편을 무릅쓰고 차표를 예매하고 짐짝처럼 대중교통 수단에 실려 가면서도, 두 손에는 선물보따리를 한아름 든 채 설레는 마음을 가눌 줄 모릅니다. 물질적 풍요는 우리의 마음에서 과거에 대한 애틋한 향수와 사랑을 잊게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짙은 그리움으로 간직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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