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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불면의 밤마다 부탄을 걸었던 거칠부 작가가 날 위로하고 재워주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의 시간에 쪼개어 읽었던 탓에 며칠 걸렸지만, 질퍽거리는 진흙탕을 이겨내며 두발로 힘겹게 오르내린 영혼의 길을 단숨에 따라내려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싶었다. 병을 이고 있는 육신 탓에 당분간 트레킹 같은 여행은 떠나기 어려운 신세가 되었지만, 부탄의 풍광과 영혼의 조각을 나눠 준 거칠부 작가 덕에 행복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게 다가온 작가님의 통찰 몇 토막을 함께 나누고 싶다. 1. 거칠부 작가님의 담백한 문장은 어느 삶의 자리에든 녹아들어 간다. 그녀는 분명 히말라야의 경험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뒤처진 이를 채근하던 일이며, 내가 뒤처져 헐떡이던 내 삶 속 어느 순간들을 되새김질하며 다시금 '함께'를 새기고 있었다. ?2. 그리고 난 작가가 얼마나 자신을 믿고, 또 함께 걷는 이들과 독자를 믿는지 생각했다. 독자의 몫까지 작가가 해주려는 것은 도리어 실례라는 생각을 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대하는 몸에 밴 친절 같은 것이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또 상대를 나약하게 하는지. 책을 읽으며, 여정을 따라가며,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조금은 까칠해 보였던 거칠부 작가의 모습이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3. 요즘 들어 어떤 모임에서건 '내가 너무 말이 많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 오싹한 소름이 돋는다. 어쩌다 이렇게 관심 종자가 되었는가. 하지만 그 견제는 주로 그렇게 피부 표층에서만 작동하고 말뿐이다. 그러다 거칠부 작가님께 죽비를 맞고 나니 잠이 다 달아날 지경이었다. 작가는 성격대로 '이게 솔루션이다'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놓지는 않았지만, 넌지시 보여준다. 절을 해보라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부탄 사람들처럼 세계 평화와 자연을 위해 기도해 보라고. 문득 하루를 기도로,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보라고. 4.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거칠부 작가님이 힘주어 했던 말,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경계 위를 걷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문학적으로 읊는 경계란 남녀, 인종, 계급, 보이지 않는 각종 차별과 편견의 구획들을 의미하겠지만, 그녀가 경험하는 경계란 사실 그 너머다. 때론 국경과 그에 수반되는 언어, 종교와 같은 뚜렷한 경계이기도 하고, 푸르름과 황량함, 호수와 사막, 극단적 추위와 더위, 나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 사이를 잇는 핏줄 같은 길이 연결하는 선을 따르려는 작가의 발걸음은 생명의 전위인 셈이다. 남극점을 아문센이 밟은 이후에 인간에게 미답지가 있었던가 싶었는데, 어리석었다. 그들이 한 것은 그저 '정복'이었다. 거칠부 작가가 하려는 삶의 연결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5. 물리지 않는 풍경 앞에서 나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진으로 보아도 이렇게 압도적일진대,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관광 온 이들이 만든 기후변화에 왜 죄 없는 주민들이 가장 먼저 쓸려가야 하는지 아파하는 작가의 마음이 같이 울렸다. 관광지에서 '세계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도. 여기까지 읽고 나면 도리가 없다. 팬이 되는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