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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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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허우범성안당/2023.5.24. <삼국지 기행 2>는 적벽대전 후부터 촉과 오가 망하고 조씨의 위가 사마씨의 진나라로 바뀌는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촉나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영토가 적고 군대도 약하였다. 천험의 요새가 국토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제일 먼저 멸망하였다. 무능한 유선이 날마다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다. 위는 가장 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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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성안당/2023.5.24.


<삼국지 기행 2>는 적벽대전 후부터 촉과 오가 망하고 조씨의 위가 사마씨의 진나라로 바뀌는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촉나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영토가 적고 군대도 약하였다. 천험의 요새가 국토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제일 먼저 멸망하였다. 무능한 유선이 날마다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다. 위는 가장 넒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천하제일의 국가였다. 누가 보아도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부 통치 집단 간의 격렬한 권력 투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마씨가 권력을 빼앗았다. 권력을 장악한 사마씨는 촉을 멸망시키고, 그 기세를 몰아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았다. 오는 영토도 넓고 국력도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촉이 멸망한 후, 홀로 세력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교만하고 극악하며 음탕하고 무도한 손호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나아가 대신을 함부로 죽이고,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벌였다. 그의 16년 재위 기간 동안 오나라는 급속하게 쇠퇴하였다. 그 과정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방통은 익주 공략으로 촉나라 건국의 발판을 마련하였지만,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전사함으로써 결국 촉나라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방통의 죽음으로 제갈량이 익주로 오고, 형주에 홀로 남은 관우는 교만한 자존심만 믿고 정세 판단을 잘못하여 형주를 빼앗기고 목숨도 잃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데. 이에 사태는 급전직하로 변하여 오와의 동맹이 깨지고 장비와 유비도 사망하니, 촉은 건국과 함께 도미노처럼 멸망의 길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p.117)” 그 시작이 방통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장비가 형인 관우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해인 21년, 장비의 장녀는 태자비가 되었다. 유비의 아들인 유선은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해인 219년에 왕세자가 되었다. 유선의 나이 13세였다. 223년, 유비가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나자 유선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올랐는데 당시 17세였다. 그러하니 황후와 동갑인 것이다. 장 황후는 황후가 된지 14년 만인 237년에 아이가 없이 죽었다. 그 후에 238년에 황후의 동생이 황후에 올랐으나 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후한 말기의 전설적인 의사로 알려진 화타는 원래 수리와 경전에 해박한 학자적 선비였다. 그는 의술에도 능통하였는데, 어지러운 난세에 질병과 부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는 데 활용하였다. 화타의 의술은 신기에 가까워서 내과와 침구뿐 아니라 외과, 부인과, 소아과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원근 각지에서 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p.199)” 화타가 살던 시대의 의술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것이 강하였다. 그런데 화타는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발명하여 외과 수술에 응용하였다. 이는 조제와 침구 위주의 당시 의술에서 볼 때 매우 혁명적인 치료법이었다. 화타가 신의로 추앙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외과의 비조’이자 ‘체육의학(오금희)의 창시자’인 화타는 조조의 주치의가 되었지만, 이를 버림으로써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화타가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조조의 주치의가 되지 않으려 하였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삼국지>의 저자 진수의 말을 빌리면, 본래 선비로서 인정받기를 바랐던 화타가 조조에게서 한낱 방술사로 간주되자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서기 219년, 58살의 관우는 오나라 여몽의 군대에게 패해 아들 관평과 함께 손권에게 죽게 된다. 그러나 “관우는 중국뿐 아니라 화교 문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손길이 닿아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웬만한 중국요리집의 입구를 살펴보면 재물신인 관우상을 볼 수가 있다.(p.218)” 삼국지의 무수한 영웅들 가운데 유독 관우가 신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관우의 고향은 중국 최고의 소금 생산 지역인 산서성 운성이다. 소금은 고대로부터 매우 중요한 것이었기에 국가가 관리하였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는 소금 전매는 산서상인들의 밀매와 이를 위한 전국 단위 비밀결사체의 조직으로 이어졌다. “산서상인들은 그들만을 상징할 수 있는 결집체가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고향이 낳은 관우에 주목하고 관우를 영웅화 하였다.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받는 정부도 관우의 영웅화에 앞장섰다.(p.221)” 상인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관우상을 만들어 놓고 군신, 재물신, 비밀결사의 수호신으로 믿었다. 산서상인들에 의해 퍼지기 시작한 관우 숭배는 민간의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으로 각종 전설을 남기며 신격화 되었다. 이러한 관우 신격화에 있어서 <삼국지연의>의 역할은 각별했는데, 저자인 나관중 또한 산서 출신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왕조는 부자세습이나 종친 세습으로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선양의 형식을 빌려 왕조를 찬탄한 것은 조조의 아들 조비가 처음이다.(p.277)” 조비는 부친인 위왕 조조가 죽자 연호를 연강으로 바꿨다. 헌제가 비록 힘은 없지만 황제 자리에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연호를 바꾸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황제에 오르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나관중에 의해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 된 유비는 죽어서도 황제로 칭송받고 관우는 죽어서 신이 되었다. 장비는 이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서민을 대변하는 소설 속 형상처럼 죽어서도 서민들의 삶에 든든한 믿음을 심어주는 대장부로 새겨져 있다. 이처럼 역사에서 촉나라는 미미한 나라였지만 그들 주인공으로 삼은 <삼국지연의>에 의해 후세에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삼국지 관련 유적들은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하지만 이들 유적 모두가 잘 보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촉한 정통론의 영향으로 유비와 제갈량, 관우에 대한 것은 그것이 역사적인 것이든, 문학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즐비하지만, 나머지 유적은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버려진 채 사장되고 있다( p.298)” 최근 10여 년은 조조를 재평가하는 열풍이 일어나 조조와 관련된 유적지에 조조상이 세워지기도 하였지만 이는 본래의 역사적 유적을 복원한다는 가치보다는 관광 상품 개발에 치중하는 경향이 더 심하다고 저자는 평한다. “유비의 성도와 손권의 남경도 건재한데 조조의 업성은 어째서 이토록 철저히 부서졌는가.(p.32)” 조조가 업성을 건설한 이후 580년 수나라 영견이 도시를 불태워 폐허로 만들기까지 모두 6대의 조정이 370여 년 동안 업성을 도읍으로 삼았다. 영건이 업성을 불태운 것은 그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여 군사를 일으킨 성주총과 울지형이 업성을 근거지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제갈량이 맹획을 칠종칠금하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5월에 노수를 건너 가을에 4개 군을 평정하고 그해 12월에 성도로 돌아온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아무리 신묘한 제갈량이라 하더라도 남방의 오지에서 일곱 번을 싸웠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불가한 것이다.(p.320)” ‘칠금맹획’은 한족 우월주위에 입각한 전설이 역사적 전고로 각색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 전해 오는 ‘칠금공명’이야기가 소수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맹획 등의 반란은 소수 민족에 대한 한족의 경멸과 잔혹한 수탈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며, 한족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첨사괴고 미화된 것이 ‘칠종칠금’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관중이 뛰어난 필치로 화룡점정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북공정사업 또한 필요하면 만들어내는 중국적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것이다. 지금은 어불성설이라도 밀어붙이고 백년 천년이 지나면 역사라고 우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사서를 맹목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출사표’는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하기 앞서 후주 유선에게 올린 글로써, 충신의 진실한 마음이 넘쳐흐르는 고금의 걸작이다. 이 표는 227년과 228년에 각각 작성했는데, 이를 구분하여 전후 출사표라고 부른다. 흔히 말하는 출사표는 전출사표를 말한다.(p.344)” 출사표는 진수의 <삼국지>의 촉서 ‘제갈량전’과 양나라 소명태자가 편찬한 <문선> 등에 실려 있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임금이 해야 할 일과 나라를 다스리는 길에 대해 논한 만고의 명문이다. 제갈량이 오늘날 탁월한 정치가로 존경받는 것도 이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임종을 앞둔 제갈량은 자신을 정군산에 장사지내고 일체의 부장품을 넣지 말라고 하였다. 후주 유선은 직접 영구를 정군산으로 호송하여 장사지냈다. 그리고 시호를 충무후라 하고, 면헌에 사당을 지어 계절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유비가 성도에 입성한 지 50년이 지난 263년, 촉한은 위나라의 공격에 항복하였다. 후주가 초주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그의 다섯째 아들인 북지왕 유심이 반대하였다. 후주는 듣지 않았다. 유심은 할아버지인 유비의 사당에서 통곡한 후, 부인과 세 아들을 죽이고 자결하였다. (p.416)” 촉한의 권력은 형주파와 동주파에 집중되었다. 토박이와 다름없는 익주파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궂은 일만 주어질 뿐, 권력에서는 찬밥신세였다. 그들에게는 국가가 있기는 하되, 이익보다는 손해가 많았다. 익주파의 불만은 고조되고, 결국 그들은 촉한의 멸망을 원하였다. 그렇기에 263년 후주 유선의 항복으로 촉한은 멸망하였다. 유비가 나라를 세운 지 43년이 되는 해였다. 유선은 성도에서 낙양으로 이송되었다. 위나라 정권의 최고 실력자인 사마사는 유선을 안락공에 봉하고, 저택과 생활비를 지급하며 정중하게 예우하였다. 유선은 기분이 좋았다. 촉한이 멸망한지 13년이 지나서 오나라의 손호도 진나라에 투항하였다. 손호가 낙양에 도착하여 사마염을 알현하였다.


“<삼국지연의>는 일명 ‘제갈령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전편에 묘사된 제갈량의 다재다능함이 사실을 넘어 신기에 가깝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p.433)” 촉한 정통론의 입장에서 쓰인 연의는 유비와 제갈량을 최고의 인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유비 참모로서의 제갈량은 등장부터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도록 하였다. 이후 모든 전투와 계략은 신출귀몰한 제갈량에 의해서 진행된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사했을 때 독자들은 소설이 끝났다고 느낀다. 지혜의 화신으로 과장된 제갈량의 마력에 독자들이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위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소설은 유비아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하는 촉한 정통론에 근거한다. 촉한 정통론은 위정자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이를 통한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 장치다. 충성, 믿음, 의리, 덕망 등은 민중을 지배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뿐더러, 중국 대륙을 차지한 민족에 대항하는 한족의 대응 논리로도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p.466)” 촉한 정통론은 한족의 기질과 역사적 소망 그리고 대륙적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숙독하면 중국인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에서도 광풍처럼 인기가 높은데, 그 열풍은 예전과 다르다고 말한다. 촉을 차지한 사마소는 그 위신이 나날이 높아졌다. 25년 촉이 멸망한 지 2년 후, 사마소가 죽고 장남 사마염이 위의 황제인 조환으로부터 선양을 받는다. 헌제가 피눈물을 흘리며 조비에게 했던 것 그대로 조환이 온몸을 떨며 사마염에게 황제자리를 넘겼다. 이렇게 사마의 이후 사마사와 사마소, 사마염 3대에 걸친 찬탈 계획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황제에 오른 사마염은 국호를 진이라고 하였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쟁투, 그것이 역사다. 이러한 쟁투는 각자의 소망을 담는다. 하지만 역사는 무뚝뚝하여 소망이나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고, 소망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소망하는’역사란 오직 인간의 사고 속에서만 존재한다.(p.467)” 역사는 천하의 모든 민족에게 골고루 기회를 준다. 천하는 개인이나 한 민족의 것이 아닌 공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늘도 영원히 자지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한한 동경, 천하를 다 가지고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는 저자 허우범은 작가이며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초빙교수로 20여년에 걸쳐 중국 전역의 삼국지 현장을 답사하였다. 저서로 <삼국지 기행>, <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 <황해로드>(공저) 등과 <여말선초의 서북 국경과 위화도>, <고려 시대 서북계 이해>(공저) 등이 있다.

k******4 2024.11.11.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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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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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성안당/2023.5.24. sanbaram   <삼국지 기행 2>는 적벽대전 후부터 촉과 오가 망하고 조씨의 위가 사마씨의 진나라로 바뀌는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촉나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영토가 적고 군대도 약하였다. 천험의 요새가 국토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제일 먼저 멸망하였다. 무능한 유선이 날마다 주색에 빠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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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성안당/2023.5.24.

sanbaram

 

삼국지 기행 2>는 적벽대전 후부터 촉과 오가 망하고 조씨의 위가 사마씨의 진나라로 바뀌는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촉나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영토가 적고 군대도 약하였다. 천험의 요새가 국토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제일 먼저 멸망하였다. 무능한 유선이 날마다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다. 위는 가장 넒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천하제일의 국가였다. 누가 보아도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부 통치 집단 간의 격렬한 권력 투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마씨가 권력을 빼앗았다. 권력을 장악한 사마씨는 촉을 멸망시키고, 그 기세를 몰아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았다. 오는 영토도 넓고 국력도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촉이 멸망한 후, 홀로 세력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교만하고 극악하며 음탕하고 무도한 손호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나아가 대신을 함부로 죽이고,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벌였다. 그의 16년 재위 기간 동안 오나라는 급속하게 쇠퇴하였다. 그 과정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방통은 익주 공략으로 촉나라 건국의 발판을 마련하였지만,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전사함으로써 결국 촉나라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방통의 죽음으로 제갈량이 익주로 오고, 형주에 홀로 남은 관우는 교만한 자존심만 믿고 정세 판단을 잘못하여 형주를 빼앗기고 목숨도 잃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데. 이에 사태는 급전직하로 변하여 오와의 동맹이 깨지고 장비와 유비도 사망하니, 촉은 건국과 함께 도미노처럼 멸망의 길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p.117)” 그 시작이 방통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장비가 형인 관우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해인 21, 장비의 장녀는 태자비가 되었다. 유비의 아들인 유선은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해인 219년에 왕세자가 되었다. 유선의 나이 13세였다. 223, 유비가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나자 유선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올랐는데 당시 17세였다. 그러하니 황후와 동갑인 것이다. 장 황후는 황후가 된지 14년 만인 237년에 아이가 없이 죽었다. 그 후에 238년에 황후의 동생이 황후에 올랐으나 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후한 말기의 전설적인 의사로 알려진 화타는 원래 수리와 경전에 해박한 학자적 선비였다. 그는 의술에도 능통하였는데, 어지러운 난세에 질병과 부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는 데 활용하였다. 화타의 의술은 신기에 가까워서 내과와 침구뿐 아니라 외과, 부인과, 소아과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원근 각지에서 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p.199)” 화타가 살던 시대의 의술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것이 강하였다. 그런데 화타는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발명하여 외과 수술에 응용하였다. 이는 조제와 침구 위주의 당시 의술에서 볼 때 매우 혁명적인 치료법이었다. 화타가 신의로 추앙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외과의 비조이자 체육의학(오금희)의 창시자인 화타는 조조의 주치의가 되었지만, 이를 버림으로써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화타가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조조의 주치의가 되지 않으려 하였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삼국지의 저자 진수의 말을 빌리면, 본래 선비로서 인정받기를 바랐던 화타가 조조에게서 한낱 방술사로 간주되자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서기 219, 58살의 관우는 오나라 여몽의 군대에게 패해 아들 관평과 함께 손권에게 죽게 된다. 그러나 관우는 중국뿐 아니라 화교 문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손길이 닿아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웬만한 중국요리집의 입구를 살펴보면 재물신인 관우상을 볼 수가 있다.(p.218)” 삼국지의 무수한 영웅들 가운데 유독 관우가 신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관우의 고향은 중국 최고의 소금 생산 지역인 산서성 운성이다. 소금은 고대로부터 매우 중요한 것이었기에 국가가 관리하였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는 소금 전매는 산서상인들의 밀매와 이를 위한 전국 단위 비밀결사체의 조직으로 이어졌다. 산서상인들은 그들만을 상징할 수 있는 결집체가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고향이 낳은 관우에 주목하고 관우를 영웅화 하였다.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받는 정부도 관우의 영웅화에 앞장섰다.(p.221)” 상인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관우상을 만들어 놓고 군신, 재물신, 비밀결사의 수호신으로 믿었다. 산서상인들에 의해 퍼지기 시작한 관우 숭배는 민간의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으로 각종 전설을 남기며 신격화 되었다. 이러한 관우 신격화에 있어서 삼국지연의의 역할은 각별했는데, 저자인 나관중 또한 산서 출신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왕조는 부자세습이나 종친 세습으로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선양의 형식을 빌려 왕조를 찬탄한 것은 조조의 아들 조비가 처음이다.(p.277)” 조비는 부친인 위왕 조조가 죽자 연호를 연강으로 바꿨다. 헌제가 비록 힘은 없지만 황제 자리에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연호를 바꾸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황제에 오르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나관중에 의해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 된 유비는 죽어서도 황제로 칭송받고 관우는 죽어서 신이 되었다. 장비는 이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서민을 대변하는 소설 속 형상처럼 죽어서도 서민들의 삶에 든든한 믿음을 심어주는 대장부로 새겨져 있다. 이처럼 역사에서 촉나라는 미미한 나라였지만 그들 주인공으로 삼은 삼국지연의에 의해 후세에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삼국지 관련 유적들은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하지만 이들 유적 모두가 잘 보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촉한 정통론의 영향으로 유비와 제갈량, 관우에 대한 것은 그것이 역사적인 것이든, 문학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즐비하지만, 나머지 유적은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버려진 채 사장되고 있다( p.298)” 최근 10여 년은 조조를 재평가하는 열풍이 일어나 조조와 관련된 유적지에 조조상이 세워지기도 하였지만 이는 본래의 역사적 유적을 복원한다는 가치보다는 관광 상품 개발에 치중하는 경향이 더 심하다고 저자는 평한다. 유비의 성도와 손권의 남경도 건재한데 조조의 업성은 어째서 이토록 철저히 부서졌는가.(p.32)조조가 업성을 건설한 이후 580년 수나라 영견이 도시를 불태워 폐허로 만들기까지 모두 6대의 조정이 370여 년 동안 업성을 도읍으로 삼았다. 영건이 업성을 불태운 것은 그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여 군사를 일으킨 성주총과 울지형이 업성을 근거지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제갈량이 맹획을 칠종칠금하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5월에 노수를 건너 가을에 4개 군을 평정하고 그해 12월에 성도로 돌아온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아무리 신묘한 제갈량이라 하더라도 남방의 오지에서 일곱 번을 싸웠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불가한 것이다.(p.320)” 칠금맹획은 한족 우월주위에 입각한 전설이 역사적 전고로 각색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 전해 오는 칠금공명이야기가 소수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맹획 등의 반란은 소수 민족에 대한 한족의 경멸과 잔혹한 수탈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며, 한족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첨사괴고 미화된 것이 칠종칠금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관중이 뛰어난 필치로 화룡점정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북공정사업 또한 필요하면 만들어내는 중국적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것이다. 지금은 어불성설이라도 밀어붙이고 백년 천년이 지나면 역사라고 우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사서를 맹목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출사표는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하기 앞서 후주 유선에게 올린 글로써, 충신의 진실한 마음이 넘쳐흐르는 고금의 걸작이다. 이 표는 227년과 228년에 각각 작성했는데, 이를 구분하여 전후 출사표라고 부른다. 흔히 말하는 출사표는 전출사표를 말한다.(p.344)” 출사표는 진수의 삼국지의 촉서 제갈량전과 양나라 소명태자가 편찬한 문선등에 실려 있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임금이 해야 할 일과 나라를 다스리는 길에 대해 논한 만고의 명문이다. 제갈량이 오늘날 탁월한 정치가로 존경받는 것도 이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임종을 앞둔 제갈량은 자신을 정군산에 장사지내고 일체의 부장품을 넣지 말라고 하였다. 후주 유선은 직접 영구를 정군산으로 호송하여 장사지냈다. 그리고 시호를 충무후라 하고, 면헌에 사당을 지어 계절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유비가 성도에 입성한 지 50년이 지난 263, 촉한은 위나라의 공격에 항복하였다. 후주가 초주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그의 다섯째 아들인 북지왕 유심이 반대하였다. 후주는 듣지 않았다. 유심은 할아버지인 유비의 사당에서 통곡한 후, 부인과 세 아들을 죽이고 자결하였다. (p.416)” 촉한의 권력은 형주파와 동주파에 집중되었다. 토박이와 다름없는 익주파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궂은 일만 주어질 뿐, 권력에서는 찬밥신세였다. 그들에게는 국가가 있기는 하되, 이익보다는 손해가 많았다. 익주파의 불만은 고조되고, 결국 그들은 촉한의 멸망을 원하였다. 그렇기에 263년 후주 유선의 항복으로 촉한은 멸망하였다. 유비가 나라를 세운 지 43년이 되는 해였다. 유선은 성도에서 낙양으로 이송되었다. 위나라 정권의 최고 실력자인 사마사는 유선을 안락공에 봉하고, 저택과 생활비를 지급하며 정중하게 예우하였다. 유선은 기분이 좋았다. 촉한이 멸망한지 13년이 지나서 오나라의 손호도 진나라에 투항하였다. 손호가 낙양에 도착하여 사마염을 알현하였다.

 

“<삼국지연의는 일명 제갈령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전편에 묘사된 제갈량의 다재다능함이 사실을 넘어 신기에 가깝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p.433)” 촉한 정통론의 입장에서 쓰인 연의는 유비와 제갈량을 최고의 인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유비 참모로서의 제갈량은 등장부터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도록 하였다. 이후 모든 전투와 계략은 신출귀몰한 제갈량에 의해서 진행된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사했을 때 독자들은 소설이 끝났다고 느낀다. 지혜의 화신으로 과장된 제갈량의 마력에 독자들이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위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소설은 유비아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하는 촉한 정통론에 근거한다. 촉한 정통론은 위정자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이를 통한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 장치다. 충성, 믿음, 의리, 덕망 등은 민중을 지배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뿐더러, 중국 대륙을 차지한 민족에 대항하는 한족의 대응 논리로도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p.466)” 촉한 정통론은 한족의 기질과 역사적 소망 그리고 대륙적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숙독하면 중국인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에서도 광풍처럼 인기가 높은데, 그 열풍은 예전과 다르다고 말한다. 촉을 차지한 사마소는 그 위신이 나날이 높아졌다. 25년 촉이 멸망한 지 2년 후, 사마소가 죽고 장남 사마염이 위의 황제인 조환으로부터 선양을 받는다. 헌제가 피눈물을 흘리며 조비에게 했던 것 그대로 조환이 온몸을 떨며 사마염에게 황제자리를 넘겼다. 이렇게 사마의 이후 사마사와 사마소, 사마염 3대에 걸친 찬탈 계획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황제에 오른 사마염은 국호를 진이라고 하였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쟁투, 그것이 역사다. 이러한 쟁투는 각자의 소망을 담는다. 하지만 역사는 무뚝뚝하여 소망이나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고, 소망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소망하는역사란 오직 인간의 사고 속에서만 존재한다.(p.467)” 역사는 천하의 모든 민족에게 골고루 기회를 준다. 천하는 개인이나 한 민족의 것이 아닌 공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늘도 영원히 자지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한한 동경, 천하를 다 가지고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는 저자 허우범은 작가이며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초빙교수로 20여년에 걸쳐 중국 전역의 삼국지 현장을 답사하였다. 저서로 삼국지 기행>, <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 <황해로드>(공저) 등과 여말선초의 서북 국경과 위화도>, <고려 시대 서북계 이해>(공저) 등이 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k******4 2023.06.20. 신고 공감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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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기행 2권 서평
"삼국지기행 2권 서평" 내용보기
≪28. 눈물 속에 숨긴 발톱을 드러내다≫, ≪29. 난세에는 신의보다 천하가 먼저다≫ 를 중심으로     저자의 삼국지기행의 여정은 '삼국지연의' 사건의 흐름을 좇아 이어지고 있다. 특별히 2권은 천하삼분지계의 형성과 그로 인한 사건과 인물들이 얽혀있는 도시를 답사하며 그 흥미로움을 더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문득 괴테의 이탈리아(로마) 기행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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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눈물 속에 숨긴 발톱을 드러내다≫≪29. 난세에는 신의보다 천하가 먼저다≫ 를 중심으로 

 

 저자의 삼국지기행의 여정은 '삼국지연의' 사건의 흐름을 좇아 이어지고 있다. 특별히 2권은 천하삼분지계의 형성과 그로 인한 사건과 인물들이 얽혀있는 도시를 답사하며 그 흥미로움을 더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문득 괴테의 이탈리아(로마) 기행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두보, 소동파 또는 육유와 같은 당대의 문장가들이 이곳에 오기를 고대했고, 실제 와서 느끼고 시를 지어 노래하면서 그 감동을 표현한 것을 책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당시는 쉽게 오가기 힘들었던 중국의 지리적인 거리감이 있었겠지만, 현재는 너무 (돈 되는) 관광지 조성에만 혈안이 되어있지는 않은가 싶은 정서적인 괴리감이 느껴진다. 역사적인 유적과 허구적인 유적을 구별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그동안의 갖은 풍수해를 맞았음에도 버티고 있는 그동안의 유적을 어떻게 자연스레 유지하며 후대에게 자연스럽게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계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중화사상과 만만디정신, 동북공정사업 등은 과거를 현대와 미래에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지금의 잘못된 인식이리라. 또한  "중국인들은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허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저자의 표현은 얼핏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부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나에게 득이 된다면 무엇이든 취사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어찌 보면 잘못된 믿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방통에 대한 부분은 더욱 비판적으로 삼국지를 읽어야 함을 볼 수 있다. 방통의 죽음으로부터 촉이 멸망의 길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마치 도미노와 같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에서 복선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극적으로 다뤄진 방통이 죽은 낙봉파와 혈분, 장비과 마초의 전승패 제방에서의 결투, 장비가 방통을 꾸짖기 위해 뇌양현을 찾아가는 일화,  마초가 가맹관을 공격한 것 그리고 관우의 양아들 관색과 (그의 처) 포삼낭의 무덤 모두 허구이다.

잘못된 아홉이 사실이라고 떠들면 진정한 하나는 묻혀 버리는 대중 심리의 활용, 그리고 이를 통한 정치적·역사적 공고화. 이는 비단 문학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삼국지연의」는 이 부분에서 최고(最古)이자 최선(最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10년 전의 '소화고성'과 다시 찾은 '소화고성 및 가맹관'의 모습을 비교해 가며 당시 저자의 감정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또한 비록 지면에는 짧게 다뤄졌지만 '마등묘'를 찾아 헤매는 과정은 잠시나마 허탈한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의 구성상 한 장은 '삼국지연의'에서의 사건과 이와 관련된 문학적 근거가 먼저 다뤄고 이어서 저자의 답사기를 보며 함께 유적지를 확인해 본다. 뒤이어 실제 삼국지의 허구와 진실을 가리며 한 장을 정리하는 내용을 끝으로 한 장이 끝나는데, 정리하는 글을 읽고 나면 앞서 나왔던 부분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정말 이 책은 삼국지에 푹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귀한 책이다. 더불어 중국의 유적지 관리와 자의적인 역사해석에 대한 뜻을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게 느껴진다. 


 

 

-본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j*****g 2023.06.16.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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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역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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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역사를 보다   어린 시절, 계몽사 어린이문고에 있던 삼국지로부터 시작해서 이문열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 등 삼국지 책을  차례로 읽던 기억이 난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매체가 발달하기 이전, 책만 읽던 시절에는 여러번 읽어도 질리지 않던 책이 삼국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는 불멸의 고전이자 위대한 문화유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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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역사를 보다

 

어린 시절, 계몽사 어린이문고에 있던 삼국지로부터 시작해서 이문열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 등 삼국지 책을  차례로 읽던 기억이 난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매체가 발달하기 이전, 책만 읽던 시절에는 여러번 읽어도 질리지 않던 책이 삼국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는 불멸의 고전이자 위대한 문화유산이며, 그 속에는 인간사의 흥망성쇠가 웅대한 서사시로 펼쳐져 있고 오늘날까지 각 분야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글쓴이는 "[삼국지연의]로 인해 발생한 오해와 억지가 마치 진실처럼 되어 버린 경우가 많다. "며 경계한다. 

낙봉파도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 나관중에 의해 방통의 사망 장소가 결정되자 후세 사람들이 사천성 덕양의 험준한 지점에 낙봉파라는 지명을 만들었다. 청나라 때 시인이자 학자인 왕시진이 '낙봉파에서 방사원을 조상하다'는 시를 지었고 이것이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수록되었다. 

-용쟁호투의 역사적 전설 중에서, 117쪽 - 

 

"[삼국지연의]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러한 중독에 있는 것은 아닐까. 잘못된 아홉이 사실이라고 떠들면 진정한 하나는 묻혀버리는 대중 심리의 활용. 그리고 이를 통한 정치적 역사적 공고화. [삼국지연의]는 이 부분에서 최고이자 최선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 책을 통해 "정사[삼국지]의 사실과 [삼국지연의]를 비교하면서 영웅들이 누볐던 현장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반추해보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삼국지였기에 역사적 사실이 삼국지연의에서 변형된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변형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삼국지가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알던 기존의 삼국지 또는 비즈니스나 자기개발에 집중된 변형된 삼국지가 아닌 실제 역사속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삼국지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큰 기쁨이다. 


 

삼국지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인물은 조조라 할 수 있다. 삼국지에서 유비의 대척점에 서서 악역을 담당한 조조는 끝내 황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 자식인 조비가 황제에 오르도록 사전 준비를 해두고 떠난다. 조비는 황제에 오르면서 선양이라는 모양새를 취하고 헌제를 산양공에 봉한다. 글쓴이는 산양공이 말년을 보냈던 산양고상을 둘러본다. 고성은 길을 만드느라 두 동강이 나 있고 성에는 마을 사람들이 일군 텃밭이 보인다. 힘없이 선양을 해야했던 헌제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해서 쓸쓸하다. 

글쓴이가 찾은, 조비가 헌제로부터 선양받아 황제에 오른 조비의 사당 안에는 정작 조비를 모신 곳이 없다. 관야류란 편액을 걸고 관우신을 모신 누각이 있는가 하면 송나라 때 명판관 포청천을 모신 포공전이 보인다. 조조가 자기 가족들의 사당으로 지은 문제묘 안에 정작 상관없는 인물들이 모여있으니 헌제의 선양을 바라보는 진정한 민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여주는 예처럼 보인다. 

삼국지 관련 유적들은 중국 전역에 퍼져 있지만 이들 유적 모두가 잘 보전되어 있지는 않았다. 관심없는 것은 버려지고 관심있는 것들은 북적거린다. 한편으로 요근래 재평가 받고 있는 조조의 유적은 새로 단장중이다. 공원으로 넓어지고 조조의 이름을 딴 대로도 생겼다. 오늘날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사람이라면 삼국지 인물의 흥망을 글쓴이의 여행과 함께 지켜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본래 역사적 유적을 복원한다는 가치보다는 관광 상품 개발에 치중하는 경향도 보인다. 삼국지연의 전반에 흐르던 관우신앙은 오늘날에도 여전한데 이 책 한편에는 돈을 내면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관우상도 등장한다. 길흉화복을 빌고 자신의 경제적 부를 일구고자 하는 오늘날 중국인들의 현실 모습이 역사 유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삼국지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를 비롯해 조조와 손권 등 많은 인물이 나와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은 옆에서 지켜보는 독자들의 소망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쓴이는 "소망하는 역사란 오직 인간의 사고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삼국지연의]는 촉한정통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그 당시 북방민족에게 핍박받고 있던 송대 중국민족의 소망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국지]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계속 읽히고 인기있는 이유는 책을 읽는 독자가 살고 있는 당대의 소망을 삼국지 인물과 사건 속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글쓴이는 "[삼국지연의]가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삼국지연의]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였으니 '역사적 허구다'라고 말하면 연의임을 내세워 문학 작품임을 강조한다. 대다수 독자들은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알려고 신경쓰지 않는다. [삼국지]가 주는 소설적 재미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답한 글쓴이는 소설적 재미에 빠진 독자들에게 자신의 여정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알려주고자 한다. 글쓴이는 이국 멀리 갈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역사 현장의 사진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그 여정을 통해 우리는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대충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이렇게 숨은그림 찾듯이 사실과 소설의 경계를 글쓴이와 함께 가다보면 장강에 이르러 삼국지기행이 멈춘다. 

조조와 그의 후손들의 흥망을 볼 수 있는 업성과 동작대부에서 시작한 [삼국지기행2]의 여정은 역사의 흐름과 같이 고고히 흐르는 장강에서 마무리한다. 글쓴이는 장강의 유람선을 타고 장강을 둘러보다가 삼협댐의 완공으로 변한 마을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경제발전을 위하여 건설한 댐은 많은 문화유산을 물에 잠기게 했다. 물 속에 잠긴 문화유산은 문화에 소홀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현대인의 경제적 욕심에 물에 가라앉았을까. 

"밤낮없이 흐르는 장강"은 역사속 영웅과 선비들을 품고 흐른다. 장강의 물결처럼 세월은 흐르고 글쓴이가 돌아본 삼국지의 역사유적들은 세월의 흔적을 타고 있다.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소설 [삼국지연의]와 그 현장을 따라가는 기행 속에서, 장강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듯이 자연 속에 한낮 나약한 인간의 존재와 그 인간들의 소망이 담긴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성안당(책문)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3.06.1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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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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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지략으로 뛰어난 군사도 있고 적의 막강한 군대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장군도 있네요. 한나라 말기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전국에서 영웅들이 일어났으며 그중 조조와 유비, 손권이 각각 천하를 삼등분하여 솔밭 같은 형세를 유지하다가 다시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 는 이 시대를 바탕으로 하였는데 나관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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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지략으로 뛰어난 군사도 있고 적의 막강한 군대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장군도 있네요. 한나라 말기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전국에서 영웅들이 일어났으며 그중 조조와 유비, 손권이 각각 천하를 삼등분하여 솔밭 같은 형세를 유지하다가 다시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 는 이 시대를 바탕으로 하였는데 나관중의 상상력과 글솜씨가 더해지면서 이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네요. 하지만 삼국지연의가 워낙 재미있는 까닭에 널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중국 곳곳이 관광 상품화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은 직접 가서 보고 싶네요.

 

'삼국지 기행 2' 의 저자는 예전에 삼국지에 나오는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여행책을 썼는데 최근 다시 방문하면서 새롭게 개정판을 내었습니다. '삼국지 기행 2' 는 1권에 이어 삼국지 후반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6호선에 있는 동묘역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냥 왕 누군가의 묘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동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관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이면 몰라도 삼국지와 관련이 없는 먼 우리나라에 어떻게 해서 관우의 묘가 생긴 것일까요. 관우 삼국지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지력과 무력이 뛰어나고 의리가 강하며 얼굴이 대추처럼 붉은 인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면서 유비, 장비와 뿔뿔히 흩어졌는데 관우는 잠시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였다가 유비의 생사를 알게되자 바로 달려갔습니다. 적벽대전에서는 패하여 도망가는 조조를 잡을 수도 있었으나 의(義)를 앞세운 말에 설득당해 그대로 놓아주었네요. 이러한 관우는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신격화되었다고 합니다. 문화대혁명 당시 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되었지만 사람들은 관우의 사당 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관우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네요. 책 1권과 2권에서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하며 동묘 역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운 명나라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관우와 함께 오늘날에도 널리 떠받들어지고 있는 인물은 제갈량입니다. 제갈량은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모시고 왔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계획하면서 전쟁마다 큰 승리를 거두었네요. 유비가 촉으로 들어간 이후에는 남쪽을 안정시키기 위해 맹획을 일곱번 잡아 일곱번 풀어주면서 결국 진심으로 충성하도록 한 칠종칠금은 유명합니다. 제갈량의 자신감과 함께 그의 손 안에서 노는 맹획이 재미있는데 삼국지연의와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는 남쪽을 평정한 것은 맞지만 사람의 목숨이 오고 가는 전쟁의 와중에 일곱번이나 잡았다가 놓아주는 한가로운(?) 일은 없었네요. 제갈량은 유비 사후에도 유지를 받들어 한중으로 나가 끊임없이 위나라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오장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는데 당시의 치열했던 전쟁과는 달리 오늘날 오장원은 작은 농촌 마을로 제갈량을 모신 사당인 무후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기회가 된다면 적벽과 함께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이 한두명씩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위와 촉, 오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는 촉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촉에 정통성을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촉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없던 사건들도 많이 만들어 졌습니다.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유선은 무척 아둔하였으며 환관에게 나라의 정사를 맡겼네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은 황제를 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래서인지 유선을 모신 사당은 거의 없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남은 오나라까지 멸망하였으나 위나라도 강제로 진나라에 양위하면서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렇게 후한 말기 혼란스러웠던 시대는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었습니다. 중국 역사를 보면 합치고 나눠지는게 반복되어 왔는데 삼국시대 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인기있는 시대도 없지 않을까요. 여유가 된다면 삼국지 책을 들고 시대 순으로 주요 장소들을 찾아보고 싶네요. 과거의 삼국지가 아닌 현재의 삼국지를 읽어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p***s 2023.06.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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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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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2는 용쟁호투의 역사와 전설과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 제갈량의 천하 삼분지계, 삼국지를 오늘날 새롭게 해석한다면 어떨까?,   삼국지연의 속에 담긴 “중화주의 창조를 위한 의도적인 작업”   <삼국지연의>은 소설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고, 그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아니면 말고다. 소설이기에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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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2는 용쟁호투의 역사와 전설과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 제갈량의 천하 삼분지계, 삼국지를 오늘날 새롭게 해석한다면 어떨까?,

 

삼국지연의 속에 담긴 “중화주의 창조를 위한 의도적인 작업”

 

<삼국지연의>은 소설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고, 그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아니면 말고다. 소설이기에 상상을 동원하여, 역사적 사실 속에 살짝 끼워 넣어 흥미롭게 만들 수도 있다.

 

삼국지가 역사적 사실보다 주관적 사실(과장, 확대, 재창조)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주관적 사실이란 ‘중화주의에 이로운 창조 작업’을 의미한다. 삼국지는 인간군상의 삶을 그려내 후세가 본받을 만한 삶의 경전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는 바로 중화주의다. 1에서 여포를 배은망덕한 패륜아로 몰아가듯, 이민족 역사에 대한 자의적 예단과 폄훼와 중화민족의 우월성을. 중화 공정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삼국지연의 장점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였으니, 역사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소설적 측면에서 역사적 허구라고 또 그럴 수 있다. 독자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역사이고 또 어떤 곳이 허구인지 알려 들지 않는다. 그냥 전체로서 삼국지는 역사처럼 인식되기에. 마치 교실에서 역사 선생님이 하는 말보다 TV 속 설민석의 말을 더 신뢰한다는 학생이 제법 있다는 말처럼…. 이런 장점을 타고, 중화 공정과 동북공정, 서남공정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둬야 한다.

 

용쟁호투의 역사와 전설 속으로

 

조조를 보자. 군사전략, 정치, 문학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났다. 교양이라 할 수 있는 음악과 서예에도 출중했다. 문무를 겸비한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였기에 난세에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지만 조조는 역사적 낙오자 신세다. ‘간신’의 대명사로 불리듯, 간신의 멍에는 그가 이룬 공적을 다 지우고 있다.

 

소동파는 조조와 제갈량을 비교하면서 병법, 영토, 전쟁에서는 조조가 뛰어나지만, 지극히 충신이었다는 점에서 제갈량이 뛰어나다고, 오장원의 별이 떨어지다에서 등장하는 사마의(중달)[훗날 손자 사마염이 위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여 진(晉)을 건국한다]의 역시 제갈량 못지않은 재사였지만, 삼국지에서는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혼내다는 식으로.

 

덕망이 선호, 우선시 되는 전통적인 방법에 근거한 인물평가, 일본인에게 역사 속 삼대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 닮고 싶은 인물을 고르라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단연코 선두를 차지한다. 왜 그럴까, 일본 사회의 가치관에 따른 영향 때문이다. 질서를 파괴하고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한 오다 노부나가, 난세에 기회를 포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간악함으로, 대기만성의 끈기와 인내로 상징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안에 일본 사회에 원하는 인물상이 자리하고 있다.

왜 제갈량이 리더로서 후세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제갈량의 북벌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제갈량의 남중공략은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의 원전이 됐다. 제갈양의 남정은 단순히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촉한 내부문제(경제력, 군사부족)해결하기 위해서다. 같은 이유로 양주를 점령한다. 북벌을 시작하기 위해서...

 

모택동은 "전쟁은 정치의 계속이다"라고 했다. 제갈량의 북벌 또한 영토확장이 아니라 중원탈환을 위한 장기적인 국가 전략이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모든 걸 두루 살펴 갖춘 계책이었던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말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지 않을까 싶다.

 

백성들은 권력에 약하지만, 국가를 바꿀 수 있다

 

백성들이 중시하는 것은 배불리 먹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지다. 백성들의 국가는 이를 전제로 존재한다. 정치가는 권력을 중시하고 이를 누리기 위해 애쓴다. 이를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 백성은 권력에 약하지만, 국가를 바꿀 수 있다. 국가와 권력은 백성의 희망이 아니다. 하늘의 뜻과도 같은 백성의 뜻을 읽지 못하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권력을 찾는다. 오늘 우리 현실과도 딱 들어맞는다.

 

삼국지 기행 1.2 길 위에서 삼국지를 읽다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삼국지 등장인물을 전설과 배경, 그리고 나관중이 왜 인물 설정으로 그렇게 했는지, 생각할 거리가 많다. 또한, 풍부하게 실린 사진은 그때 이런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나 싶을 만큼. 또 새로운 상상을 하게 해준다. 소설 삼국지가 정사 삼국지를 덮어버릴 만큼, 또 지금의 중국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도. 오늘 우리가 왜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지를 그 이유를 알려준다.

 

역사는 위나라의 승리로 끝나지만, 소설은 유비와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하는 촉한 정통론을 배경으로 한다. 촉한 정통론은 위정자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 장치다. 충성, 믿음, 의리, 덕망 등은 민중을 지배하는 데 유용한 도구이자 중국대륙을 차지한 이민족에 대항하는 한족의 대응논리다. 삼국지를 읽어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중국의 세계 진출의 바탕에는 삼국지가 자리한다. 지은이는 중국인 개인은 공자를 따르지만, 집단일 경우는 순자를 따른다고...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삼국지를 읽는다면, 삼국지 기행 1, 2를 옆에 놓고, 실린 사진과 인물평 등을 함께 고려해가면서 읽는다면 오늘의 삼국지라는 세계로 들어설 듯하다. 거꾸로 읽는 삼국지와 분석 삼국지란 장르가 생겨날지도 모르겠지만.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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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m****h 2023.06.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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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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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두번째권은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의 거침없는 북진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어쩌면 팩션의 시초가 아닐까.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작가가 의도하는대로 역사적 허구를 마구 집어 넣고 있어서 역사를 보는 시각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위험한 것이 팩션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연의는 중화 제국주의를 이룩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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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두번째권은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의 거침없는 북진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어쩌면 팩션의 시초가 아닐까.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작가가 의도하는대로 역사적 허구를 마구 집어 넣고 있어서 역사를 보는 시각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위험한 것이 팩션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연의는 중화 제국주의를 이룩하려는 중화 문화의 숨은 칼날이다. 역사와 소설, 사실과 허구로 무장된 카멜레온이 글로벌 시대 전 지구촌을 통째로 중화주의화하기 위한 콘텐츠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은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급한 민족을 상대로 하는 국지적 전략일 뿐이다. 단지 이야기책이라고 치부하며 등한시하기에는 너무나 깊게 우리 곁에 와 있다. 역사가 시기마다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삼국지연의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살펴보고 제대로 알려줄 때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돼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22)

 

이 책을 읽기 전 삼국지기행이라고 했을 때 그저 삼국징에 대한 맹목적인 열의만 가득한 책이라면 설렁거리며 글을 읽고 실사 사진과 삼국지의 에피소드와 관련된 인물동상과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공간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삼국지연의 내용을 실제와 허구, 그리고 왜 그런 허구를 넣었을까 하는 저자의 역사적 배경 분석까지 담겨있어서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린시절부터 도원결의를 시작으로 유비,관우,장비는 신의를 지키는 의인으로 조조는 천하제패를 위해 자신에게 도움을 준 가족도 후한을 없애기 위해 죽이는 것을 서슴지않는 매정한 인간이하의 모진 성격으로 표사하고 있는 삼국지를 읽다보면 왠지 도원결의 삼형제가 우리편이고 조조는 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내가 이문열평전으로 삼국지를 읽었을때의 느낌이 딱 그랬었다. 분명 삼국지연의가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설을 읽는 동안 한치의 의심없이 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버리기도 하니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되새기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할 것 같다. 물론 '사실'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관우가 유비의 두 부인을 데리고 적진을 뚫고 나오는 그 유명한 일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그걸 뒤집어 유비가 자기만 살겠다고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갔다,라는 표현들이 좀 낯설기는 하지만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한번 더 새겨볼 이야기인 것 같다. 관우의 신성화와 그 위격을 더 높이기 위해 그와 접점이 없는 신의 화타가 관우를 치료했다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그나마 귀엽게(?) 봐줄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삼국지연의의 실질적인 주인공을 꼽으라면 유비와 제갈량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유비,라고 하지만 사실 그 자신의 돋보임보다는 그를 추대하는 참모들의 지혜와 용기가 더 많이 알려져있기도 하고 그 최고봉에는 제갈량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위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소설은 유비와 제갈량을 주인공으로 하는 촉한 정통론에 근거한다. 촉한 정통론은 위정자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창출과 이를 통한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 장치다. 충성, 믿음, 의리, 덕양 등은 민중을 지배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 뿐더러, 중국 대륙을 차지한 민족에 대항하는 한족의 대응 논리로도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 촉한 정통론은 한족의 기질과 역사적 소망 그리고 대륙적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466)

 

역사에 정답이 없고 현시대를 투영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결과를 이야기하고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지금 삼국지연의를 바라보는 시선에 더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 거대한 중국대륙을 지배하기 위한 그들의 권력 유지 비법을 알고 싶지는 않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을 통해 권력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중국이 한족지배의 정통성의 당위성을 멈추고 소수민족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허황된 꿈일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r***2 2023.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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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사진이 강점 - 삼국지 기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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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이었다. < 삼국지 > 덕후는 아니었기에.. 하지만 읽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삼국지기행 > 2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읽을까?       지금도 웬만한 중국요리집의 입구를 살펴보면 재물신인 관우상을 볼 수가 있다. (p218)   숙종은 관왕묘에 자주가고 또 여러 글들도 내려주었다. 관왕묘에 지내는 제사를 정례화하여 국가 차원으로 관우를 섬겼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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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이었다. < 삼국지 > 덕후는 아니었기에.. 하지만 읽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삼국지기행 > 2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읽을까?

 

 

 

지금도 웬만한 중국요리집의 입구를 살펴보면 재물신인 관우상을 볼 수가 있다. (p218)

 

숙종은 관왕묘에 자주가고 또 여러 글들도 내려주었다. 관왕묘에 지내는 제사를 정례화하여 국가 차원으로 관우를 섬겼고, 자신의 뜻대로 모든 지방의 관왕묘에 정기적으로 향축을 올리라 명령했다. -출처 : 나무위키

 

사실 '관우' 자체가 싫은 건 아닌데, 조선 시대 때 임진왜란 이후 관제묘가 들어서는 등 명나라 군이 관우 신앙을 전파한 면에서.. 그렇게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이순신은 팽 치고 관우를모시다니. 그래도 <삼국지 기행 2>를 보며 관우에 관해 조금 더 알게 되면서 관우라는 인물 그 자체를 돌아볼 수 있는 점은 좋았다.

 

 

삼국지 이해하려고 설민석 선생님의 강독 풀버전(1시간 6분 36초)도 보았다. (설쌤 같은 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읽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피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럴 땐 쉽고 재밌는 콘텐츠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것도 좋은 방식이 된다. #길위에서읽는삼국지 시리즈를 읽으며 소설이든 역사서든 삼국지를 보기 전에 미리 보기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책속문장]

p18

관도 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원소의 세력을 밀망타진하기 위하여 북진을 계속하였다. 원소는 연전연패에 복받쳐 피를 토하며 죽었다.

 

p77

유비가 제갈량에 이어 방통마저 얻고 전략을 한층 강화하자, 이에 긴장한 조조는 순치 관계를 이룬 유비와 손권을 분열시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남정을 계획한다.

 

p189

화타는 관우의 팔에 칼을 대어 가죽과 살을 갈랐다. 뼈가 드러나도록 가르고 보니 뼈는 이미 시퍼렇게 변하였다. 화타가 칼로 뼈를 긁는데 벅벅 소리가 뭇 사람의 귀청을 때렸다.

 

p203

조조가 그랬던 것처럼 손권도 관우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었다. 제갈근을 통해 귀순을 권유하였다. 형주는 물론 부귀영화도 보장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관우는 "옥은 산산조각이 날지라도 본래의 빛을 잃지 않고, 대나무는 아무리 불에 넣고 태울지라도 올곧은 절개를 꺾을 수 없는 법"이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p346

제갈량의 생각이 어떠하였든지 간에, 유선은 제갈량이 죽자 승상 제도를 폐지하였다. 유선으로서는 출사표에 눌렸던 승상 대행 체제를 없애고 본격적인 친정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유선의 친정 체제는 아무런 발전 없이 위에 항복하는 것으로 끝났다.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s*******m 2023.07.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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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2, 허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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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읽는 삼국지 중원천하를 따라가며 다시 읽는 소설 삼국지,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다. 관도 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원소의 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하여 북진을 계속하였다. 원소는 연전연패에 복받쳐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다. 망각은 망각을 낳는다. 망각이 넘쳐나면 인간은 망한다. 그럼데도 인간은 오늘의 기쁨에만 몰두할 뿐, 어제의 역사도,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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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읽는 삼국지
중원천하를 따라가며 다시 읽는 소설 삼국지,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다.

관도 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원소의 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하여 북진을 계속하였다. 원소는 연전연패에 복받쳐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다. 망각은 망각을 낳는다. 망각이 넘쳐나면
인간은 망한다. 그럼데도 인간은 오늘의 기쁨에만 몰두할 뿐,
어제의 역사도, 내일의 위험도 생각하지 않는다.

조조는 전쟁터에서도 틈이 나면 시를 지었다. 전란의 비참함을 가식 없이
표현 했으며, 인간적인 고뇌와 정감을 낭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호쾌하고 진솔한 조조의 시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하늘은 주유를 세상에 내시고 무엇 때문에 공명을 또다시 내셨단 말인가!

손견은 상대가 누구든 그의 발목을 잡는 자는 반드시 처단해야만 적성이
풀렸다. 이는 그의 용맹한 성격에서 비롯되는데 때로는 지나침이 심하였다.
그의 생각과 말이 곧 법이었으니 백성들이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손책 역시 덕보다는 무력으로 호족들을 진압하였느데, 그가 주살한 자들은
모두 현지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는 이들이었다. 손책은 자신보다 더 존경
받는 자들은 죄가 없다고 하여도 살려두지 않았다.

사리사욕에 눈먼 자들은 그것이 자신을 이롭게 할지라도 결국 소인배 짓이
틀림없는 것이요. 정의로움에 목숨 건 자들은 그것이 비록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군자로 남는 것이니, 이는 예나 지금, 나아가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리다.

관우는 마초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초의 인물됨이 어떤지를 제갈량에게
물어본 것이다. 제갈량은 관우의 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알고 관우를 넌지시
치켜 세워줌으로써 형주 수비에 전념하도록 배려하였다. 관우의 순박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한층 자만심을 채워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방통의 허망한 죽음은 방통 자신뿐만 아니라 이제 막 천하 삼분 계략을
달성하고 한나라 부흥을 위해 천하통일의 희망을 부푼 유비에게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장비는 평생에 속 시원한 일을 몇 번 하였다. 독우를 매질하고, 여포에게
욕을 하고, 장판교에서 호통을 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 용기는
엄안을 사로잡은 지혜가 아무리 돋보이다 해도 그것은 또한 엄안을
놓아준 현명함만 못한 것이다. 유비가 그를 신임한 것은 무엇보다 촉의
백성들에게 유비가 인의와 자애를 중시한다는 것을 널리 알려 민심을
얻는 데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조조는 훌륭한 인재가 최대의 자본임을 알고 있었다. '태평한 시대에는
덕이 높은 인물이 존경받지만, 다사다난한 세상에서는 능력 있는 자가
인정받는다.'라며 능력 우선론을 펼쳤다. 순욱은 이러한 인재론을
이끄는 리더였다.

조조는 자신이 이룬 공덕은 왕으로 족하고 문왕의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태자인 조비가 나서서 황제가 될 것을 암시하였다. 그만큼
조조는 정치적으로 영리하였던 것이다.

원소는 관도 대전에서 우세한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얕잡아
보다가 패배하였다. 조조는 적벽 대전에서 촉오 연합군을 얕잡아
보다가 패배하였다. 유비도 이릉 대전에서 오나를 과소평가하다가
패배하였다. 그리고 모두 화공에 패하였다. 참으로 묘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조비는 스스로 위나 황제가 되었다. 조비에서 시작된 위나라는 조예,
조방, 조모, 조환 등 5대 만에 단명하였다. 사마소가 진왕에 오르고
그의 아들인 사마염이 원제인 조환으로부터 제위를 선양 받았다.
조비가 한나라의 헌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는 방법 그대로 조환이
진나라에게 선양했으니, 사필귀정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갈량은 후주에게 출사표을 올린 후 북벌을 감행한다.
형주와 익주 두 방면에서 중원을 회복하고자 하였던 제갈량은의
융중 전략은 형주를 잃음으로써 북벌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제갈량은 그토록 중시하던 가정을 잃고 군대마저 치명적인 타격을
입자, 즉시 철군을 명령하였다. 사마의는 촉군이 철군하는 것을
알고 15만의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왔다. 제갈량은 태연한 모습으로
망루에 앉아 향을 피우고 거문고를 탔다. 사마의는 복병이 있는
것을 의심하여 즉시 퇴각한다. 이것이 바로 신묘한 제갈량의
공성계이다.

촉이 멸망한 지 13년이 지나서 오나라의 손호도 진나라에 투항하였다.
사마염은 유선을 안락공에 봉한 것과 같이, 손호도 귀명후로 봉하고
여생을 평안하게 살게 해 주었다.

삼국의 멸망 원인을 살펴보면, 모두가 내부 모순과 쟁투, 그리고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사욕에 있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sungandang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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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0 2023.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삼국지 기행 2] 시대를 초월해 감명을 주는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삼국지 기행 2] 시대를 초월해 감명을 주는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내용보기
역사에서는 『삼국지』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본다. 『삼국지연의』는 어디까지나 소설로서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지만,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漢族)** 중심의 야사(野史) 작품이다. 정사인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
"[삼국지 기행 2] 시대를 초월해 감명을 주는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내용보기


 

역사에서는 『삼국지』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본다. 『삼국지연의』는 어디까지나 소설로서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지만,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漢族)** 중심의 야사(野史) 작품이다. 정사인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傳)〉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역사가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 진수는 촉한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삼국지』는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하여 정사 중의 명저라 일컬어진다. 다만 기사가 간략하고 인용한 사료도 지나치게 간략하여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남북조시대 남조와 송(宋)의 문제(文帝, 407~453)는 429년에 배송지(裵松之, 372-451)에게 명하여 주(註)를 달게 하였다고 백과사전(두산백과)은 기술하고 있다. 『삼국지』에 함께 포함돼 기술되어 있는 배송지주(裵松之註: 裵註)가 그것이다. 이 배송지의 주는 본문의 말뜻을 주해하기보다는 누락된 사실을 수록하는 데 힘을 기울여, 어환의 『위략(魏略)』을 비롯한 하후담의 『위서(魏書)』 이하 당시의 사서와 제가(諸家)의 계보(系譜)·별전(別傳)·문집(文集) 등 140여 종의 인용문이 기재되어 있다. 이 각 저서는 그 후 대부분 흩어져 사라졌는데, 여기에 인용된 글들이 당시의 사실을 고증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중에서도 어환의 『위략』은 특히 귀중한 사료가 많이 있어, 이것을 배송지가 인용한 주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다른 문장을 추가하여, 청(淸)나라 때 장붕일(張鵬一)이 『위략집본(魏略輯本)』 25권을 편찬하였다.

 

**한족 : 중국과 타이완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민족집단을 말한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다. 2000년 기준 총인구 13억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민족집단이다.

 


 

또한 『위서』 〈동이전〉에는 부여·고구려·동옥저·읍루·예·마한·진한·변한·왜인 등의 〈전(傳)〉이 있어, 동방 민족에 관한 최고의 기록으로 동방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유일한 사료가 된다. 『삼국지』에 관하여는 후세에 많은 참고서가 만들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청나라 전대소(錢大昭)가 엮은 『삼국지변의』 3권과 양장거(梁章鉅)의 『삼국지방증』 30권 및 항세준(杭世駿)의 『삼국지보주)』 등이 저명하다. 최근의 것으로 1957년 베이징의 고적출판사에서 발간된 노필의 『삼국지집해』 65권, 보권 2권이 『삼국지』의 해설서로는 가장 상세하고 완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이며,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기서'의 하나로 꼽힌다. 진수의 『삼국지』에 기술된 대로 위·촉·오 3국이 천하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당(唐) 시대에 이미 3국의 이야기가 야담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으며, 송(宋) 시대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설화인'들의 이야기 대본인 '화본'으로 정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곽사구(禱四究)의 ‘설삼분’은 매우 유명했으며, 인종(仁宗, 1010~1063) 때에는 3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피영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元, 1271∼1368)의 영종(英宗, 재위 1320~1323) 때, 전래되던 화본들을 바탕으로 푸젠성(福建省) 젠양의 출판업자 우씨가 『전상삼국지평화』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그림, 아래에 글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 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희곡이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에 따르면 그 수가 30~40종에 이르렀다.

 


 

『삼국지연의』는 한국에서도 조선 시대부터 매우 폭넓게 읽혔다. 『삼국지연의』는 이미 16세기 초에 조선에 전해져 1569년에는 국내에서 원문으로 간행되었다. 인조 때인 1627년(인조 5년)과 숙종 때에도 출간되었다. 『삼국지연의』를 번역하거나 번안한 작품들도 상당수 전해지는데, 이는 사대부만이 아니라 부녀자나 민간에서도 폭넓게 읽혔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시조나 소설, 속담 등에서도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고 확산된 것은 이 작품이 충효와 의를 강조하는 조선의 유교적 지배이념과 일치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에도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번역본을 낳으며 폭넓게 읽혔는데, 1904년 박문서관에서 최초로 근대적 활자본이 간행되었고, 1929년에는 양백화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1945년에 박태원이 ‘모본’을 기초로 현대적 번역본을 출간한 뒤, 박종화, 김구용 등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양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현대에 와서 『삼국지연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우영이 만화로 신문에 연재한 작품이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코에이는 1985년 ‘삼국지’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였다. 그 밖에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경영학이나 처세학 등을 논하는 책들도 오늘날까지 폭넓게 출간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미수교국으로 중국의 방문이 거의 없었기에 오늘날 『삼국지 기행』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행 방문은 꿈도 꾸지 못할 상태였다. 1990년대 초반 한중 수교로 『삼국지』의 무대, 바로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이 책을 통해 도원결의의 무대가 되었던 장비의 고향 탁주,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융중, 조조가 천하를 호령했던 허창, 중원의 고도 낙양, 그리고 촉한과 운명을 함께 한 성도, 제갈량과 맹획의 '칠종칠금(七縱七擒)' 에피소드가 숨 쉬고 있는 대리와 곤명 등 『삼국지』 마니아들에게는 꿈과 같은 장소들이 역사적 고증과 다양한 현장 경험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이 책의 여정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동일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동양고전인 『삼국지』의 영웅들이 일세를 풍미한 주요 무대를 발로 뛰고 누비며 그들의 역사적 흔적을 흥미롭게 살핀 '지식기행'이다. 이제 정사 『삼국지』와 팩션(Faction) 『삼국지연의』가 어우러져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중원에서, 우리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영웅들의 흔적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삼국지』가 팩션이 되는 과정에 개입한 나관중과 모종강, 그리고 그 외 여러 판본과 『배송지주』, 『세설신어』 등 관련 도서들을 탐독하며 열정에 걸맞게 『삼국지』의 현장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자신의 공부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고전과 현장이 즐겁게 만나는 공간을 구현해 냈다.

정사(正史)와 연의를 치열하게 비교하며 고증한 이 책을 통해 『삼국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감동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수십 번의 답사를 거치면서 담아낸 수천 장의 사진 가운데 추려낸 사진 자료와 현장 확인을 거쳐 밝혀낸 역사적 진실을 통해 독자들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문학과 역사가 함께 만나는 40장의 다채로운 공간에다 역사적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지식을 맛깔스럽게 발굴해 낸 각 장의 박스를 통해 독자들은 고전의 감동을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다.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마련해 놓은 답사루트를 따라 『삼국지』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고 닮으려 했던 영웅들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 『삼국지 기행』은 2권 4부로 나뉘어 출간됐다. 앞서 언급한 대로 4부로 구성된 이 책 1, 2권은 역사적 사건(전쟁 연대순)을 따라 움직인다. 책의 구성 역시 연대 순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1부 〈중원이 곧 천하다〉, 2부 〈장강은 말없이 흐른다〉, 3부 〈용쟁호투의 역사와 전설〉, 4부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로 나뉘어 있다. 1권 1부에서는 「관우의 등장」, 「도원결의」, 「동탁의 폭정」, 「호뢰관 전투」, 「비팡 여포」, 「조조와 유비의 만남」, 「원소의 관도대전 패배」, 「조조의 중원 통일」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이들 전쟁 유적지와 역사의 현장을 찾아 나선다. 2부에는 「조조, 승상이 되다」, 「유비, 천하 경영의 웅지를 펴다」, 「수어지교, 강호를 호령하다」, 「조자룡과 장익덕」, 「주유, 조조의 천하통일을 가로막다」, 「적벽대전」, 「형주, 경국지색」, 「유비, 딸 같은 부인을 얻다」 등으로 이어진다. 2권 3부에서는 「오나라 노숙, 유비와 손잡고 조조를 치다」, 「손권, 수성의 군주로 우뚝 서다」, 「양주의 맹장, 한수」, 「방통의 죽음, 촉한 멸망의 시작」, 「술고래 장비, 지혜로 엄안을 포섭하다」, 「두 영웅의 형주 사랑, 배반의 서곡」,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 「관우의 교만함에 형주를 잃다」, 「천하도 도원결의 다음일 뿐이다」 등 숨가쁘게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많은 사건과 많은 기록을 남긴다. 4부에서는 「유비의 유언」, 「조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촉한 정권의 성립과 신구 세력의 조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 충신이 아니다」, 「읍참마속」, 「제갈량 북벌」, 「촉한의 멸망」, 「제갈량, 삼국지연의 최고의 주인공」, 「손씨 정권의 탄생, 발전 그리고 멸망」 등으로 이어지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권에서는 저자의 일정 중 중요한 도시인 시안(西安)으로 향한다. 서안은 옛날의 장안이다. 중국 6대 고도의 하나이며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안은 1,100년 이상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였다. 모두 11개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는데, 당나라 때 가장 번성하였다. 이때 도시 이름이 장안이었다. 지금은 섬서성의 성도로서 과거의 영예를 이어가고 있다. 고도답게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충만 본다고 해도 사나흘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삼국지 여행에서 서안은 볼 유적이 많지 않다.

 


 

지금의 성곽은 당시의 유적은 아니라고 한다. 명나라 때 다시 증축한 것이다. 10층 정도의 성곽이 아직도 튼튼하다. 그것은 벽돌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에 있었는데, 황토뿐 아니라 찹쌀, 쑥, 석회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찹쌀을 재료로 썼다는 것이 신기하다. 찹쌀 대신 아교풀을 씀직도 한데 말이다. 저자의 서안에서의 발길은 다소 느긋한 감이 있다.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정상이다. 한나라 때의 성곽이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폐허가 된 채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폐허뿐인 성곽에 서니 저 멀리 황하가 구비 돌아 들어오는 것이 잘 보인다. 명대에는 황하 가까지로 성광을 중건하였는데, 현재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황하 강변에는 옛 시대의 누각을 짓고 있는데 그 크기가 거대하다. 다음에 오면 또 하나의 관광지가 우뚝 서서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으리라. 중국 당국의 관광 상품화의 방법이나 과정이 못마땅함을 슬그머니 드러내기도 한다. 산 정상의 옛 성곽은 '황성 옛터'가 되어 사람도 잊고 역사도 버린 채 세파에 흩어지고 있는데, 산 아래 황하 강변에는 돈 냄새를 맡은 자본이 새로운 동관을 꿈꾸며 황사 속에서도 분주하다. 원나라 때의 관리로 섬서성에 큰 가뭄이 들자 이재민을 구제하고자 동관을 지나던 장양호가 지었다는 시 「산파양」이 새삼 의미 깊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저자의 가슴에도 폐허의 황도가 가슴 아프고 애잔한 백성들의 삶에 지친 모습이 떠오르나 보다.

 

첩첩 산봉우리 모여들고

성난 파도 밀려드는

산 넘어 강 건너 동관 가는 길

장안을 바라보매

떠나지 못하는 마음

슬프도다! 진한의 옛터를 둘러보니

영화롭던 궁궐은 흙더미가 되었구나

잘살아도 백성은 고생이요

못살아도 백성이 고생이라네(2권, p.92)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갈량을 『삼국지연의』 최고의 주인공으로 꼽는다. 저자는 제갈량은 현실감각이 뛰어난 재상이었으며 역사가 진수도 이를 인정해서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깨달은 뛰어난 인재로서 관중, 소하와 비교할 만하다고 썼다고 전한다. 그러나 매년 대군을 움직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임기응변의 계략이 그의 장점은 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평한 것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유비가 이를 잘 알았던 것일까. 천하삼분지계의 필수 과제인 익주를 공략할 때도 제갈량 대신 법정과 방통이 참여했다. 유비가 삼고초려하고 수어지교라며 제갈량을 떠받든 것과 비교하면 왠지 어색하다고 지적한다.

"『삼국지연의』는 일명 '제갈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전편에 묘사된 제갈량의 다재다능함이 사실을 넘어 신기에 가깝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촉한 정통론의 입장에서 쓰인 연의는 유비와 제갈량을 최고의 인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유비 참모로서의 제갈량은 등장부터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도록 하였다. 이후 모든 전투와 계략은 신출귀몰한 제갈량에 의해서 진행된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사했을 때 독자들은 소설이 끝났다고 느낀다. 지혜의 화신으로 과장된 제갈량의 마력을 독자들이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유비는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차지했을 때나, 익주를 차지하고 나서도 제갈량에게 조세와 군비의 충실에만 전념토록 하였다. 고조 유방의 승상이었던 소하의 일을 맡긴 것이다. 소하는 실무형 경제 관료였다. 유비도 공명을 그렇게 생각하였다. 공명은 유비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충실히 보필하였다. 송나라 학자 유문표가 이를 정확히 간파하였다. "제갈량은 그가 시무에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대의에 밝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또한 유비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한나라 황실에 충성을 다한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공명은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견주면서 유비를 모셨다. 이는 공명이 유비를 난세의 패자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지, 한 황실을 부흥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저자 역시 판단하는 듯하다. 유비가 내세우는 대의 역시 유비 자신의 정권 창출을 위한 계략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 또한 제갈량의 이러한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과 16년간 동고동락했다.(2권, p.434)

 


 

저자는 〈에필로그〉 「절절한 이야기 서린 장강 삼협을 보다」를 통해 중국에서 보기 드물게 맑은 강물이 흐르는 소삼협에서의 풍광을 보며 북위 때 지리학자인 곽도원이 장강 삼협을 여행하며 남긴 글을 전한다. "삼협에서 장장 칠백리. 양족 언덕에는 준봉이 연이어져 끊긴 곳이 없고, 첩첩 바위산이 하늘과 해를 가려, 한낮이나 한밤중이 아니면 해도 달도 볼 수 없도다." 저자의 회상과 현장에서의 감회가 남다르다. 어찌 역사와 환경이 지도자에 따라 바뀌는 현장에서 의미심장한 생각이 따르지 않겠는가 싶다. "역도원이 삼협을 본 지 1,500년, 삼협댐의 완공으로 수면이 높아졌어도 구당협의 봉우리들은 한 치의 변함도 없이 하늘을 가릴 듯 솟아있다. 기암괴석과 암벽이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강폭이 좁아 강물은 우렛소리 울리며 소용돌이 치니 일만의 기마병이 내달리는 것 같다. 최고의 실력자가 조정하지 않으면 배는 좌초와 전복되기 일쑤라니, 가히 위험천만한 길이 아니고 무엇이랴."(2권, p.456~457)

 

저자 : 허우범(許又範)

 

작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초빙교수. 독서와 여행을 통해 오늘의 시대와 삶을 반추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20여 년에 걸쳐 중국 전역의 삼국지 현장을 답사하였다. 또한 실크로드에도 천착하여 서안에서 로마까지의 육로를 답사하였고 몇 년 전부터는 바닷길을 답사하고 있다. 저서로 『삼국지 기행』, 『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 『황해로드』(공저) 등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의 국경과 강토에 관한 부분은 저자의 주된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된 저서로는 『여말선초의 서북 국경과 위화도』, 『고려 시대 서북계 이해』(공저)가 있으며, 위화도의 실체와 역사적 비밀을 파헤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화도는 가짜다』를 준비 중에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c*****0 2023.07.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