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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사이를 성찰하는 여백의 마음 이규리 시인이 전하는 불편의 시학 ![]()
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라는 시집을 좋아한다. 그 시집을 통해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는 언제는 어렵기 때문에 시가 어려울 때는 시인의 산문집을 읽고는 했다. 일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내는 시인의 산문집이 좋았다. 또한 시인의 신념이나 사회의식은 시인의 말로, 시인의 문장으로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시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시인은 시가 무슨 힘이 있겠냐는 질문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시인에게는 아무런 힘이나 권력이 없다. 그러나 사회 안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힘과 권력이 정말 없을까? 나는 시인의 말과 목소리는 읽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힘으로 다가온다고 믿는다. 시인이 말하는 불편의 시학이 그래서 마음을 무겁게 하고 불편하게 하며 슬프게도 한다. 시인은 가볍게 산책하는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25년간의 기록들은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는 없는 글이었다. 사랑이 가벼운 것은 아니겠으나 사랑하는 마음이 고작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니었다. 시인은 우리 주변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시리아 난민과 같은 우리가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저 스쳐가는 뉴스 한 장면일뿐 그들에게도 마음을 기울였다.
“슬픔은 남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슬픔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25년간의 기록들
시인에게는 분명 힘이 있다. 시인의 슬픔이, 시인의 시선이 아름답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세월호 생일시를 쓰고 그 시를 낭독하는 시인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이런 작은 마음이 모여 분명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슬픔의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이고 싶다. ![]()
- 시와 시인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반문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시나 시인에게 힘이나 권력이 생긴다면 더 이상 시와 시인이 아니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비관할 필요 없어요. 불안하고 불리하고 불편한 입장에서 비관의 쪽으로 가지 말고 그걸 잘 바라보는 쪽으로 가면 심정적인 힘이 생긴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p.32
- 보잘것없이 보이겠지만 우리는 견디는 삶에 대해 달리 생각해야 한다. 견디는 자의 위치는 두드러지려는 자리가 아니라 채워주는 자리이며 뽀족하게 날 선 자리가 아니라 뭉툭한 울음의 자리이다. 그건 곧 아버지의 자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리이며 권리의 자리가 아니라 책무의 자리라 할까. p.141 |