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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혹 내가 속해 있는 교단에 속해 있는 극성맞은 신학신봉자들을 근본적이고, 세속적이고, 인본적이고, 우상화된 신학을 하는 집단이라고 부른다.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웨민신앙고백서와 오직 칼빈주의만이 옳다고 여기며, 그 삶에 예수는 커녕 칼빈조차 보이지 않는 신학제일주의의 근본주의자들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교단의 특징 중에 하나가 '정통'을 수호 한다고 하지만 모든 예전이 좋게 말하면 미국식 복음주의 예전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면 그냥 원하는 대로 순서를 짜맞춘 필요에 의한 예전에 맞춰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초대교회때부터 최대한 원형의 예전을 유지해온 전례교회들을 이단시 하는 경우도 잦고, 세계적으로 가장 성도의 수가 많은 교단인 성공회는 이단시/터부시하면서 그들의 숫자는 성도의 숫자로 포함해서 생각하는 이면성이 너무 이상한 면도 많이 존재한다.
특별히 전례에 의미나 순서를 지키는 이유에 대한 고민 없이 헌신예배니, 구역예배니, 먼 이상한 이름 다 갖다 붙이는 무늬만 개혁주의(칼빈주의) 교회들은 행사만 하면 성경봉독과 기도2-3차례 축도 강론 등등 모든 순서를 한 자리식 나눠 가지면서 서로의 면을 세우는 도구로 쓰기도 하고, 행사를 위해서 예배 순서를 축소하기도 하는 행태를 보면서 예배를 그저 소비하기만 하는 입만 산 개혁주의 속을 살아가는 자괴감은 말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일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전례, 삼위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모습과 그 순서에 담긴 의미들을 진진하게 고민하고 묵상하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는 신앙적으로도 또 예배를 드려야하는 입장에서도 매무 중요한 단계가 아닐까,
사실 일선 개혁주의인척 하는 목회자들 말고, 소위 보수 교단이라는 곳들에서도 발표되는 논문을 보면 정교회나 성공회 루터교 학자들의 예전에 대한 이해와 그 교단들이 지켜온 예전을 통해서 배우고 수용하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 이런 것들을 좀 더 현장에서도 읽고 이해하는 움직임이 늘어나야 더이상 교회를 위해서 소비되는 예배를 지양하고,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공동체로서의 본질을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의미에서 전례에 대한 의미는, 삼위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애썻던 성도의 역사이자, 그 역사 위에서 성도를 보호하시며 예배드리고 예배 가운데 은혜를 내려주신 은혜의 역사를 되짚어 보게 만들어 준다. 교단과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의 삶과 그 삶을 살아가는 실존의 문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